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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60)화 (60/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60화

애슐리가 도착했다는 전보에 리암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차량에 올랐다.

그는 제발 할 일을 빼앗지 말아 달라며 읍소하는 운전사를 옆자리로 밀어내고 직접 핸들을 붙잡았다.

마을에서 멀어지며 앙상한 나무들이 늘어선 외곽 길로 빠져나와, 리암은 곧장 기어를 바꾸어 속도를 붙였다.

“제기랄.”

요란한 엔진음 사이에서 그는 좀처럼 쓰지 않는 거친 말을 터트렸다.

완전히 당했다.

생각해 보면 그 사악한 남자가 리암을 흔들어 놓을 방책도 생각하지 않고서 얌전히 클롯모어까지 올 리 없었다.

도착하는 시간을 앞당긴다는 것은 단순하지만 리암을 당황케 하기에 충분했으며, 그를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었다.

리암은 더욱 속도를 높였다.

이를 버티지 못한 차체가 흔들리기 시작하여, 운전사가 조심스레 속도를 줄이시는 편이 좋겠다며 조언했으나 리암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

지금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 * *

클롯모어 공작저 앞에 진흙을 잔뜩 뒤집어쓴 차가 끼익 멈추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운전사는 주인보다 먼저 차에서 내려 그대로 토악질을 해 대었다. 덕분에 집사 던컨은 리암이 얼마나 다급히 돌아왔는지 절실하게 알 수 있었다.

“다녀오셨습니까.”

집사는 꺽꺽거리는 운전사의 등을 차분히 두드리며, 리암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형님은?”

리암의 성격상 운전사를 잘 돌봐 달라는 말을 할 법도 한데, 그는 곧바로 본론부터 물었다.

“침실에 계십니다. 마플이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습니다. 그곳에 다과를 준비시킬까요?”

그렇게 답하는 집사의 얼굴에서는 따듯한 기대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8년 만에 재회하는 형제의 만남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멋대로 상상하고 흐뭇해하는 것이다.

“아니.”

하지만 리암은 싸늘한 얼굴로 그의 기대를 산산이 무너뜨렸다.

리암을 유심히 바라보던 집사는 곧 말없이 몸을 숙였다.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성급함을 사죄하는 것이리라.

리암은 딱히 그를 나무라지 않고서 현관을 지나 계단을 올랐다.

애슐리의 방을 지날 때도, 일부러 그쪽에는 시선조차 두지 않았다.

아마 그는 리암이 달려와 먼저 인사를 건네기를 기대했으리라.

슬로언 공작이 그보다 열등하다고 진심으로 믿는 남자니까.

그 기대를 굳이 충족시켜 줄 이유는 없었다.

이제 가문의 주인은 리암이었다. 찾아와서 인사를 건네는 것은 애슐리의 의무였다.

“공작님.”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니, 그의 다급한 귀가 소식을 들은 다프네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리암은 얼른 그녀의 상태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었다.

무사하구나.

그녀를 보자 운전 내내 그를 괴롭히던 미지의 괴로움이 전부 사그라졌다.

‘일단, 다프네는 사무엘에게 가 있으라고 하자.’

휴가는 내일부터지만, 반나절 정도 먼저 저택을 나선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다프네, 지금 당장…….”

그가 멋대로 결정한 사항을 이야기하려고 할 때.

“공작님.”

등 뒤에서 소름이 끼치도록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암은 그 자리에 툭 멈추어 섰다.

부르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슬로언 공작님.”

오랫동안 기억으로만 되뇌던 목소리였다.

떠올리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쳐도, 끝까지 리암을 쫓아와 기어코 숨통을 조여 왔던 그 끔찍한 것이…….

지금 바로, 리암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끝을 말아 쥐었다. 아슬아슬하게 얼굴에 붙여 놓은 ‘공작의 가면’이 바닥으로 떨어져 그만 깨어질 것 같았다.

그 가면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두려움에 맞설 줄 모르는 겁 많은 어린아이뿐.

“…….”

리암은 애써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가면을 견고히 만들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리고 바른 자세로 뒤를 돌아보았다. 고개는 숙이지 않았다.

“형님.”

애슐리는 그와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리암은 그가 낯설었다.

8년 만의 재회이기 때문일까?

아니었다. 그들이 소년티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간단한 사실로 이 낯선 감각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답은 시선에 있었다.

리암은 지금까지 애슐리를 상기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턱을 들어 올리곤 했다. 그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8년 전 그날까지, 그는 줄곧 그보다 시선이 높았으니까.

“많이…… 자라셨군요.”

어쩌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서로 같은 높이에서 시선이 마주친 애슐리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아셔의 성장도 놀라울 정도였지만, 공작님은 제 아우님이라 그런지 더욱 신기합니다.”

“그러시군요.”

리암은 관심 없다는 듯 적당히 답하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실례하죠, 지금 막 돌아온 터라.”

“아.”

애슐리의 얼굴에 낭패가 어렸다. 흡사 리암의 말에 상처라도 입은 듯 보였다.

“공작님을 방해할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는 가만히 고개를 조아렸다.

“내일이 오기 전에 공작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다소 성급하게 굴었습니다.”

“독대를 바라신다는 말씀입니까?”

“예, 저와 공작님 사이에는 해결되지 않은 일이 있을 테니까요.”

해결할 수 없는 일이겠지.

리암은 그리 답하고 싶은 것을 그만두었다. 보는 눈이 있는 곳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리암은 생긋 미소를 지었다.

“형님께서 바라신다면, 시간을 내는 것이 아우의 도리겠지요.”

리암은 바로 몸을 돌렸다.

마침 다프네 서튼이 바로 뒤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는 흠칫 놀랐다.

애슐리에 대한 적개심에 빠져 그녀에게 중요한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사무엘에게 돌아가 있어,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리암은 그리 말하고 싶은 것을 그만두어야 했다. 애슐리가 두 눈을 뜨고 지켜보는 앞에서 그녀에게 다정한 말을 뱉는 것은 위험했다.

“비켜.”

가까스로 고른 거친 말은 싸늘하기만 했다.

너무 심했나?

리암은 순간 걱정이 들었다. 씩씩한 다프네 서튼이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미쳤습니까?’라며 반박하면 어떻게 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아.”

그의 염려와 달리, 다프네는 생각지도 못한 날에 베인 사람처럼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실수했다.

순간 리암은 그리 생각했지만, 차마 이 자리에서 바로 사과를 건넬 수는 없었다.

“제가 감히 충고할 입장은 아닙니다만, 공작님.”

묘한 침묵이 길어졌기 때문인지, 애슐리가 그들 사이로 다가와 섰다.

“서튼을 소중하게 대해 주셔야 합니다. 게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분을 굳이 슬프게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애슐리가 ‘괜찮은가요?’라고 속삭이며 다프네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하얗고 긴 손가락이 그녀의 뺨에 닿으려는 찰나.

리암은 순간 제 형의 손목을 붙잡아, 분명히 경고하고 싶었다.

다프네 서튼은 내 거라고.

더러운 성질머리를 지닌 마법사 따위가 감히 손을 댈 존재가 아니라고.

하지만 리암은 욕망으로 움찔거리는 손끝을 기어코 제 등 뒤로 감추었다.

쓸데없는 오기를 부려 굳이 오해를 살 필요는 없었다.

애슐리 슬로언은 마법사였다.

그건 곧 그가 리암을 괴롭히기 위해 다프네에게 해를 입힌다고 하더라도, 왕의 권력으로 모든 사건을 덮을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프네가 아무리 왕의 관심을 받는 아가씨라도 ‘마법사를 우대한다.’라는 왕실의 대전제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되지는 못할 테니까.

참아야 했다.

장갑도 끼우지 않은 파렴치한 마법사의 손길이 기어코 그녀의 뺨에 닿았다.

“……아.”

순간 다프네는 화들짝 놀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리암은 묘한 안도가 들었다.

“죄, 죄송합니다! 공작님, 물러가겠습니다.”

다프네는 얼른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네곤 복도 끝 사용인 계단으로 향했다.

리암은 다프네에게 미안한 마음을 억지로 눌러 둔 채로, 제 방으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이제 아무도 없이 그들 형제만 남았으니, 저 남자의 가증스러운 꼴도 끝이 날 것이다. 슬슬 더러운 본성을 드러낼 생각일 테지. 지금까지 늘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방 안 창가에서 멈추어 선 리암은 삐딱하게 웃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이제 말씀하시죠.”

“공작님.”

애슐리는 창가로 다가와 리암과 나란히 섰다. 불쾌할 정도로 거리가 가까웠다.

어떤 잔혹한 말이 흘러나올까? 그걸 어떻게 되받아치면 좋을까? 이제 리암은 기대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저는 사죄를 하러 왔습니다.”

“……?”

“그러니까, 제가 공작님을 괴롭게 했던 시간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를 드리고 싶다는 말입니다.”

리암은 미간을 좁히며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 눈빛에 섞인 불신과 적의를 알아차렸는지, 애슐리는 애처롭게 미소 지었다.

“압니다. 겨우 사죄 한 번으로 모든 시간을 덮을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

“내일은 아버지의 일주기가 아닙니까. 그전에 최소한의 도리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암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 남자의 이런 여우 같은 면에 속기에는, 이미 너무나도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받았다.

그는 애슐리의 말에 얼마나 많은 진심이 녹아 있는지 가늠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캐슬린 힐링엄.”

대신 그의 언행이 남겨 놓은 허점을 지적했다.

“그건…….”

고개를 든 애슐리는 다소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상냥함을 가장한 채로.

“저도 괴롭게 생각합니다.”

“그렇겠지.”

“그래도 제게는 그녀보다 당신이 소중했으니, 암시 마법을 걸어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을 지키고 싶었을 뿐입니다.”

거짓말이 틀림없었다.

캐슬린 힐링엄이 죽은 것은 살의를 완전히 상실했을 때였다. 즉, 그녀가 완전히 쓸모를 잃었다고 생각될 때, 불길에 타오르도록 해 두었으리라.

“어쨌든 공작님과 서튼이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리암의 시선이 한쪽 벽면으로 향했다.

캐슬린이 휘둘렀던 마법 단검을 총으로 쏜 자국이었다.

그는 일부러 이를 보수하지 않았다. 그날의 사건을 언제라도 기억하기 위해서.

마침내 리암은 이제 다시 애슐리를 똑바로 마주 보며 분명하게 답했다.

“저는 가해자와 화해도, 합의도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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