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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13)화 (113/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13화

리암은 그 죄수가 직원들이 말했던 ‘보호자분’이라는 사실을 금세 알았다. 달려 나간 두 명의 직원이 곧바로 그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죄수는 직원들의 설명도 제대도 듣지 못하고서, 쫓기듯이 사인부터 하는 모습이었다.

정황으로 보아 촌각을 다투는 긴급한 치료가 필요한 듯했다.

사인이 완료되자 직원 한 명이 긴급히 ‘내일 병동’이라고 적힌 팻말을 따라서 계단을 뛰어올랐다.

남은 직원도 다시 돌아가려고 할 때.

“아, 저어!”

죄수가 묶인 손으로 직원의 옷소매를 겨우 붙잡았다.

“부탁드립니다. 제가 치료를 참관할 수 없겠습니까? 복도에서 보기만 해도 좋습니다. 예?”

순간 당황한 직원이 곧 치안대원들을 향했다. 그러나 그들은 딱히 죄인을 말리려는 기색은 없었다. 안경을 고쳐 쓴 직원이 다시 죄수를 바라보았다.

“어, 으음. 아버님, 잘 아시겠지만요.”

“알죠, 그러니까 부탁드리지 않습니까? 네?”

“아이참, 이러지 마세요!”

직원이 조심스레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죄수는 더욱 간절히 그를 붙잡을 뿐이었다.

“제발…… 어쩌면 저도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보시다시피 이런…….”

“아으, 아버님.”

“멀리에서 보기만 하겠습니다. 아니, 그림자만 보아도 좋으니, 자비를 베풀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 그게…….”

직원은 구원을 바라는 눈빛으로 치안대원들을 다시 바라보았지만 그들도 자식을 보고 싶다는 아비의 요청에는 엄격하게 굴지 못하는 듯했다.

“제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조금 전에 서류에도 무서운 말이 적혀 있지 않았습니까.”

그건 치료의 끝에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명시해 둔 조항을 뜻하는 듯했다.

“그게 그렇긴 한데요…… 아, 이게 다른 보호자분들이 항의하실 수도 있고요, 그, 아버님은…… 평범한 분이 아니잖아요.”

그건 정확히 말하면 ‘죄인이라 안 된다.’라는 뜻이기도 했다. 직원은 그의 무너지는 심정을 애써 모른 척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다 어느새 바로 뒤로 다가와 있던 리암과 가볍게 어깨가 부딪치고 말았다.

“아.”

리암을 알아본 직원이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슬로언 공작님.”

“아니.”

리암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나야말로 바쁜 사람을 계속 귀찮게 해서 미안하네.”

“예?”

“하지만 나도 함께 부탁하고 싶군. 어쩌면, 아이도 아버지를 기다릴지 모르지 않나.”

리암은 치안대원들을 돌아보았다.

“치안대의 이송 규칙에 어긋나는 사항이 없다면 말이야.”

치안대원이 얼른 고개를 끄덕여 설명했다.

“저희는 다섯 걸음 이상 떨어지지만 않으면 어디든 괜찮습니다. 지정된 복귀 시간까지는 아직 세 시간 이상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는 건, 치안대장과 전하께서도 처음부터 치료의 참관을 전제로 외출 허가를 냈다는 뜻이군.”

“예, 그렇습니다.”

리암은 다시 병원 직원을 돌아보았다.

“내가 이 남자를 보증하지. 거기에 유능한 치안대원들이 빈틈없이 곁을 지킬 거야. 위험한 일은 생기지 않을 거네. 그래도…… 안 되겠나?”

“그렇다면…….”

직원은 이제 더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잠깐이어야 합니다. 진짜 잠시요. 공작님께서 병원장님께 직접 말씀해 주셔야 하고요.”

“물론 그야 어렵지 않지.”

“알겠습니다. 대신 저도 병동까지 동행하겠습니다. 혹시 모르니까요.”

“믿음직스럽군. 배려심에 경의를 표하지.”

“아뇨, 아이를…… 위해서니까요.”

리암은 죄인을 돌아보았다. 그는 황망한 눈동자로 리암을 바라보다가 시선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

어째 도움을 주고도 외면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리암은 신경 쓰지 않고서 어깨를 으쓱였다.

“이대로 가는 것도 너무 눈에 띄려나.”

그는 제 웃옷을 벗어서 죄수복 위로 걸쳐 주었다. 마르고 작은 죄수의 몸을 그의 옷이 덮어 주자 눈에 띄는 죄수복의 색을 제법 감추어 주었다.

“훨씬 낫군.”

리암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곧 직원이 먼저 안으로 향했고, 치안대원이 죄수의 팔을 양쪽에서 붙잡았다.

“……아.”

몇 걸음 나아가던 남자는 잠시 리암을 돌아보았는데, 시선이 마주치자 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인지, 사죄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인사였다.

리암은 병동으로 사라지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방향을 바꾸어 병원장의 방으로 찾아갔다.

* * *

애슐리는 병원에서 내일 병동의 일로 긴급한 호출을 받고 집을 비웠다.

다프네는 여전히 그의 집에 혼자 남아 있었다.

이전이었다면 도망갈 생각부터 했을 테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2층 손님 방 창가에 서서, 그녀는 떨리는 손끝을 앞으로 내밀었다. 보이지 않는 창살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내가 그를 치료할 때, 아무런 조치도 해 놓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시설의 원장을 보내서 증언을 시켰죠.」

이 집에 애슐리가 돌아왔을 때, 만약 다프네가 집 안에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녀는 애슐리가 태워 버린 화분이 있던 곳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바닥의 둥근 자국을 제외하면, 이제 거기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지난 기억 속에서 사무엘이 그랬던 것처럼.

힐링엄 양이 그랬던 것처럼.

“하아.”

시간을 돌아왔는데도 또 이 자리란 말인가.

다프네는 밀려오는 답답함에 제 머리를 쥔 채로 그대로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정말,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았는데…….’

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지금까지 제법 신중하게 행동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결국 리암에게 마음이 이끌리고 말았으니, 신중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전부 나…… 때문이야.’

질끈 감은 시야 너머로 불현듯 지난 생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아직, 아니야. 아직은.’

그녀는 화분이 있던 자리를 손끝으로 훑었다.

“모두 무사해. 아무도 다치지 않았어. 정신 차려, 다프네 서튼.”

이제부터는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애슐리가 그녀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 이를 택하는 것이라고.

이번에야말로 정말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무엇보다 다프네는 그에 대해 무작정 공포를 느끼는 나약한 인간이 아니었다.

‘어쩌면, 지난 생의 정보로 이번에는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마침 창문 너머에서 자동차의 시동이 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내다보니 일을 마친 애슐리가 돌아오고 있었다.

다프네는 방을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여전히 약 기운이 몸에 남아 있어 조금씩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바짝 긴장한 머릿속은 평소와 다름없이 또렷하기만 했다.

“도망가지 않았네요.”

“당신의 제안에 답하기 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다프네는 그 앞에 똑바로 마주 섰다.

“왜 나와 결혼하는 거죠?”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당신에게 더 나은 선택이 있을 걸 알아요. 마법사로서, 이 사회의 유명 인사로서.”

애슐리 정도 되는 남자와 결혼을 마다할 귀족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지난 생에 이어서 또 다프네를 선택했다.

그다지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아니 오히려…… 싫어하는 듯 보이는데도.

“그야, 간단하지 않나요.”

애슐리는 빙긋 웃으며 다가와 다프네의 핼쑥한 뺨을 쥐었다.

“슬로언에게 서튼이 붙어 있는 건.”

미친 새끼.

다프네는 저도 모르게 나오려는 욕설을 가까스로 삼켰다.

그러니까 그들의 결혼은 애슐리에게 있어서 일종의 ‘공작 놀이’였던 것이다.

강제로 놓아야 했던 공작 자리를 흉내 내며 쾌락을 느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예쁘게 웃어야지, 서튼?」

이제야 왜 지난 생의 그가 다프네를 ‘서튼’이라고 불렀는지 완벽하게 깨달았다.

그녀를 서튼이라고 부를 때마다 그 자신이 ‘슬로언 공작’이라는 기분 좋은 착각을 누렸을 것이다.

다프네의 절대복종을 바란 것도 그런 이유였을 테고.

“그리고.”

그는 다프네를 쥔 손에 조금 힘을 주었다. 그의 엄지 끝이 입술 위를 아프도록 짓눌렀다.

신음을 참는 다프네를 만족스럽게 내려다보던 그는 고개를 기울여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리암도 소중한 것을 빼앗겨야 공평하잖아요?”

“……그분께.”

다프네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애슐리의 팔을 가볍게 쳐 냈다. 다행히 그는 금방 제 손을 떨어뜨렸다.

“제 존재가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을 겁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아니, 지금 나와 협상을 하고 싶어서 수를 쓰는 거라면…….”

“결혼은 합니다!”

다프네가 단호하게 내뱉은 말에 그의 눈썹이 살짝 움찔거렸다. 어쩌면 그의 예상과는 너무 다른 답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당신도 약속, 반드시 지키세요. 사무엘의 손끝 하나 다치지 않게 하고, 공작님과 커빙턴 아가씨도 무사해야 할 겁니다. 그게 내 결혼의 조건이에요.”

애슐리는 무언가를 가늠해 보는 듯한 시선으로 다프네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맹세하죠.”

“그렇다면, 그 내용이 포함된 결혼 계약 서류를 준비해 주세요.”

“네, 가까운 시일 내에 사인할 수 있도록 해 둘게요. 일단 축배라도 들까요?”

그는 다프네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로 계단 위로 이끌었다.

다프네가 사용하는 손님 방에 도착한 후에는 찬장에서 노란색 약병을 또 꺼내어 들었다.

“마셔요.”

그가 빙긋 웃으며 건넨 약병을 다프네는 차마 받아 들지 못했다.

기억은 그녀의 유일한 무기였다.

의식이 없는 사이에 강제로 몇 병이나 마시고도 여태 기억을 잃지 않은 것은 요행이었을 터, 여기에서 더 마셨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까 두려웠다.

“어차피 내 것이 될 거라면 지난 기억 같은 건 그다지 필요도 없잖아요?”

“그건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다프네가 뜸을 들이자, 애슐리가 재촉했다.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전 시간을 되돌아왔어요.”

다프네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서 애슐리의 반응을 관찰했다. 역시나 깊은 흥미를 느낀 듯했다.

“전 마법사는 아니지만, 대마법사 서튼의 후예죠. 분명히 무슨 관계가 있을 거예요. 무엇보다, 저는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사건을 전부 알고 있어요.”

인체 실험에 목말라 있는 애슐리에게 이보다 더 매력적인 실험 대상이 있을까.

“내가 이 기억을 잃어도 좋다면, 얼마든지 마시도록 하죠.”

다프네는 보란 듯이 약병을 빼앗아 제 입술로 기울였다. 하지만 내용물이 미처 흘러나오기도 전에 애슐리가 그녀의 팔을 붙잡아 이를 제지했다.

“듣고 보니 당신 말이 옳아요.”

그는 다프네의 손에 들려 있던 약을 다시 가져가 찬장 안으로 돌려 두었다.

“역시 축배는 다른 것으로 하는 편이 좋겠네요.”

그는 곧장 방을 나섰고, 혼자 남은 다프네는 잠시 바닥에 툭 몸을 떨어뜨렸다.

왠지 다시 토기가 밀려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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