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06화
나랑 키스라도 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리암이 고른 말을 ‘평소의’ 다프네가 들었다면 아마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놓으며 뒤로 물러섰을 것이다.
리암 슬로언과 키스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축복하는 키스라면 모를까.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절대로 그와 나눌 수 없었다.
그는 다프네의 주인이었다.
주인과 키스를 하는 건, 사용인이 저지를 수 있는 멍청한 짓 중 일순위에 드는 것이다.
게다가 리암 슬로언은 그녀가 결혼한 남자의 동생이었다. 피가 이어진 진짜 동생 말이다.
여기에서 키스하면, 후에 사실을 알게 된 리암이 다프네를 경멸할 것은 분명했다. 인간의 도리도 모르는 이라면서.
그러니까 손을 놓아야 했다.
‘……그래야 하는데.’
어째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쩌면 아까부터 신경 쓰였던 소리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심장이 쉴 새 없이 내달리는…….
사실 지금까지 다프네는 ‘상대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라는 말은 참 현실성도 없다고 생각해 왔다.
내장이 움직이는 소리가 타인에게 들린다니. 가슴에 바짝 귀를 대지 않는 다음에야 불가능한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정말로…….’
들려왔다. 다른 것과 착각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그 사실을 자각할 때는 묘한 희열과 안도가 함께 찾아왔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 남자는…… 다프네에게 거짓된 마음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뜻일 테니까.
리암의 진실성을 깨닫는 순간에는 저절로 그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별다른 생각을 거친 행동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가 자각한 것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이런 것을 바랐음을 알았다.
확실한 애정의 행위를.
그가 헉 소리를 내며 커다란 호흡을 내었다. 그 뜨거움이 그녀의 이마와 뺨을 간지럽힐 때, 드디어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을 옥죄었던 생각을 지워 냈다.
다프네는 두 눈을 감았다.
“남작님은 오래 걸리실 것 같은데요. 괜찮다면 제가 대신 이야기를 들어 보죠.”
……감았는데.
바깥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신경 쓰여서 금방 다시 눈을 뜨고 말았다.
그 목소리를 신경 쓰는 건 다프네만이 아닌 모양이다. 리암도 인상을 구긴 채로 고개를 돌린 채였다.
“슬로언 공작님의 협조가 있다면 더욱 빠르게 일이 처리될 수도 있으니까요. 아, 저는 공작님의 대리로 연회에 참석한 앨러스테어 슬로언이라고 합니다.”
밖의 사정은 내다보지 않아도 선명하게 그려졌다.
최근 들어 부쩍 키가 자란 앨러스테어는 근사한 모습으로 명함을 내밀었을 테고, 상단주는 갑자기 나타난 청소년의 정체에 얼떨떨해하면서도 얼른 이를 받아들였을 터다.
슬로언 가문 회의를 이끄는 앨러스테어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니, 금방 넙죽 허리를 숙였을 테고.
“저야 높은 분께서 이야기를 들어 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당한 곳으로 가시겠습니까? 제가 좀…… 책 냄새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건 거짓말이 분명했다.
앨러스테어는 이보다 더 짙은 책 냄새가 진동하는 공작가의 서가에서 온종일을 보낼 정도였으니까.
‘혹시 알고 있는 걸까?’
리암과 다프네가 여기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것 말이다.
생각해 보면 조금 전 1층에 도착했을 때, 리암은 ‘손님’이 왔다며 잠시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였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앨러스테어가 리암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으니까. 그 후에는 리암이 서재로 숨어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모양이고.
그렇지 않고서야 타이밍 나쁘게…… 아니, 타이밍 좋게 앨러스테어가 딱 나타나 도움을 줄 리는 없었다.
“정원을 산책하며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이런 날씨에 건물 안에만 있는 것은 아까우니까.”
“물론 좋습니다. 제가 앞장서죠.”
상단주가 빠른 걸음으로 물러가는 소리가 들렸고, 집사가 작은 목소리로 앨러스테어에게 감사를 전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서 곤란하던 차였습니다.”
“그리고 공작님도 곤란하셨을 테죠.”
“예?”
“아뇨, 제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요즘 제가 사춘기라 마음속에 새까만 용을 키우기 시작했거든요. 어이가 없으면 멋대로 말이 튀어나오죠.”
“……예?”
“어쨌든 오늘은 원래 마법사 거주 구역에 갈 계획이었는데, 공작님 덕분에 여기에 있게 되었으니까요. 아,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앨러스테어는 수도까지 올라와서 피오나를 만나러 가지 못하게 되어 잔뜩 토라진 모양이다.
그 와중에 리암이 사용인 분장을 하고서 지내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으니, 더욱 속이 뒤집혔을 테고.
잠시 후.
인기척이 모두 사라지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
다프네는 여전히 굳은 듯이 창틀에 틀어박혀 바깥의 상황에 귀를 기울였는데, 다행히 누군가가 다시 들어오는 기색은 없었다.
‘살았다…….’
다프네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슬그머니 리암의 손을 놓았다.
그 후에는 재빠른 동작으로 창틀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고맙게도 리암은 다프네를 붙잡지 않았다. 말없이 그녀를 따라 내려와 다시 서적을 들춰 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프네는 조금 이상한 의문이 밀려왔다.
‘왜…… 나만 아쉬워하는 것 같지?’
생각해 보면 키스를 하지 않은 게 잘된 일인데도 말이다.
‘에이…… 모르겠다.’
다프네는 다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절대로 리암을 신경 쓰지 않고서 말이다.
* * *
다프네는 리암과 함께 서재를 모두 뒤졌다.
그리고 저녁 만찬이 이루어지는 사이에는 음악실과 남작의 옷장까지 뒤져 보았으나, 애슐리와 자금을 주고받은 정황이나 실험에 관련된 것은 무엇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늦은 밤이 되어, 다프네는 다시 손님들의 잠자리를 살피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를 마쳤다.
온종일 쉬지도 못하고 계속 움직였기 때문에,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터덜터덜 제 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다프네의 방은 다락의 2인 1실로, 복도 가장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용인 계단을 올라 2층을 지날 때, 마찬가지로 일을 마치고 나오는 리암과 딱 마주하게 되었다.
“퇴근…… 하십니까?”
“어, 그래.”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프네가 들고 있던 촛대를 가져갔다. 대신 들어 주려는 모양이었다.
“앨러스테어 님과는 얘기해 보셨습니까?”
“뭐, 그래서 잔소리 좀 들었지.”
그가 먼저 계단을 오르고, 다프네는 그 뒤를 따랐다.
“여기 조심해야겠더라.”
층계의 높이가 들쑥날쑥한 곳에서 리암이 손을 내밀었다. 이런 어색한 상황에서도 신사의 도리를 다하는 점이 묘하게 그다웠다.
다프네는 그를 부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으므로, 기꺼이 그 손을 붙잡았다.
아니 어쩌면 그냥 잡고 싶은 것 같기도 했다.
오늘 오후의 일이 남긴 후유증이 아직 뇌리에 깊이 박힌 탓이었다.
그와 손을 맞잡은 채로 다락에 도착했다. 혹시 다른 사용인들과 마주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지금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 만찬에서 남은 음식과 디저트가 많아서, 대부분 아래층 홀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이런 모습을 보이면 곤란했으므로, 다프네는 손을 놓으려고 했다.
문제는 마음과 달리 어떻게 해도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지만.
이래서야 꼭 오늘 낮에 걸렸던 저주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아, 저.”
다프네는 가까스로 말을 토해 냈다.
이제 그가 사용하는 숙소에 도착한 것은 다행이었다. 여기에서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으니까.
“아, 안녕히 주무세요.”
“그대도, 잘 자.”
“그…… 손을 놓아주셔야 잘 자러 갈 수 있죠.”
다프네는 그들 사이로 길게 이어진 팔을 내려다보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러네. 놓아야지.”
“누가 보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요.”
“그런가?”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다프네는 제 감정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다소 과장된 모습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남편…… 가족이라는 설정이잖아요.”
다프네는 ‘남편의 남동생’이라는 말을 쓰려다가 그냥 가족이라는 편한 단어로 얼른 대체했다.
“음.”
리암은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침묵하다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럼 셋을 세고서 손을 놓을까.”
“아, 예.”
왜 굳이 그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프네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그가 차분히 수를 세었다.
“둘.”
그 짧은 순간, 다프네의 뇌리로 그가 낮에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손 놔, 나랑 키스라도 하자는 게 아니라면.」
왜 그 말이 지금 떠오른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프네가 고집스럽게 그를 붙잡는다고 해서, 이런 장소에서 당장 키스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아니, 애초에 그런 일이 허락될 리…….
“셋.”
복잡한 생각이 채 끝맺지도 않았을 때, 약속했던 때가 다가왔다.
손을 놓아야 했다. 그래야 윤리적으로 옳았다.
“…….”
하지만 원망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손은 여전히 그를 가만히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꼭 그에게 오후의 일을 요구하듯이.
‘나…… 진짜 미쳤나 봐.’
그와 키스하고 싶다고 생각하다니.
다프네는 도망치듯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하면 자연스레 손을 놓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아.”
그 순간에 깨달았다.
놓을 수 없었던 것은 다프네만이 아니라는 것.
그때, 고요했던 복도 너머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순간, 다프네의 몸이 앞으로 넘어질 듯 당겨졌다. 그의 품에 안긴 순간에는 발이 허공에 뜬 상태로 빙글 돌아갔다.
달칵. 조심스럽게. 하지만 어딘가 성급하게 문이 닫혔다.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진 촛불이 빛을 잃어 그들의 주변은 오직 어둠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와 정신없이 입술을 겹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