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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64)화 (64/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64화

애슐리의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갔다.

다프네는 그 표정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잔뜩 겁을 먹고 올려다볼 때마다, 그는 이런 미소를 짓곤 했다.

“서튼 양.”

그는 얇은 장갑을 낀 손으로 그녀의 뺨을 쥐어 쓰다듬었다.

다프네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했다. 그의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서…….

동시에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자신이 싫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눈앞에 있는 남자에 대한 학습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다프네는 파르르 떨리는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당신이 마음에 들어요.”

얼굴을 쓰다듬던 손길은 머리카락을 파고들더니, 이내 그녀의 목덜미를 관능적으로 쓸어내렸다.

동시에 그녀를 감싸던 망토가 발치로 떨어져, 다프네의 하얀 어깨가 차가운 공기 속에 모두 드러나고 말았다.

“꼭 나를…… 아는 것 같아서.”

마주 선 그가 허리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떠올랐다.

이 남자, 목덜미에 잇자국을 남기는 걸 미치도록 좋아했었지.

오랜 공포가 가르쳐 준 생존법에 따라 다프네는 살짝 턱을 들어 올렸다. 어렴풋이 시선에 들어온 그의 입술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에게 경고했다.

‘……안 돼.’

애슐리 슬로언이 멋대로 우위를 점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시간을 돌아온 이후 자신에게 했던 맹세를 떠올렸다.

사무엘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 ‘어떤 일’은 이제 단순히 공작의 수행원이 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애슐리 슬로언과 엮이지 않아야 해.’

하지만 이미 그는 다프네의 존재를 완벽하게 인식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규율이 필요했다.

‘절대로 굴복하면 안 돼.’

이 남자에게 패배한다면, 지난 삶과 같은 운명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

다프네는 얼어붙은 듯 늘어뜨렸던 두 손을 꿈틀꿈틀 움직였다. 마침 애슐리의 입술이 목덜미에 거의 닿으려 할 찰나였다.

다프네는 가까스로 힘을 쥐어짜 그의 이마와 어깨를 밀어냈다.

“잠시만요, 서튼 양.”

그가 다시 다가왔기 때문에, 다프네는 성급하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시, 싫어요.”

“그게 아니라.”

“오지 마세요.”

“서튼 양.”

순간 물러나던 그녀의 구두 뒷굽으로 무언가가 탁 걸리고 말았다.

살짝 헐거운 구두에서 발이 빠져나오며, 뒤로 휘청이게 된 순간 애슐리가 얼른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제 다프네는 울고 싶었다.

“……제발.”

그에게 고통받은 순간의 막막한 감정이 다시 찾아와 질식할 것 같았다.

“당장 놓으시죠, 그 손.”

순간 다프네의 바로 뒤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짧은 말은 그녀에게 ‘현실’을 분명하게 일깨워 주었다.

이제 다프네는 애슐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타인이었다. 그에게 복종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녀가 따라야 할 인물은 그가 아니라……

“놓으시라, 했습니다.”

리암 슬로언이었다.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동시에 구름에서 벗어난 달빛이 리암의 분노 어린 표정을 조금 더 선명하게 보여 주었다.

“리암, 오해야. 서튼 양의 목덜미에 뭐가 붙어 있는 것 같아서…….”

“상관 안 합니다.”

리암은 애슐리의 손을 붙잡아 기어코 다프네와 강제로 떨어뜨려 놓았다.

“이유가 무엇이든.”

“……리암, 정말로 날 용서할 생각이 없는 거구나.”

그가 쓸쓸하게 중얼거린 말에도 리암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가자, 서튼.”

리암은 먼저 몸을 돌리며 다프네에게 명령했다.

“잠깐만.”

그러자 애슐리가 얼른 그들을 불러세웠다.

“서튼 양에게 내가 설명할 시간은 줘야지. 놀라게 한 건 정말로 죄송합니다, 서튼 양. 하지만 저는 정말로…….”

“듣지 마.”

리암은 다프네의 팔을 당겨 자신의 뒤로 밀어 두었다.

“리암, 네가 날 미워하는 건 알지만.”

“아뇨, 모르십니다.”

리암은 그가 하는 이야기마다 간결하게 툭툭 끊어 냈다.

“리암.”

이에 한결같던 애슐리의 표정에 작은 균열이 일었다.

“아무래도 서튼을 꽤…… 소중하게 여기는 모양이구나.”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말.

다프네는 그 의미는 모르지만,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리암도 같은 것을 느꼈는지, 이번에는 그를 향해 한 마디도 쏘아붙이지 못했다.

그를 노려보기만 하던 리암은 다프네를 이끌고 대성당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애슐리 앨런코트 슬로언, 유가족의 대표로서 그대의 참석을 허락하지 않겠다. 당장 돌아가도록.”

이에 가벼운 답이 돌아왔다.

“원한 적도 없단다.”

다프네는 그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그는 아무것도 없는 어둠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아예 보이지 않게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

애슐리를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음에도, 두려움의 잔재가 남아 있었는지 그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

그 순간에 리암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어째 잔뜩 구겨진 얼굴을 하고서 다프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표현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꼭 싫어하는 벌레라도 발견한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표정이 어떠한들 리암이 곁에 있으니 이제까지의 두려움이 모두 사라졌다.

“모, 모자에 접착제를 발라 버릴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그가 다시 제게 서운하게 굴면 대꾸하기로 생각해 두었던 고를 날렸다.

“……그건 똑똑한 어린이가 나쁜 아버지에게 복수하는 방법이잖아.”

그러자 리암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하며, 그녀의 목덜미에 달라붙은 얇은 종잇조각을 떼어 주었다.

“어…… 진짜 있었네요.”

“그 자식이 붙여 놨겠…… 아니, 됐어.”

그는 손끝을 후 불어 종이를 먼 곳으로 날려 보냈다.

“다친 곳은?”

“없습니다.”

“그 자식이 무슨 짓을 했지?”

“어…….”

다프네는 저택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사이에 있었던 일을 쭉 떠올려 보았다.

‘……생각보다 별일이…… 없었네?’

그러자 애슐리가 딱히 해를 입힌 것은 없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했다.

게다가 목덜미에 무언가가 붙어 있던 것도 사실이었고.

그와 함께 있으면서 줄곧 무섭다는 생각은 했지만, 사실 그건 지난 생의 기억에서 온 감정이나 다름없었다.

“대단한 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손목은 왜 붙잡아.”

“아, 그게.”

다프네는 이제야 제 두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리암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제 구두가 벗겨져서요.”

“…….”

“넘어질 뻔했거든요.”

“그걸 그 새끼가 잡아 주고?”

“예, 그 새끼가…… 아니, 애슐리 님이 잡아 주셨습니다.”

“정말…… 여기에 가만히 서 있어.”

리암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온 길을 따라 다시 뒤로 돌아가 다프네의 구두를 찾아왔다.

“신으시죠, 신데렐라.”

그가 구두를 놓아주며 건넨 말에 다프네는 조금 울상을 지었다.

이래서야 애슐리가 말한 농담이 마지막까지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요정 대모님부터 호박 마차 그리고 왕자에 이르기까지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 엉망진창 신데렐라 이야기로.

“손 이리 주고.”

“혼자 신을 수 있습니다.”

“알아. 그냥 도와주려는 거야. 아프다며?”

“전……!”

다프네는 제 건강을 뽐내려다가 곧 그만두었다.

오늘은 아프다는 핑계로 업무를 면제받은 바 있었으므로.

“……명실상부한 환자입니다.”

“그렇지.”

별수 없이 그가 내민 손을 잡자, 그는 다프네가 무게를 맡기고 편히 신발을 신을 수 있도록 강하게 붙잡아 주었다.

그 후에는 어느새 함께 가져온 망토를 어깨 위로 둘러 주었다.

어깨 위로 온기가 닿고서야, 다프네는 자신이 꽤 추위를 타고 있었음을 실감했다. 하긴 이런 추위에 어깨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나는…….”

리암은 단추가 떨어져 나간 망토의 앞섶을 대신 꼭 붙잡은 채로 그녀와 마주 섰다.

“그대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고 생각했는데.”

“지니셨습니다, 저에 대한 유일한 권리.”

“그런데, 왜.”

다시 다프네를 향하는 그의 시선에는 어째 경계가 섞여 있었다.

“그에게 그대를 허락했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제 필사적인 몸부림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이에 리암은 다프네의 목덜미를 집요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순간이 있었다. 조금 전에 애슐리의 눈치를 살피며 얌전히 자신을 내주었던 때.

하지만 다프네가 그런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건 애초에…….

다프네는 화를 가득 담은 시선으로 고개를 들었다.

리암에게 따져 물어야 할 것이 남아 있었다.

분명히 말하건대, 다프네는 애슐리와 엮이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다프네는 여전히 그가 두려웠다. 사무엘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의 방패가 없었다면 그를 거부할 용기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프네가 애슐리를 따라 여기까지 온 건 어쩔 수 없이 끌려왔기 때문은 아니었다.

절대로.

그녀는 리암을 만나기 위해 여기에 왔다.

그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이상하기 짝이 없는 언행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서.

리암의 태도가 순식간에 달라진 일은 애슐리의 존재만큼이나…… 두려웠으니까.

예전 생의 애슐리가 그랬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애슐리는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추어 둔 분노를 그녀에게 쏟아 내기 시작했다.

어떤 전조도 없었다.

그에게 마음을 주고 있던 만큼, 당시의 그녀가 받은 충격은 절대 적지 않았다.

다프네는 주먹을 질끈 쥐고서 고개를 똑바로 들어 그를 노려보았다.

깊은 원망에 그를 탓하는 말이 자연스레 입술 끝에 매달렸다.

왜 그리 싸늘하게 굴었느냐고.

“아니, 내가…… 잘못했어.”

하지만 그의 사과가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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