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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30)화 (30/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30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다프네는 리디아 슬로언과 캐슬린 힐링엄 사이에 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빨래가 든 바구니를 옮기던 다프네는 정원 한구석에서 리디아와 캐슬린이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지나가자.’

다행히 그들은 다프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알아차리더라도 상관이 없기는 했다. 저들에게 사용인이란 가구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그들의 곁으로 가구가 좀 지나간다고 해서 대화에 지장이 가지는 않을 터다.

‘나는 가구다. 걷는 가구일 뿐이야.’

다프네는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다. 하지만 이 몹쓸 가구의 훌륭한 귀로 그들의 대회가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빚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오시다니요. 부끄러운 줄 아시기 바랍니다, 힐링엄 양.”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요? 힐링엄 백작이 슬로언의 이름으로 공공연히 대출을 요청하고 다니는 것을 모를 줄 알았습니까?”

“……아버지께서요?”

“모르는 척하는군요.”

“저, 전 정말로 몰랐어요!”

“아무쪼록 더는 저택을 들쑤시고 다니지 마시길 바라며, 하루빨리 떠나 주셨으면 합니다. 설마 뻔뻔하게 연회까지 참석할 생각은 아니시겠죠?”

“공작님께서…….”

“당신은 지금 공작님께 자신을 비싸게 사 달라며 조르고 있을 뿐입니다.”

아.

그건 너무나도 모욕적인 말이었기 때문에, 다프네는 결국 한계에 봉착하고 말았다.

그녀는 가구가 되기를 포기하고, 정의로운 인간으로서 그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리디아 님, 여기에 계셨군요!”

마치 멀리에서부터 그녀를 찾았다는 듯 그리 외친 후에는 다급하게 이야기를 건넸다.

“공작님께서 찾으십니다. 연회에 대해서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으신 모양이에요.”

리디아는 잠시 캐슬린을 흘긋 바라보았다. 아직 해야 할 말이 더 남은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시선을 거두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알겠습니다. 전해 주어서 고맙군요, 서튼.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힐링엄 양.”

리디아가 획 몸을 돌려 저택으로 들어간 후, 다프네는 어쩔 수 없이 캐슬린과 단둘이 남게 되었다.

다프네는 캐슬린에게 ‘괜찮아요?’라고 묻고 싶은 것을 그만두었다.

「절대로 캐슬린 힐링엄에게 휩쓸리지 않도록 주의해!」

궁색한 변명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가문 회의의 수장인 앨러스테어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다프네는 어색하게 허리를 꾸벅 숙이고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어, 그럼 저는 하던 일이 있어서…….”

“아…… 저기.”

그런데 캐슬린이 그녀의 뒤로 졸졸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어, 어떻게 하지?’

다프네는 제 어깨너머를 흘긋거렸다.

고상한 아가씨가 종종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이 귀여워서 사실 조금 설레었다.

‘나는 왜 두근거리는 거람.’

다프네는 철저하게 얼굴을 밝히는 자신을 질책하며, 캐슬린 힐링엄이 어떤 존재인지 다시 떠올렸다.

그녀는 태풍이다.

연약한 ‘가구’는 이런 강한 바람에 간단히 휩쓸릴 수 있으니, 될 수 있으면 가까이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불의의 사태에 휘말린 가구를 지켜 주는 귀족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므로.

‘무엇보다 힐링엄 아가씨와 가까워지면 리디아 님이 내 목을 뎅겅 잘라 버릴지도 모른다고!’

사실 지금 거짓말을 한 일로도 충분히 목이 아슬아슬한데.

다프네는 어떻게든 캐슬린을 외면하기로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뒤에서 ‘철퍼덕’ 하고 시원하게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헉.”

다프네는 별수 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고상한 아가씨께서는 완전히 앞으로 고꾸라져 피를 흘리고 계셨다.

깔끔하게 정비된 바닥에서 어떻게 혼자 넘어졌는지 의문스러울 법도 하지만, 다프네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으아아!”

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다프네 서튼은 빨래 바구니를 집어 던지고, 태풍을 향해 씩씩하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다프네는 빈 응접실로 캐슬린을 데려갔다. 그녀를 소파에 앉힌 후에는 그 앞에 꿇어앉아 손바닥과 무릎에 직접 약을 발라 주었다.

“아가씨, 정말로 의사를 부르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다프네는 약으로 번들거리는 그녀의 무릎을 들여다보며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정작 캐슬린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이 정도로 의사라니, 호들갑이에요.”

“호들갑이라뇨. 의료는 비싸지만, 그만큼 안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고마운 서비스…… 아.”

다프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입을 얼른 다물었다. 빚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에게 돈 이야기를 하다니 제정신인가.

“아니, 그러니까…… 저기.”

다프네는 괜히 약상자를 정리하는 척하면서 어떻게든 할 말을 찾았다.

“어, 저기! 어차피 주치의 선생님은 공작님과 연간 계약이 되어 있어서 더 내지 않아도…….”

아니지, 이래서야 또 돈 이야기가 아닌가. 다프네는 얼른 쓸데없는 말은 그만두었다.

“……죄송합니다, 힐링엄 아가씨.”

“쿡쿡, 아니에요.”

다행스럽게도 캐슬린은 외모만큼이나 마음씨도 고상한 모양이었다. 다프네의 실수도 이렇게 웃으며 넘어가 주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정말이지 좋은 귀족의 표본으로서 박물관에 전시라도 해 두고 싶은 행동거지였다.

“약이 좀 마른 것 같으니, 거즈를 붙여 드릴게요.”

“그렇게 해 줘요.”

“아프지 않으세요?”

“익숙해진 것 같아요. 고마워요.”

다프네는 상자에서 반창고를 찾아 꺼냈다.

“능숙하네요, 서튼.”

“남동생이 있거든요. 연약해서 자주 넘어지곤 했죠.”

“동생을 매우 아끼나 보네요.”

갑작스레 돌아온 질문에는 묘한 확신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다프네는 조금 놀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눈치 보면서 자라는 아이의 특권이랍니다. 상대의 감정을 금방 읽을 수 있지요.”

그건 다프네의 표정이나 어조에 사무엘에 대한 애정이 깃들었고, 캐슬린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사실 제가 눈치챈 건 그뿐이 아니어요.”

“네?”

“그동안 제가 계속…… 서튼을 찾아가서 무척 폐가 되었겠죠?”

“아, 아닙니다.”

다프네는 애써 부정했지만, 아마 캐슬린은 진실을 알 것이다. 대답할 때 목소리의 끝이 살짝 떨리고 말았으니까.

“……사과할게요.”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고, 다프네는 굳이 이를 말리지 않았다.

폐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기도 했으니까.

“그게…… 조금 외로웠답니다.”

“네?”

“다들 저를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어요. 겉으로는 아가씨라고 부르지만, 뒤에서는 빚쟁이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아…….”

정확히는 ‘빚덩이’였다. 하지만 다프네는 굳이 이를 정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프네 서튼, 감히 말씀드려요.”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맑은 눈동자에는 깊은 진중함이 깃들어 있었다.

“전 빚을 떠넘기고 싶은 욕심에 약혼을 유지하는 게 결코 아니랍니다.”

이건 절대로 거짓말이 아니다.

다프네는 그런 확신이 들었다.

“처음부터…… 좋았어요, 이 약혼이.”

“…….”

“그 외에 다른 마음은 없었답니다. 아마…… 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요.”

그녀는 자조적으로 미소 지었다.

이 약혼이 세간에 어떻게 보일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 연약한 아가씨가 그 시선을 모두 감당하는 것은…….’

약혼자인 리암 때문일 것이다.

‘정말로 깊이 사랑…… 하시는구나.’

어떤 오해를 받더라도 이렇게 곁에 머물고 싶을 만큼.

‘…….’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그런 못된 남자를 이렇게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다행인 건.’

리암이 캐슬린의 진심을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모두가 그녀의 진심을 의심하는 상황에서도 리암은 그녀를 무척 정중하게 대해 주었다.

‘오랫동안 지속한 약혼이니까, 두 사람 사이에는 내가 모르는 믿음이 있었던 걸지도.’

그건 참 다행이었다.

그래, 다행…… 이지.

…….

‘애초에 내가 남을 걱정할 처지는 아니긴 하지만.’

치료를 마무리한 다프네는 그녀의 옷자락을 끌어내려 정돈한 후, 캐슬린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물러가겠다는 인사를 할 참이었다. 그런데 샐쭉 미소를 지은 캐슬린이 갑자기 이상한 질문을 건넸다.

“다프네는 공작님을 좋아해요?”

“네에?”

그 기가 막힌 질문에 다프네는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왠지 그런 것…… 같아서요. 아닌가요?”

“절대, 절대 아니죠!”

다프네는 엉겁결에 부정하고 말았다. 거의 생각을 거치지 않은 말이었다.

“정말요?”

그러자 캐슬린이 집요하게 다시 물었다. 꼭 다프네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저, 전 사용인입니다, 가구라고요!”

“말도 안 돼요. 서튼도 사람인데 당연히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잖아요.”

“서,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할 말이 빠르게 생각나지 않아서, 다프네는 약상자를 정리하는 척하며 시간을 끌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질문에 어째서 이렇게까지 동요하는지 그녀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쨌든 공작님은 절대로 아닙니다.”

“왜요?”

“왜냐뇨!”

다프네는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며 캐슬린을 빤히 바라보았다.

“공작님은…… 약혼하셨잖아요?”

‘그것도 당신과 말이에요.’ 다프네는 차마 그 말까지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캐슬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약혼한 사람을 좋아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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