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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04)화 (104/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04화

이틀 후.

“저렇게 유능한 사용인은 오랜만에 보는군요.”

“손이 여섯 개, 다리가 열 개인 사람도 저렇게 부지런히 일하지는 못할 겁니다.”

“물어보기 전에 준비를 마쳐서 가져다주는 세심함을 갖추었어요.”

린넨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다리미질을 하던 다프네는 복도를 지나가는 집사와 가정부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녀는 괜히 뿌듯한 마음에 씩 미소를 지었다.

그야 다프네는 항상 어딜 가도 유능한 인재로 손꼽히곤 했다. 오린샤이어에서도 그랬고 클롯모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으니 양쪽 어깨가 단숨에 불쑥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업무 중에 잠시 시간이 났다면서, 지붕까지 감쪽같이 고쳐 놓았더군요.”

“놀랍네요! 2층 복도의 비틀어진 창문도 고쳐 놓았던데, 언제 또 그런 일을 했데요?”

하지만 연이어 들려오는 이야기는 어째 다프네가 한 일과는 거리가 먼 것뿐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유능해도 이렇게 연이어 손님이 오는 상황에서 지붕과 창문까지 고칠 수는 없을 테니까.

“페이지 씨에게 여기에서 계속 일해 달라고 부탁하면 안 되겠죠?”

뭐라고?

다프네는 다리미를 든 채로 획 뒤를 돌아보았다.

“일단 이야기는 해 봅시다. 물론 페이지 부인과 함께 말이죠. 두 사람 모두 이대로 놓치기에는 너무나도 우수합니다.”

허……?

다프네는 자존심이 상해 죽을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리암이 여기에서 일하면 자신의 ‘쓸모없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될 줄 알았다.

그가 클롯모어의 저택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손 하나만 까딱하는 것 정도였으니까.

그것도 자주 까딱거리는 것도 아니었다. 보통은 다프네가 알아서 척척 보좌해 왔으니까.

그런데 노동 현장에서 동등한 능력자 취급을 받다니!

다프네는 바삐 팔을 움직였다. 아무리 그래도 주인에게 질 수는 없었다. 서튼의 명예를 걸고서!

다프네는 다리미질을 마친 빳빳한 침구를 차곡차곡 쌓아서 들어 올렸다.

머리보다 높아서 시야가 가려졌지만, 가문의 명예를 짊어진 다프네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오늘 새벽에 남작가의 실내 구조를 전부 익혀 두었기 때문에 눈을 감고도 어디든 찾아갈 수 있었다.

이 유능한 모습을 보이면, 집사와 가정부의 평가도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이를 기대하며 복도로 나서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침구의 절반 이상이 붕 떠올라 사라지고 그녀의 시야가 밝게 트였다.

“……?”

의아해하며 올려다본 곳에는 리암이 서 있었다.

“도와주지.”

“저 혼자 할 수 있습니다.”

“알아, 하지만 함께하면 더욱 빠르지.”

“아니, 전……!”

다프네는 혼자 할 수 있다고 우기려다가 그만두었다. 이미 복도 너머에서는 리암의 다정한 활약을 지켜보는 가정부와 집사의 칭찬이 시작되고 있었으니까.

공을 빼앗기다니!

다프네는 한숨을 쉬면서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된 이상 리암의 도움을 철저하게 받는 편이 나았다.

어차피 일을 서두를 생각이긴 했다. 늦장을 피웠다가는 쉬는 시간도 없이 산책을 마친 손님들을 맞이해야 할 테니까.

그들은 손님 방마다 들어가 함께 침구를 교체했다.

리암은 이런 일을 평생 해 왔던 사람처럼, 신기할 정도로 다프네와 손발을 척척 맞춰 왔다.

“왜, 왜 잘하시죠?!”

결국, 다프네는 불만을 토하는 듯한 질문을 건네고 말았다.

“음?”

이에 리암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딱히 잘하려고 한 적은 없는데.”

“경력 7년의 사용인은 되어 보입니다.”

“그냥 눈앞에 보이는 일을 하는 거야. 적당히 다른 사람들을 흉내 내는 수준이지.”

“…….”

아무래도 그는 어디를 가도 굶어 죽지 않을 축복받은 눈썰미를 지닌 모양이다.

“내가 그럴싸하게 일하고 있다면 다행이야. 집사와 가정부가 계속 쳐다보기에 어딘가 어설픔이 남아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다프네는 그들이 리암을 눈여겨본 이유를 이야기해 주려다가 그만두었다.

저 남자의 ‘난 사용인의 일도 잘하네.’라는 잘난 척을 평생 듣고 싶지는 않았다.

‘……평생?’

다프네는 불현듯 떠올렸던 단어에 의문을 표했다. 어쩌다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을까.

“다프네.”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다프네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네, 네?”

“이제 남은 일이 얼마나 있지?”

“주어진 일은 다 처리했습니다.”

이제는 아마 다른 사용인들도 바쁜 오전 일과를 마치고 짧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아래층에 모이고 있을 것이다.

“좋네.”

그는 쿠션을 팡팡 두드려 제자리에 놓아두고서 창문을 닫았다.

“그럼, 슬슬 수색하러 가 볼까?”

그가 먼저 복도로 빠져나와 사용인 전용 계단으로 내려갔고, 다프네는 그 뒤를 따랐다.

“지금부터요? 밤이 아니라요?”

몇 번인가 다른 사용인들과 마주치기도 했는데, 그들은 피로가 깊은 탓에 리암과 다프네를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밤이 더 힘들다고 생각지 않나?”

그런가? 하긴 밤에 저택을 살금살금 돌아다니는 사용인이라니,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낮이라면 어디에 있든 청소나 심부름 핑계를 댈 수 있지만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어디부터 가 볼 생각이시죠?”

“서재.”

“주인님이 집무실을 겸해서 사용하시는 공간 말씀이군요…… 왜 갑자기 멈추십니까?”

다프네는 갑자기 멈추는 리암의 등에 이마를 콩 부딪쳤다. 마침 1층 현관과 이어지는 문을 살짝 열었을 때 즈음이었다.

“……공작님?”

그는 좁은 문틈을 응시하며 가만히 굳어 있었다. 다프네는 발끝을 들어 올리며 어떻게든 상황을 파악해 보려고 했지만, 리암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아.”

잠시 후 입을 연 리암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네?”

그런 것치고는 뭔가 움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대가 다른 사람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게 좀 싫었을 뿐이지.”

아닌 것 같은데. 다프네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짝 올려다보았다.

“현관에 누가 있었던 거죠?”

“…….”

“누구였어요? 엄청 움찔거리시던데.”

“그야, 그렇게 갑자기 눈이 마주치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적당히 말을 얼버무리고는 얼른 서재의 문을 열었다.

“일단, 지금은 우리의 할 일을 해야지.”

* * *

리암이 서재의 문을 열자 중앙에 있는 책상과 벽난로가 가장 먼저 보였다.

이를 중심으로 호두나무 색의 책장이 양쪽에 차례로 세워져 있었다. 손이 닿지 않을 곳까지 빼곡하게 채워진 책은 아마 이 저택과 함께 힐링엄 백작이 팔아 버린 것이리라.

“나는 책상을 먼저 살필 테니, 그대는 창 측의 책장을 살펴봐.”

“알겠습니다.”

“공원에서 돌아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일단은 서두르는 편이 좋겠지.”

리암은 즉시 책상 서랍을 하나씩 열었다.

칸마다 서로 다른 물건이 들어 있었다. 잉크와 펜촉, 외국어 사전 그리고 남작의 이름으로 새로운 상단을 설립하기 위한 서류도 준비되어 있었다.

“남작도 직접 운영을 해 보려는 건가?”

그는 지금까지 다른 상인들의 신원을 보증해 주는 대가로 약간의 돈을 받을 뿐이었다.

“설립에는 적지 않은 돈이 들 텐데. 투자자가 있지 않은 다음에야…….”

설마.

리암은 자연스레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상단을 운영하는 데 도움을 주는 대가로, 휴고가 하던 일을 남작이 이어받기로 한 것은 아닐까.

리암은 다른 서랍을 더 열어 보았다.

혹시 애슐리의 자금이 흘러들어온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책상에는 이제 더 살필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리암은 다프네와 함께 서가를 더 훑기로 했다.

“여기에서부터 확인해 주시면 됩니다.”

다프네가 책장 한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며 건넨 말에 리암은 고개를 끄덕여 종이 뭉치 하나를 꺼내 들었다.

수기로 작성된 기록이었다.

사락사락 종이를 넘기고, 자리로 돌려놓는 단순 반복 작업이 이어졌다.

책장 한 줄을 전부 확인했을 때 즈음에는 조금 여유가 생겼는지, 리암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은…….

여기에서 일하기로 결정된 이후부터 줄곧 신경 쓰였던 일이 하나 있었다.

「제, 제 남편의 동생이에요!」

바로 며칠 전에 다프네가 했던 이상한 변명 말이다.

그녀가 말한 ‘남편’이란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페이지 씨’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째 자꾸만…….

증오하는 얼굴과 다프네가 나란히 떠오르고 말았다. 그 남자와 다프네가 부부라니.

“말도 안 돼.”

그는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 내느라,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어 말해 버리고 말았다.

“뭔가 발견하셨습니까?”

그의 탄식을 들은 다프네가 한 걸음 훌쩍 다가왔다. 리암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다른 이야기였어.”

“……그렇군요.”

실망했을까. 다프네는 들고 있던 책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다른 생각에 빠질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리암은 책장을 살피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아, 혹시.”

줄곧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 들려오던 서재에서 다시 입을 연 것은 다프네였다. 바깥을 의식했는지 잔뜩 숨을 죽인 목소리였다.

“음?”

이번에는 리암이 다프네의 곁으로 다가섰다. 다만 시선은 여전히 들고 있던 책자에 고정한 채였다.

“휴고도 외국어에 능한가요?”

“그런 편이지. 가정 교사이기도 했으니까.”

“그럼 에우스테온어나 스터드어 같은 것도요?”

“두 가지 모두 읽고 쓰는 데는 무리가 없어.”

“아, 그럼 애슐리와 외국어로 보고서를 주고받았을 가능성도 생각해야겠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이곤 들고 있던 서류를 넘겨 확인하기 시작했다.

“……?”

하지만 리암은 다시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게 좀 이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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