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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81)화 (81/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81화

“부인?”

의아해하며 돌아보니, 부인은 곤란해하는 얼굴로 어렵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안해요, 아기씨. 저는 잠시 오린샤이어에 다녀와야 해요.’

“지, 지금요?”

‘네, 방앗간 할멈이 허리를 다쳐서 제 도움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아.”

그 일이라면 다프네도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 생에는 다프네가 방앗간에 머물며 할멈을 도왔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라져 페이지 부인이 일을 도맡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부인은 이제 서튼가에서 일하는 하녀가 아니었으니, 사무엘을 돌봐야 할 의무는 없었다.

이번에 달려와 준 것은 그녀의 큰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감사드려요, 부인. 저보다 먼저 사무엘을 돌봐 주시고 또…….”

다프네가 이에 감사 인사를 하자, 부인은 얼른 두 손을 휘저었다.

‘제발 내게 그렇게 고마워하지 말아요, 아기씨. 가족끼리 그렇게 말하면 난 너무 슬퍼요.’

“부인…….”

‘방앗간 할멈은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도울 테니, 저는 다시 수도로 올 거예요. 알겠죠? 아기씨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니까 두려워 말아요.’

“고마워요…… 정말로, 나 부인이 없다면…… 어떻게 했을지.”

‘우리 아기씨는 언제나 내 어린애죠.’

페이지 부인은 다프네의 머리를 재차 쓰다듬었다. 무척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그러니까 다음에 만나면, 그 마법사님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셔야 해요.’

“……네?”

‘나는 아기씨 편에서 무엇이든 들을 테니.’

다프네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고개를 끄덕여 약속하고 말았다.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하겠노라고.

페이지 부인이 부랴부랴 병원을 떠나고, 잠이 든 사무엘과 단둘이 남은 다프네는 잠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페이지 부인에게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고.

‘왠지 부인께는 다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

시간을 되돌아왔다는 황당한 이야기에도 그녀는 절대로 웃지 않고서 귀를 기울여 줄 것이다.

다프네는 이에 제 어린 시절 전부를 걸 수 있었다.

‘그렇구나, 나…….’

다프네는 지금까지 잊고 있던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다.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어른이 곁에 있었어.’

그 순간부터는 왠지 알 수 없는 용기가 샘솟는 기분이었다.

똑똑.

왠지 익숙한 느낌의 노크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다프네가 짧게 답하자 곧 문이 열렸고, 좁은 문틈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다프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브리.”

공작저에서 항상 다프네를 살뜰하게 챙겨 주던 동료 하녀 브리였다.

“갑자기 미안해요. 잠시 괜찮은가요?”

“맙소사, 너무 좋아요.”

그녀는 누워 있는 사무엘을 의식한 듯 조용히 병실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마침 병원에 있었는데, 다프네가 보여서 혹시나 해서 찾아와 봤어요. 문 앞에 동생 서튼 군의 이름이 보여서 확신했고요.”

“고마워요.”

그렇지 않아도 혼자 있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다프네는 브리의 방문이 너무나도 기뻤다.

“여기 앉아요, 브리. 제가 차를 내올게요.”

“아뇨, 괜찮아요. 서튼 군과 다프네를 보러 온 거지, 차를 마시고 싶은 건 아니니까요.”

브리는 일단 사무엘의 침대로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피곤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넸다.

“서튼 군은 괜찮은가요?”

“네…… 괜찮아요.”

다프네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답하자, 브리가 얼른 두 손을 잡아 주었다.

“신문 봤어요. 서튼 군과 동료들이 용감한 일을 해냈다죠?”

“네, 용감한…… 일이었죠.”

다프네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방호복도 없이 불길로 뛰어드는 무모함을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탐탁지 않은 탓이다.

사무엘은 소방대가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어느 정도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장비와 지식을 갖춘 소방대에 현장을 맡기고, 뒤에서 다른 일을 돕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두 아이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다프네의 바람은 이기적인 것일까.

“다프네, 좋지 않은 가정을 떠올리고 있다는 걸 알아요.”

“…….”

“그게 어쩔 수 없다는 것도요. 저도 동생이 있거든요.”

브리는 한 손을 들어 다프네의 한쪽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그래도 깨어나면 자랑스럽다고 꼭 말해 줘요.”

“모르겠어요.”

사실 다프네는 사무엘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화를 낼 생각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무모한 짓을 벌였느냐고.

“전 사무엘이 사회적으로 훌륭하지 않아도 언제나 자랑스러워요.”

“다프네.”

“신문에 이름이 날 만큼 영웅이 아니어도 좋아요. 아니, 그런 식으로 위대한 건 싫어요. 전…….”

다프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치안대원이라니…… 도무지 사무엘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없어요.”

“…….”

“가능하면 지금이라도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게…… 내 진심이에요, 브리.”

다프네는 결코 동생의 생각과 꿈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너무나도 위험하지 않은가.

아이가 클롯모어의 성벽에 있을 때는 미처 그 위험성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저 보이지 않는 적을 상정하고 훈련하는 모습밖에 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확실히 깨달았다.

사무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달려가기 위하여 자신을 단련하는 것이다.

“사무엘이 왜 이런 직업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전 알고 있는데.”

브리는 다프네의 뺨을 쥐었던 손으로 이제 은색 머리카락을 사락사락 쓸어내렸다. 손길은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브리가요?”

“그럼요, 너무 쉽잖아요.”

그럴 리가, 다프네는 지금까지 사무엘이 어쩌다가 그런 꿈을 갖게 되었는지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하지만 마땅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서튼 군이 치안대원이 되기로 한 건,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예요.”

“지키고 싶은…… 사람이요? 그게 누군데요?”

다급히 건넨 질문에도 브리는 가만히 고개만 저었다.

“그건 제가 말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하, 하지만……!”

“깨어나면 물어봐요. 어쩌면 서튼 군은 누나가 물어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요.”

다프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 어요.”

“잊지 말아요, 다프네는 어떤 상황에서도 서튼 군을 응원해야 해요.”

“으.”

다프네가 울상을 짓는 것이 재미있었는지, 브리는 조금 소리를 내어 웃었다.

“어쨌든 애슐리 님이 치료를 도와주신다니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겠어요.”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조금 전에 병실에서 그분이 나오시는 걸 봤거든요.”

브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이제야 다프네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잠시 나온 거라서요.”

“아.”

다프네는 황급히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브리가 다소 서두르는 걸음으로 병실을 빠져나간 탓에 그리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무슨 일로 있는 건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조금 전에 브리에게도 동생이 있다고 했으니, 어쩌면…….

‘큰 병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왕립 병원에 와 있는 것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그래도 최고의 의료진이 있는 곳이니까, 클롯모어에서는 치료가 힘든 병일지라도 여기에서는 금방 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다프네는 사무엘의 옆에 앉아서 턱을 괸 채로 잠이 든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굴까? 네가 지키고 싶은…… 아.”

그러다 문득 다프네는 어떤 인물이 떠올랐다.

기분 나쁠 정도로 사무엘이 잘 따르는 남자가 한 명 있기는 했다.

“설마…… 공작님인가?”

생각해 보면 리암은 다프네보다도 먼저 사무엘이 클롯모어에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공작님을 지키고 싶어서 네가 치안대에 들어갔다고?”

…….

다프네는 얼마 전까지 그에게 품고 있었던 소량의 좋은 감정들을 탈탈 털어서 내다 버렸다.

갑자기 그가 미웠다.

* * *

사무엘은 저녁이 되어도 깨어나지 않았다.

다프네는 한시도 빼놓지 않고 그 곁을 지켰는데, 해가 지기 시작하자 이제 그것도 어려워졌다.

“죄송합니다, 서튼 님. 보호자의 면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입니다.”

“네? 그, 그럼 밤에는요? 사무엘이 혼자 있게 되잖아요.”

“여기는 모든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 밤에는 허락된 인물만이 건물에 머물 수 있습니다.”

“아…….”

다프네는 미련이 가득 남은 시선으로 사무엘을 돌아보았다.

‘어쩔 수 없지.’

병원에는 위험한 약품이 많고, 의식이 없어 저항할 수 없는 환자들도 여럿 있었다.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예외도 허락하지 않고, 출입을 엄중히 통제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내일 오전 10시에 다시 오면 되는 거죠?”

“물론이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프네는 잠시 사무엘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사무엘,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우리 내일…… 다시 만나자. 잘 자.”

그 후에는 사랑하는 동생의 이마에 키스를 남겼다. 새해의 키스는 아니었다. 그건 사무엘이 깨어났을 때를 위해서 아껴 둘 생각이었다.

* * *

병원에서 나온 후에 깨달았는데, 다프네는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처음에는 예전에 살던 집에 가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급하게 오느라 열쇠를 챙겨 오지 않았다.

열쇠공을 불러서 열고 들어가려고 해도, 집의 소유자임을 증명해야 하는데…… 부동산 서류 역시 클롯모어에 두고 온 형편이었다.

그녀는 무거운 가방을 챙겨 들고 병원 근처의 숙박업소를 찾아갔다. 밤에는 병실을 지킬 수 없는 보호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인 듯했다.

“어쩌죠, 새해라서 남는 방이 없는데.”

하지만 오늘은 보호자들은 물론이고, 새해를 맞이하여 수도로 놀러 온 사람들로 객실이 가득 찬 모양이었다.

다프네는 그 외에도 몇 군데 숙박업소를 더 전전했다. 하지만 어디든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곤란할 때는 연락을 달라던 앨러스테어의 이야기가 잠시 생각나긴 했지만, 당장 잘 곳을 구하지 못하는 문제를 그가 해결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다프네는 시내의 벤치에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그 옆에 주저앉았다.

익숙한 수도의 풍경이 오늘따라 낯설었다. 갈 곳이 없다는 난감한 상황에 빠진 탓일 것이다.

‘클롯모어로 돌아갔다가 내일 다시 와야 하나?’

하지만 매일 그렇게 하면 돈이 남아나지 않을 텐데.

‘엘에게 연락해 볼까.’

잠시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애써 고개를 저었다. 새해 첫날부터 도와 달라며 찾아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더구나 다프네는 ‘가문을 도와줘’라는 그의 부탁을 언제나 거절하지 않았나.

“……어떻게 하지.”

그렇게 중얼거릴 때, 마침 눈앞에 있던 잡화점 ‘사냥꾼의 요람’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

상대와 딱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다프네는 놀라서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또 그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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