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07화
그야말로 볼품없는 키스였다.
흔한 달빛의 축복마저 없어서 그들은 오로지 서로의 감각에만 의존하여 상대를 찾아야 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두 사람은 코끝이 몇 번인가 스치듯 부딪치기도 하고, 입술이 아닌 다른 곳에서 헤매다가, 그대로 제 열렬함을 남기는 일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입술이 맞닿는 순간, 다프네는 그의 가슴께를 쥔 손에 바짝 힘을 주었다.
이 사소한 행동이 그를 자극했음이 분명했다. 그는 조금 더 깊은 곳에서 다프네를 찾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그녀의 고개가 뒤로 넘어가며, 어느새 완전히 무게를 맡긴 채 안겨 버렸다.
귓가로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그녀 자신의 것이다. 아프다 느낄 만큼 울려 대는 진동 사이로, 그의 진한 호흡과 신음을 들었다.
그 음탕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다프네 자신을 향한 열망이라는 사실이 낯설었다.
아마, 애슐리가 건 저주가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남자에 대해서 떠올리게 된 순간.
“……!”
다프네는 두 눈을 반짝 뜨고서, 황급하게 리암의 어깨를 밀어냈다.
어느새 어둠에 적응되었는지, 타액이 묻은 그의 입술과 헝클어진 머리카락 따위가 전부 시야에 들어왔다.
“……왜?”
그가 다소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짜증이라기보다는 다급함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아, 그…….”
다프네는 여전히 그의 옷을 쥔 채로 어색하게 서 있었다.
“괜찮아, 이 이상 안 할 테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다프네를 안은 그의 손은 허리 근처를 쉼 없이 지분거리고 있었다.
“아뇨.”
“아뇨?”
“아, 아뇨!”
의미 없는 부정문을 서로 주고받은 후에야 다프네는 겨우 해야 할 말을 골라낼 수 있었다.
“그…… 위험한 것 같아서.”
“대체 뭐가?”
그는 기다림에 지쳤는지, 다프네를 품에 푹 끌어안았다.
“우리는 가족…… 이잖아요, 여기에서는.”
다프네는 일단 그들의 설정을 변명 삼았다. 실제로 이런 상황을 들키면 곤란하기도 했고.
“그렇지.”
의외로 리암이 간단하게 수긍하는 답을 건넸다.
“그러니까 이제…….”
놓아 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어째 그는 자신에게 더 밀착했다. 다프네의 어디든 완전히 그에게 속하게 될 정도로 깊이.
“상관없어.”
“네?”
다프네가 놀라며 물었다. 혹시 이제 정체가 들켜도 상관없다, 뭐 그런 의미인가 해서.
“아직 아무것도 못 찾았는데요?”
“상관 안 한다고, 그대가 설령…….”
그는 고개를 숙여 머리카락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그가 제대로 뱉지 못한 말에는 아마 애슐리의 이름이 섞여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그대를 바라.”
그는 입술에 닿은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고는 재차 같은 고백을 반복했다. 다프네 서튼을 바라고 있노라고.
그 애틋한 진심을 듣자, 다프네는 비로소 제 안에 남아 있던 악독한 저주에서 조금씩 풀려나는 기분이 들었다.
애슐리 슬로언은 말했다.
이 세상의 누구도 다프네를 원하지 않을 거라고. 그가 너그러운 남편이라 그녀를 거두어 주었을 뿐이라고.
그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째서 그때 당시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로 느껴졌던 걸까?
그런 자신이 너무나도 바보 같고, 한심했다.
“왜 우는 거지?”
머리 위에서 들려온 물음에 다프네는 조금 고개를 들었다. 시야가 흐릿했다.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다프네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저.”
“알고 있었잖아, 내가 그대에게 푹 빠져서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흐.”
그는 손수건을 꺼내어 다프네의 얼굴을 살살 닦아 주었다.
“아니면 혹시 내 전달 방식이 부족했을까?”
다프네는 고개를 저었다. 마음 같아서는 말로 전하고 싶은데, 자칫 입을 열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두려웠다.
“내가 미안해.”
그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어째서인지 진심으로 사과했다.
“……고, 공작님…… 때문이…….”
“아니라고?”
그녀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기 때문인지, 그가 대신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눈물로 축축해진 입가에 차례로 입을 맞추었다.
“내가 사과하게 해 줘.”
“왜, 왜요…….”
“그냥, 희망하는 거야.”
고개를 든 그가 조금은 슬프게 미소 지었다.
“그대가 자신을 탓하지 않기를.”
“…….”
“나는…… 그대 덕분에 지난 시간의 나를 쓰다듬어 줄 수 있을 정도는 되었거든.”
“……공작님.”
“내가 똑같이 해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이야기해 주고 싶어.”
그는 허리 근처로 늘어진 다프네의 머리카락 끝을 찬찬히 쓸어내렸다.
“그대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어.”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는, 심장에 응어리져 있던 감정이 툭 흘러내렸다.
단단하게 굳어 마치 그녀의 일부인 줄 알았던 것이었는데, 금세 부드럽게 녹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여전히 자책하게 된다면, 다프네.”
“…….”
“조금 전에 말한 것과 같이, 나를 탓하도록 해. 많이 원망해도 괜찮으니까.”
“어, 어떻게…….”
그를 탓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울음에 가로막혀 나온 말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는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그녀의 뜻을 이해한 듯 답을 들려주었다.
“할 수 있어. 내가 힘들 때 왜 곁에 없었느냐며 원망하면 되지.”
“억지예요. 그건…….”
“뭐 어때, 어차피 그대를 괴롭히는 것도 ‘억지’와 다름없는 순간일 텐데.”
다프네는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며 묻고 싶었지만, 이내 답을 찾았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처음부터 닮은 구석이 꽤 많았다. 아마 비슷한 상처를 안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로 인하여 다프네가 자연스럽게 그를 이해하게 되듯이, 그도 숨을 쉬듯 그녀를 이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더 많이 좋아해 줘.”
“……공작님을요?”
다프네가 찔끔 눈물을 흘리며 건넨 질문에 리암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고맙지만 그보다는 일단, 다프네 서튼을.”
“…….”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보장하는 마성의 매력이 있는 사람이거든.”
그가 장난스럽게 덧붙인 말에 다프네는 울면서도 어째 쿡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게 뭐예요.”
그 웃음이 좋았는지, 그녀를 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가 그새 다소 느슨해졌던 그들의 사이가 바짝 좁혀들었다.
“진심이야.”
고개를 숙인 그의 입술이 귓가에 닿았다. 속삭이는 말은 물론 이에 따른 떨리는 호흡까지 전부 그녀의 귀로 향했다.
“나는 전부 진심이야. 그것뿐이야.”
“……공작님.”
그리고 그는 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서 다프네를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는, 전과는 달리 차분한 키스가 이어졌다.
그들이 선 곳이 달빛마저 들지 않는 낡은 다락방이라는 사실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색 빛깔을 머금은 아름다운 빛 속에서 이루어진 텅 빈 키스는 그녀에게 상처만 입히지 않았나.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다프네는 발끝을 살짝 더 들어 올렸다.
진심은 달콤했다.
이제는 떨어지는 것이 끔찍하게 여겨질 만큼.
* * *
연애는 연애고, 일은 일이었다.
그 점은 리암과 다프네가 잘 통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적어도 다음 날 아침에 사용인 조회에 참여하던 다프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쓸데없이 머리 위로 꽃을 휘날리는 듯한 리암의 들뜬 얼굴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조회가 끝나고 다프네는 리암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무래도 사용인 선배로서 꼭 주의를 주어야 할 듯싶어서.
“기분을 얼굴에 드러내지 마세요. 사용인은 언제나 일관된 모습으로 주인 앞에 나서야 합니다.”
“오…….”
리암은 잠시 커다랗게 뜬 눈으로 다프네를 응시했는데, 그건 꼭 ‘그대가 그렇게 행동했던가?’라고 묻는 것 같았다.
“물론 저는 늘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모범으로 삼으십시오.”
“그런가, 하지만.”
리암은 주변의 사용인이 삼삼오오 모여 각자 떠드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그녀의 귓가로 허리를 숙여 속삭였다.
“그대는 매일 더 아름다운걸. 일관성도 없이.”
당연하지만, 다프네는 밭에서 썩은 무라도 뽑은 것 같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같잖은 소리에 그만 욕이 나올 것 같았다.
“진짜 미치셨습니까?”
그러자 리암은 신이 나서 입술 모양만으로 좋아한다는 소리를 해 대기 시작했다.
“맙소사.”
다프네는 잠시 제 이마를 쥐었다. 아무래도 이 남자가 고삐가 풀려서 정신이 나간 것이 틀림없었다.
“두 분은 정말로 사이가 좋으시네요.”
그때, 다른 사용인들이 빙글 웃으며 이야기를 걸어왔다.
“아, 예.”
다프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지내는 편입니다. 일 년에 하루 정도는요.”
“덕분에 서로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관계는 되었죠.”
그들이 한 마디씩 서로를 저격하자 주변에 웃음이 퍼졌다.
“그런데, 그 이야기 들으셨어요?”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되기 전에, 사용인끼리 모여서 잡담을 나누는 시간은 저택에 대한 정보를 얻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그러니 리암과 다프네는 사용인 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라면 무엇이든지 귀를 기울였다.
“무슨 이야기요?”
다프네는 이야기를 꺼낸 하녀에게 질문을 건넸다.
“이건 다른 저택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요.”
그녀는 잔뜩 목소리를 죽였다. 자연스레 홀은 무척 조용해졌다.
“얼마 전에 신문에서 난리가 났던 살인 사건 있잖아요.”
“아…… 그 슬로언 공작의 신하가 저지른 일? 죄 없는 애들을 죽인 사건 말이지?”
누군가가 바로 답했고, 다프네는 굳이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 하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네, 맞아요.”
“죽어 싸지, 그런 미친놈은.”
“아니, 근데…… 그게 어쩌면, 공작님이 저지른 일을 자기 신하한테 뒤집어씌운 걸지도 모른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