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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84)화 (84/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84화

“세 번째가 아니라, 다섯 번째라고.”

달칵.

서랍을 밀어 닫는 마찰음이 들리고, 곧이어 그는 견과류가 든 종이봉투를 찾아 꺼내었다.

“그래도 이 아이들을 신경 써 주어서 고마워요. 서리병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소중한 실험체거든요.”

그는 이제 별다른 볼일이 없는 듯,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실험용 쥐 앞으로 돌아섰다.

“이제는 제가 할 테니 서튼 양은 가 봐도 좋아요.”

“……네.”

다프네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황급하게 몸을 돌려 그의 방을 나섰다.

‘실패했어.’

아무래도 목걸이가 서랍 안에 있는지 맨눈으로 확인할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손으로 더듬거릴 때, 엉뚱한 곳만을 짚었을지도 모르니까.

“서튼 양.”

문고리를 쥘 때 즈음,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애슐리는 어느새 다시 다프네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에 병원에 데려다줄게요. 같이 가요. 저도 마침 가야 하니까요.”

“…….”

다프네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 * *

병원에 도착하니 앨러스테어로부터 전보가 와 있었다.

허둥지둥 떠났던 다프네를 걱정하는 내용으로, 혹시 머물 곳을 구했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다프네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최대한 긍정적인 내용으로 답을 적었다.

사무엘은 조금씩 회복이 되어 가는 중이며, 다프네는 애슐리 님의 댁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고.

애슐리에 대해 적어도 좋을지 사실 잠시 고민이 들었는데…….

여기에서 어설픈 거짓말을 적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껴질 것 같아 그만두었다.

답을 보낸 후, 다프네는 다시 병실에 누운 사무엘의 곁을 초조하게 지켰다.

희망적인 답장을 보냈던 것과 달리 사무엘은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다프네의 마음에는 연달아서 끔찍한 생각만이 이어졌다.

사무엘이 무사히 깨어날 수 있을까?

그 목걸이는 정말 아버지의 것일까?

왜 그 자리에 없을까?

혹시…… 애슐리가 다프네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다른 자리로 옮겨 둔 것은 아닐까?

“이, 있잖아? 사무엘.”

이대로는 그 섬찟한 완전히 잡아 먹힐 것 같아, 다프네는 애써 밝은 이야기를 해 보기로 했다.

사랑하는 동생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래서 공작님께서 아셔에게 새 비누를 사다 줬는데…….”

하지만 아무리 애써 밝은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그녀의 마음에는 오직 불안만이 자라나고 있었다.

어쩌면 사무엘이 이대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 때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다프네는 동생의 따듯한 손을 조물조물 문지르며 나쁜 생각은 애써 떨치려고 했다.

이렇게 금방 겁을 먹고 마는 것은, 지난 생에서 사무엘을 잃었던 기억이 아직도 너무나 생생한 탓일까…….

저녁이 되어 오늘도 다프네는 병원을 나왔다.

로비로 내려오자,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애슐리 슬로언이 크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다프네는 자연스레 그 앞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같이 가려고 기다렸어요.”

“……그렇군요.”

다프네는 조용히 답하고는 그를 따라서 병원 바깥에 세워 둔 그의 차에 탑승했다.

“힘들었죠?”

불현듯 그가 말을 걸었다.

“네?”

“대답이 없는 상대에게 이야기를 거는 것 말이에요.”

“…….”

“하지만 서튼 군은 누나가 계속 이야기를 걸어 주어서 심심하지 않았을 거예요. 아, 위로하는 말은 아니에요.”

그는 다프네가 오해하지 않도록 설명을 덧붙였다.

“실제로, 귀로 듣는 말은 제대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정말…… 입니까?”

“정말이랍니다. 원한다면 관련 사례를 찾아서 보여 드릴 수도 있어요.”

“……고맙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진심 어린 인사에 다프네는 얼른 입술 끝을 깨물었다.

아무리 위로가 되는 정보를 알려 주었다 해도 그렇지, 저런 남자에게…….

어느새 그의 차는 마법사 거주 구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젯밤 내내 다프네를 괴롭혀 온 악몽 같은 과거가 다시 선명하게 떠올라 그녀의 마음이 다시 불편해졌다.

* * *

기회는 의외로 금방 찾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별도로 마련된 욕실에서 목욕을 시작한 것이다.

그의 목욕 시간이 삼십 분은 족히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걸음을 서둘러 그의 침실에 도착한 다프네는 지체하지 않고서 약장 앞에 섰다.

세 번째 서랍을 열자 가장 안쪽 구석으로 밀려난 목걸이가 보였다. 아마 지난번에 그녀의 손에 걸리지 않았던 것은 위치의 문제였던 듯했다.

그녀는 덜덜 떨리기 시작하는 손으로 이를 쥐었다.

왠지 모르게 손안에 들어오는 감각이 익숙했다.

어느새 미칠 듯이 달리기 시작한 심장 소리가 귓가를 아프도록 때리고 있었다.

꼭 앞으로의 일을 예감이라도 한 듯이.

다프네는 더듬더듬 로켓의 버튼을 눌렀다.

달칵, 하고 낡은 뚜껑이 열릴 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감아 버렸다.

그리고 새카만 어둠 속에서 ‘제발’이라며 자신도 모를 기도를 바쳤다. 무엇을 소망하는지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이상한 기도를…….

다프네는 천천히 눈가에 힘을 풀었다.

작게 뜨인 눈에 활짝 열린 로켓의 안쪽이 얼핏 검붉게…… 보였다.

“……아.”

그리고 신음했다.

피였다.

바짝 말라붙은 검붉은 흔적이 다프네와 사무엘의 얼굴 위로 잔뜩 묻어 있었다.

어쩌면 이건…….

아버지의 마지막 손짓이었을까.

“……흡!”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호흡이 그녀의 숨통을 압박했다.

아, 어쩌면…… 아버지는…….

머릿속을 스치는 섬뜩한 가정에도 다프네는 그저 목걸이를 심장 가까이 끌어안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 * *

다프네는 아버지의 목걸이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그의 방을 빠져나와 제 방으로 돌아왔다.

“……하아.”

문가에 기댄 채로 쓰러지듯 주저앉자, 지금까지 참았던 눈물과 호흡이 엉망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흐, 흐흑……!”

아버지의 죽음만큼은 사고라고 생각했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불행한 사고.

하지만 조금 전에 그녀가 발견한 것으로 또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어쩌면…….’

애슐리 슬로언이 사고를 일으켜, 아버지를 살해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아버지께서 항상 지니시고 다니던 물건이 그의 수중에 있단 말인가.

그것도 새빨간 피를 묻힌 채로.

‘적어도 그는 아버지의 죽음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했던 거야.’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태연히 사람을 몇이나 죽이고도…….

다프네는 어제의 그가 미소를 짓거나, 위로 따위를 건네는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 너머로 몇몇 사람의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절대로 멈추지 않을 거야.’

이대로라면 분명히 예전과 같은 불행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다프네는 굳게 쥔 주먹이 아프도록 힘을 주었다. 처음 시간을 거슬러 왔을 때 그녀가 결심했던 가장 큰 목표를 다시금 떠올리면서.

‘사무엘을…… 두 번이나 잃을 수는 없어.’

그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다프네가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내가…… 그를 죽여야 해.’

* * *

다음 날이 되어 다프네는 어제와 다름없이 애슐리의 차로 병원으로 이동했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리고 차에서 내릴 때, 드물게도 다프네는 그에게 먼저 이야기를 걸었다.

“서튼 군에 대해서요?”

“아뇨,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요.”

다프네는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오늘까지 신세를 졌습니다. 다행히 저녁에는 따로 머물 곳이 생기게 될 것 같아요.”

“아.”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다프네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지낼 곳이 생겨서.”

“예, 덕분에 그간 편히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 은혜를 갚고 싶은데…….”

다프네는 모아쥔 두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제가 간단한 저녁 식사를 만들어서 대접해도 좋을까요?”

“……서튼 양이, 제게요?”

“네.”

다프네는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 지었다.

“제대로 식사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으음…….”

그는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제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서튼 군을 비롯해 경과를 봐야 할 환자가 많지만…… 뭐, 저녁 식사 전까지는 퇴근할 수 있을 겁니다.”

“다행이네요.”

다프네는 활짝 웃으며 그에게 ‘약속하셨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빙글 몸을 돌렸다.

그리도 끔찍하게 여겼던 사람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음에도 다프네는 그다지 속이 쓰리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 밤이 되면…… 그가 죽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애슐리는 모른다.

다프네가 그의 약장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전부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그녀가 이를 이용하여 자신을 없앨 생각이라는 사실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런 짓은 인간의 도리를 넘어서는 일임에도 놀라울 만큼 망설임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다만…….

사무엘의 병실 앞에 도착했을 때는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다프네가 저지른 일로 치안대원인 사무엘의 입장이 곤란해하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그 어떤 결과도 사무엘의 죽음보다는 나아.’

그리 생각하며 문고리를 돌리려고 할 때.

“다프네?”

마침 복도 너머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에 돌아보니, 브리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브리.”

“아직 여기에 있었네요. 식사는 했어요? 잠은 잘 잤고요?”

브리는 다프네의 뺨을 쥐고서 걱정스레 질문을 건넸다. 밤을 새운 탓에 안색이 그다지 좋지 못했던 모양이다.

“동생이 걱정되는 건 알지만, 다프네 자신을 더 잘 챙겨야 한다고요.”

“그냥 조금 잠을 설친 것뿐이에요. 다른 날은 잘 잤어요.”

“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브리는 샐쭉 미소 지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제 사무엘에게 가는 거죠?”

“아…….”

다프네는 굳게 닫힌 병실과 브리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평소라면 사랑하는 동생에게 갔을 테지만, 오늘은 왠지 다른 선택을 하기로 했다.

그들은 잠시 병원에 마련된 작은 온실 정원을 산책했다.

“그런데, 브리.”

따듯한 온실을 한 바퀴 돌아본 후, 다프네는 지난번에 묻지 못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네?”

“정신이 없어서 미처 질문을 못했네요. 저기, 브리는 여기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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