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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85)화 (85/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85화

다프네는 차마 끝까지 질문을 맺지 못했는데, 그건 브리의 안색이 급속도로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아…… 동생이.”

그 짧은 답을 듣고서야, 다프네는 이제야 브리가 새해 휴가를 얻어 저택을 비워야 했던 진짜 이유를 알았다.

그녀가 진정으로 새해의 축복을 나누어야 할 사람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리라.

“미안해요, 몰랐어요.”

“제가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요. 집사님께만 말씀드렸답니다. 이제 다프네도 알게 되었지만요.”

“동생분은 괜찮으신가요?”

“음…… 네, 전 그렇게 믿어요.”

브리가 씩씩한 얼굴로 그리 답하자, 다프네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함께 웃었다.

“그럼 저도 함께 믿을게요.”

“고마워요, 드디어 다프네에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네요. 알죠? 제가 다프네를 좋아하는 거.”

그녀도 이제 다프네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서튼 군도 괜찮을 거예요.”

“고마워요. 아…… 그리고 저도 브리를 좋아해요. 무척 진심으로요.”

“물론 항상 알고 있었지만요.”

브리는 어깨를 으쓱이곤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럼 저는 이만 동생의 병실로 가 볼게요.”

“아, 혹시…….”

“병실이 어디냐고요?”

다프네가 살살 고개를 끄덕이자, 브리는 조금 주저하면서도 곧 제 옷자락을 쥔 채로 또박또박 답을 들려주었다.

“내일 병동, 다섯 번째 방에 있어요.”

다프네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내일 병동’은 현재까지 치료법이 발견되지 않은 병증의 환자들이 가는 곳이었다.

최소한의 연명 치료 외에는 어떤 처치도 불가능 한…….

“다프네.”

브리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벌써 잊은 건 아니죠? 날 축복해 주었잖아요.”

“무, 물론이에요!”

다프네는 자신도 모르게 걱정으로 가득했던 얼굴을 애써 미소로 바꾸었다.

“나는요, 다프네. 반드시 나을 수 있다고 믿어요.”

브리는 두 손을 가만히 모았다. 그 모습에서는 깊은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그분께서도 제게 항상 말씀하셨어요.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요. 설령 다른 의사와 마법사들이 연구를 그만두는 한이 있다고 해도, 끝까지 싸우시겠다고. 그러니까, 저도 절대 희망을 잃지 않을 거예요.”

“그…… 분이요?”

다프네가 조심스레 묻자, 브리는 엷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들었다.

“네, 애슐리 슬로언 님 말이에요.”

다프네는 순간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굳은 듯 서 있기만 했다.

“그분은 반드시 서리병의 치료법을 찾아 주실 거예요.”

* * *

애슐리의 집으로 돌아온 다프네는 잘 벼려 둔 칼날을 들었다. 그 날카로운 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도 잠시.

곧 새하얀 양파를 얇게 썰었다.

탁탁탁.

가지런한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매끈했던 양파가 아치 모양으로 갈라져 투둑투둑 떨어져 내렸다.

‘잘 드는 칼이네.’

다프네는 그리 생각하며 이 칼날의 끝에 어느 생명이 놓이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이 날카로운 것으로 그녀가 가르고 싶은 진짜…… 대상을.

순간 손이 멈추었다.

자신도 모르게 주저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다프네는 조금 분노가 차올랐다.

콱!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칼날을 내리쳤다. 멈칫거렸던 순간을 부정하며 잘라 내는 것처럼.

“……아.”

날에 베인 손가락 끝에 붉고 긴 선이 그어져, 나무 도마 위로 붉은 핏물이 번져 갔다.

다프네는 잠시 멍하니 서서 그것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 * *

오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애슐리는 조금 늦게 돌아왔다.

“미안해요, 혼자 돌아오게 해서.”

그는 외투를 벗는 둥 마는 둥 하며, 일단 사과부터 건넸다.

“아닙니다. 그건 이리 주십시오.”

다프네가 그에게 두 손을 내밀자, 애슐리는 조금 놀라워하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친절을 베푸시니까 왠지 무서운데요.”

“무섭기는요.”

다프네는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외투와 장갑을 빼앗듯 집어 들었다.

“저도 속내가 있어서 이러는 건데요.”

“아아.”

그는 이제야 다프네의 뜻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피곤해 보여서가 아니라…… 서튼 군 때문이군요. 그렇죠?”

“네.”

다프네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오늘 애슐리는 의사들과 얼마 전에 만든 약의 효과를 점검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했었다. 그 목록에는 사무엘에게 처방했던 약도 포함되어 있었다.

“호흡 기관은 문제없이 깨끗합니다. 피부에도 큰 자국은 남지 않을 거고요. 이제 남은 건 서튼 군이 깨어나는 것뿐인데…….”

그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모자를 벗어 근처에 걸어 두었다.

“곧 일어날 겁니다. 누나가 걱정하는 모습을 견디지 못하는 청년이니까.”

“몸에 문제가 없다니 정말로 다행입니다.”

다프네는 그의 옷을 안아 든 채로 천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무엘을 세심하게 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일인걸요. 음, 그런데…….”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애슐리는 어울리지 않게도 코끝을 찡긋거렸다.

“제집에서 굉장히 따듯한 냄새가 나네요.”

그건 수프에서 나는 냄새를 이야기하는 모양이라, 다프네는 한쪽 어깨를 으쓱였다.

“약속드렸으니까요. 일단 식사하실 수 있도록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저도 지금부터 도울…….”

“아뇨.”

다프네는 주방으로 들어가려는 그의 앞을 차분히 막아섰다.

“……?”

“제가 혼자 준비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식사니까요.”

다프네는 어깨를 으쓱이곤 먼저 몸을 돌렸다.

“준비하는 동안 만찬실에서 기다려 주세요. 저도 바로 갈 테니까요.”

* * *

“어색하네요.”

테이블에 앉은 애슐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야, 평소에는 만찬실에서 식사하지 않으시니까요.”

다프네가 그의 생활 습관을 콕 집어 말하자, 애슐리는 어떻게 알았느냐며 되물었다.

“그야, 제가 여기에서 지내는 며칠 동안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요.”

“아, 제가 정말로 손님 대접이 엉망이었네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다프네는 그의 앞에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풍기는 하얀 빵이 담긴 접시를 놓아주었다.

“대접이 형편없어서 미안해요, 서튼 양.”

“사과하셔도 소용없어요. 절대로 용서해 드리지 않을 거니까요.”

다프네는 농담처럼 건넨 말에 깊은 진심을 담았다.

그리고 저녁 동안 만들었던 수프를 그 앞에 톡 내려놓았다.

조금 전에 오븐에서 꺼내 온 터라 완전히 녹은 치즈에서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다프네는 접시에서 천천히 손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날 때마다, 그녀의 심장이 조금씩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지.’

다프네는 멋대로 긴장하는 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먹만 꼭 쥐었다.

애슐리 슬로언은 무척 눈치가 빠른 남자였다. 여기에서 다프네가 이상한 모습을 보인다면 절대로 저 수프를 입에 대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남자니까.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수프의 따듯한 향기에 정신이 팔려서 다프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빨리…… 먹었으면.’

성급한 마음이 밀려왔다. 아마 두렵기 때문이리라.

다프네는 분명한 살의를 품고서 그가 먹을 수프에 독을 넣었다.

다행히 이 집에서 그런 것은 흔했고, 다프네는 이를 구별해 내는 법을 지난 생의 결혼 생활에서 배웠다.

‘……한 입만 먹으면 돼. 한 입만.’

이제는 손끝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애슐리가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이 되어 있으며, 언젠가는 사무엘까지 노릴지도 모른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목숨을 끊는 건 분명히 잘못된 행위였다.

도덕성을 저버리는 행위를 하는데, 공포가 밀려오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아마 언젠가 다프네는 이날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자신마저 애슐리 슬로언과 똑같은 인간이 되고 말았다면서.

하지만 약해진 마음을 따라서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확신하건대, 더욱 후회할 것이다.

아니, 심장이 찢어지고 말 것이다. 애슐리 슬로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프네의 삶을 진창으로 밀어 넣고 말 테니까.

‘죽여야 해.’

이제 그 외의 방법은 없었다.

“서튼 양은 안 드시나요?”

“아, 네?”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다프네가 놀라서 되물었다.

“저, 저요……?”

“네.”

“하지만 저는 사용인인데요?”

“그리고 저는 마법사죠, 사용인은 따로 두지 않는.”

다프네는 그의 권유를 거절하려다가, 이내 생각을 달리했다. 혹시 그가 의심이라도 품어서 식사를 거부한다면 곤란해질 테니까.

“그럼 저도 함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프네는 제 몫의 수프와 빵을 가져와 그와 마주 앉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가 생긋 미소를 지어 주었다.

‘무슨 생각일까?’

다프네는 불현듯 그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대체 어떻게 하면 자신이 죽인 사람의 딸 앞에서 이렇게 친절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지.

게다가 지난 생에는 아예 결혼까지 했었지.

‘이 남자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였을까.’

아니,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윤리적으로 비틀어진 상황 자체를 즐기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심심풀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지도.

그녀가 집을 떠나기 얼마 전에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설마, 정말로 내가 네게 마음이라도 있어서 혼인을 청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처음부터 줄곧…… 애슐리 슬로언은 가짜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그의 친절은 그저 다프네를 가지고 놀기 위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의 앞에서 실수인 척 세 번째 서랍을 운운했던 것도 그 유흥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았다.

‘……악마.’

당신이 빨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그리 생각할 때, 드디어 그가 식기를 집어 들었다. 수프의 뜨거움이 가시기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다프네는 떨리는 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빵을 먼저 집어 들었다. 괜히 식기를 건드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다.

다프네는 아무렇지도 않게 빵을 떼어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니,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빵을 꼭꼭 씹어 넘기는 순간에는,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억지로 눌러두어야 했던 오늘 낮의 일이 떠오르고 말았다.

「그분께서도 제게 항상 말씀하셨어요.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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