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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70)화 (70/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70화

“…….”

“실은 돈을 빌려 달라는 이야기가 아닌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속삭이듯 하는 이야기에 리암은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답을 말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왕실의 가보인 반지를 훔쳐서 네게 청혼할 생각이라고.

“그건 액수에 따라 고민이 되겠지만, 그 외에는 뭐든지 간단히 오케이 할 생각입니다.”

“안 돼!”

리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다프네가 그의 머리를 두 손으로 짓눌러 어떻게든 보습을 계속하도록 만들었다.

리암은 별수 없이 피부를 촉촉하게 만들며 그녀에게 경고했다.

“잘 들어, 다프네. 어쩌면 그가 가보를…….”

“제게 값비싸게 팔아 치울 생각일지도 모른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물건 보는 눈은 확실하거든요.”

그야 그렇겠지.

하지만 저 망할 놈이 가져온 것은 거대하고 맑은 다이아몬드가 위엄 있는 자태를 뽐내는 어마어마한 물건이었다.

거기에 일찍이 다프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었다.

「예, 공작님은 돈도 많으시니 보석이 크면 클수록 좋습니다. 부디 아낌없는 소비를 부탁드립니다.」

그 교활한 엘리엇은 다프네가 거대한 보석에 영혼을 홀랑 빼앗긴 사이에 ‘나랑 결혼하면 공짜로 줄게.’라는 달콤한 말로 꾈 작정일 터다.

이 얼마나 비겁한 일이란 말이냐!

리암은 황급히 공작가의 가보를 헤아려 보았다. 무언가 다프네에게 넘겨줄 것이 있지 않은지 찾아보기 위해서.

똑똑.

마침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던컨이라고 생각한 리암은 기쁘게 얼른 들어오라 명했다.

그는 명석한 사람이니 어느 가보를 넘겨야 다프네를 다이아몬드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할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 줄 것이다.

“아, 다프네가 여기에 있었네.”

하지만 빼꼼 열린 문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엘!”

엘리엇이었다.

다프네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기 때문에, 리암도 드디어 끔찍한 보습 과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느새 문가로 달려 나간 다프네가 엘리엇을 붙잡아 벽난로 쪽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상당히 추웠지? 힘들지는 않았어?”

“응, 괜찮았어. 이 옷이 보기보다 따듯하거든.”

엘리엇이 하얗게 웃으며 귀여운 척을 하는 동안, 리암은 이마를 훤하게 드러낸 채로 그를 맹렬하게 노려보았다.

“있지이.”

그 시선을 모르는 엘리엇은 말끝을 길게 늘어뜨리며 두 손을 다프네 앞으로 내밀었다.

“실은,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이런, 장갑이 젖었네!”

“응, 강물에 도끼질하니까 어쩔 수 없었어.”

“이 바보, 젖은 장갑을 그냥 끼고 다니면 어떻게 해!”

다프네는 한 손을 높이 들어서 그의 등짝을 시원하게 후려갈겼다.

그 광경에는…… 엘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던 리암도 헉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야 농담으로 누군가 저 얄미운 놈의 등짝을 후려갈겨 주기를 바란 적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시원하게 때려 준다고?

리암은 자신도 모르게 다프네의 목덜미를 흘긋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잘 붙어 있었다.

아니, 그뿐이 아니었다.

“아야…… 너무 아프다아.”

엄살을 부리는 엘리엇의 얼굴에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저 미친놈이!

리암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뒤이어 펼쳐진 놀라운 광경에 온몸이 굳어 버린 것이다.

“가만히 있어 봐, 장갑을 바꿔 줄게.”

바로 다프네 서튼이 저 망할 엘리엇을 상대로 사용인 노릇을 하는 것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데…….”

엘리엇은 말은 그렇게 해도 신이 나서 양손을 불쑥 더 내밀었다.

“다프네가…… 벗겨 줄 거야?”

그 빌어먹을 대사에 이르러서는 리암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말았다.

“이리 와, 서튼.”

“예?”

새로운 장갑을 가져온 다프네가 이제야 그를 돌아보았다.

“왜요?”

그것도 리암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왜냐니!”

리암은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갈 지경이었다.

“왜 그대가 나서서 장갑을 바꿔 주는 거지?”

“엘은 공식적으로 공작님의 오른손이잖아요.”

“……뭐?”

리암은 멈칫하며 제 귀를 의심했다.

그사이, 다프네는 엘리엇의 장갑을 벗기고 마른 수건으로 손에 남은 물기를 닦아 주었다.

“그러니까 엘은 현재 ‘공작님의 신체’인 거잖아요. 그 노동 계약 조건을 생각해 보면 말이에요. 그러니 제가 공작님의 오른손에 장갑을 끼워 주는 게 당연하잖아요?”

“와, 다프네 똑똑하다.”

엘리엇이 감탄하는 동안 리암은 몇 번이나 다프네의 말을 곱씹었다.

그야…… 오른손이 되는 계약이긴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엘리엇을 괴롭히기 위한 계약 조건이었을 뿐이다.

저 망할 왕과 다프네를 공유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단 말이다!

“손 펼쳐 봐, 따듯한 장갑으로 바꾸어 줄게.”

“응.”

“이제 뭘 하러 가는 거야?”

“광장에서 삽질과 망치질을 해야 한대.”

“그렇다면 장화가 필요하겠다. 치수를 알려 주면 하나 구해 올게.”

“저, 정말?”

“응, 하지만 신는 방법이 까다로워서 내 도움이 필요할 거야.”

“다프네가 도와주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걸!”

“으이그.”

다프네는 그에게 장갑을 끼워 준 후에, 이번에는 그의 하얀 뺨을 살짝 꼬집었다.

리암은 이제 차라리 기절하고 싶었다.

아무래도 엄청난 사기꾼을 집 안에 들여놓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것도 계약까지 맺어서 내쫓을 수도 없는 최악의 사기꾼 말이다.

* * *

그래도 엘리엇은 그날 저녁까지 리암이 시키는 일은 무엇 하나 불평 없이 완벽하게 해냈다.

마을 대표는 ‘공작님께서 보내 주신 대리인이 성실하게 모든 일을 도와주었습니다.’라며 따로 감사의 말을 전해 왔다.

리암은 마을 사람들을 대하는 엘리엇의 모습이 쉽게 상상되었다. 특유의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예쁜 말만 골라 했겠지.

왕실에서도 그런 엘리엇의 추종자가 된 신하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 따위…… 아무것도 아니겠지.’

실제로 리암의 마음도 제법 사지 않았는가. 덕분에 그 열받는 녀석을 아직도 참아 주고 있는 거고.

리암은 마을 대표가 편지와 함께 선물로 보내온 향초를 바구니에 담았다.

고생한 것은 엘리엇이니 그에게 가져다줄 생각이었다. 사실은 그에게 말을 붙일 핑계로 가져가는 것뿐이지만.

리암은 불빛이 적은 어두운 복도로 나와 잠시 주변을 살폈다.

늦은 시각이라 딱히 인기척은 없었다. 사용인들은 모두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 듯했다.

다만 단 한 명.

익숙한 실루엣을 가진 사람이 계단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다프네.”

리암은 바로 그녀의 앞으로 다가섰다.

“공작님.”

다프네가 무릎을 굽혀 예를 표하는 사이, 그는 그녀의 손에 들린 약병에 주목했다.

“그대에게 근육통이 생겼나?”

“아뇨.”

“……아.”

리암은 조금 뒤늦게 기분 나쁜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근육통에 시달리는 것은 엘리엇인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종일 익숙하지 않은 근육을 썼을 테니, 몸살이 나는 것도 당연할까.

“잘됐군.”

그는 불쾌감을 애써 드러내지 않으며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내가 전해 주지, 그렇지 않아도 만나러 가던 길이었거든.”

매끄럽게 말하는 중에도 그는 다프네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폈다.

혹시 엘리엇을 만나지 못하게 되어 실망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잠시 리암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다프네의 입술이 양쪽으로 예쁘게 씩 올라갔다.

리암은 긴장으로 꽁꽁 묶여 있던 마음이 탁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죠.”

그건 믿을 만한 타인에게 일을 맡기고 퇴근하는 근로자의 표정이었다.

“챙겨야 할 사람이 늘어서 피곤했을 텐데, 돌아가서 쉬어.”

“예, 그럼 저는 좀 눕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프네는 약병을 넘긴 후에, 인사를 마치고 계단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얼핏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엘리엇에게 그다지 관심은 없는 건가.’

리암은 한결 더 가벼워진 걸음으로 엘리엇의 방으로 향했다.

가벼운 노크로 방문을 알렸는데, 반응이 없었다.

잠든 건가 싶어서 고민하다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조용히 문고리를 돌려보았다.

순간 리암의 눈앞에 강한 빛이 번뜩였다.

놀라며 바라본 곳에는 반쯤 잠이 든 엘리엇이 하얀 빛에 둘러싸여 있었다.

리암은 마법에 조예가 없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는 못했지만, 그 모양과 형태로 보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인 듯했다.

“아.”

조금 뒤늦게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엘리엇은 리암을 알아보고 허겁지겁 빛을 사그라뜨렸다.

“……미안, 잠결에.”

리암은 그의 노동 계약서에 ‘마법 금지’ 조항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려다가 그만두었다.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엘리엇이 어디서든 깊이 잠들지 못한다는 점은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왕이었고,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를 해하려는 인물은 신하에서부터 일가친척과 가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으니, 잠결에 보호 마법을 발동하는 본능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별 위안은 되지 않겠지만.”

리암은 문을 닫고서, 그의 침대로 다가와 앉았다.

“경비는 빈틈없이 세워 두었어.”

“고마워, 음…… 그리고 변명하자면, 딱히 리암을 믿지 못해서 마법이 발동된 것은 아니야. 그게…….”

“알아.”

리암은 그가 적절한 말을 찾는 수고를 덜어 주기 위해, 기꺼이 엘리엇의 말에 끼어들었다.

“상냥한 리암.”

엘리엇은 다시 침대로 몸을 떨어뜨려 편히 누웠다.

“무슨 일로 왔어?”

“마을에서 보내 준 향초와 다프네가 부탁한 근육통약을 주려고.”

리암은 바닥에 내려놓은 바구니에서 약병을 꺼내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사내놈의 몸에 직접 약을 발라 주는 취미는 없으니 굳이 도움은 주지 않기로 했다.

“다프네는?”

“신나게 퇴근했지. 노래까지 하던데.”

“……그렇구나.”

엘리엇은 뺨에 약병을 댄 채로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다프네는 나를 업무로 느끼나 봐.”

“나의 소중한 오른손이니까.”

“그건, 평소에도 리암을 업무로 느낀다는 뜻이야?”

“그야.”

리암은 잠시 미간을 찌푸린 채로 생각에 빠졌는데,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긴 한데.”

“있잖아.”

엘리엇이 몸을 빙글 돌려, 리암의 무릎 위로 머리를 툭 올려 두었다. 귀엽게 뜬 눈으로 그를 빤히 올려다보면서.

“리암, 다프네랑 연애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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