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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51)화 (51/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51화

“설마요.”

서류 작성을 마친 다프네는 직원을 바라보면서 밝은 미소를 지었다.

“만약 사무엘이 저한테 말도 없이 여기에 찾아온다면, 거꾸로 매달아 놓고 엉덩이를 백 대쯤 때려 줄 거예요.”

“히익!”

순간 상자 뒤에서 숨죽인 비명이 새어 나왔다.

안에 든 약병과 약초들이 서로 부딪쳐 덜그럭거리는 소리도 함께였다.

“음?”

다프네가 의아해하며 빙글 뒤를 돌아보았다.

* * *

사무엘은 사실 자신이 다 자랐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누나를 지켜 줄 수 있을 만큼은.

그 증거로 그는 최연소 치안대원이라는 명예를 누렸다. 그곳에서 사무엘은 몸과 정신을 단련했고, 재능도 인정받고 있었다.

게다가 매달 봉급을 받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제 능력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훌륭한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라고 했다.

사무엘은 적은 금액이나마 꼬박꼬박 모아 둔 통장을 끌어안으며 항상 다프네를 생각했다.

‘누나에게 보여 주고 싶다.’

대단한 돈은 아니지만, 상냥한 누이는 사무엘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줄 것이 틀림없었다. 아주 예쁜 미소와 함께.

이쯤 되니 사무엘은 빨리 다프네를 만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누나와 어떻게 만나야 하지?’

편지를 보내서 마을에서 만나자고 할까?

정중한 방법에 마음이 끌린 것도 잠시, 사무엘은 고개를 저었다.

이왕이면 누나를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우연의 힘에 기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여 사무엘은 선배들에게 부탁하여 마을 순찰 업무를 거의 도맡다시피 했다.

왼쪽 가슴 주머니 깊은 곳에 통장을 소중히 품고서.

‘누나에게 통장을 줄 거야…….’

사무엘은 매일 가슴속 통장을 쓰다듬으며 다프네와 우연히 마주치게 될 날을 기다렸다.

다행히 그가 바라던 순간은 금방 찾아왔다.

우편국으로 들어가는 다프네를 발견한 것이다.

그 뒤로 거대한 상자를 들지 못하여 낑낑거리는 남자가 보였다.

‘아무리 누나를 만나고 싶어도, 치안대원으로서 곤란한 사람을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사무엘은 씩 미소 짓고는 그에게 다가가 얼른 상자를 들어 올렸다.

훈련할 때는 통나무를 지고 다녔던 터라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자 주인은 우편국 안에 있는 잘생긴 아가씨인데…….”

남자가 건넨 이야기에 사무엘은 심장이 쿵 뛰었다.

잘생긴 아가씨라니.

사무엘이 아는 한 이 왕국에서 그런 찬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그의 누이밖에 없었다.

‘누나가 가져온 상자구나.’

사무엘은 이 우연이 참 감사했다.

누나를 도우며 자연스럽게 마주칠 수 있다니, 그가 생각했던 어떤 재회보다도 훨씬 감동적이었다.

그는 걸음을 서둘러 우편국 안으로 향했다.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아서, 접수대 앞의 누나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누나.’

사무엘은 소리 내어 부르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그녀의 뒤에 조용히 섰다.

이후에 얼굴을 마주할 때를 생각하자 벌써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나가 어떻게 반응할까?’

사무엘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날 꼭 안아 줄 거야.’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면서, 정말로 다정하게…….

황홀한 생각에 빠져 있던 사무엘의 귓가에 마침 우편국 직원의 질문이 들려왔다.

“동생이 한 번쯤은 누나를 만나겠다며 깜짝 방문이라도 하는 거 아녜요?”

사무엘은 너무나도 놀라서 누나의 소중한 상자를 떨어뜨릴 뻔했다.

‘어, 어떻게 알았지……?!’

그는 애써 침착을 되찾고서,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다프네의 답을 기다렸다.

‘누나는 날 만나면 기쁠 거라고 말해 주겠지?’

이제 그는 기대감에 호흡까지 막혀 올 지경이었다.

“설마요.”

드디어 누나가 입을 열었다.

“만약 사무엘이 저한테 말도 없이 여기에 찾아온다면, 거꾸로 매달아 놓고 엉덩이를 백 대쯤 때려 줄 거예요.”

“……히익!”

사무엘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다프네는 사무엘을 혼내는 일을 두고 절대로 농담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거꾸로 매달아 놓고 때린다는 건 절대로 비유의 말이 아닐 것이다.

과거 다프네에게 된통 혼나던 장면이 그의 머릿속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엄격한 누나가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팡팡 두드리면 사무엘은 누나의 연약한 손바닥이 아플 것 같아서 늘 엉엉 울어 버리고 말았다.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건 잘할 수 있어. 하지만 내 단단한 엉덩이를 백 대나 때리면, 누나의 손바닥은…….’

터져 나갈 듯 부어 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끔찍한 장면이 떠오른 사무엘은 쓸데없이 엉덩이 근육을 발달시킨 과거의 자신을 냅다 후려갈기고 싶었다.

누나의 손바닥을 위해서라도 말랑말랑한 지방으로 가득 채웠어야 했는데!

그가 두려움에 달달 떨고 있을 때.

상자 너머에서 다프네가 뒤를 돌아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어, 어떻게 하지?’

그는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고, 마침 다프네와 함께 왔던 안경 쓴 남성과 시선이 마주쳤다.

누나와 온 남자라는 점에서 이미 그가 싫었으나, 지금 도움을 청할 곳은 달리 없었다.

도와주세요.

사무엘은 그에게 강한 눈빛을 쏘아 보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어째 헛기침을 하더니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상자를 대신 들어 주셨군요, 고마워요.”

누나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사무엘은 자꾸만 엉덩이가 움찔거리고, 두 다리가 떨려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이제 꼼짝없이 들킬 거야, 누나의 손바닥이 위험해……!’

그리 생각하며 두 눈을 질끈 감을 때.

두 손에 가득했던 상자의 무게가 완전히 사라졌다.

“……?”

조금 놀라며 다시 앞을 바라보니, 어느새 다프네가 상자를 직접 들고 있었다.

그 커다란 것은 다프네의 키를 훌쩍 넘을 정도로 거대했으니, 자연스레 다프네는 사무엘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로 다시 우편국 직원 쪽으로 몸을 돌렸다.

“무거워 보이는데 잘도 드네요.”

“아주 무겁지는 않아요. 상자만 더 버텨 준다면 뭔가 더 넣고 싶었을 정도니까요.”

그녀는 내려놓은 상자를 손으로 살살 문지르며 홀로 중얼거렸다.

“무사히 잘 도착했으면 좋겠어요…… 사무엘에게.”

“…….”

사무엘은 이제 서둘러서 이 자리에서 비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째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 곧 겨울이 되니까 동생이 더 걱정돼요.”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한번 만나고 오면 좋을 텐데.”

“그러…… 게요.”

누나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묘한 쓸쓸함이 생각보다 너무나도 깊은 탓일까.

“정말로 보고 싶기는 해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동생이니까요.”

사무엘은 자신도 모르게 누이를 향해 한쪽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닿기 직전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멈추어야 했다.

이토록 사무엘을 좋아하는 다프네가 ‘만나지 않는다.’라고 결정한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테니까.

‘나는 누나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어.’

사실 오린샤이어의 목장에서 뛰쳐나왔을 때부터 이미 누나의 말을 어긴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적어도 들키지만 않으면, 누나의 걱정을 덜어 줄 수 있을 거야.’

그는 서둘러 우편국을 빠져나갔다.

“어?”

뒤를 돌아본 다프네는 의아해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자를 들어 준 치안대 청년이 보이지 않았다.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는데.

“어디 가셨지……?”

“곧바로 가시던데요.”

아셔가 다가와 건넨 답에 다프네는 미간을 찌푸렸다.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했는데 어쩌죠?”

“뭐, 치안대에 감사하는 말을 전해 두면 되죠. 날짜와 인상착의를 적어서 보내면 그쪽에서 금방 알아낼 겁니다. 순찰 표와 대조하면 금방이니까요.”

“아하.”

다프네는 두 손을 모아 쥐고서, 아셔를 비스듬히 올려다보았다.

“역시 유능하네요.”

“하, 뭐 당연한 소리를…….”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셔는 친절하게도 우편국 문을 열어 주었다.

“고마워요. 바로 돌아갈 거죠?”

“그래야죠, 공작님께 우편국의 문제를 말씀드려야 하니까요.”

“그럼 먼저 가세요.”

다프네의 권유에 그는 자전거의 손잡이를 쥔 채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안 갈 겁니까?”

“갈 거예요, 갈 건데…….”

다프네는 어색하게 웃으며 수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제가 수레를 끌고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여기에 올 때는 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수레에 탔지만, 돌아갈 때까지 신세를 질 수는 없었다.

더구나 마을에서 저택으로 돌아갈 때는 오르막을 지나야 했다. 자전거에 수레까지 달아서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됩니까?”

“네?”

“언제부터 그렇게 상식적인 행동을 하게 된 겁니까. 분명히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망나니가 틀림없었는데.”

“전 망나니였던 적 없습니다.”

“망나니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얼른 타기나 해요.”

아셔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절 태우고 가시겠다고요?”

“하, 내가 못할 것 같습니까? 제가 꽤 강인하다는 사실은 예전에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만?”

다프네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언제인지 떠올려 보았다. 아무래도 지난겨울에 다프네를 자전거에 싣고 오르막을 오른 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아셔가 운동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했어요! 했다고요!”

아셔가 그렇게까지 주장하기 때문에, 다프네는 일단 수레에 올라탔다.

“놀랄 준비나 하라고요. 모터 엔진보다 빠를 테니까요.”

한껏 잘난 척을 하는 말과 달리, 그의 자전거는 휘청휘청 앞으로 나아갔다.

다프네는 한숨을 푹 내쉬며, 수레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자전거와 수레는 중심가와 분수대를 차례로 지나갔다.

아셔는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과 친절하게 인사를 나누었고, 다프네는 그와 함께 고개만 꾸벅였다.

“아셔는 모르는 사람이 없네요.”

“공작님을 모시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될 작정이었으니까요.”

잘난 척하던 아셔는 흘긋 뒤를 돌아보았다. 마침 자전거가 포장된 길에서 벗어날 때 즈음이었다.

“안 불편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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