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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92)화 (92/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92화

엠버혼은 교통과 문화가 발달한 동부와 비교적 모든 혜택에서 거리가 먼 서부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런 차이는 땅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산줄기로 인해 생겨난 것으로, 이를 넘어가는 길이 만들어진 지금에서도 서부의 경제 규모는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프네는 공작가에서 받은 배지로 신용을 보증받고 마차를 빌렸다. 서부 엠버혼으로 넘어가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마차 등받이에 몸을 깊이 기대어 둔 후,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잘…… 한 일이겠지?’

다프네는 마지막까지 루비가 자신을 속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놓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소녀의 몸에 남은 상처 자국이나, 동생을 향한 걱정의 말은 결국 다프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아으. 내가 다른 사람을 걱정할 때가 아닌데.”

한참 루비에 관한 생각에 빠져 있던 그녀는 불현듯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새삼 떠올렸다.

이제 마차는 동부 엠버혼을 떠나 서부 엠버혼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마플 저택이 있을 테고, 거기에는…….

「키스…… 중에 내가 난입한 것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여전히 끔찍한 오해를 하는 리암 슬로언이 있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오해를 해?’

아니 문제는 단순히 그가 그런 오해를 한다는 점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다프네.」

「아직은 안 돼.」

「절대로 안 된다고!」

그는 어쩐지…… 다프네의 설명을 피하는 듯했다.

‘어쩌면 공작님은 나를…… 믿지 않으시는 거야.’

순간 호흡이 탁 막히는 듯한 기분에, 다프네는 제 앞섶을 꽉 쥐었다.

왠지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달리 도망갈 방도도 없는데 말이다.

서부 엠버혼으로 넘어가는 길에는 다프네의 아버지와 선대 공작께서 마지막을 맞이한 절벽이 있었다.

경사와 굴곡이 급격한 길로, 그녀의 사정을 아는 마부는 넌지시 ‘잠시 멈출까요?’라며 이야기를 건네왔다.

다프네는 잠시 고민했다.

지금은 리암에게 왕의 편지를 전한다는 중요한 업무를 수행 중이었다. 그러니까 단 몇 초라도 그녀가 개인적인 일로 시간을 써서는 안 되었다.

‘그건 그렇지만…….’

다프네는 아버지의 목걸이를 떠올렸다. 그리고 두 사람을 살해했다던 애슐리의 끔찍한 말도.

그녀는 점차 가까워지는 길의 끝을 바라보다가 마부석으로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잠시만요! 아주 잠시만…… 인사만 하고 올 테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기분 좋게 대답한 마부는 길이 휘어지는 곳에서 멈추어 섰다.

다프네는 깊이 심호흡을 하고는 마차의 문을 밀어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 날아든 시린 산바람이 뺨을 스쳤다. 짐 가방에서 꽤 도톰한 옷을 꺼내어 입었음에도, 몸속으로 파고드는 추위를 막지는 못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마지막 역시 이렇게 추운 겨울이었다는 점을 떠올렸다.

“아가씨.”

마차에서 내리자 마부가 그녀를 불렀다. 갑자기 더욱 바람이 귓가에 울려 자연스레 목소리가 높아졌다.

“절벽 끝으로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이런 날에 바람에 휩쓸리면 큰일이 날 겁니다.”

“알았어요. 잠시 둘러보기만 할 거예요.”

다프네는 산길을 가로지르며, 절벽을 향해서 한 걸음씩 나아갔다.

‘아버지…….’

그를 잃은 지점과 적당한 거리에서 멈추어 섰을 때.

다프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높이 들게 되었다. 차마 그 절벽을 마주할 수 없었다.

회색빛 구름이 낀 하늘이 보였다. 오늘 오전부터 줄곧 보아 온 것이나, 왠지 새롭게 보이는 것은 아마 그 아래로…… 아득해 보이는 길의 끝이 조금씩 시야로 들어오기 때문이리라.

아버지를 태운 마차는 이 아래로 하강했다.

절벽 끝에서 내려다본 아래는 생각했던 것처럼 아득히 높은 곳은 아니었다.

건물 3층 정도의 높이로, 정말로 운이 좋아 나무에 걸린다면 살아남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혹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산에 사람이 많아지는 봄이나 가을에 이런 사고가 일어났다면, 누군가 빠르게 신고하여 공작과 서튼이 응급처치를 받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런 행운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

조용한 의문은 하얀 입김이 되어 허공에서 사그라졌다.

“애슐리 슬로언은 대체…… 무엇을 위해서.”

단순한 유흥으로?

그 남자라면 그런 일을 즐기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하지만 그가 좋아하는 건…….’

누군가를 궁지로 몰아넣어 괴롭게 만들고, 서서히 괴로워하며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이렇게 한 번의 사고로 죽음을 맞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녀는 절벽 너머의 새하얀 숲을 바라보며 가장 마지막까지 미루어 둔 가정을 떠올렸다.

‘유흥이 아니라면, 필요에 의해서?’

하지만 공작과 서튼의 죽음으로 애슐리가 얻어낸 것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무엇을 보신 거예요?”

허공에 던진 질문에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칼날 같은 바람이 얼굴에 부딪힐 뿐…….

‘가서 공작님과 상의해 보자.’

다프네는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리암과의 관계가 소원하다고 해도,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는 꼭 전해야 했다.

“다시 올게요, 아버지. 그때는…….”

미래를 약속하는 말을 건넬 때는 멀리에서 말발굽 고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누군가 산을 오르는 모양이었다.

어딘가 다급하게 들리는 소리에 다프네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경사진 길 위로 두 남자가 정신없이 달려오고 있었다.

“……!”

순간 다프네는 놀라고 말았다.

‘열차에서 루비를 찾던 남자들이야.’

우람한 체구며, 그들이 복도를 지날 때 보았던 낡은 모자 따위가 눈에 익었으니 확실했다.

‘어떻게 하지?’

사실상 다프네와 저들은 그다지 관계가 없으니 이렇게 바짝 긴장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양어깨에 괜히 힘이 들어갔다.

그들도 다프네를 발견했는지, 점점 속도를 늦추며 절벽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음? 기차에서 본 은발 여자잖아?”

한 남자가 다프네를 알아보았다.

“어이, 너. 여기에서 뭘 하는 거지?”

그들은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로 그녀의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몇 걸음 뒤로 물러서며 다프네는 그들을 조용히 올려다보기만 했다.

“봐, 내가 말 했잖지?! 저 여자가 수상하다고! 여기를 알짱거리는 걸 보면…….”

“조용히 해, 이 자식아! 어이, 여기에서 뭘 하느냐니까?”

“전…….”

다프네는 제 뒤의 절벽을 의식하듯 뒤를 살짝 돌아보고 조심스레 답을 건넸다.

“멀미 때문에 쉬어 가는 중인데요.”

“굳이 이런 곳에서? 웃기지도 않는군.”

“여기에서 쉬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요?”

“기차에서부터 수상했어. 네가 그 꼬맹이를 도망치게 해 준 거지? 어디로…… 어이, 저 마차부터 뒤져 봐라.”

한 남자가 말머리를 돌려 마차로 향하자, 줄곧 눈치를 살피던 마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른 말을 출발시켰다.

험악한 남자들의 모습에 겁을 먹은 듯했다.

“제기랄, 따라가서 확인해!”

갑작스러운 추격전이 벌어진 사이, 다프네 앞에 남은 거구의 남자는 다프네를 더욱 몰아세웠다.

낭떠러지까지 겨우 한 걸음밖에 남지 않았을 때, 그는 씩 미소를 지었다.

“너, 사실은 다 알고 온 거지?!”

“지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다프네는 황당하여 다급히 대꾸했다.

“웃기지 마!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애를 빼돌리는 것도 모자라 여기를 얼쩡거려?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남자가 소리치며 말고삐를 세차게 휘두르자, 그의 말이 두 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

“꺅!”

거대한 동물이 덮치려는 듯한 공포에 다프네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로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그곳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라는 사실은…… 온몸이 뒤로 기울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겨우 뜬 시야로 씩 미소를 짓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으나, 이내 회색빛 하늘만이 시선에 들었다.

저도 모르게 뻗은 손이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릴 때, 다프네의 몸은 절벽을 따라 새하얀 숲을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오래전에 그녀의 아버지가 이 자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 * *

또, 시간을 돌아갈 수 있을까?

함부로 확신할 수 없는 문제지만, 다프네는 본능적으로 그런 행운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안…… 되는데.’

새삼 그녀의 목숨이 아까워진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한때는 불길에 타 죽을 각오까지 하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녀는 애슐리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아직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전달하지 못했다.

게다가 여전히 리암은 다프네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정말로 불쾌하기 짝이 없는 방향으로.

‘절대로 아닌데…….’

하지만 죽음은 곧 침묵이니, 이대로 죽어 버린다면 그녀가 품은 이야기는 무엇 하나 전해지지 못하게 되리라.

다프네는 입술을 움직였다.

마지막 호흡이 아직 육신에 붙어 있다면 소리 내어 말하고 싶었다.

‘……공작, 공작님.’

먹먹한 귓가로 그녀의 말이 들리는 것 같기도 했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온몸이 붕 떠 있는 듯한 감각으로 보아 죽은 건 분명한 것 같은데.

‘공작…… 님.’

다시 무거운 입술을 움직였을 때는 놀랍게도 대답이 돌아왔다.

‘다프네!’

꼭 리암의 목소리 같았지만, 다프네는 그게 환청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마플 저택에 있을 테니까.

무엇보다 그녀의 시야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새카만 무언가뿐, 리암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마 정말로 죽어 버린 모양이다.

죽음을 실감한 후에도 묘하게 편안함을 느끼는 건…….

‘들려? 다프네, 내 목소리가 들려?’

계속해서 이어진 환청에 너무나도 진실한 걱정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꼭 진짜 리암 슬로언이 그녀의 곁에 있는 듯이 느껴져, 다프네는 왠지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다고 느꼈다.

그녀는 무거워진 눈꺼풀을 천천히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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