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22화
“……이, 이게.”
당황한 애슐리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술렁거리는 소리가 점점 높아져,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하객을 향해 외쳤다.
“아닙니다! 이…… 이건 모함입니다!”
선량해 보이는 얼굴로 건네는 호소에도, 어째 그를 향한 사람들의 눈빛에는 의심이 깃들어 있었다.
이제 애슐리는 길 너머에 서 있는 리암을 바라보았다.
“리암, 제발 그만두렴.”
애슐리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와 쓰러지듯 무릎을 꿇었다.
“나, 난…… 네 자리를 빼앗으려는 게 아니란다. 그러니 제발…….”
그리고 눈물과 함께 호소했다.
“이젠 네가 지은 죗값을 치르렴. 내게 뒤집어씌운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흡사 동생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말이 이어졌고, 애슐리의 뒤로 하얀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이 늘어섰다.
명예로운 자리를 얻을 그들의 동료가 일방적으로 모욕을 당하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었던 것이리라.
“이게 무슨 무례입니까, 슬로언 공작님! 오늘은 경사로운 날이 아닙니까?”
“형님의 혼인을 핑계로 감옥에서 임시로 풀려나셨으면, 분수를 알고 얌전히 계셔야 하지 않습니까?”
“감히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쯤 되니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의 혼란도 깊어져, 웅성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더 높아지기 시작했다.
“정말.”
한참 예배당을 지켜보기만 하던 리암이 드디어 애슐리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의 뒤로 치안대가 따르자, 마법사들은 이들을 경계했다.
리암은 애슐리와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추어 섰다.
그가 손을 옆으로 내밀자, 곧 신전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왕의 시종이 리암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는 얼마 전에 왕명을 받들어 ‘대마법사 임명장’을 가져온 이였다.
아니, 적어도 애슐리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지금도 은쟁반에 대마법사를 위한 새로운 로브와 임명장이 놓여 있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리암은 이런 애슐리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담담한 표정으로 그 위에 놓인 임명장을 집어 들었다.
“감히 저것을 멋대로……!”
한 마법사가 버럭 소리를 쳤는데, 애슐리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들어 그를 만류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든 탓이었다.
리암은 왕가의 문장이 찍힌 봉인을 해제하고, 곱게 접힌 종이를 펼쳤다.
그 위에 적힌 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리암은 차분히 시선을 들어 이를 한 글자씩 분명한 발음으로 낭독했다.
예배당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를 들을 수 있도록.
“마법사 애슐리 슬로언을 긴급 체포한다. 죄명은 불법 인체 실험, 미허가 약물 유통 그리고…… 살인.”
“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마법사 중 이를 믿지 못한 사람이 놀라며 달려와 리암의 손에 들린 종이를 획 빼앗았다. 리암은 굳이 그를 만류하지 않았다.
마법사는 덜덜 떨리는 눈으로 왕의 명령서를 읽어 내려갔다.
“이게…… 어떻게…….”
그는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애슐리를 바라보다가, 그가 가까이 다가서자 자신도 모르게 얼른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리 주시겠어요?”
애슐리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로 손을 내밀었고, 마법사는 겁에 질린 얼굴로 얼른 이를 내주고는 자리를 비켜섰다.
애슐리는 왕이 적은 명령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전하께서 내 동생을 친구로 생각하신다더니…….”
애슐리는 이를 시종의 쟁반으로 공손하게 돌려놓고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저를 데려가셔도 좋습니다, 치안대 여러분. 왕명인데 따르지 못할 이유는 없지요.”
그리고 애슐리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끝내 저에게 씌운 혐의의 증거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안타깝지만, 형님께서 아셔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리암이 눈짓하자, 그의 뒤를 지키고 있던 치안대원 몇 명이 각자 서류 뭉치를 하나씩 들고서 앞으로 나왔다. 그들 중에는 사무엘 서튼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설 원장에게 형님이 보낸 편지입니다. 후원을 약속하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리암이 설명할 때마다 해당하는 서류를 든 치안대원이 애슐리를 향해 이를 내어 보였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곤란한 사람들을 도운 것이 죄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아뇨, 문제는 다음이죠.”
그리고 또 다른 치안대원이 들어 올린 서류에는 아이들의 학습, 생활 태도 그리고 건강 상태가 정리된 서류가 있었다.
그 위로 애슐리의 필체로 직접 아이를 골라 표시를 해 둔 흔적이 있었다. 거기에 실험실로 보내기 전에 살을 더 찌우라는 이상한 요구를 덧붙인 메모도.
“원장과 함께 아이를 고른 흔적이죠. 시설 원장에게 이를 보여 주니 순순히 털어놓더군요.”
“…….”
“당신의 뜻에 따라서 아이들을 골라 서부 엠버혼으로 넘겼다고.”
그리고 원장은 애슐리가 자신의 아이를 치료하는 대신 다른 아이들처럼 실험용으로 쓸 것이 두려워 증거가 될 만한 서류를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다고.
만약의 사태에 애슐리에게 아이의 치료를 요구할 수 있는 무기로서.
비록 그의 부주의로 이를 선대 공작에게 들켜, 전부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원장은 당신의 명령으로 제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했다는 사실도 전부 이야기했습니다. 이미 치안대를 통해 진술 서류도 완성되었습니다.”
또 다른 치안대원이 해당 서류를 내어 보였다.
“그는 늦게나마 진실을 말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원장은 그간 리암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일로 자신을 깊이 혐오하고 있었던 듯했다.
이제 애슐리를 바라보는 하객들의 시선에는 확실한 적의가 있었다. 심지어 그를 지키기 위해 달려 나온 마법사조차 질색하며 한 걸음씩 멀어져 갔다.
“그것이…… 진실인지 어떻게 알지?!”
상황이 끝에 치달았음에도 애슐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은 채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었다.
“원장은 거짓으로 널 죄인으로 몰았던 자다. 증언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이의 말을 어떻게 신용할 수 있지?”
애슐리는 마침 무언가를 떠올린 듯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애초에 휴고 마플이 자살까지 하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건, 공작인 널 감싸기 위해서였다!”
“아뇨.”
이에 대한 답은 놀랍게도 리암이 아니라 줄지어 앉은 하객 사이에서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를 따라 바라보니, 아셔가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빠져나와 애슐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절대 아닙니다.”
중앙 통로로 빠져나온 그는 얼른 안경을 고쳐 쓰고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바로 그 서부 엠버혼의 지방관 휴고 마플의 아들입니다.”
“아셔, 네가 감히…….”
애슐리가 그의 이야기를 막으려는 듯했지만, 아셔는 얼른 리암의 곁으로 붙어서며 큰 소리로 외쳤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저는 그분의 수기를 발견했습니다.”
마플은 수기 전부를 증거로 왕실에 제출했기 때문에, 그가 여기에 가져온 것은 왕실의 공인을 받은 사본뿐이었다.
“그분은 생의 마지막까지 공작 위를 애슐리 님이 잇지 않은 일로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공작님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셔는 애슐리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면 모를까.”
“거짓말입니다!”
애슐리는 이 역시 부정했다.
“고작 개인의 일기일 뿐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슬로언 공작이라도 가신의 일기장 내용까지 어떻게 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무도 동조하지 않는 분위기에서도 그는 자신을 변호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근거 없는 억측입니다. 이제 공작은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신하를 매도하는 겁니다! 리암, 부끄럽지도 않으냐?”
“…….”
디만 리암은 답변 대신에 애슐리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를 에워싸던 마법사들도 어느새 보이지 않고, 신전에 있던 이들 모두 그를 수상하게 바라보고 있는데도, 그는 여전히 선량해 보이는 가면을 벗지 않고서 제 결백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그의 정신력이 부러울 정도였다.
“형님이야말로 부끄럽지 않으신지요.”
리암은 긴 한숨과 함께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뭐?”
“그렇게 부정하셔도, 가장 확실한 증언을 해 줄 사람이 있습니다. 사건을 경험한 당사자 말입니다.”
리암의 발언에 애슐리는 획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 끝에는 대사제와 함께 서 있는 다프네 서튼이 있었다.
리암의 말대로 그녀는 실험의 당사자였다.
허가되지 않은 약물을 지속해서 섭취시켰으니, 그녀의 몸속에는 그 잔재가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는 어째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듯했다.
“아, 아니……!”
줄곧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변명이 드디어 멈추어 버릴 정도로 말이다.
“애슐리 슬로언은…….”
그 틈을 타, 다프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 닥쳐!”
그 순간에는 지금껏 억눌러 온 애슐리의 분노가 그녀를 향해 단숨에 쏟아져 나왔다. 가장 만만한 상대라는 생각에서 자연스레 그리된 것이리라.
“정말로, 정말로 네 남동생이 죽는 꼴을 보고 싶어?!”
그녀를 향해 달려들려는 듯 그는 획 몸을 돌렸으나 거기까지였다.
새카만 그림자가 그의 앞을 막아서더니.
콰직, 하고 차가운 것이 그의 입 안을 우악스럽게 쑤시고 들어왔다. 잇몸이 부러졌는지 격통이 함께였다.
애슐리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의 앞을 막아선 사무엘 서튼의 총구가 그의 입 안을 거칠게 쑤신 것이다.
보통 남자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사무엘의 위압감에 애슐리는 순간 동물적인 공포감에 휩싸였다.
“너.”
애슐리의 어깨가 살짝 움츠러드는 순간에 사무엘은 이를 놓치지 않고서, 총구를 더욱 깊이 찔러 넣었다.
“우리 누나 괴롭히지 마.”
그 몸집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꼭 어린아이나 쓸 법한 투였으니.
하지만 그 안에 자리한 끔찍한 살기는 결코 우습게 넘길 만한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