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58화
약간의 시간이 흘러 리암은 창문을 닫았다. 싸늘함이 묻은 책상으로 돌아와 앉았으나, 일에 몰입할 수는 없었다.
모처럼 찾아온 대시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조금 더 떠올려 보자면, 대시는 실종되었다.
새하얗게 눈이 오던 날 아침. 사냥터지기는 대시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얌전히 풀어진 목줄만을 남겨 놓고서.
그날은 공작이 자리를 비웠던 터라, 사태 판단은 후계자인 애슐리의 몫이었다. 비록 소년에 불과한 나이였으나, 그의 명령을 귀담아듣지 않을 이는 저택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수색대는 꾸려지지 않았다.
고작해야 아픈 개 한 마리 때문에, 눈이 내리는 위험한 숲속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내몰 수 없다는 이유로.
사용인들은 ‘어느 주인들은 사용인보다 혈통 좋은 사냥개를 더 귀하게 여긴다는데…….’라며 애슐리의 결정을 고맙게 여겼다.
리암에게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며 애슐리는 짧은 사과를 덧붙였다.
「네 친구인데, 미안하구나.」
사람이 더 소중하다는 애슐리의 말은 너무나도 합당하여, 리암은 차마 대시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이때 애슐리가 건넨 조언은 다음과 같았다.
「잊어버리렴, 그편이 더 낫단다.」
리암은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어도, 사실 진심으로 대시를 잊어버릴 마음은 없었다.
그는 대시가 좋아하는 공을 챙겨 들고 사냥터지기의 오두막으로 달려가 홀로 주변을 수색했다. 하얀 눈을 그대로 맞으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발걸음은 점점 더 깊은 사냥터로 향했다. 대시는 사냥개이니 이쪽으로 가지 않았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하지만 대시를 찾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리암이 돌아가는 길을 잃었을 뿐이었다.
공작을 따라 귀가한 리처드 슬로언이 그를 찾아내지 않았다면, 리암은 아마 눈 내리던 숲에서 홀로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실종 사건을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 것은, 부끄럽게도 한참 시간이 흐른 이후였다.
어설픈 정직함으로, 애슐리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일러바쳤던 8년 전의 그날 말이다.
「리암, 네가 태어나는 날부터 어렴풋이 예감은 하고 있었단다. 이 작은 아이가 내 삶을 망치려고 왔구나…… 하고.」
「눈엣가시 같은 널, 증오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리암은 처음으로 아무런 꾸밈도 없는 애슐리 슬로언의 감정을 듣게 되었다.
날카로운 말은 리암의 숨통을 조금씩 뜯어 가, 그는 곧 스스로 호흡하는 것마저 할 수 없을 만큼 괴로워했다.
무너져 내린 리암에게, 애슐리는 싸늘한 경고를 남겼다.
「조심하렴, 리암. 또 연약한 것을 사랑하지 않도록.」
그 순간에 어째서인지 대시가 떠올랐다.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어쩌면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당시를 상기하던 리암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로 팔걸이를 쥐었다.
‘줄곧 형님을 의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생각해 보면 저택의 누구도 대시의 목줄을 풀어 줄 만한 이는 없었다.
오직 한 명, 애슐리 슬로언을 제외하고는.
이제 리암은 그 이유 역시 알고 있었다.
저택에 속한 사냥개가, 감히 리암을 더 따르고 좋아한다는 점이 불쾌했던 것이리라.
‘겨우, 고작 그런 이유로…….’
팔걸이를 쥔 손에 아프도록 힘이 들어갔다.
분노하는 한편으로 두려움이 몰려오는 것은 아마, 이러한 애슐리의 광적인 분노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캐슬린 힐링엄이 그 사실을 증명하지 않았나.
그녀가 다프네를 노렸던 것은 애슐리의 지시였을 것이다. 슬로언 공작에게 서튼이란 특별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니까.
‘실패한 힐링엄 양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이번에는 본인이 직접 오시겠다?’
어쩌면 애슐리 슬로언은 두 눈으로 리암의 상황을 확인하고 싶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이 저택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리암 슬로언을 특별하게 생각하는지…….
「조심하렴, 리암.」
다시금 형님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릴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높이 들었다.
기억 속의 애슐리는 언제나 리암보다 거대했으므로, 이렇게 우러러 바라보는 것이 몸에 배고 말았다.
「또 연약한 것을 사랑하지 않도록.」
그 잔혹한 경고에 리암은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가 사랑한 누군가가 대시처럼 그의 곁에서 말없이 사라져 버리는…….
‘아니.’
하지만 그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증거로 스스로 씌워 둔 ‘후계자의 가면’을 벗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도, 누구 앞에서도.
진정한 내면을 모르는 자들과 사랑하는 마음을 나눌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이번 방문에서 애슐리는 리암의 약점을 찾으려고 애를 쓸 것이나, 무엇 하나 얻지 못한 채로 돌아가게 되리라.
애초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으니까.
* * *
리암의 방에서 빠져나오며 다프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살았다.’
아셔가 말한 ‘형’이 애슐리라는 사실을 모르고 몹쓸 조언을 한 이후로 줄곧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그의 눈에 띄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야.’
일주기의 날, 다프네는 시내의 거리조차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뵙는 것은 애슐리가 돌아가고 난 이후의 밤으로 미루어 둘 생각이었다.
사무엘을 지키기 위한 일이니, 아마 아버지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으시리라.
“이야기 들었습니다, 서튼 양.”
마침 반대편에서 오던 아셔가 반짝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는 애슐리가 저택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 이렇게 내내 얼굴에 반짝이는 빛을 달고 돌아다녔다.
“일주기 당일에 자리를 비우신다고요.”
“아, 넵.”
솔직히 말하면, 다프네는 아셔가 무척 화를 낼 줄 알았다.
아무리 그래도 저택의 중요한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서튼’으로서 부끄럽지 않으냐는 식으로.
“리처드 님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참 안됐습니다.”
그가 너무나도 부드러운 투로 건넨 이야기에, 다프네는 깜짝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
“잘 인사드리고 오시…… 사람이 모처럼 좋은 소리를 하는데 왜 그런 표정입니까?”
“헉, 아닙니다.”
다프네는 얼른 씩 미소를 지었다.
“아셔의 신사적인 면모에 놀라는 중이었습니다.”
“……!”
“은근히 다정하시네요. ……근데 저도 좋은 소리를 하는데 왜 점점 분노로 붉어지시는 겁니까?”
다프네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이제 귀까지 빨개지는 것을 보니 정말로 화가 난 듯했다.
“누, 누가 붉어졌다는 겁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는 쌓인 분노를 아낌없이 표출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날에 자리를 비우는 서튼과는 대화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애슐리 님을 뵙지 못하게 된 일을 눈물 흘리며 후회할 겁니다!”
그는 곧 ‘흥!’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리곤 다프네를 지나쳐 가 버렸다.
‘왜 갑자기 화를 낸담?’
일단 지금은 방으로 돌아가서 사무엘에게 편지를 써야 했다.
* * *
[일주기에 네가 일하는 곳에 찾아가 봐도 될까?]
다프네는 끝내주는 일주기 계획을 세웠는데, 바로 누나로서 동생이 생활하는 환경을 둘러보는 것이다.
그녀가 치안대의 지침을 확인해 본 바, 대원의 가족들은 한 번쯤은 그들의 기숙사나 수련 시설을 둘러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있었다.
더구나 사무엘은 아직 어린애였다.
보호자인 누나가 생활 환경을 둘러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며칠이 지나 일주기를 하루 앞둔 오후.
드디어 다프네가 기다리던 사무엘의 답장이 도착했다.
다프네는 뒷문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기다리던 편지를 받아 들었다.
[미안해, 누나. 여기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 다른 장소에서 만나자.]
다프네는 뒷문에 멍하니 선 채로, 사무엘의 편지를 열 번 정도는 다시 읽었다.
“대체 왜?!”
“뭐가요?”
마침 린넨을 걷어 돌아가던 브리가 다프네의 곁으로 다가왔다.
“동생이…… 제게 기숙사를 보여 주지 않겠대요.”
그녀에게는 이미 동생과의 재회를 이야기한 터라, 다행히 금방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
“음…… 그건 저라도 싫을 것 같은데요?”
그러자 브리가 놀라운 답을 들려주었다.
“네?! 하, 하지만 전 누나인데요?”
“그러니까 싫죠. 형이라면 모를까.”
“형이라니!”
다프네는 그 몹쓸 호칭에서 리암을 떠올리고는 항의했다.
“누나는 혀, 형 따위에게 지지 않습니다. 특히 동생에 대한 마음만큼은 대륙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단 말입니다.”
울상을 지으며 건넨 이야기에도 브리는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잠시 소리를 내어 웃었다.
“맙소사,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저는 그냥 다프네처럼 예쁜 누나가 있다면, 기숙사 동료들이 보지 못하도록 꼭꼭 숨기고 싶을 거라는 이야기였어요.”
“예……?”
다프네가 편지를 든 채로 멍하니 되묻자, 브리가 설명을 덧붙였다.
“누가 사랑하는 누나에게 반하기라도 하면 곤란하잖아요?”
“반해요? 제게요?!”
“그럼요. 그러니까 안심해요, 동생분은 다프네를 아주 좋아하고 있으니까요.”
그녀의 격려에도 다프네는 도무지 사무엘의 속사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누가 다프네를 좋아할까 봐 걱정하다니.
‘대체 사무엘은 나를 얼마나 멋지게 보고 있는 거지……!’
아무래도 누나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머지 눈에 콩깍지가 쓰인 것이 틀림없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다프네를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 본 적도 없을 텐데, 이런 귀여운 경계를 하다니.
‘역시 사무엘은 순수하고 귀여워.’
다프네는 동생의 편지를 폭 끌어안았다.
이제 내일이면 온종일 함께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들뜨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다프네는 이제 몸을 돌려 사용인 홀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뒷문으로 달려 나오는 사용인 무리에 깜짝 놀라서 잠시 뒤로 비켜섰다.
그들은 정신없이 달려가면서도, 황급히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옆 마을에 간 리암이 벌써 돌아온 건가? 하며 다프네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마침 저택에서 빠져나온 아셔와 딱 마주치게 되었다.
“무슨 일이죠?”
다프네가 의아해하며 묻자.
“이럴 시간 없습니다. 뛰세요!”
그는 일단 다프네의 팔을 붙잡아서 정문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공작님께서 벌써 오셨나요?”
다프네는 잠시 휘청거렸지만, 곧 아셔와 같은 속도로 달리며 질문을 건넸다.
“아뇨.”
아셔는 잠시 다프네를 돌아보았는데, 그는 꼭 개구쟁이 소년처럼 해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애슐리 님이 돌아오신답니다! 지금 수도발 급행열차에서 내리셨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