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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88)화 (88/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88화

리암의 차로 함께 이동하며, 다프네는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출장을 떠났으면서 다프네가 여기에 있는 소식은 어떻게 들은 건지.

마법사 거주 구역에는 무슨 수로 들어왔는지.

다행히 두 번째 물음에 대해서는 금방 호기심이 풀렸는데, 차량 대시 보드에 왕의 허가증이 붙어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왕을 닦달하여 여기까지 찾아와 준 것이 틀림없었다.

‘……이제 어디로 가려는 걸까?’

혹시 클롯모어로 돌아가는 열차에 태울 생각은 아닌지 걱정이었다.

아직은 사무엘이 입원 중이니까.

하지만 그는 기차역이 아니라 다프네에게 익숙한 길로 차를 몰았다.

‘내…… 집으로 가는구나.’

그는 목적지 앞에서 차를 멈추었다. 불빛과 시동을 꺼뜨린 후, 리암은 차에서 내려 고맙게도 보조석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바로 현관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린 다프네는 얼른 차량 뒷문으로 가 그가 집어넣었던 가방을 끄집어내려고 했다.

그러자 리암이 돌아와 그녀의 손목을 황급히 쥐어 당겼다.

“……제정신이야?”

여전히 피가 잔뜩 묻은 다프네의 왼손이 그들의 시야 가운데로 들어왔다.

리암이 제정신이냐며 물은 것은, 이런 손을 하고서 가방을 드는 것을 두고 한 이야기인 듯했다.

“죄송합니다. 잊어…… 버렸습니다.”

다프네가 사과하며 고개를 조아리자, 그는 이대로 다시 현관으로 향했다.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이끌려 함께 현관 앞에 도착하니, 리암은 품에서 열쇠를 꺼내어 잠긴 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클롯모어 저택에서 가져온 것인 듯했다.

“들어가.”

그는 문을 열고서 다프네를 먼저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대로 리암은 돌아가는가 싶더니, 새빨간 다프네의 손을 흘긋 내려다보았다.

“……정말.”

그는 짜증이 묻어 나는 투로 중얼거리고는 곧 다프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왔다.

“구급상자는?”

리암이 낯선 집 안을 둘러보며 건넨 말에, 다프네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주방에요.’라고 답했다.

“안내해, 서튼.”

그가 또 명령조로 말했기 때문에, 다프네는 별수 없이 어두운 길을 따라 주방으로 향했다.

다프네가 천이 덮인 찬장에서 멈추자, 그는 직접 천을 끄집어 내렸다. 쌓여 있던 먼지가 잠시 그들 주변으로 뽀얗게 내려앉았다.

“콜록.”

다프네가 기침하며 고개를 돌리는 사이, 그는 찬장에서 구급상자를 꺼냈다.

“응접실은?”

“……저쪽, 콜록.”

리암은 그녀를 이끌고서 걸음을 서둘렀다.

그곳 역시 하얀 천으로 뒤덮인 가구들로 가득했는데, 리암은 이를 건드리지 않고서 주방에서 들고 온 작은 스툴을 창가에 놓아두었다.

“여기 앉아 있어.”

그는 창틀 위로 구급상자를 올려놓고서 잠시 자리를 비켰다.

다프네는 그가 사라진 문가를 돌아보았다. 바깥에서는 그가 무언가를 찾는 듯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뭘 하는 거람. 찾는 물건이 있다면 다프네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은데…….

그녀가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리암은 하얀 김이 나는 물그릇을 들고서 돌아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주전자를 찾아 물을 끓이느라 나는 소리였던 듯했다.

그는 창틀에 물그릇을 내려놓고서 작게 툴툴거렸다.

“이 정도인 줄 알았으면, 여기가 아니라…….”

아무래도 리암은 자신이 소유한 타운하우스로 갈 것을 그랬다고 후회하는 모양이었다.

여기에 이 정도로 먼지가 쌓였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

“초라도 밝힐까요?”

다프네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그리고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뜨거운 물에 충분히 적셨다.

“이리 내, 서튼.”

또 명령이었다.

그냥 평범하게 이야기해도 손 정도는 그에게 맡겼을 텐데. 다프네는 묘한 섭섭함을 느끼면서도 결국에는 아무 소리 하지 못하고 손만 내밀었다.

그가 뜨거운 손수건을 손 위로 가져다 대었다.

“읏.”

상처로 스며드는 통증에 다프네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픈가?”

하지만 그가 곧바로 건넨 질문에는 어째 고개를 저어 버렸다. 왠지 솔직히 말하는 것이 어려웠던 탓이다.

“…….”

그는 굳이 재차 묻지 않았다. 대신 상처 주변을 닦는 손길이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다.

따듯한 천에 검붉은 자국이 조금씩 옮아갔다. 그것에 애슐리의 것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왠지 개운하기까지 했다.

다프네는 새삼 리암이 고마웠다.

슬그머니 손가락에서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달빛을 받은 탓일까. 유독 희어 보이는 그의 뺨이 꼭 도자기처럼 고왔다.

그 매끈한 살갗에 정말로 사람의 온기가 있는지 만져 보고 싶다는 기분이 밀려올 정도로.

“……건가?”

“에, 예?”

다프네는 그의 얼굴을 멍하니 감상하다가 그만, 그가 건넨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말았다.

“그 자식이냐고.”

“그게 무슨…….”

“상처.”

그가 건넨 짧은 설명에 다프네는 이제야 그가 한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

“아, 아뇨. 제가 스스로…… 실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피가 많이 났다고?”

그는 손수건을 헹구어 손목 너머까지 흘러내린 핏자국을 모두 닦아 주었다.

“제 피만 있는 게 아니라서요.”

“뭐?”

“그러니까.”

다프네는 여기에 애슐리의 피가 섞여 있음을 이야기하려다 왠지 모를 저항감을 느껴 입을 다물었다.

피가 섞인다는 말은 리암과 다프네 사이에서 꽤 깊은 의미가 있었다.

그들의 계약은 피를 섞는 행위로 시작되었으니.

그런 일을 애슐리와도 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째 좀 껄끄러웠다. 부정한 일이라 느껴질 정도로.

“후.”

다프네가 주저하는 사이, 그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는지 얼굴을 구겼다.

“말해, 서튼.”

그리고 다시 명령조. 이에 다프네는 곧바로 답해야 했다.

“여기에 애슐리 슬로언의 피가 함께 묻었습니다.”

“그…… 미친 새끼가.”

손목을 문지르는 그의 손에 살짝 더 힘이 들었다. 물론 잠시뿐, 금방 다시 부드러워졌다.

피를 만족할 만큼 닦아 낸 후, 그는 잠시 그녀의 손에서 물기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

그사이에는 딱히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사방이 전부 조용하여 서로의 호흡 소리마저 들려왔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그는 상자에서 약을 하나 찾아 꺼내었다. 유리병에는 페이지 부인이 붙여 놓은 ‘상처 연고’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다행히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은 새것이다.

페이지 부인이 다프네나 사무엘이 언제라도 돌아와서 사용할 수 있게끔 준비해 두었던 모양이다.

“절 돌봐 주신 페이지 부인은 세심한 분이세요.”

“그래.”

그는 다프네의 손에 연고를 덜었다. 아린 듯한 느낌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참아.”

그는 상자 안에서 차가운 금속 막대를 꺼내어 연고를 넓게 펴 발랐다.

그 후에는 약병을 정리하여 구급상자를 꼭 닫아 두었다.

“아무래도.”

약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그는 가볍게 팔짱을 낀 채로 창틀에 몸을 기대었다.

“잠자리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겠어.”

“아뇨.”

다프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 있는 편이 마음은 더 편합니다.”

“네 폐에 먼지를 채울 셈인가?”

“간단히 청소하면 괜찮습니다.”

“그 손으로?”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라 다프네는 더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그렇…… 군요.”

“내 집으로 가, 어쩔 수 없어.”

그는 어째서인지 다프네가 그와 함께 가는 것을 불편하게 여길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공작님.”

다프네는 왜 자꾸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을 생각으로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싫어도 그렇게 해, 서튼.”

그는 얼른 명령조로 말을 바꾸었다.

“왜…….”

다프네는 여전히 손을 애매하게 든 채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이제 다프네를 바라보지도 않고 있었다.

“……명령하세요?”

다프네는 제 질문이 얼마나 멍청한 것인지 알고 있었지만, 달리 택할 말이 없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리암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명령으로 강제하는 것을 최대한 지양해 왔다. 대신 그들 사이에는 깊은 신뢰가 있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 덕분에 다프네도 서튼으로서 그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뭐가 문제지?”

하지만 그는 싸늘한 얼굴로 그들이 소중하게 쌓아 온 관계를 부정했다.

“슬로언은 명령하고, 서튼은 이행한다. 그게 우리의 관계 아니었나?”

물론 그건 지극히 옳은 말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들어왔던 흔해 빠진 이야기이기도 하고.

하지만 막상 리암의 입에서 전해 듣자 어째…… 심장 한편이 거친 무언가로 헤집어진 듯 쓰라렸다.

“……공작님.”

“…….”

“혹시 제게…… 화나셨습니까?”

그리 물으면서도 사실 다프네는 어렴풋이 예상하는 답이 있었다.

아마 조금 전에 애슐리와 리암의 대치 상황에서 다프네가 주제넘게 끼어든 것이 탐탁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리암은 애슐리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를 죽이지 못하게 했던 건…… 이유가 있습니다.”

“아니까, 말하지 마.”

“……?”

안다니? 그걸 어떻게……?

“키스…… 중에 내가 난입한 것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안 했어요!

다프네는 빽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어째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리암은 대단한 오해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다프네가 그 남자에게 격렬하게 반항할 때가 아니라, 힘이 거의 빠져 늘어졌을 즈음에서야 도착한 탓일지도 모른다. 애슐리의 몸에 가려져 다프네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을 테니까.

아니면…… 형에 대한 분노에 휩싸여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든 탓에, 상황 파악이 어려웠던 걸지도 모르고.

어느 쪽이든 다프네는 그의 오해를 풀고 싶었다.

“하지만 다프네.”

그녀의 속도 모르고 리암은 말을 이었다.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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