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32화
다프네는 리암이 입을 옷과 오늘 발견한 시계 상자를 든 채로, 그의 방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다프네는 공작님을 좋아해요?」
캐슬린 힐링엄이 했던 충격적인 질문이 새삼 떠오른 것이다.
‘아무래도 너무 싫은 질문을 들으면 도무지 떨칠 수 없는 모양이야.’
왠지 얼굴에 열이 올라 빨개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다프네는 이를 무시라고 얼른 리암의 방으로 들어갔다.
“조, 좋은 아침입니다, 공작님.”
어째 말을 더듬고 말았지만, 다프네는 이를 신경 쓰지 않는 척 리암의 앞으로 다가가 시계 상자를 내밀었다.
그러자 리암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혹시 자신이 이상해 보이기라도 한 걸까. 괜히 걱정이 들어, 그녀는 슬그머니 그의 시선을 피하여 고개를 돌렸다.
“아…… 고마워.”
그는 씩 웃으며 시계를 받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매력적인 시계네.”
가짜 보석이 달렸는데도, 그렇게 후한 평가를 하는 것은 역시 좋아하는 사람에게 받은 선물이기 때문일까?
“예, 제 눈에도 그렇게 보여서 가져왔습니다.”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여 그의 의견에 찬성해 주었다. 선물이라는 것은 원래 가격과 상관없이 마음으로 평가해야 하므로.
“생각보다 꽤 기분이 좋은걸, 선물이라니.”
그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시계를 품속에 밀어 넣었다.
“답례는 뭐가 좋지?”
“……예?”
“시계의 답례 말이야. 아무리 나라고 해도 여성이 좋아하는 물건에 대해서는 조예가 부족하니까 말이야.”
“아.”
다프네는 어렴풋이 생각했던 가정에 확신이 생겼다.
‘정말로 힐링엄 양이 주신 거구나.’
부족한 형편이나마 마음을 표현할 선물을 고심해서 고른 모양이다. 리암은 신사이니 마땅히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었을 테고.
‘무엇이 좋을까.’
다프네는 리암에게 커프스를 달아 주다가 문득 힐링엄의 새하얀 손가락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끼우지 않은, 보드랍고 예쁜 손 말이다.
“반지가 좋겠습니다.”
“음?”
“이런 일은 확실한 게 최고니까요.”
“반지라면 어떤 걸…….”
리암이 구체적인 사항까지 물어오자, 다프네는 왠지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주인의 물음에 토라진 채로 대답할 수는 없는 법.
다프네는 리암의 앞으로 한 발짝 크게 다가섰다.
갑작스레 간격을 좁힌 것에 놀랐는지, 순간 그가 크게 호흡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작님.”
다프네는 제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최대한 차분한 투로 이야기를 건넸다.
“어…… 응.”
그가 묘하게 긴장하여 답할 때, 다프네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반지는 보석이 크면 클수록 좋습니다. 부디 아낌없는 소비를 부탁드립니다.”
“…….”
“어쨌든 공작님은 부자이시니까요.”
이렇게 기껏 정답을 알려주었는데도, 리암의 표정은 어째 떨떠름하기만 했다.
“아니 난.”
리암이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던 찰나. 때마침 아셔 아셔가 오전 보고를 위해 찾아왔다.
다프네는 그가 명령하려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조금 더 대기했지만, 리암은 달리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고, 그의 방을 나섰다.
* * *
다프네가 물러가자, 리암은 멍한 얼굴로 차가운 물을 찾아 마셨다.
뜨거워진 몸이 다소 식기를 바라며 그리한 것이었지만, 사실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무슨 일이지?’
그는 갑자기 다프네가 저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프네 서튼은 충실한 수행원이었다.
얼마나 충실한지 그가 반쯤 벗은 몸으로 잠에서 깨어날 때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척척 주변을 정리해 줄 정도였다.
그녀에게 그의 ‘벗은 몸’이란 그저 ‘옷을 입히는 업무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전에는…….’
갑자기 시계를 선물로 건네면서, 그를 유혹하듯 한껏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나.
손목 근처로 그녀의 손길이 부드럽게 닿을 때, 그는 엄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무척 애를 써야 했다.
아니, 사실은 생각해 버리고 말았다.
한껏 가까워진 다프네의 손을 붙잡아 벌어진 손가락 사이사이로 모두 입술을 기울인다든가 하는.
그야 물론…… 다프네를 사용인 이외의 대상으로 보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런 거다. 일시적인 충동이나 널뛰는 감각의 착각.
마침 아셔가 나타나 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비신사적인 몹쓸 충동을 제어하지 못했으리라.
그는 아셔의 존재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왜 저를 노려보십니까, 공작님.”
“내가?”
“저를 원망하는 눈으로 보고 계십니다.”
“그대에게 내가 큰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는 중이었어. 쓸데없이 일찍 찾아와 설레는 시간을 방해받았다고 여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네.”
“…….”
“……그보다.”
리암은 헛기침하고는 괜히 아셔의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물어볼 것이 있는데.”
“보몬트 경 말씀이시죠? 힐링엄 영지에서 정보 수집을 마치고 출발했다고 합니다. 내일 사냥 대회 전에는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그건 다행이군. 근데, 그게 아니라.”
“드디어 저 서랍을 열어 보실 생각이시군요? 그렇지 않아도 특수 열쇠를 열 수 있는 업자를 선별해 두었습니다.”
그의 침실에는 전대 공작이 남긴 절대로 열리지 않는 서랍이 하나 있었는데, 리암은 그것에 대해 가능하면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고맙지만, 그 역시 아니야.”
“그럼요?”
리암은 조금 전에 겪은 당황스러운 일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몰라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곧 구닥다리 같은 비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건 내 친구의 친구 이야기인데.”
“공작님은 친구가 없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그 비법은 통하지 않았다. 게다가 묘하게 뼈가 아팠다.
“있어. 이 나라의 왕도 내 친구지.”
비록 개자식이지만. 어쨌든 리암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갑자기 어느 여성이 노골적인 호감을 표하며 선물을 건넸어. 그건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지?”
리암이 잔뜩 긴장하는 것과 달리, 아셔는 무척 심각한 표정이었다. 여드름을 짜느라 손톱자국이 남은 이마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혹시 평소에 지니고 다니라며 준 선물입니까?”
“그런 셈이지. 시계니까.”
“평소에는 호감을 표하는 기색이 없었고요?”
“오히려 싫어하는 편이었지. 질색하며 비명을 지를 정도니까.”
“그런 경우라면 역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따져 본 아셔는 안경을 고쳐 쓰며 명석한 두 눈을 빛냈다.
“답은 하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뭐지? 그…… 답이라는 건.”
그리 물어보면서도, 리암은 이제 스스로 답을 찾아낸 후였다.
늘 무관심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사실 다프네 서튼은 그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기차에서 도와준 일이 계기라고 생각하면 납득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지.
리암은 곤란해졌다.
“그건 살해 계획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아셔가 건넨 답은 그의 아름다운 생각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나를?!”
리암은 자신도 모르게 그리 외치고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아니, 내 친구의 친구를 죽이려는…….”
“둘러대는 이야기는 그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공작님이랑 안 어울립니다.”
리암은 별수 없이 ‘친구’ 핑계는 그만두었다. 그리고 이제는 품에서 시계를 꺼내어 솔직하게 걱정을 내비쳤다.
“이런 귀여운 선물이 살해 계획의 일부일 수는 없어, 아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야…….”
그에게 반지를 사 달라고 조르는 다프네가 귀여웠기 때문이다.
물론 다프네 서튼은 대단한 의미 없이 커다란 보석을 원하는 것뿐이지만.
어쨌든 그런 무해한 미소에 악랄한 계획이 숨어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녀는 서튼이 아닌가.
‘예로부터 서튼이 독을 건넬 정도라면, 슬로언은 차라리 그 독을 먹고 죽는 편이 낫다고 했지.’
그만큼 모든 슬로언은 서튼을 신뢰했다.
리암은 회중시계에 달린 작은 버튼을 꾹 눌렀다.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닫혀 있던 시계가 활짝 열릴 때, 시계에 장치되어 있던 작은 침이 그의 엄지를 날렵하게 파고 들어갔다.
“……?”
리암은 천천히 손을 들어 확인했다.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피부가 뻣뻣해지는 익숙한 느낌에 리암은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아셔를 바라보았다.
“……정말 독이군.”
* * *
다프네는 리암의 생활을 챙기는 한편 틈틈이 제 방으로 돌아가 두 송이 장미를 손질했다.
필요 이상의 잎을 떼고, 따가운 가시는 조심스럽게 떼어 내었다.
‘이제 리본만 달면 되겠다.’
다프네는 서랍을 열어 하얀 레이스를 리본 모양으로 묶었다.
다프네는 완성된 장식을 들고서 복도로 나왔다. 이제 오늘의 사랑스러운 커플에게 이 장미를 전할 시간이었다.
‘힐링엄 아가씨가 좋아하실 거야.’
고상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다프네에게 고맙다고 말해 주겠지.
그런 사랑스러운 분을 안주인으로 모실 수 있다는 건 정말로 큰 행운이었다.
그렇긴 한데…….
한편으로 다프네는 여전히 그녀가 불편했다. 그건 캐슬린이 공작가에 빚을 씌우고 싶어 한다는 오해 때문이 아니었다.
문제는 다프네 자신에게 있었다.
「다프네는 공작님을 좋아해요?」
그날의 질문이 틈만 나면 머릿속에서 울려 대는 통에 괴로워지고 마는 것이다.
왠지 답답한 기분에 다프네는 굳이 소리를 내어 다시 대답했다.
“절대 아니거든요!”
아니, 이제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다프네는 가까운 복도 창문을 열고 정원을 향해 힘차게 외쳤다.
“전 공작님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요! 말라비틀어진 무로밖에 안 보인다고요!”
꽉 막혔던 속이 다 풀리는 기분이었다.
“……역시 그랬군.”
하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서늘한 목소리는 그녀의 숨통을 완전히 조여 오기에 충분했다.
“……헉.”
다프네는 돌아가지 않는 목을 끼익끼익 움직여 보았다. 나란히 선 리암과 아셔가 팔짱을 끼운 채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들으셨습니까, 공작님?”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아셔가 신이 나서 고자질을 하기 시작했다.
“범인이 방금 범행 동기를 자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