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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90)화 (90/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90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연스럽게 한숨이 빠져나왔다.

‘어쩔 수 없지.’

리암의 개인적인 복수를 그녀가 나서서 막았으니.

‘하지만…… 후회는 안 해.’

그녀는 리암 슬로언이 살인자로 타락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가 세워 둔 원대한 복수 계획을 방해하는 거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내가 왜 그를 죽이지 않으려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잖아.’

그 이야기를 위해서는 다프네가 시간을 거슬러 왔다는 사실까지 밝혀야 한다.

‘어쩌면.’

다프네는 턱을 괸 채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남은 계약 기간은 줄곧 이런 식으로 지내게 되지 않을까.’

다프네는 며칠 사이 흐려진 손안의 상처를 만지작거렸다. 그다지 크게 다친 것도 아니었는데, 어째 좀처럼 통증이 낫지 않는 것 같았다.

* * *

다프네가 퇴원 준비를 위해 병원에 도착하니, 병원 직원이 편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페이지 부인에게서 온 것이다.

내심 그녀를 걱정하고 있던 터라 다프네는 황급히 편지를 열어 보았다.

‘미안해요, 우리 아기씨.’로 시작하는 편지에는 수도로 다시 돌아올 수 없었던 사정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나중에 만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이야기해 주어요. 기억해요, 아기씨는 언제나 내게 어린애랍니다.’

다프네는 그 상냥한 문장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왠지 종이 너머에서 그녀가 구워 주는 고소한 빵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고마워요.’

사실 다프네는 페이지 부인을 만나는 일을 고대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녀가 겪은 일을 전부 이야기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부인이 수도로 못 온다는 말에 다소 실망했다.

‘그래도……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그날의 다프네는 그녀의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서 잔뜩 어리광을 부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불평을 늘어놓아야지.’

다정한 부인은 다프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리라. 가끔은 애슐리 슬로언을 향해 거친 말을 쏟아 내면서.

다프네가 편지를 품에 넣었을 때.

“이야기 들었어요, 다프네.”

마침 브리가 찾아왔다. 사무엘이 퇴원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정말 다행이에요. 저도 너무 기뻐요.”

그녀가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에, 다프네는 역시 애슐리를 죽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이미 죽고 없다면, 지금쯤 브리는 깊은 절망에 빠졌을지도 모르니까.

“……고마워요.”

그래도 여전히 죄책감은 남아 있었다. 어찌 되었든 그녀의 사정을 무시하고서, 애슐리를 죽일 생각을 했던 것은 사실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요, 다프네?”

“아, 아뇨.”

“설마…… 제 앞에서 기뻐하는 것이 미안해서 그래요?”

사실 그런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라서, 다프네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걱정 마요, 전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 안 해요. 이런 마음은 누구보다도 서튼 양이 잘 알아줄 거라고 믿었는데.”

“무, 물론 알아요! 저도 절대 사무엘을 포기 안 해요. 어떤 위험에서도 지켜 줄 생각입니다. 정말로…… 진심으로요. 그러니까 브리의 마음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아요.”

“고마워요.”

“반드시 보답받을 거예요, 그 믿음.”

다프네는 브리의 두 손을 꼭 붙잡고서, 강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이왕이면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쿡쿡.”

“가, 갑자기 왜 웃어요?”

“진지한데 미안해요. 근데 다프네가 꼭 미래라도 보고 온 사람처럼 말하는 게 좋아서요.”

뜨끔했다.

하지만 모처럼이니, 다프네는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농담처럼 가볍게 이야기를 건넸다.

“넵, 보고 왔죠. 아시죠? 저는 시간도 멋대로 다루는 마법사 서튼의 후예라고요?”

“고마워요, 진짜 더 힘이 나요.”

“그럼 먼저 클롯모어로 돌아가 있을게요. 휴가 마치고 다시 만나요.”

“네, 금방 다시 만나요.”

브리와 헤어진 후 다프네는 퇴원 절차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왔다.

“누나, 나 옷 다 갈아입었어.”

노크하여 들어가니, 환자복에서 벗어난 잘생긴 동생이 새로운 옷을 이리저리 내려다보고 있었다.

“치수는 잘 맞는데…….”

“맙소사, 체크 셔츠가 잘 어울릴 줄 알았어!”

“너무 어린애 같지 않아?”

“응, 잘생긴 어린애.”

다프네는 기분 좋게 대답하고는 옆에 놓인 커다란 짐가방을 들었다.

“내, 내가 들게!”

사무엘이 당황하여 얼른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말할 것 같아서.”

그녀는 이런 상황을 예상한 듯이 씩 미소를 지으며, 작은 주머니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빵 봉지를 가져왔지.”

“으, 누나아!”

사무엘은 빵 봉지를 든 채로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가방을 달라고 애원했지만, 다프네는 절대로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 * *

다프네는 사무엘과 급행열차를 타고서 클롯모어로 돌아왔다.

그녀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고맙게도 집사 던컨이 직접 마차를 끌고 마중을 나와 주었다.

그는 사무엘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함께 기뻐해 주었고, 성벽 치안대까지 데려다주는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그 후에는 함께 저택으로 돌아왔다.

겨우 일주일 남짓 떠나 있었던 것뿐인데도, 다프네는 굉장히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동료 사용인들이 모두 나와 환영의 말을 해 주었고, 앨러스테어는 물론 심지어는 리디아 슬로언까지 사용인 홀로 내려와 다프네를 반겨 주었다.

주방장은 다프네가 좋아하는 견과류 케이크까지 구워서 모두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저…… 그런데.”

다프네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넸다.

“공작님과 아셔는요?”

리암은 그렇다 치더라도 요란한 자리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 아셔가 얼굴을 내밀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분명 인수인계를 이야기하며, 다프네를 곧바로 업무에 투입하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마침 그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어요. 잠시 주변을 비워 주겠어요?”

리디아 슬로언이 부탁하자, 사용인들은 모두 각자의 방이나 업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어…… 혹시.”

다프네는 케이크를 먹던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사이에 좋지 못한 일이라도 있나요?”

“예, 일단.”

리디아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프네를 마주했다.

“아셔는 감기에 걸렸습니다. 마을에 미용 크림을 사러 갔다가 옮아 온 모양입니다.”

“신상품이 나온다며 줄을 선 모양이죠?”

“예, 당분간은 철저하게 격리할 생각입니다.”

다프네는 혼자 방에서 앓고 있을 아셔가 조금은 가엾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돌아오자마자 중요한 일을 그대에게 맡기게 되었습니다.”

“제게…… 요?”

리디아는 곁에 앉은 앨러스테어에 눈짓했다. 예전과 달리 그녀는 아들이 책임져야 할 권리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을 해 주는 편이었다.

“배달을 다녀와야 해, 서튼.”

“제, 제가요?”

앨러스테어는 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왕가의 인장이 커다랗게 박힌 것으로, 그 아래에는 리암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저, 전하께서 손수 보내신 고귀한 편지!”

“응, 공작님 앞으로 온 편지야.”

“어…… 제가 이걸 공작님께 가져다드리면 됩니까?”

다프네는 두 손으로 편지를 집어 들었다.

리암의 집무실은 계단만 올라가면 되는데, 왜 굳이 다프네를 거쳐서 보내는 걸까?

“지금 바로 공작님께 가져다드리면 돼. 급행열차를 타고 두 시간, 내려서 마차로 두 시간 정도의 거리에 계시지만.”

“……네?”

“왕실의 편지니까, 서둘러 전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겠지? 혹시 몰라서 가져온 짐은 뒷문 앞에 그대로 놓아두었어. 이대로 나가면 돼.”

“아니, 저…… 저, 제 방에도 아직 못 들어갔는데요?!”

“걱정하지 마.”

앨러스테어는 엄지를 착 치켜들었다.

“열차표는 이미 사 놓았으니까. 이건 비상금, 그리고 지도. 만약을 대비한 소개장도 넣어 두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지금 바로 출발하면 돼. 던컨?”

그가 부르자, 기다리고 있었던 던컨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역까지 모셔다드리죠, 서튼 양. 출발까지 30분도 남지 않았군요.”

“아니, 아니 잠시만요. 집사님, 앨러스테어 님!”

다프네는 어떻게든 저택에 더 머물고 싶어서 허우적거렸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럼 잘 다녀오세요, 서튼 양.”

“공작님께 잘 전해 드리도록 해!”

던컨과 앨러스테어에 의해 기차 일등석에 오른 이후였다.

다프네는 창문에 바짝 붙어서, 제게 손을 흔드는 두 사람을 황망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뭐야, 이거.”

사람을 너무 순식간에 보내 버리는 것 같은데.

“뭐, 하긴.”

리암은 수행해 줄 사람 하나 없이 혼자서 가신을 만나러 갔다고 하니, 앨러스테어의 마음이 급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왜 아무도 데려가지 않으신 거지?’

다프네나 아셔가 아니더라도 그의 곁을 지킬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텐데.

“아, 어디로 가는지 제대로 볼 새도 없었네.”

다프네는 앨러스테어가 챙겨 준 기차표와 지도를 펼쳐 보았다.

꼼꼼한 소년은 붉은색 펜으로 열차에서 내릴 곳과 마차에 탑승해야 하는 자리까지 전부 표시해 두었다.

그 표식을 따라서 목적지를 확인하던 다프네는 멍하니 지도 위에 적힌 글씨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서부 엠버혼’

종점인 동부 엠버혼에서 내려 마차를 타고 서부 엠버혼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순간 다프네는 앨러스테어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마 그는 아무도 데려가지 않겠다던 리암의 이야기에 반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곳은 리암에게 다소 복잡한 감정이 깃들게 하는 곳이었다.

하나는 지금까지도 리암을 인정하지 않는 인물, 휴고 마플이 지방관으로 있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아셔 마플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오늘까지 클롯모어의 그 어떤 모임에도 참석한 적이 없었다.

그건 리암을 공작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으리라.

이런 이유로 아셔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는데, 리암은 이에 대해 적지 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 방문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다프네는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했다.

서부 엠버혼은 다프네의 아버지와 선대 공작님이 마차 사고를 당했던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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