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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25)화 (25/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25화

“누군지 몰라도 이런 케이크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통한의 눈물을 흘릴 겁니다.”

다프네가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건넨 이야기에 리암은 ‘그럴지도 모르지.’라며 소파 자리를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침은 그만 삼키고, 앉아서 먹어.”

“저요?”

“그래, 서튼.”

사실 다프네는 주인의 침실에서 염치도 없이 케이크 한 판을 화끈하게 먹어 치우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그녀를 서튼으로 불렀으니, 별수 없이 자리에 앉아야 했다.

이제 리암은 그녀 앞에 따듯한 홍차까지 놓아주었다.

“제게 왜 이렇게 친절하십니까?”

다프네는 포크를 든 채로 그를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지난 한 달간의 생활을 통해 그녀는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리암이 이렇게 달콤한 것을 권할 때는 반드시 좋지 못한 간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친절?”

하지만 그는 당치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처치 곤란해진 케이크의 뒤처리를 맡기는 일의 어디에 ‘친절’이 숨어 있는지 궁금하군.”

……그런가?

다프네는 곰곰이 그의 말을 되짚어 보았다. 듣고 보니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공작님은 저를 남은 음식이나 처리하는 인간으로 취급하시는 거군요.”

“그래, 그러니까 의심하지 말고 편하게 먹어.”

“정말이지 몹쓸 주인이십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다프네는 벌써 케이크를 크게 베어 물고는 깊은 행복에 빠져들었다.

어느새 그녀의 옆에 나란히 앉은 리암이 한쪽 턱을 괸 채로 물었다.

“맛있나?”

“네, 맛있습니다. 마침 제가 좋아하는 견과류가 가득 들어가 있어서 더욱 좋네요.”

“오늘의 손님이 그걸 좋아했거든.”

“훌륭한 취향을 가진 분이셨군요.”

그리고 다프네는 또 한 번 야무지게 케이크를 입 안에 밀어 넣었다.

행복을 맛으로 만든다면 딱 이러하지 않을까.

“전 정말로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케이크를 몇 번 더 먹던 다프네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무척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손님이 약속을 취소해 주신 덕분에 생일날에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를 독차지하게 되다니.”

“원래 생일날에는 소소한 행운 한두 가지는 생기는 법이지.”

“한둘이 아닙니다. 오늘 아침에는 ‘생일 축하해, 누나.’라는 동생의 전보를 받았…….”

신이 나서 그만 동생의 이야기를 해 버린 다프네는 리암의 눈치를 살피며 얼른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맹약이 성립되었다고는 해도 그가 호시탐탐 잘생긴 사무엘을 노리는 것은 여전할 테니까.

“……못 들은 거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작님이 제게 주시는 생일 선물로 말이죠.”

“그러지.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아……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작은 상자 하나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오다 주웠다.”

“……?”

다프네는 바로 그 상자를 열었는데. 그 안에는 아름다운 금괴가 하나 들어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리암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리암은 ‘설마 감동했나?’라고 생각했지만, 곧 그런 착각은 저버렸다.

상대는 다프네 서튼이었다.

눈치라고는 개미 발톱만큼도 없는.

그러니까 아마 이 경우, 다프네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줍다니! 대체 어, 어디입니까? 저도 가고 싶습니다!’일 것이다.

“감사…… 합니다.”

“흠?”

“정말로요. 기쁩니다.”

리암은 당황하여 다프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이렇게나 순수하게 기뻐하는 표정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으므로.

‘아니지.’

그는 얼른 마음을 다잡고 확인하듯 물었다.

“주워 줘서 고맙다고?”

“……공작님은 제가 바보인 줄 아십니까?”

고왔던 다프네의 미소가 사라지고 다시 평소대로 미간이 툭 일그러졌다.

그 순간에 리암은 기묘한 안도를 느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기뻤다.

그래, 역시 다프네 서튼은 이래야지.

“어쨌든 그대가 내 선물에 감동했다는 건 잘 알겠어.”

“안 했습니다! 전 조금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움직였어. 조금 전에 나를 향해 매혹적으로 미소 지은 것이 그 증거지.”

“웃기지 마세요. 그깟 웃음이야 언제든지 이유 없이 지을 수 있습니다!”

다프네가 그를 향해 이죽거리는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 어색하기 짝이 없는 표정은 너무나도 우스웠기 때문에, 리암은 그만 끅끅거리며 웃어 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다프네 서튼은 드디어 법이 인정하는 성인이 되었다.

* * *

생일이 지난 후, 다프네는 금방이라도 공작령인 클롯모어로 돌아가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리암은 그곳으로 돌아갈 기미가 없어 보였다.

일단 그는 매일 도착하는 다른 귀족들의 초대에 모두 응했다. 귀부인들의 오후 다과회에도 참석하여 연세 지긋하신 부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역할까지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전해졌다.

그러는 사이에 겨울과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었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수도 생활에 다프네는…….

……무척 신이 나 있었다.

일단 일주일에 한 번씩 날아오는 아셔 마플의 우는 소리가 재미있었다.

그는 리암에게 ‘공작님, 빨리 돌아와 주세요.’라는 편지를 보내다가, 나중에는 안 되겠는지 다프네에게도 편지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제기랄, 공작님께 돌아가자고 말씀드리란 말입니다!]

[서튼 양, 공작님께 돌아오시라고 말 좀 전해 주세요.]

[친애하는 서튼 양, 부디 공작님을 모시고 클롯모어로 돌아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편지 예절 수업이라도 듣는 모양인지, 그의 편지는 한 주가 지날 때마다 점점 더 형식과 격식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물론 다프네는 매번 같은 내용의 답장을 돌려주고 있었다.

[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다프네는 클롯모어로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 상태였다.

왜냐하면, 다프네는 새로운 취미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로 연극 공연을 보러 다니는 것이다.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로 구성된 환상적인 무대를 볼 때면, 다프네는 현실의 시름을 잊을 수가 있었다.

리암은 몇 번이나 같은 공연을 보러 가는 다프네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다프네의 입장에서는 그 즐거움을 모르는 리암이 가엾게 느껴질 정도였다.

“매일 조금씩 바뀌는 연기의 특별함을 알지 못하는 공작님이 불쌍해요!”

“그렇다고 해도 똑같은 공연을 다섯 번이나 보면 졸리지 않나? 극장 회전문이 닳겠어.”

“똑같다니!”

다프네는 리암의 재킷 단추를 채우며 빽 소리쳤다.

“첫 공연의 로미오와 마지막 공연의 로미오는 명백히 다릅니다! 조금씩 연기가 달라진다고요!”

“……달라지는 게 더 문제 아닌가?”

리암이 소심하게 항의했지만, 다프네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그의 옷에 붙은 먼지를 제거했다.

잠시 후 다프네가 뒤로 물러서자, 리암은 거울 앞에서 제 모습을 꼼꼼하게 비춰 보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지. 다음 주 일정은 전해 들었나?”

“물론입니다. 알찬 유흥 계획을 세우셨더군요.”

“그건 유흥이 아니야, 사교 활동이지.”

그는 꼭 그것이 업무의 일환이라도 되는 듯 이야기했지만, 그 일정에 경마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저 유감스럽기만 했다.

“어쨌든 다음 주 일정에 어울리도록 준비해 두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문으로 향하던 리암은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우뚝 걸음을 멈추고서 다프네를 돌아보았다.

“그대는 어떻지?”

“저요?”

“얼마 전에 그랬잖아. ‘마지막 공연의 로미오’를 만날 수 없게 되어 슬프다고.”

“아.”

다프네는 조금 쓸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랬었죠.”

수도에는 다프네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 많아서 참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괴롭기도 했다.

중요한 공연에는 사람이 몰려들어, 돈을 들고도 표를 살 수가 없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니까.

특히 최고로 꼽히는 왕립 극단의 공연이면 더욱 그러했다.

“음, 그래서 말인데.”

리암은 다프네의 슬픈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건넸다.

“내가 그 표를…….”

“그런데, 엘이 표를 구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리암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프네가 손뼉을 치며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뭐?”

“벌써 잊으셨습니까? 제 친구 엘. 전에 말씀드렸는데.”

“알지. 아주 자알 알지.”

리암은 썩은 무를 씹은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표를 구하지 못해서 곤란해하고 있으니, 엘이 극장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자리를 겨우 구해 주었습니다.”

겨우 구하다니?

리암은 기가 막혀서 아무 답도 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 극단과 극장이 엘리엇의 소유 아닌가.

그는 그저 명령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다프네는 무척 감격한 표정으로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필시 친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 가며 어렵게 표를 구했을 겁니다. 절 위해 그렇게까지 해 주다니……!”

웃기고 있네.

친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 가며 표를 구한 건 리암이었다.

그 얄미운 왕을 찾아가서 비굴하게 ‘표를 구해 줄래?’라고 부탁했을 정도니까.

“그래서 다음 주에는 마지막 로미오까지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잘됐네.”

흥 하고 콧방귀를 뀐 리암은 획 몸을 돌려서 현관까지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다프네는 그가 왜 갑자기 토라졌는지 알 길이 없었는데, 사실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았으므로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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