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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54)화 (54/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54화

아무래도 그의 몸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파랗게 얼어 버린 얼굴로 턱을 덜덜 떨고 있었다.

“아시겠습니까?”

아셔는 제 심장 근처를 꾹 누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섬세하신 공작님은 당신 같은 극악무도한 여자에게도 신사의 예를 다하시느라, 고작 얇은 담요 한 장으로 추운 밤을 견디셨다는 말입니다!”

“어…… 그건 참.”

다프네는 머쓱한 마음에 제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죄송한 일이네요.”

“그것뿐입니까?”

그녀의 사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아셔가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하지만 다프네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왜 한 침대에서 주무시지 않으셨어요?”

물론 그건 조금도 이상한 의미가 아니었다.

이렇게 거대한 침대에 무 한 뿌리가 누우나, 두 뿌리가 누우나 큰 차이는 없지 않은가. 물론 다프네는 무가 아니지만.

그녀의 덤덤한 질문이 어째 아셔에게는 굉장히 음란하게 들린 모양이다.

그의 얼굴이 안타까울 정도로 붉어졌다.

다프네는 그를 위해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어, 그러니까 잠자리를 요구하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다, 당신이란 여자는! 부끄럼도 없이……!”

“그건 부끄러운 말이 아닌데요? 생명체가 번식하기 위해서는 암수 개체가…….”

“시끄럽습니다! 맙소사, 공작님, 이 뻔뻔한 여자의 변명은 더 들을 것도 없습니다. 당장 벌을 내리세요!”

아셔가 거품을 물고 비명을 질렀지만, 리암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진정해, 아셔.”

“하지만!”

“싫었다면 돌려보냈을 테지. 그러니까 너무 흥분 마.”

“크흑, 공작님은 너무 상냥하십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다프네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싫었다면 돌려보냈을 거라는 말.

‘그건 역으로 생각하면, 내가 좋았다는 뜻인가?’

……무슨 말도 안 되는 결론이람.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생각에 다프네는 헛웃음이 날 정도였다.

‘아무래도 내가 잠이 덜 깼나 봐.’

“어쨌든, 다프네.”

리암이 부르는 소리에 그녀는 얼른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 추위에 덜덜 떨며 가엽게 굴더니, 지금은 멀쩡해진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에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대의 뜻은 잘 알았어.”

“전 아무런 주장을 펼치지 않았습니다.”

“왜 함께 잠들지 않았느냐 묻는 건, 역시 내가 곁에 없어서 쓸쓸했다는 뜻이겠지.”

“……예?”

“알았어, 앞으로는 그대를 사양하지 않을 테니까.”

“아뇨, 사양하세요. 멋대로 절 받아들이지 마시란 말입니다!”

그는 다프네의 턱을 들어 올려, 강제로 그를 바라보도록 했다. 그의 얼굴에서는 매력적인 미소가 쓸모없이 낭비되고 있었다.

왠지 두려워진 다프네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읍소했다.

“아, 앞으로는 귀소 본능을 발휘하여 반드시 제 방에서 자겠습니다!”

“반드시?”

“네, 반드시……!”

“그건 참 안도할 수 있는 말이군.”

그는 어째 미소를 싹 지우고 살짝 굳은 얼굴을 했다.

“그대의 방에서 자도록 해, 반드시.”

그건 어째…… 다른 곳 어디에서도 함부로 잠들지 말라는 경고로 들렸다.

대체 왜 그런 말을 이렇게까지 무서운 얼굴로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 물론 내 침실은 예외야.”

“어…… 공작님 침실에는 딱히 볼일이…… 아, 옙.”

왠지 그의 시선이 더욱 집요해지는 것 같아서, 다프네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서튼으로서 그의 곁을 지켜야 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암요, 암요. 농부가 무를 수확하려면 무밭에 가야 하니까요. 제가 돌아갈 장소에 공작님의 무밭…… 침실을 추가하겠습니다.”

“왜 무를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아.”

그는 이제야 다시 하얀 미소를 머금었다.

뭔가 굉장히 만족해하는 것 같았는데, 다프네는 그의 속을 알 길이 없었다.

어쨌든 아침에는 무와 고기를 푹 끓여 넣은 스튜를 맛있게 먹었다.

* * *

한편, 다프네가 우편국에서 일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사무엘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얼마 전에 다프네가 오린샤이어로 보낸 소포 상자에 대한 것이다.

이는 친절한 페이지 부인의 도움을 받아 오린샤이어에서 재발송되어, 현재 사무엘이 지내는 치안대원 숙소까지 무사히 배달될 예정이었다.

최근 들어 다프네가 매일 출근하는 클롯모어의 우편국을 거쳐서 말이다.

* * *

그래도 누나에게 거짓말을 하면 쓰겠니.

페이지 부인이 수화로 건넨 염려에 사무엘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제 가슴을 툭툭 두드렸었다.

「제가 누나를 지켜 주고 싶어서 그래요. 부인께서 말씀하셨잖아요, 우리 남매는 서로를 아껴 주어야 한다고.」

사무엘의 고집을 꺾지 못한 페이지 부인은 마지못해 그의 거짓에 큰 도움을 주었다.

다프네의 편지나 소포가 올 때마다 언제나 그의 실거주지로 돌려보내 준 것이다.

물론 다정한 부인은 단순히 다프네의 물건만 보내지 않았다.

이에 더해 사무엘이 좋아하는 간식을 하나씩 꼭 함께 넣어 주었다.

언제나 건강 조심하라는 짧은 쪽지와 함께.

그러니 사무엘은 자신에게 소포가 올 때마다 누나의 마음은 물론, 다정한 페이지 부인의 걱정도 함께 받을 수 있어서 기뻤다.

어서 훌륭한 어른이 되어서 이 두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이런 근사한 즐거움이 지금은 사무엘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우편국에서 근무하는 다프네는 오린샤이어에서 발송된 ‘그 상자’를 알아볼 것이다.

아니, 설령 알아보지 않는다고 해도 상자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사무엘의 이름을 본다면, 분명히 모든 사정을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사무엘은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보았다.

저절로 엉덩이가 움찔거렸다. 일단 급한 대로 옆에 굴러다니는 초콜릿 빵을 먹어 보긴 했는데, 딱히 엉덩이에 지방을 붙여 주는 효과는 없는 듯했다.

이 빌어먹을 몸! 왜 붙는 건 키와 근육뿐이란 말인가!

사무엘은 대체 이 심각한 사태를 어떻게 돌파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일단…….’

가장 좋은 방법은 다프네가 상자를 보기 전에 빼돌리는 것이다.

‘우편 열차를 습격해야 하나.’

수도에서 클롯모어로 열차가 이동하는 구간 중에는 커다랗게 굽은 길로 인해 속력이 꽤 줄어드는 지점이 있었다.

자동차로 따라잡아 속도가 줄어든 열차로 뛰어들면 상자 하나 정도는 빼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다지 무서울 것 같지도 않았고.

‘하지만 그건 도둑질이잖아.’

사무엘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을 벌였다가는 누나는 물론, 페이지 부인까지 달려와 그의 등짝을 때릴 것이다.

그건 좀…… 무서웠다.

밤샘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사무엘은 용기를 내어 우편국으로 가 보았다.

그가 자체적으로 알아낸 다프네의 우편국 출근 시각은 10시 15분경. 지금은 10시가 되기 5분 전이니, 다프네가 아직 출근하지 않았을 것이다.

멀리에서 우편국이 보이기 시작할 때, 항상 상냥한 미소를 그리던 사무엘의 얼굴에 드문 분노가 피어났다.

그건 우편국 앞을 서성이는 마을 청년들 때문이었다.

“정말이야! 공작님이 파견 보낸 사용인인데, 진짜 예쁘다니까!”

한 청년이 자랑하듯 건넨 말에, 다른 이도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5년 전 다녀온 수도에서도 그런 미인은 본 적이 없을 정도야.”

“에이, 그래 봤자 하녀 아니겠어?”

사무엘은 기척을 죽이고 그들의 뒤로 다가섰다.

“그게 그렇지가 않다고! 요즘 우편국에 줄을 서는 놈들이 늘어난 이유를 모르겠…… 헉.”

그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청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이야기를 멈추었다.

“뭐야, 너 왜…… 헉.”

다른 청년 역시 사무엘과 시선이 마주치자 완전히 굳어 버리고 말았다.

사무엘은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다.

일단 누나는 하녀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서튼의 후계자로 공작의 수행원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인간의 외모를 감히 판단하는 말은 굉장한 실례라는 사실도.

그는 이 모든 사정을 마음속에 꾹꾹 눌러 참은 채로 이 무례한 남자들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다프네는 사무엘이 마을 사람들과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저, 저…….”

곧 남자 가운데 한 명이 덜덜 떠는 목소리를 쥐어짰다.

사무엘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렇게까지 두려워하는 것을 보면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듯했다.

분명 스스로 했던 말이 부끄러워 떨고 있는 것이겠지.

“자, 잘못했습니다.”

남자들은 얼른 고개를 조아리고는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무엘은 팔을 들어, 주먹을 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누나를 지켜 준다고 해 놓고, 저런 몹쓸 말을 하는 이들에게 아무런 위협도 가하지 못하다니…….

‘무기력하고 연약한 나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한숨을 쉬며 돌아보자, 오전 업무를 시작한 우편국의 사무실에 새벽 열차로 도착한 소포들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

사무엘은 그중에서도 굉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거대한 상자를 하나 발견했다.

사무엘은 당장 사무실로 뛰어 들어가 그 상자를 끌어안았다.

깜짝 놀란 우편국의 직원이 그를 만류하려 했지만, 수신인의 이름을 확인한 후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건데 직접 가져가 주신다면 저희야 기쁘죠.”

사무엘은 수령 서류에 사인을 마치고 얼른 상자를 들어 올렸다.

‘이런 횡재가 있다니……!’

누나 몰래 상자를 빼돌리는 방식에 대해서 그렇게 고민했는데, 이렇게 합법적으로 가능하게 될 줄이야.

사무엘은 빠른 걸음으로 우편국 사무실을 가로질렀다.

상자가 지나치게 큰 탓에 눈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행이야 정말로…… 꼼짝없이 누나에게 들키는 줄 알았어.’

그리 생각하며 우편국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마침 누군가가 그를 위해 문을 열어 주었다. 상자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친절한 클롯모어의 주민 중 한 명일 터다.

“고맙습니다.”

사무엘은 허리를 숙이지 못하는 대신에, 진심을 담아서 인사를 건넸다.

“천만에요.”

곧 상대에게서 다정한 답이 돌아왔다.

“…….”

사무엘은 그 짧은 답만으로도 상대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프네 서튼, 그의 누이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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