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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89)화 (89/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89화

“아직은 안 돼.”

“그게.”

“절대로 안 된다고!”

그녀가 해명하려 해도, 그는 작은 틈조차 내주지 않았다.

“그대는 아직 나와의 계약이 끝나지 않았어.”

“공작님, 저는……!”

다프네의 목소리가 잠시 높아졌으나, 거기까지였다.

“부탁이니.”

간절한 그의 애원 때문이었다.

“아직 난…….”

그는 막힐 듯한 호흡을 어렵게 내쉬고는 겨우 말을 맺었다.

“제발…… 그만해 줘.”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이후로 대화는 없었다.

* * *

다음 날에는 사무엘의 의식이 돌아왔다.

“누…… 나?”

그가 갈라진 목소리로 다프네를 부르자 그녀는 침대 곁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 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는 애써 씩씩하게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사무엘을 두 번이나 잃는 것이 아닌지 내내 걱정하고 있었다.

“너어 정말…… 위험한 짓이나 하고!”

다프네는 일어난 동생을 칭찬해 주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어째 원망하는 말이 먼저 나오고 말았다.

“미안해, 누나. 걱정시켜서…….”

사무엘은 다프네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 주면서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넸다.

“아니야.”

다프네는 애써 눈물을 꾹 참고서, 사무엘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네게 그렇게 말하려는 게 아니었어. 나는…….”

그녀는 자꾸만 울음소리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꿀꺽 삼키고서, 사무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가 정말로 자랑, 히끅…… 스러워.”

다프네는 최선을 다해서 위엄이 있는 누나의 모습을 보이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사무엘이 다프네를 ‘지켜 주어야 할 존재’로 느끼지 않도록.

비록 자꾸만 눈가가 흐려지고, 울음으로 입술이 움찔거렸지만 말이다.

“넌 정말로 훌륭한…… 치안대원, 흑!”

하지만 이런 다프네를 빤히 바라보던 사무엘의 반응은 어째 그녀가 기대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누나, 귀엽네.”

“귀, 귀엽다니!”

다프네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얼른 그의 얼굴에서 손을 떨어뜨렸다.

“너, 감히 누나한테……!”

당황하여 큰 소리를 낼 때는, 지나가던 간호사가 ‘병원에서는 조용히.’라며 주의를 주었다.

다프네는 얼른 잔뜩 소리를 죽여서 사무엘을 나무랐다.

“누, 누나에게 귀엽다니……! 주어와 서술어가 전혀 호응 되지 않잖아. 이런 심각한 오류가 있는 이상한 말은 대체 어디에서 배웠어!”

다만 다소 당황한 탓에 그녀는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제대로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누나는 어른이야. 어린애는 어른에게 귀엽다고 하면 안 돼.”

“하지만…….”

사무엘은 다프네의 손을 붙잡아서 제 것과 마주 대었다.

“누나는 작은 어른이잖아.”

“내가 작은 어른이면, 넌 더 작고 연약한 어린애야. 맙소사, 며칠 누워만 있었더니 근 손실이 와서 이렇게 비쩍 말라서는. 이래서야 빵 봉지도 못 들겠어.”

“저기…… 누나 손목이 내 절반밖에 안 되는 건 안 보여?”

사무엘이 그들의 손목 굵기를 두고 반항을 시도하기에, 다프네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너무 당황한 탓인지 어느새 눈물은 더 흐르지 않았다.

“일단 부드러운 것부터 먹자.”

다프네는 바로 병원 주방에 연락해서 묽은 수프를 주문했다.

그리고 빵 봉지도 들지 못할 연약한 남동생을 위해, 한 숟가락씩 먹여 주기까지 했다.

“……누나가 먹여 주니까 진짜 내가 어린애가 된 것 같잖아.”

“몇 번을 말하니?”

다프네는 뜨거운 수프를 후 불어 동생의 입에 쏙 넣어 주며 생긋 미소 지었다.

“넌 어린애야. 적어도 나한테는 영원히 그래.”

“누나 키도 어렸을 때랑 똑같은데 뭐.”

“……너, 자꾸!”

다프네가 소리를 지르자, 조금 전의 간호사가 병실로 달려왔다.

다프네는 다시 혼이 나고 말았다.

옆에서 사무엘이 ‘누나 어린애 같아.’라며 웃었기 때문에 다프네는 무척 부끄러웠다.

* * *

의료와 마법의 복합적인 도움으로 사무엘은 빠르게 기력을 회복해 갔다.

다만 아직 침대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줄곧 병실 안에서 지내야 했다.

다프네는 사무엘을 위해서 모아 둔 화재 관련 기사들을 모아서 건네주었다.

“큰 사고였는데, 모두 회복해서 다행이야.”

다프네는 병원에서 다른 치안대원과 불을 피운 아이들에 대해 전해 들을 수 있었는데, 그들 모두 건강하게 회복 중이라고 했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에는 사무엘도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너무 무모했어.”

다프네는 사무엘의 침대로 다가서며 줄곧 생각했던 질문을 건넸다.

“어째서 소방대가 오기를 기다리지 않았어?”

“그게.”

“주기적으로 소방 훈련을 하니까 잘 알 거 아니야, 연기를 잘못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무모하게 뛰어들었다가는 자칫 소방대의 일을 더 늘릴 뿐이라는 것도.”

“알긴…… 했어.”

사무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두 눈을 감았다. 당시를 떠올리려는 듯했다.

“나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불이 너무나도 빠르게 번지고 있었어.”

“사무엘.”

“그리고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왠지 내가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

“뭐?!”

“불이 확 타오를 때, 순간 어떤…… 문양이 보였어. 그게 왠지…… 나를 부르는 듯한 생각이 들어서. 물론 착각인 것 같아서 어디에도 말하지는 않았지만.”

불과 문양.

이 두 가지 단어를 듣는 순간부터 다프네는 그만 호흡마저 잊고 말았다. 새카맣게 된 시야로 그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사무엘을 구한 것이 아니었어.’

어째서 생각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처음부터 그가 사무엘을 불 속으로 끌어들여 놓고 영웅 행세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왜…… 그렇게까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에는 애슐리의 목소리가 대답처럼 떠올랐다.

「나에 대해 어디에서 배웠어요?」

「이걸 묻기 위해서 우리가 다시 만난 거니까.」

‘설마, 나를…… 다시 만나려고?’

다프네가 자책하며 고개를 떨굴 때, 사무엘이 얼른 그녀의 뺨을 쥐어 그를 바라보도록 했다.

“미안해, 누나. 내가 잘못했어.”

“아니야.”

다프네는 그의 손을 감싸 쥐고서 살살 고개를 저었다. 사무엘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신문에서는 화재의 원인보다는 치안대원의 숭고한 용기를 기리는 찬사만이 가득 적혀 있었다.

‘그건 현장에서 마법흔이 발견되었기 때문일까.’

귀족 아가씨의 죽음마저 묻어 버리는데, 사망자 하나 나오지 않은 화재 사건의 책임을 확실하게 규명할 리는 없었다.

다프네는 어째 소름이 돋았다.

그 끔찍한 남자가 또 어딘가에서 이런 사고를 칠지 모른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곳에 다프네의 소중한 사람이 휘말리게 된다면…….

“……사무엘, 한 가지 약속해 줄래?”

“난 백 가지라도 해. 누나가 바라기만 한다면.”

“애슐리 슬로언을 가까이하지 마.”

다프네는 혹시 사무엘이 ‘그분이 날 구해 줬는데?’라며 따져 묻지 않을까 걱정했다.

“응.”

하지만 사무엘은 사정을 더 묻지 않고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

“……괜찮겠어?”

너무 간단하게 수긍하는 모습에 괜히 불안해져서, 다프네는 동생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말했잖아.”

그리고 사무엘은 부드러운 미소로 다프네를 안심시켜 주었다.

“누나가 바라기만 한다면, 나는 백 가지라도 해.”

“나, 나도 그래. 네가 바라기만 한다면…….”

“그럼 바랄게, 누나.”

사무엘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 위로 입을 맞추었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새해의 축복을 전하는 것이리라.

“나는 누나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아주 많이.”

입술을 기댄 채로 조용히 속삭인 사무엘이 고개를 들어 샐쭉 미소를 지었다.

“내가 바라니까, 그렇게 해 줄 거지?”

“내 동생은…….”

다프네는 울먹울먹한 눈으로 사무엘을 올려다보다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대체 왜 이렇게 착하기만 한 거야?!”

“으음, 누나가 그렇게 키워서 그런 게 아닐까?”

사무엘은 다프네의 공이라며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녀는 얼른 고개를 열심히 저었다.

“어쩌면 신께서는 네 몸이 너무 연약하니까, 보석 같은 마음을 선물로 주신 걸지도 몰라.”

“나, 연약…… 한가?”

“맙소사 당연하지, 이 작고 연약한 몸을 보렴!”

마침 의사가 회진을 위해 들어왔었는데, 그는 잠시 다프네의 앞에 펜을 들고서 ‘저기, 보호자님, 이거 잘…… 보이시죠?’라며 조심스레 질문을 건넸다.

왜 갑자기 다프네의 시력을 의심하는 건지.

다프네는 참 이상한 의사 선생이라고 생각하면서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 * *

사흘이 더 지나서 사무엘은 병원에서 퇴원하게 되었다.

그동안 다프네는 저녁마다 리암의 타운하우스에서 다른 사용인들과 함께 지내며 병원을 오가곤 했다.

혹시 리암과 다시 만나서 어색해지는 것은 아닌가 싶었는데…….

그는 첫날에 다프네를 데려다 놓은 이후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대체 어디에 간 걸까?

혼자서 고민하던 다프네는 용기를 내어 다른 사용인에게 리암의 거처에 관하여 물었다.

“네? 서튼 양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예…… 저라고 해서 공작님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군요, 의외네요.”

아무래도 다프네가 ‘서튼’이다 보니, 리암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야 사실 예전에는 다프네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는데.

이제는 조금 사정이 달라지고 말았다.

“공작님은 일이 있으시다며 바로 클롯모어로 돌아가셨어요. 서튼 양이 왔던 날에 바로요.”

“그랬군요. 알려 줘서 고마워요.”

다프네는 왠지 섭섭해졌다.

아무리 그날 밤에 서로 불편한 일이 있었다고는 해도 ‘수행원’에게 일정을 공유해 주지 않는 것은 너무하지 않나 싶어서.

‘어쩌면 휴가 중이라 이야기하지 않은 걸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리암이 그렇게 배려심이 깊은 남자냐고 묻느냐면, 사실 그건 아니었다.

아마 그들 사이에 아무런 일이 없었다면, ‘내 짐가방을 들지 않고 뭘 하는 거지?’라며 다프네를 알차게 부려 먹었을 테니까.

‘어쩌면 나, 미움…… 받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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