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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31)화 (31/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31화

“맙소사.”

다프네는 이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저, 전…… 그런 진흙탕 싸움에는 관심 없습니다.”

게다가 다프네는 주인에게 마음을 준 사용인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한지 잘 알고 있었다. 매일 사용인 홀에서 접한 다양한 소문 덕분이었다.

소문의 주인공들은 ‘주인님도 날 사랑해!’라는 착각에 빠져 살다가, 푼돈의 위자료를 받고 쫓겨나는 끝을 맞이했다고 전해졌다.

다프네는 ‘푼돈의 위자료’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 저택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리암이 사무엘을 불러들일 것이 분명하고, 그러면…… 사무엘이 다시 화염에 휩싸이게 될 테니까.

“아가씨, 전 정말로 사용인으로서 그분을 잘 모시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다프네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혹시, 제 존재가 힐링엄 아가씨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렸다면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아니, 아니에요! 고개 들어요. 불편했던 건 아니었어요. 절대로…….”

아니, 분명 불쾌했을 것이다.

애초에 다프네가 리암의 수행원이 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받은 오해가 바로 ‘남녀 관계’에 대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가십에 가까운 이야기였겠지만, 캐슬린은 약혼녀이니 분명 마음이 쓰였을 터다.

“전 그분께 우정과 충성을 바칠 뿐입니다. 어디까지나 서튼으로서요.”

그녀는 곧 다프네의 두 손을 감싸 쥐었다.

“아…… 내가 몰아붙였다면 미안해요. 분위기가 어색해져서 어쩐담…….”

부드럽게 손등을 쓸어 주는 손길이 너무나도 다정하여 다프네는 잠시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날…… 용서해 줘요. 호기심이 생기면 늘 이렇게 바로 물어보게 된답니다. 제 단점이죠.”

“아뇨, 오히려 저도 아가씨에 대한 호기심이 풀려서 좋았습니다.”

다프네는 씩 미소 지었다.

그녀의 리암에 대한 마음이 꽤 진심인 것 같아서 안심했다.

돈을 노리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무척 곤란했을 테니까.

“제가 강도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셔서 기뻐요.”

“저도 깊은 우정을 말씀드릴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다프네는 편안하게 미소 지었다.

캐슬린 힐링엄이 모두가 말하는 것과는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이제 그녀를 무작정 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다프네가 응접실에서 나오자 마침 리디아 슬로언과 딱 마주쳤다.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던 탓에 다프네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아니나 다를까 리디아의 시선이 따갑도록 날카롭게 느껴졌다.

“다프네 서튼.”

“……네.”

“조금 전에는 공작님의 부름을 전해 주어 고마웠어요.”

비꼬는 말일까?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보아하니 리암이 제법 재치 있는 대처를 해 준 것이 틀림없었다.

역시 멋진 공작님!

만나게 되면 발등에 키스라도 퍼붓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저 천박한 여자를 경계해야 할 겁니다. 돈만 노리는 노상강도나 다름없으니까요.”

“…….”

“빚밖에 없는 주제에 결혼이라니! 하, 저였다면 부끄러워서 혀를 깨물고 죽어 버렸을 겁니다.”

“…….”

“물론 그녀가 그런 명예로움을 이해할 수는 없겠죠. 이래서 졸부들이란…….”

“하지만.”

다프네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공작님께서는 캐슬린 힐링엄 아가씨를 약혼녀로서 존중하고 계십니다.”

리디아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그야……! 공작님께서는 적절하게 쳐 낼 수 있는 시기를 따져 보셔야 하니까요!”

“예, 그럼 저도 그때까지만 그녀를 공작님의 손님으로서 예우하겠습니다.”

“다프네 서튼!”

“아무쪼록 제 주인은 공작님뿐이니까요.”

다프네는 얼른 고개를 꾸벅여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리디아가 두려웠던 탓에 살짝 손가락이 떨리기는 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마음은 편안했다.

정말 그랬다.

* * *

며칠이 흘러 연회의 아침이 되었다.

마침 바람 한 점 불지 않을 만큼 한가롭고 아름다운 여름 날씨였다.

주방에서는 손님들을 깜짝 놀라게 할 멋진 요리를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화덕의 불이 쉼 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하인들은 홀에 있던 테이블과 장식장을 옮겨 넓은 자리를 만들고, 카펫을 깔아 근사한 분위기로 만들었다.

모든 사용인이 리디아 슬로언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이때, 다프네 서튼은 정원에서 꽃을 고르고 있었다.

오늘 저녁, 연회에서 리암의 옷을 장식할 꽃이었다.

“역시 사랑에 빠진 남자는 분홍색 꽃인가?”

다프네는 정원사를 불러 그녀가 고른 꽃을 꺾어 달라고 부탁했다.

“어…… 이것 말입니까?”

“네, 공작님과 힐링엄 아가씨의 옷을 장식하려고요.”

그러자 정원사가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 꽃에는 독이 있어서, 왠지 중요한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도, 독이요?!”

그렇게 위험한 걸, 이렇게 정원에 늘어놓고 키워도 되는 건가?

다프네가 깜짝 놀란 것을 알았는지, 정원사가 얼른 설명해 주었다.

“잘 쓰면 약이 되는 꽃이기도 합니다. 매년 마법사들에게 의뢰하여 정제 마법으로 약을 만들죠. 사냥용 마취제로도 쓸 수 있어서 제 오두막에 늘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어쨌든 말씀하신 대로 다른 꽃을 골라야겠어요.”

다프네는 정원사의 도움을 받아서 다른 분홍색 꽃을 골랐다. 화사한 장미였다.

‘이런 고전적인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아서 고심했던 건데…….’

그래도 활짝 피어난 장미는 분명 고상한 힐링엄 아가씨에게 잘 어울릴 것이다.

‘가지를 예쁘게 다듬고, 레이스 리본을 매 주면 꽤 세련되어 보일 거야.’

같은 꽃을 단 공작과 약혼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오늘 파티에서 가장 근사한 한 쌍으로 보일 테고, 커플의 마음은 단숨에 깊어져서……!

인간의 살갗이 등장하는 상상까지 마친 다프네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님의 연애 사정까지 헤아리다니, 나란 여자는 대체 얼마나 완벽한 서튼인지…… 후, 무서울 정도야.”

그때였다.

느닷없이 무언가가 그녀의 옆으로 휘익 떨어지더니.

‘퍼억!’

뭉툭한 파열음이 낮은 지면을 타고 퍼져 나갔다. 깜짝 놀란 다프네는 얼른 제 곁을 돌아보았다.

“……화분?”

그곳에는 흙과 자갈이 든 묵직한 화분이 떨어져 산산이 깨어져 있었다.

다프네는 잠시 그 자리에 멍하니 선 채로 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 지금…….’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할 뻔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얼른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2층 복도 창문에 비슷하게 생긴 화분이 몇 개나 더 늘어진 것이 보였다.

‘바람이 불어서 떨어졌나?’

잠시 가만히 서 있던 다프네는 드디어 이 놀라운 사건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나…… 되게 운 좋네.”

초콜릿 껍데기를 벗겨서 골든 티켓이 나오는 것 보다 훨씬 더 대단한 행운이 아닌가.

그 사실을 깨닫게 되자 다프네는 단숨에 기분이 좋아졌다. 저절로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하지만 그녀의 노래는 한 소절도 채 부르지 못하고 멈추고 말았다.

그 이유는.

“꼬, 꽃이……!”

다프네와 정원사가 고심해서 고른 가장 예쁜 꽃이 바닥에 떨어져 날카로운 화분 조각과 함께 구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다프네가 놀라면서 떨어뜨린 것이 틀림없었다.

“아아아!”

다프네는 황급히 꽃을 집어 들어 보았다.

아름다웠던 장미는 흙으로 더럽혀지고, 목이 삐딱하게 꺾여 있었다. 꼭 처형이라도 당한 듯한 모습이었다.

* * *

아침에 겪은 일로 다프네는 무척 바빠졌다.

일단 정원사에게 다시 새로운 장미를 골라 달라고 부탁했다.

그사이에 다프네는 떨어진 화분을 치우고, 부리나케 2층 복도로 달려가 위험천만한 나머지 화분을 치웠다.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미스러운 일은 이렇게 미리 예방해야 했다.

화분을 안전한 자리로 모두 옮겨 준 후에는 다시 정원으로 달려 나가 꽃을 받아 왔다.

사용인 뜰을 통하여 뒷문으로 들어올 때, 다프네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경계했다. 생각해 보니,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에 화분이 떨어진 것은 부자연스러웠다.

그렇다면 그게 다 무슨 의도겠는가.

‘나를…… 노리려고?’

하지만 약 3초 정도 시간이 흐르자, 다프네는 제 가설에 그다지 신빙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어느 누가 다프네의 목숨을 노리겠는가.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녀는 괜한 생각을 털어 버리고, 리암의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정장과 셔츠를 챙긴 후, 그녀는 장신구를 보관하는 유리 장식장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 위에는 처음 보는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음?”

다프네는 서튼으로서, 리암의 드레스 룸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그러니 일단은 상자를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했다.

“회중시계? 처음 보는 건데…….”

순간 리암이 새로 산 물건인가 싶었다. 하지만 곧 그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시계 앞에 붙어 있는 보석을 보면.

“가짜?”

보석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다프네의 눈에도 조악해 보이는 보석을, 감히 공작님에게 팔아넘길 상인은 없는 법이었다.

“흠.”

그렇다면 선물?

“대체 누가 이런 걸 선물…….”

이라며 적당히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 버리려고 했을 때, 다프네는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리암의 약혼녀인 힐링엄 양은 재정 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사실 말이다.

“……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다프네는 시계 상자를 은쟁반 위로 올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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