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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42)화 (42/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42화

“그래.”

리암은 놀라서 굳어 버린 피오나의 앞을 막아섰다.

“우리 의장께서도 열세 살이시고. 마침 두 사람은 동갑이지.”

“예, 거기에 커빙턴 가문은 대대로 아카데미에 자녀들을 보낼 정도로 우수하니, 제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까?”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어.”

리암은 잔뜩 열이 오른 앨러스테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소년은 잠시 툴툴거리기는 했지만, 공작의 손길이 싫지는 않았는지 뺨을 붉힌 채로 시선만 돌렸다.

“내가 사인한다고 해서 그 서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을 터.”

“…….”

“어차피 마지막에 사인해야 하는 건 앨러스테어, 그대의 몫이 아니었나?”

리암은 이제야 그에게서 손을 떨어뜨렸다.

“나는 그대가 슬로언답게 처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죄송합니다.”

앨러스테어는 이제야 조금 이성이 돌아왔는지, 리암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여 사과를 건넸다.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공작님.”

“물론 용서할 거야.”

자세를 바로 한 앨러스테어는 일단 바닥에 찢어 버린 서류를 하나씩 주워들었다.

그 후에는 리암의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피오나에게 다가갔다.

“피오나 커빙턴 양.”

“…….”

소녀는 여전히 겁을 먹었는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공작에게 달려와 당당하게 사인을 요구할 때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도 없었다.

“거친 행동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합니다.”

앨러스테어는 그녀에게도 허리를 깊이 숙였다.

“당신은 훌륭한 분이지만, 청혼을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

소녀는 제 손끝만 조물거릴 뿐 이 명확한 거절에 아무 답도 하지 못했다.

그것을 수긍의 뜻으로 이해했는지, 앨러스테어는 곧 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

다프네는 소녀가 받았을 상처가 깊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이렇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거절을 당하다니.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하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다프네뿐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집사인 던컨도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공작님.”

복도 너머로 앨러스테어의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피오나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다프네는 부디 리암이 어린 소녀의 마음을 잘 배려해 주기를 바랐다. 분명히 울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있을 테니까.

“사인해 주세요.”

하지만 소녀가 덤덤하게 꺼낸 말은 어째 조금 전과 완전히 똑같았다.

소녀는 품에서 새로운 서류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도 그건 혼인 신고서였다. 그것도 리디아 슬로언의 사인이 분명하게 남아 있는…….

리암이 아이와 서류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자, 피오나 커빙턴은 두 눈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후후후,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서 서류는 넉넉하게 준비해 왔어요. 어쨌든 앨러스테어는 부끄럼쟁이니까, 괜히 찢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

“전 반드시 엘러스테어와 결혼하고 말겠어요. 그러니까 공작님.”

피오나 커빙턴은 방긋 미소 지으며 재차 그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어서 사인해 주세요. 아, 빨리요.”

다프네는 이제 슬슬 앨러스테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괜찮은 건가.

* * *

조금 갑작스럽지만, 피오나 커빙턴은 공작의 손님으로서 머물게 되었다.

리암은 일단 커빙턴 씨에게 따님은 잘 지내고 있으니, 굳이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편지를 보내어 그를 안심시켰다.

피오나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앨러스테어도 어쩔 수 없이 공작저에 머물렀다.

“뻔뻔한 여자애야.”

앨러스테어는 리암의 셔츠에 단추를 다는 다프네의 옆에서 연신 불만을 토로했다.

조금 빨개진 얼굴을 하고서.

“내 동의도 없이 결혼 서류부터 준비해 와? 어이가 없어서.”

“혹시 말인데요.”

다프네는 다시 작은 단춧구멍에 바늘을 끼워 넣으며 질문을 건넸다.

“예전에 리디아 님께서 권하셨다는 여성 친구분 중에 피오나 커빙턴 님이 계셨던 건가요?”

언젠가 그는 다프네에게 찾아와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나, 난…… 여자가 싫어. 불편하다고! 절대로 어머니가 권하는 여자아이들과 친구가 되지 않을 테다.」

“그건 아니야.”

그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떻게 알게 된 사이예요?”

“뭐…….”

그는 잠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말끝을 흐렸다. 오랜 기억을 헤집는 소년의 눈가에 어렴풋한 미소가 맺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사라지고 말았지만.

“몰라, 기억 안 나. 어쨌든 지긋지긋한 여자애야. 누가 그런 왈가닥이랑 겨…… 결혼할 줄 알고?”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하는 앨러스테어의 얼굴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붉어져 있었다.

* * *

피오나 커빙턴은 무척 얌전하게 지냈다.

때마다 앨러스테어의 방으로 찾아가는 일을 제외하면, 그녀에게 주어진 손님방을 벗어나지도 않았다.

게다가 앨러스테어는 그녀를 만나 주지도 않아서, 사실상 피오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거의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생활이 이틀가량 반복되자 다프네는 슬슬 어린 피오나가 걱정되었다.

“커빙턴 아가씨가 바깥 활동을 전혀 하지 않으시는데, 괜찮은 걸까요, 공작님.”

리암의 손톱 끝을 다듬는 시간, 다프네는 조심스레 걱정을 내비쳤다.

“물론 괜찮지 않지. 커빙턴에게 안심하고 딸을 맡기라고 했는데,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내가 무척 곤란해질 거야.”

“공작님께서 두 손님분과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겁니다. 물론 바깥에서 말이죠.”

“음……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아, 바쁘십니까?”

“조금. 다들 내게 요구하는 게 많으니까.”

“어서 그분들 요구를 들어주세요.”

다프네는 놀라서 손톱을 다듬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저택으로 쳐들어올 테고, 그럼 제 업무가 늘어난단 말입니다.”

아무래도 슬로언 가문을 잘 아는 사람들은 서튼을 공작의 대변자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그와 문제가 생기면, 득달같이 다프네에게 다가와 속내를 토로하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암요, 암요. 다 이해합니다.’라며 그들을 달래 주어야 했다.

“걱정하지 마, 곧 해결할 거니까.”

“답장도 빠르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 제게 답장을 재촉하는 편지가 오기 전에요!”

다프네는 다시 그의 손톱을 맹렬하게 벅벅 갈아냈다.

“음, 알았어.”

“대답만 하지 마시고요!”

“알았다니까. 그만 귀엽게 굴어.”

다프네는 그에게 돈은 받고 싶어도, 귀여움을 받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당장 침묵을 지켰다.

고요 속에서 손톱 손질이 끝나고 밖으로 나와 보니, 피오나가 머무는 손님방 근처에 아셔가 기웃거리는 것이 보였다.

다프네는 바로 그쪽으로 가 보았다.

“무슨 일 있어요?”

“아, 서튼 양.”

아셔는 음식이 든 나무 쟁반을 들고 있었는데, 어째 무척 곤란해하는 것 같았다.

“커빙턴 아가씨께서 식사하지 않으신다며, 사용인들이 염려하기에 저도 와 본 겁니다.”

“식사를 안 해요?”

“네, 늘 음식을 그대로 돌려보냈다며 주방장이 걱정하더군요. 아가씨의 입맛에 맞추지 못한 건 아닌가 하고.”

그는 한숨을 쉬면서 쟁반을 내려다보았다.

음식은 조금도 건드리지 않은 채로 차갑게 식어 있었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드시지 않은 거예요?”

“우유 한 모금 정도는 드셨습니다.”

“흐음.”

다프네는 팔짱을 낀 채로 잠시 고민에 빠졌다. 성장기 소녀가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정말로 큰 문제다.

나중에는 성장하고 싶어도 낡아진 뼈와 근육이 이를 허락하지 않을 테니,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곤란했다.

“이렇게 된 이상, 커빙턴 가문에 연락해서 아가씨가 즐겨 드시는 음식의 요리법을 알려 달라고 하면 어때요?”

“훌륭한 생각입니다. 서둘러 심부름꾼을 보내죠.”

바로 그때, 복도 너머에서 앨러스테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아셔와 다프네는 동시에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앨러스테어는 무척 화가 난 얼굴로 이쪽으로 쿵쿵 다가오고 있었다.

“앨러스테어 님!”

아셔는 그새 간신배 버튼이 눌렸는지, 몸을 배배 꼬며 피오나의 식사 거부 사태를 전부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앨러스테어의 얼굴이 더욱 사납게 구겨졌다.

“이 성가신 녀석 같으니.”

그는 곧바로 피오나의 방을 거칠게 두드렸다.

“이런 쓸데없는 일로 감히 공작님의 사무관을 부려 먹어?”

“그리하셔도 소용없었습니다, 앨러스테어 님. 오늘 오전에도 제가 문 앞에서 한 시간이나 읍소했지만…….”

달칵.

아셔의 허비한 오전 시간에게는 무척 미안한 일이나, 앨러스테어가 요구하자 곧바로 문이 열렸다. 비록 살짝 문틈을 벌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좁은 틈 사이로 얼굴만 내민 피오나는 앨러스테어를 삐죽 노려보며 지지 않고 소리쳤다.

“약혼녀한테 화내면 못써, 앨러스테어!”

“야…… 약혼녀라니! 너 미, 미쳤어……?! 어……?”

그녀는 단 한마디로 앨러스테어를 완벽하게 제압한 후, 다프네와 아셔를 돌아보았다.

“걱정을 끼쳤다면 미안해요. 하지만 식사는 필요 없어요.”

“아가씨.”

다프네가 한 걸음 다가서자, 피오나는 얼른 뒷걸음질을 쳤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문틈이 더욱 비좁아졌다.

“괘, 괜찮다고요! 배 안 고파요.”

“웃기지 마!”

이에 반박한 것은 앨러스테어였다. 비록 여전히 빨개진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바다 괴물처럼 먹어치우는 피오나 커빙턴은 어디 갔어?”

순간 피오나가 멈칫거렸다.

결혼을 바랄 정도로 좋아하는 남자애에게 ‘바다 괴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저, 저기…….”

다프네는 얼른 앨러스테어를 만류하려고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피오나에게 사과하도록 권유할 생각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고개를 획 들어 올린 피오나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앨러스테어, 지금 나를 약혼녀로 인정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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