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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52)화 (52/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52화

“괜찮아요. 아, 무거워요? 내릴까요?”

다프네가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며 묻는 말에 그는 괜히 속도를 높였다.

“아뇨, 그냥 타고 계세요. 어차피 별로 무겁지도…… 아니, 아닙니다. 조용히 가기나 합시다.”

그는 다시 앞만 바라보며 나아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스스로 바란 침묵을 먼저 깨트리고 말았다.

“서튼 양.”

아셔 마플은 페달에서 발을 내리며 완전히 멈추어 섰다.

“저 내려요?”

멍청히 돌아오는 답에 뒤를 돌아보니, 다프네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후.”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아셔는 어째 한숨이 빠져나왔다.

애초에 그가 다프네에게 도움을 준 것은 저 얄미운 여자를 편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무슨 고민이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함이었지.

“……저기.”

하지만 막상 속에 있는 말을 묻기는 쉽지 않았다.

왜 이렇게 마음에 저항감이 생기는 걸까.

그저 저 이상한 여자의 괜한 행동으로 공작님께 피해가 가지 않도록 미리 손을 써 두려는 것뿐인데.

“힘들면 교대할까요? 아니면 제가 수레를 밀까요?”

“그…… 치안대원 말입니다.”

아셔는 일단 다른 이야기부터 하나씩 나누어 보기로 했다.

갑자기 심각한 문제를 꺼내면 이 고집쟁이 아가씨가 입을 꾹 다물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아까 도와주셨던 그분 말이죠?”

다행히 다프네는 금방 고개를 끄덕여 그의 이야기에 응했다.

“예, 인상착의를 잘 기억해 두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저 기억력에는 자신이 있다고요.”

다프네는 세워 앉은 무릎에 머리를 기댄 채로, 미소를 지었다.

“어딘가 좀 위태로워 보이는 대원이었죠.”

“……예?”

아셔는 조금 전에 만난 청년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얼굴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확신하건대 위태로워 보이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안정감을 주는 사내였다.

“그렇게 비리비리하다니, 치안대에서 식사는 잘 챙겨 주는 건지 걱정이 들었습니다.”

비리비리하다니?

아셔는 대체 어디에서부터 반박해야 할지 말을 고르지 못했다.

그 묵직한 상자를 장난감처럼 들어 올린 점? 아니면 제복으로 가릴 수 없었던 우람한 팔?

“타고난 몸이 연약한 것이 틀림없어요. 제 눈은 절대로 못 속이죠.”

다 속을 것 같은데.

아셔는 여전히 자신만만한 얼굴로 웃는 다프네를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저 여자가 상자의 크기와 무게부터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더니, 결국에는…….

“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네?”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로 위험하다고요, 당신.”

“그게 무슨…….”

다프네는 곧장 반박하려는 듯하더니, 한마디도 채 다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닫아 버렸다.

아마 그가 꽤 진지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당신이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유난히 친절하게 구는 거, 내가 모를 줄 압니까?”

“…….”

“우리가 같이 일한 것도 벌써 일 년입니다. 그렇게 싹싹하게 굴면, 아무도 모르고 넘어갈 것 같았습니까?”

그녀는 점점 고개를 떨구었다. 늘 시끄럽게 구는 여자가 힘없이 늘어진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아셔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아셔는 비교적 차분해진 투로 물었다.

“수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서튼 양.”

그의 재촉에 머뭇거리던 다프네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죄송해요.”

하지만 제대로 된 답을 들려주지는 않았다.

“이건……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문제예요. 다만 신경 쓰이게 해 드렸다면…….”

“제가 당신을 신경 쓰는 건 당연합니다!”

아셔는 그녀가 죄송하다는 말 따위를 하지 못하도록 얼른 소리쳤다.

“……예?”

하지만 다프네가 ‘왜요?’라는 얼굴로 바라보자 그는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왜냐니!

그야…….

왜지?

아셔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고민에 잠겼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든 단어 사전을 아무리 뒤져 봐도 그가 다프네를 걱정하는 이유에 적합한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겨우 떠오른 말이라고는…….

“이…… 워, 월급 도둑 같으니!”

“뭐라고요?”

“공작님의 금고에서 월급을 받아 가면서 다른 고민을 하는 건 월급 도둑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래요! 그런 겁니다!”

“아셔, 무슨 문제 있어요?”

“문제는 내가 아니라 당신에게 있겠죠!”

“하지만 얼굴이 엄청 빨간데요. 날이 추우니 탈이 난 거 아니에요?”

다프네의 지적에 그는 얼른 고개를 획 돌려 버렸다.

“됐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을 걱정한 제가 바보지! 제기랄!”

“걱정해 주어서 고마워요.”

“뭐라고요?!”

“진심으로 고맙다고요. 아셔도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을 텐데.”

“……하.”

그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 그쪽이 절 걱정한 겁니까?”

“그야…….”

다프네는 잠시 머뭇거렸다.

“아셔의 얼굴에도 고민이 있어 보이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

“아버지께 보낼 편지가 있다더니, 결국 아무것도 안 보냈잖아요.”

“그, 그건! 조금 더 고심해서 쓰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어설픈 편지로는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으니…….”

아무래도 아셔는 지금까지도 휴고 마플에게 편지를 적어, 리암의 좋은 점을 설파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비록 지금까지 그가 답장을 받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봐요, 아셔도 심란해하잖아요.”

“따, 딱히 아버지 일로 고민하는 건 아닙니다. 언젠가는 공작님의 훌륭한 점을 알게 되실 테니까.”

“그럼 다른 일이 또 있어요?”

아셔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다프네를 바라보았다.

저 뻔뻔한 여자 좀 보게! 제 이야기는 쏙 빼놓고, 아셔의 사정만을 캐묻다니!

그렇게 귀엽게 바라보고 있으면 아셔가 멍청하게 나불나불 이야기하리라고 생각한 것이 틀림없었다.

“흥, 제가 소중한 형님과의 일을 당신에게 말할 이유는 없습니다.”

“형님이 계셨군요.”

“…….”

아셔는 입술에 힘을 꾹 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각오를 다지면서.

“아셔를 고민시킬 정도면 왠지 무서운 분일 것 같아요.”

“아닙니다! 정말로 다정하시다고요! 세계 제일의 형님이라고요! 절 여기에 있게 하신…… 윽!”

그는 조금 전의 결심도 잊은 채,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렇다면 정말 소중한 분이군요.”

“…….”

“제게 사무엘이 그러하듯이…….”

순간 아셔는 다프네의 표정에서 깊은 쓸쓸함을 느꼈다.

단순히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는 것 이상의 어떤 감정이 엿보이는 것 같아서, 그는 다프네가 품어 온 고민이 적어도 사무엘에 관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뭐…… 어쩌면 당신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는 다시 자전거 핸들을 쥐고서 페달에 힘을 실었다.

“그냥, 좀 그리워진 것뿐입니다.”

“……아셔.”

“바쁜 분께 만남을 청하는 것은 폐가 될 테니 그런 말은 죽어도 못하지만요.”

조금씩 움직이던 자전거와 수레는 어느새 꽤 속도가 붙어 있었다.

곧 뒤에서 잔뜩 힘을 준 다프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께선 절대 폐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알죠! 저도 동생이 있으니까, 사랑하는 동생이 보고 싶다고 말해 준다면 언제라도……!”

자신 있게 외치던 이야기는 거기에서 멈추어졌다. 어쩌면 그를 위로하려는 과정에서 그녀 자신의 상처를 건드리게 된 걸지도.

뭔가 적당한 말을 고르던 아셔는 포기하고는 양쪽 핸들을 꽉 붙잡았다.

“이제 오르막이니까 꽉 잡아요.”

곧 뒤에서 ‘고마워요.’라는 말이 어렴풋이 돌아왔지만, 아셔는 딱히 이에 대답하지는 않았다.

고마움을 알면 된 거니까.

* * *

아셔는 우체국의 일손 부족 문제를 공작에게 전달했다.

우편 서비스가 지연되면 영지 사람들의 불안이 증대되기 때문에, 리암은 즉각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것도 아주 현명한 방법으로.

“계약서에는 제가 우편국에서 일하게 된다는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잖아요.”

“닥치고 분류 업무에 집중하세요, 다프네 서튼.”

바로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아셔와 다프네를 우편국으로 파견 보내는 방식이었다.

다프네는 각 지역에서 클롯모어로 도착한 우편물을 지역에 따라서 나누는 업무를 맡았다.

“공작님의 명령이라면, 우리는 우편이 아니라 가축의 배설물이라도 치워야 합니다.”

그런 일을 시키면 단호하게 저항해야지.

다프네는 그렇게 생각하며 모아 놓은 편지 봉투를 가느다란 끈으로 묶었다.

이렇게 분류를 마친 편지는 배달부에게 전해지게 된다.

그들은 마차를 타고 이웃 마을이나 성벽으로 가거나, 자전거로 이 주변의 건물을 돌며 편지의 주인을 찾아 준다.

사실 다프네가 이 일을 처음 맡을 때만 해도, 우편 분류 업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편지는 얇고 가벼운 것이니까.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우편국은 소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다프네가 동생에게 약재 상자를 주기적으로 보내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소중한 상대에게 선물과 함께 마음을 전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깊고 무거울수록 상자도 점점 무거웠다.

“……허리 아파.”

덕분에 우편국 파견 업무를 시작한 지 사흘 만에 다프네는 완전히 지쳐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이렇게 일이 힘드니, 좋은 점이 한 가지는 있었다.

수도에서 애슐리와 마주쳤던 일을 쓸데없이 복기하지 않게 된 것 말이다.

이전 생과 비슷한 형태로 그와 만났던 사건으로 인해 다프네는 줄곧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어쩌면…… 운명을 바꾸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이런 고민에 매달려 봤자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머릿속이 복잡할 뿐이지.

애슐리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그 불길한 남자와 쓸데없이 엮이지 않는다.

일부러 애슐리를 피하기 위한 수단 따위를 마련해 봤자, 오히려 그의 눈길을 끌 뿐이다.

우편국의 단순한 반복 업무는 이런 생각을 더욱 단단하게 해 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다프네는 노동으로 인해 아픈 허리를 두드리며 리암의 방을 노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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