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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83)화 (83/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83화

“저, 아무래도 마법사님이, 거…… 걱정되어서요. 그러니까 그게, 제가 간호라든가…….”

그 이상한 변명을 하면서도 다프네는 사장님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라며 자신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하긴, 나도 마음이 좀 불편했어. 그렇게 해 준다면 나도 안심이지.”

하지만 사장님은 어째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차에서 다프네의 무거운 가방을 내려 주기까지 했다.

“그분이 얼른 나으셨으면 좋겠네. 아, 그렇지.”

사장님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마차에 오르다 말고 다프네를 돌아보았다.

“마법사님께 주문하신 물건은 시설로 바로 가져다드릴 거라고 말씀드려 줄래?”

“시설…… 이요?”

“그래, 연고 없는 아이들을 돌봐 주는 곳 말이야. 마법사님은 매년 방한용품을 사서 후원하는 시설로 보내 주고 계시지. 정말 좋은 분이야.”

“그래요?”

애슐리가 그런 일을 했었던가? 다프네는 지난 생의 기억을 헤집어 보았지만, 애슐리가 그런 일을 한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들어 본 기억이 없었다.

그의 성향상, 자랑을 늘어놓을 법도 한데.

다프네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그는 가게를 너무 오래 비워 두었다며 재빠르게 마차를 출발시켰다.

다프네는 커다란 가방을 든 채로 다시 애슐리의 집을 돌아보았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리라며 맹세했던 집에 이렇게 스스로 발을 들여놓다니. 정말 기묘했다.

다시 현관을 지나 문을 닫아 걸쇠를 잠갔다.

그리고 그가 잠든 침실로 다가가는 길.

목걸이를 확인해 볼 생각에 다프네의 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하지만 막상 애슐리의 침실에 도착했을 때.

“……서튼 양?”

이미 잠에서 깨어난 그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다프네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마 본능적인 공포였으리라.

“……아, 뭐가 어떻게…… 된 거죠?”

반쯤 몸을 일으킨 애슐리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였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아서 어지러운 듯했다.

“쓰러지셨습니다.”

다프네는 애써 평정을 가장하여 답했다.

“가게 사장님과 제가 애슐리 님을 여기까지 모셔 왔습니다. 여기에 올 때 사정을 이야기했으니, 금방 의사가 올 겁니다.”

“그렇…… 군요. 고마워요.”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프네는 얼른 허리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여기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아, 서튼 양”

애슐리가 다급히 부르기 전까지는.

“왜 그러시죠?”

경계하며 돌아보니, 그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였다.

“미안한데 혹시, 쥐에게 먹이 좀 주실 수 있으신가요? 제가 지금 좀…… 왠지 움직이는 것이 어려워서요. 그 아이들은 아직 잃으면 안 되거든요.”

당황스러운 부탁이었지만, 다프네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불쌍한 쥐를 굶길 수야 없었으니까.

“알겠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주면 됩니까?”

다프네는 일부러 무뚝뚝한 투로 질문을 건넸다.

“제 약장 하단의 세 번째 서랍을 열어 보시겠어요?”

하지만 그의 설명을 듣는 순간에는 어째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것 같았다.

세 번째라니, 거기에는 아버지의 목걸이와 똑같이 생긴 물건이 있었던 자리가 아닌가.

“세…… 번째요?”

그녀가 되묻자, 그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장으로 다가가 세 번째 서랍으로 손을 뻗으며 다프네는 깊은 혼란을 느꼈다.

‘왜…… 이 서랍을 열어 보라고 하는 거지?’

그 목걸이를 발견한 다프네의 반응을 두 눈으로 보고 싶어서? 아니면…….

손잡이가 손끝에 닿았을 무렵, 애슐리는 ‘아!’ 소리를 내며 얼른 제 말을 정정했다.

“세 번째가 아니라, 다섯 번째에 견과류 봉지가 있을 겁니다.”

이에 다프네의 손이 두 칸 아래로 향했다.

그 안에는 대충 둘둘 말아 둔 견과류 봉지가 있었다.

그걸 집어 드는 순간에는 어째서인지 다프네의 심장이 몹시 빠르게 뛰었다.

“한 움큼 집어서 안으로 넣어 주면 돼요.”

“알겠습니다.”

다프네는 서둘러 일을 마치고, 곧장 그의 방을 빠져나오려고 했다. 이제 다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의구심보다는 당장의 공포가 앞섰다.

“서튼 양.”

하지만 그의 끔찍한 목소리가 또 족쇄처럼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다프네는 그의 말에 이렇게 순순히 따르게 되는 자신에게 슬슬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네.”

“혹시, 서튼 군을 간호할 동안 지낼 곳은 구했어요? 이런 날에는 어느 호텔이든 자리가 없을 텐데.”

“이제부터 구하러 갈 생각입니다.”

다행히 다프네는 다름대로 세워 둔 해결책이 있었다.

정 머물 곳에 없다면 이제부터 클롯모어에 내려가든, 브리의 거처를 수소문해서 하룻밤만 부탁할 생각이었다.

“아, 여기에 있어도 되는데요.”

애슐리가 건넨 제안에 다프네는 얼른 고개부터 저었다.

‘여기’라니.

설령 잘 곳을 구하지 못하여, 공원 벤치에서 밤을 지새우게 되더라도 이 끔찍한 저택에서 머무는 건 사양이었다.

“그런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애써 단호한 목소리로 거절한 후, 다프네는 서둘러서 허리를 숙였다.

다행히 애슐리는 그녀를 더 붙잡지 않았다.

‘여기에 머물라니.’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며, 다프네는 애슐리의 끔찍한 제안을 재차 곱씹었다.

그가 평범한 호의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건 분명했다. 무언가 더러운 의도가 있었으리라.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사무엘을 죽인 남자와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난 생에 겪은 끔찍한 일이 떠오르자, 다프네는 잠시 그 자리에서 멈칫했다.

그 목걸이가 떠오른 것이다.

‘……만약 그것이 정말로 아버지의 것이라면.’

애슐리 슬로언이 죽인 것은 사무엘뿐이 아니라는 뜻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지?’

다프네는 고개를 들어 계단 위를 올려다보았다.

눈에 익은 벽지의 무늬조차 끔찍하게 느껴지는 이 집에는 그녀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진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계단 손잡이를 고쳐 쥐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도망치듯 나온 길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다시 걸어 올라갔다.

아직 이 저택에서 확인해야 할 일이 있었다.

* * *

애슐리가 내어 준 손님 방에서 잠을 청하는 밤은 무척 끔찍했다.

밤사이에는 악몽이 찾아오기도 했는데, 악몽보다 더한 과거의 복기였다.

때때로 의식이 돌아올 때마다, 다프네는 서랍 속 물건을 확인한 후 도망치고 싶었으나, 그에게 들키면 둘러댈 말을 찾지 못한 터라 차마 그리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다프네가 그의 방에 찾아간 것은 햇살이 조금 고개를 든 시간.

애슐리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이 분명한 때였다.

다프네는 살금살금 그의 침실로 향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문을 열어 보니, 예상대로 깊은 호흡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이다.’

혹시 몸이 좋지 않아 평소와 달리 새벽에 깨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다프네는 약장으로 다가갔다. 잔뜩 힘이 들어간 발끝이 나무 마루를 끼익끼익 누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평소라면 거의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지만, 지금은 어째 귓가를 왕왕 울리듯 요란하게 느껴졌다.

다프네는 걸음마다 침대로 고개를 돌려 그가 움직이지 않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깊이 잠이 든 애슐리는 미동도 없었다.

그렇게 하여 약장 앞에 도착했고, 조심스레 세 번째 서랍을 조금 당겼다.

스윽.

“서튼…… 양?”

하지만 그 순간 들려온 목소리.

다프네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약장 앞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곤히 잠들어 있던 남자는 어느새 침대에서 빠져나와 그녀에게서 고작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다프네는 얼른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조금 열린 서랍을 몸으로 가렸다.

“거기에서…….”

애슐리는 느슨하게 걸쳐진 하얀 가운을 입은 채로 한 걸음씩 가까워졌다. 묶다 만 허리끈이 그의 무릎 아래까지 늘어져 걸음마다 흔들렸다.

“뭐 하는 거죠?”

다프네는 뒷짐을 진 손을 더듬더듬 움직여 세 번째 서랍 안으로 몰래 손을 밀어 넣었다.

“아, 저…… 쥐 먹이요. 어제 챙겨 달라고 하셨잖아요.”

다프네는 턱 끝으로 그의 실험 쥐를 가리켰다. 다행히 애슐리는 다프네가 미리 생각해 둔 변명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서 작은 쥐들을 향해 그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사이에 다프네는 서랍 속에 넣은 손을 조금 더 대담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어제 보였던 목걸이의 감촉은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해, 어제 분명히…….’

다급해진 그녀의 마음과 달리 손끝은 연신 허공만 맴돌 뿐이었다.

‘어디에 갔지? 설마 물건을 옮긴 건가?’

어느새 살짝 몸을 낮추어 서랍 안쪽까지 손을 넣었을 때.

“서튼 양.”

그의 시선이 다시 돌아왔다. 다프네는 얼른 손을 빼내며 얼른 자세를 바로 했다.

“고마워요.”

그가 샐쭉 웃으며 건넨 말을, 다프네는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덧붙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오늘 아침까지 챙겨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

저도 모르게 탄식을 뱉은 다프네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그런데.”

커다란 보폭으로 다가온 애슐리는 어느새 다프네의 바로 앞까지 마주 서 있었다.

아직 세 번째 서랍이 열려 있었던 터라, 다프네는 바짝 긴장하며 더욱 뒤로 물러섰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에는 한 걸음의 거리밖에 남지 않았다.

“서튼 양.”

그는 그 마지막 한 걸음마저 좁혀왔다.

“말했잖아요.”

그가 허리를 숙였다. 꼭 귀에 입술이 가까워지려는 것 같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당장 이 자리를 박차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만큼.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서랍이 열렸다는 걸 그가 알게 돼.’

애슐리 슬로언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사무엘의 치료를 맡는 기간만큼은.

그가 더욱 몸을 깊이 기울였다. 목덜미로 그의 뜨거운 호흡이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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