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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36)화 (36/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36화

자신의 행동에 그릇된 것은 없다고 철석같이 믿는 뻔뻔한 남자니까!

그렇게 될 경우, 캐슬린의 상처가 더 깊어질 것은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왜 그래? 꼭 바람피우다가 걸린 사람처럼.”

리암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가볍게 건넨 질문에 다프네는 기가 막혀서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음, 내가 뭘 잘못했나? 그대의 눈빛이 굉장해졌는데.”

당연히 잘못했지!

다프네가 공범이라는 점에서 그를 비난하기만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생각해 보면, 리암은 약혼녀의 오해를 살 행동을 쉽게 하는 편이기도 했다.

툭하면 다프네의 얼굴에 손을 대지 않나, 지난번에 기차역에서 그녀가 쓰러졌을 때는 부탁하지도 않은 그의 무릎을 빌려주기도 했다.

그는 별생각 없이 그리 행동하겠지만, 약혼녀로서는 속이 타들어 갈 일이었다.

다프네는 유부녀(지금은 아니지만)를 대표해 리암을 질책하기로 했다.

“공작님은 난봉꾼입니다.”

“그런 말은 처음 들어. 신선한데? 내가 난봉꾼이라니.”

“다들 신분에 겁을 먹고 말하지 못하는 것뿐, 내심 그렇게 여기고 있을 겁니다. 제 구두를 전부 걸죠. 그리고 이 기회에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다프네는 매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부디 조신하게 행동해 주시길.”

“그대가 조신한 남자를 선호한다는 뜻인가? 곤란한데, 그건 나잖아?”

그는 살짝 뽐내는 듯한 얼굴로 제 가슴께를 톡톡 두드렸다.

“…….”

“왕국 최고의 조신한 남자.”

“아무에게나 유혹하는 말을 흩뿌리면서 말입니까?”

“아무에게도 한 적 없어. 그리고 유혹을 흩뿌리고 다니는 것은 그대지.”

그 같잖은 소리에는 대답할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노동에 지친 다프네는 아침마다 커피를 때려 넣고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비루한 삶에 유혹이라는 비단 같은 글자가 끼어들 여유는 없었다.

설령 그런 쓸모없는 짓을 한다고 해서, 넘어올 멍청이가 있을 리도 없었고.

“아무쪼록.”

다프네는 비교적 차분해진 얼굴로 그를 마주했다.

“제발 한 사람에게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다프네는 주인과 약혼녀 사이에 끼어서 진흙탕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그대의 취향은 알겠네. 그런 걸 내가 알아서 무엇 하나 싶지만.”

“제 취향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입니다!”

“음…… 그런가?”

리암은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리곤, 당당하게 한쪽 손을 내밀었다.

“알았으니, 일단 지금은 나를 방까지 데려다줘.”

“네? 지금 제 이야기를 뭐로 들으신…….”

“명령했잖아.”

“……?”

다프네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잠시 잊고 있었던 ‘명령’을 떠올렸다.

「오늘 밤에는 내 침대에서 자.」

“……시, 싫습니다!”

다프네는 기겁해서 비명을 질렀다. 그야 물론 리암이 이상한 목적으로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애초에 다프네와 그런 일을 바랄 남자는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캐슬린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건 다른 문제 아닌가?

“싫다니?”

“전, 제 방에서…… 아 정말, 조신하게 지낸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다프네의 항의에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되물었다.

“설마 그대는 내게 조신하지 못한 일을 할 건가?”

“진심으로 미치신 건가요?!”

“봐, 문제없지.”

“…….”

다프네는 저 얄미운 남자를 제발 누가 한 대만 때려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암살자가 내 방에 찾아오면 어떻게 하려고?”

“공작님에게는 용맹한 기사단이 있지 않습니까?”

“그 기사단에 용맹한 암살자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건 공작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에게 독이 한번 배달된 이상, 그가 주변을 잔뜩 경계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프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알았는지, 그가 두 손을 모아서 무척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나…… 밤이 무서운데.”

누구보다도 밤을 좋아할 것 같은 남자가 그렇게 말하는 게 더 무서웠지만, 다프네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그의 ‘명령’을 거절할 권한 따위는 그녀에게 없었다.

“그, 그럼 전 침대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겠습니다. 진짜 앉아만 있을 겁니다!”

“물론 나도 그대가 자장가를 불러 주고 동화책을 읽어 주는 다정함을 발휘해 줄 거라는 기대는 안 했어.”

그가 다시 손을 내밀었을 때, 다프네는 그를 거부할 수 없었다.

마음은 불편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전에 그가 말한 주장에 반박할 근거가 생겼다는 사실이 좋았다.

“이거 보세요, 이거.”

다프네는 꼭 붙잡은 그들의 손을 덜렁덜렁 흔들었다.

“보시다시피 공작님은 조신하지 않습니다. 뭐? 손을 안 잡아요? 하…….”

망측한 본성이 곧바로 들통 난 것이 민망했기 때문인지, 리암은 쓸데없이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미소만 짓고 있었다.

다프네는 정말 그를 때려 주고 싶었다.

* * *

다프네가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침대 위에 홀로 누워 있었다.

‘…….’

이럴 줄 알았다. 분명 다프네가 앉아서 졸고 있는 틈을 타서 침대로 옮겨 두었겠지. 리암 슬로언은 조신하긴커녕 음흉하기 짝이 없는 남자니까.

다프네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어라?”

그리고 돌아본 곁에…….

탄탄한 무 같은 근육이 보이지 않았다.

‘……어라?’

다프네는 허둥지둥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으로 달려갔다. 도톰한 커튼을 걷어 내자, 눈부시게 새하얀 햇살이 달려들었다.

“윽.”

다프네는 잠시 고개를 돌렸지만, 얼른 두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창문 너머를 확인했다.

현관 앞에는 말을 탄 신사들이 사냥을 떠나기 전에 서로의 행운을 빌어 주고 있었다.

그 사이로 풋맨들이 오가며 그들의 기분을 돋울 음료를 하나씩 권하고 있었고, 몸종들은 마지막으로 총을 손질하고 있었다.

벌써 사냥에 나갈 준비를 마친 것을 보니, 다프네가 무척 오랫동안 늦잠을 잔 모양이다.

‘어떻게 하지.’

그러다 문득 붉은 재킷을 입은 리암과 시선이 마주쳤다.

다프네가 챙겨 주지도 않았는데, 전날 미리 준비해 둔 옷을 잘 찾아 입은 모양이다.

“왜 나를 깨우지 않으셨지?”

혼자 그리 중얼거릴 때, 그가 손가락 끝으로 네모난 모양을 그리며 무언가 의사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다프네가 이해하지 못하여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는 한쪽 눈을 찡긋거리고 입술을 내밀거나 손가락 하트까지 만들어 가며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용건이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아침에 커피도 마시기 전에 상관의 요망한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다프네는 기분이 몹시 불쾌했다.

그녀는 제 연약한 안구의 평화를 위해 일단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리암의 용건도 금방 알게 되었다. 두 송이의 분홍 장미를 장식해 둔 탁자 옆에 종이로 적어서 남겨 두었으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 방에서 절대로 나가지 마, 서튼.]

서튼이라는 글자를 힘주어 쓴 데다가 밑줄까지 그어 둔 것을 보니 이것을 ‘절대적인 명령’이라 강조하고 싶은 모양이다.

‘오늘은 캐슬린 아가씨를 찾아가려고 했는데.’

어제의 일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다프네가 아파서 쓰러지는 것을 그가 부축해 주었다고 변명할 생각이었다.

‘아니, 변명이 아니지.’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다프네가 리암을 애슐리라고 오해해서 숨도 못 쉴 만큼 긴장하고 말았으니까.

‘그러고 보면.’

형제라서인지 리암과 애슐리는 은근히 닮은 구석이 있었다. 체형이라든가, 보라색 눈동자도 그렇고 또…….

‘아니야.’

다프네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의 닮은 점을 찾기 시작하면 리암을 마주할 때마다 힘들어질 것이 틀림없었다.

그 끔찍한 남자를 새로운 일상에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애슐리는 무척 다정하게 다가와 다프네의 마음을 간단하게 빼앗아 갔다. 그리고…….

「내 명령을 들어야지. 응?」

그는 다프네를 완벽히 지배하길 바랐다.

「저, 전…… 다프네 ‘슬로언’이에요.」

그녀가 용기를 내어 자신이 그의 ‘부인’임을 내세웠을 때는, 그의 부드러운 표정이 금방 일그러지곤 했다.

「내 멍청한 서튼.」

「…….」

「설마, 정말로 내가 네게 마음이라도 있어서 혼인을 청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왜 결혼을 했던 걸까?

명령을 들어줄 사람을 바란 거라면, 부유한 마법사의 신분으로 얼마든지 사람을 살 수 있었을 텐데.

다프네는 그의 억압에 항의해 맞서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의 몇 번뿐.

마법까지 활용한 폭력과 잔혹한 협박은 결국 그녀를 굴복시켰다.

「똑똑하게 행동해야지, 그 여자처럼 실패하면…… 내가 곤란해지잖아.」

「그…… 여자요?」

「내 약혼녀.」

그리 말할 때, 애슐리는 다프네의 귓가로 입술을 기울였다. 꼭 다정한 고백이라도 전하는 듯 상냥한 미소를 지은 채였다.

「그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옅은 웃음이 섞인 부드러운 목소리였으나 어딘가 섬뜩하여 온 몸에 소름이 돋아왔다.

다프네는 누군지도 모르는 그 아가씨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무서워하지 마. 넌 똑똑하게 구는 법을 알고 있으니 그 여자처럼 되지는 않을 테지.」

「…….」

「정말로 네게는 기대가 커, 다프네.」

다시 고개를 든 그가 가까운 곳에서 그녀를 응시할 때, 다프네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여자…… 가 누군데요?」

왜 그런 질문을 건넨 건지는 모르겠다.

그런 상황에서도 애슐리에게 어떤 애정이 남아서 질투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의 표정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아무 말이나 튀어나온 건지…….

어쨌든, 그가 이런 질문에 답을 해 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캐슬린 힐링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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