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11화
“저, 정말입니다! 지금까지 무서워서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멸치같이 말라비틀어진 늙은 남자가 수도 치안대의 지하실에서 벌써 세 번째 조사를 받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수도에서 아동 시설을 운영하던 자로, 오늘 아침 직접 치안대에 출두하여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운영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저도 아이가 있는 부모인데요……! 다, 다만…….”
그는 우물거리며 맞잡은 손을 문질렀다.
“도, 돈이…… 필요하지 않으냐고 하셔서.”
맞은편에 앉은 치안대장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가까스로 분노를 억누르는 듯했다.
“누가?”
“…….”
원장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를 둘러싼 치안대원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듯했다.
설마 주변을 물러 달라고 할 생각일까.
치안대장이 걱정하는 사이, 원장은 어째 덜덜 떨리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슬로언 공작님입니다! 크, 클롯모어의 주인님 말입니다! 약물은 가문 출신의 어린 마법사가 가져다준다고 했습니다.”
잠시 주변이 고요해졌다.
공작이라면 원장을 찾는다며 치안대의 협조까지 구했던 사람이 아닌가.
치안대장이 그에게 자세한 사정을 캐물으려던 차, 복도에서 다섯 번의 벨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높은 사람의 긴급한 방문을 알리는 것이다.
신분에 따라 한 번부터 최대 다섯 번까지 울리는데, 이 땅에서 그 ‘다섯 번’에 해당하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곧 지하실의 문이 열리고, 짙은 푸른색의 정장을 갖추어 입은 잘생긴 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치안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얼른 경례를 올렸다.
“전하.”
그가 상황을 보고하려고 하기에, 엘리엇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응, 따로 보고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고 멋으로 가져온 짧은 지팡이를 고쳐 쥐고서 원장을 쓱 돌아보았다.
“얼마나 소문을 내고 싶어서 안달이 났는지.”
엘리엇은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그 걸음마다 원장의 등이 점점 굽어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복도까지 선명히 들려왔을 정도거든.”
“저…… 전!”
원장이 멋대로 변명을 건네려고 하기에, 치안대장이 바로 이를 윽박질렀다.
“감히 허락도 없이 전하께 말씀을 올리느냐!”
이번에도 엘리엇은 손을 들어 대장을 저지했다.
“고마워, 하지만 말은 들어 봐야겠네.”
엘리엇은 지팡이의 손잡이 부분으로 원장의 턱을 들어 올렸다.
시선이 마주치자 원장의 눈동자가 쉼 없이 떨려오는 것이 어째 굉장히 불안해 보였다.
“이제야 나타난 이유가 뭐지?”
“저, 전……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알아, 반성한다고 해서 살려 줄 생각도 없을 정도의 죄를 지었지.”
엘리엇은 싸늘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며 답했다.
“아, 압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야 조금은 진정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진실을 말씀드리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뿐입니다. 누가 절 사주했는지.”
그렇게 말하는 원장의 얼굴에는 놀라울 만큼의 진심이 깃들어 있었다.
“슬로언 공작입니다. 정말입니다! 그분을 불러서 조사해 보시면 진실이 드러날 겁니다!”
* * *
알현실로 리암이 찾아오자 엘리엇은 가장 먼저 주변을 무르고, 두 사람의 거리를 좁혀 섰다.
“네가 불리해, 리암.”
“…….”
“네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목숨이라도 구걸한다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야.”
원장은 제 죽음에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오직 진중한 눈빛으로 리암의 부정에 대한 고발을 전할 뿐이었다.
그 태도에 ‘진실’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치안대원도 있기 때문에, 소문은 이미 은밀히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귀족들이 이를 알게 되기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을 거야.”
“……그렇겠지.”
누군가의 흠을 들쑤시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더구나 리암 슬로언은 젊고 잘생긴 공작이었다. 아름다운 것에 상처를 내고 더럽히는 일을 뭇사람들은 축제처럼 즐기게 되리라.
가문의 이름에 불명예가 덧입혀지는 것은 물론, 어쩌면 리암이 지금의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 수도 있었다.
“알겠지만 리암, 난 공평한 적이 없어.”
엘리엇은 이미 결심을 마친 듯, 리암의 두 손을 꼭 붙잡았다.
“내 하나뿐인 친구에게 도움이 된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뜻이야.”
“그건 즉.”
리암은 엘리엇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그의 의중을 짚어 냈다.
“조용해질 때까지 날 멀리 보내 주겠다는 뜻인가?”
“유학이든 외교든 핑계는 이제부터 만들 거야. 당장은 반발이 있겠지만 알잖아.”
엘리엇은 리암을 쥐고 있던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어차피 사람들은 금방 잊어.”
“…….”
“잊어버리는 약 따위가 없어도, 자신에게 직접 피해가 오는 일이 아니라면 다들 금방 잊고 살아.”
그건 무척 예전부터 각 나라의 왕이 아끼는 신하를 지키기 위해서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흔하고 간단하지만, 가장 확실한 것이기도 했다.
고민하듯 창밖을 향했던 리암의 짙은 눈동자가 허공을 돌아 엘리엇에게 돌아와 박혔다.
순간 엘리엇은 감각적으로 리암이 거절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안 돼, 리암.”
엘리엇은 황급히 막아서듯 말을 뱉었다.
“잘 생각해, 지금은 다프네를 찾는 것이 문제가 아니야. 일단은 네가…….”
“내가 공작의 의무와 도덕을 버리고 외국으로 도망치는 것은 그야말로 애슐리 슬로언이 바라는 일이지.”
엘리엇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정말로 바라는 건 네 몰락이란 말이야! 이대로 누명을 뒤집어쓰면 슬로언 공작도 무엇도 아니게 되는 거라고!”
잔뜩 흥분한 그와는 달리 리암은 여전히 침착한 투였다.
“설령 여기에서 도망쳐 잠시 사람들의 망각을 산다고 하더라도 애슐리는 영원히 이를 잊지 않고 내게 꼬리표를 붙일 셈이겠지.”
“…….”
“그러니까 도망으로 얻을 수 있는 건 내게 무엇도 없는 셈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다프네를 찾아야 한다고?!”
엘리엇이 울 것 같은 얼굴로 묻자, 리암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짧은 대답에는 그녀를 향한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엘리엇은 시선을 돌려 이를 외면하고 말았다.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깨달았다.
“넌…… 네 자리에 그다지 관심이 없구나.”
“…….”
“공작의 자리를 지키는 일은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 있어. 네가 지금 어떻게든 수도에 있겠다고 말하는 건…….”
다프네 서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차마 마지막 말은 뱉지 못한 채로 제 입술만 깨물었다.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쓸모없는 감정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는데.”
그의 부모를 죽인 독은 사랑이었다.
왕이 사랑한 보잘것없는 여자는 독살을 당했고, 유일한 사랑을 잃은 남자는 미쳐서 죽어 버리고 말았다.
그 악마 같은 감정이 이번에는 그의 친구를 옭아매려는 걸까.
“엘리엇.”
그가 괴로워하는 것을 알았는지, 리암이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나와 원장을 만나게 하겠다고 발표해.”
“…….”
“그가 만난 ‘슬로언 공작’이 정말 내가 맞는지 확인하고, 그 이후에 처벌을 결정하겠다고.”
“당연히 너라고 하겠지!”
“그렇게 하면, 그와 내가 공식적으로 만나는 시점까지는 내게 유예를 줄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엘리엇은 비명을 지르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고서 차분히 질문을 건넸다.
“넌…… 대체 뭘 할 생각이야?”
* * *
툭, 노란 병을 떨어뜨린 다프네는 침대에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순간 세상이 빙글 도는 느낌과 함께 균형이 무너질 뻔했으나, 두 손으로 벽을 짚어 어떻게든 두 발로 설 수 있었다.
‘나가야 해…….’
그 사실에 대해서는 이제 더 고민해 볼 것도 없었다.
애슐리가 무엇을 노리고 다프네를 굳이 여기까지 데려와 약을 먹이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순한 실험체로 여기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지.
하지만 그것을 알아내겠다며 굳이 이 지옥에 붙어 있을 마음은 없었다. 미적대다가 기억에 문제라도 생기면 더욱 곤란해질 테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창가에 도착한 그녀는 창문을 밀어 열었다. 단단히 잠가 두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간단히 열렸다.
내려다보니 다행히 2층까지 자란 나무의 도움을 받으면 어떻게든 무사히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약으로 인한 어지럼증에 괴로웠지만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다프네는 아무것도 신지 않은 채로 창틀 위로 올라갔다.
“싫어요! 전 아무 짓도 안 했단 말이에요!”
마침 창밖에서 익숙한 비명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몰려온 치안대원들이 로브를 뒤집어씌운 어린 마법사 한 명을 연행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불어온 바람에 로브가 흘러내려 마법사의 얼굴이 드러났다.
“……커빙턴 아가씨!”
다프네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으나, 피오나가 있는 곳으로는 소리가 닿지 못하는 듯했다.
“진짜 아니에요! 약을 빼돌리다니, 저 정말로 그런 짓은……!”
소녀는 치안대의 마차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를 둘러싼 다른 마법사들은 저들끼리 무어라고 대화는 나누었지만,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말도 안 돼.”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피오나가 누명을 쓴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한 다프네는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게다가 이건 기회이기도 했다.
피오나를 감싸며 치안대와 함께 끌려 나간다면, 애슐리도 다프네를 어쩌지는 못할 테니까.
“서튼 양, 그 몸을 하고서 나가려고요?”
그때, 뒤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다프네는 그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대답할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다칠 텐데요.”
그따위 약을 먹여서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걱정이라니. 다프네는 기가 막혀서 그를 가볍게 노려보고는 금세 단단한 나뭇가지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러니까, 사무엘이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