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5)화 (15/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5화

다프네는 그의 의도를 의심하는 듯 조심스레 되물었다.

“네, 원로들에게 가서 부지깽이를 휘두르면, 다들 무서워서라도 당신을 받아들일 겁니다, 풉!”

“…….”

다프네는 다시 부지깽이를 쥐고 아셔를 후려갈기고 싶었다.

그도 그걸 예상했는지, 슬쩍 다프네의 눈치를 살피며 뒤로 물러섰다.

“……후우.”

하지만 다프네는 그런 소용도 없는 일로 체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긴 한숨을 쉬며 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어…… 혹시 화났어요?”

아셔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뇨, 안 났어요.”

“……아니, 난 그게…… 서튼 양이 기운이 없어 보여서…….”

장난이 심하다 싶었는지 그가 변명을 건넸지만, 다프네는 이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됐어요. 아셔가 나를 싫어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 그건…….”

“보고는 끝나셨죠? 저 공작님께 긴히 말씀드리고 싶은 일이 있는데.”

“아니, 전.”

아셔는 뭔가 더 할 말이 남아 있다는 표정이었지만, 결국에는 우물거리기만 하다가 자리를 비켜 주었다.

두 사람만 남게 되자, 리암은 이제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공작님, 전 절대로 여기에서 못 떠나요!”

다프네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간절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건 누군가의 목숨이 걸린 일이에요.”

사실 다프네는 지금까지 지난 생에 자신이 겪었던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말을 한다고 믿어 줄 사람도 없을뿐더러, 도리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니까.

하지만 지금은 물불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다프네는 간절한 모습으로 그의 팔을 붙잡았다.

“제가 공작님의 수행원이 되지 않으면…….”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가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에,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슬로언 공작가의 집사, 던컨이 찾아온 것이다.

“…….”

다프네는 이야기를 멈추고 입술을 깨물었다. 공작의 정해진 일정에 그녀가 함부로 끼어들 수는 없으니 이제 여기에서 나가야 옳았다.

“오늘은 서튼이 날 도울 거야. 회의 준비로 바쁠 텐데, 옷은 거기에 두고 나가 봐.”

그때, 놀랍게도 공작이 집사를 돌려보냈다.

그건 꼭 다프네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겠다는 뜻으로 느껴졌기에 그녀는 몹시 감동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새삼 그의 얼굴이 멋져 보였다.

어제는 그가 하얀 무보다 못한 남자라고 비하했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리암 슬로언은 무에 버금가는 남자였다.

그것도 갓 뽑아서 단맛과 영양이 잔뜩 든 건강한 제철 무 말이다!

그가 곧 부드러운 가운을 벗어 내렸다.

다프네는 무처럼 단단하고 커다란 그의 가슴을 향해 손뼉이라도 쳐 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서 얼른 집사가 두고 간 셔츠를 가져왔다.

“고마워.”

“공작님, 사실 저는요, 이 맹약의…….”

‘마지막을 알아요.’라는 말을 하려던 찰나.

“다프네 서튼.”

리암이 그녀의 말을 막아서듯 이름을 불렀다.

“……?”

다프네는 그의 셔츠 단추를 끼우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혹시 이제라도 난 너의 편이고, 나의 ‘서튼’은 너뿐이다, 라고 말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은 채로.

“걱정하지 마.”

“어떻게 그래요.”

“슬로언 가문은 바보가 아니야.”

“그러니까 문제죠.”

똑똑한 사람들이니, 사용인이 주인에게 부지깽이를 들이댄 것에 대해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어쩐 일로 잠시 주저하더니, 이내 다프네의 한쪽 뺨을 쥐었다.

꼭 얇은 꽃잎을 쥐어 올리듯, 조심스럽게.

“……난 그대를 좋아해.”

깊은 진심이 느껴지는 투에 다프네는 세차게 콧방귀를 뀌었다.

웃기고 있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예로부터 가족 외에 다프네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딱 두 부류뿐이었다.

사기꾼이나 장사꾼.

“거짓말하지 마세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야 전 누군가의…….”

“애정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라는 건가? 하지만 다프네 서튼, 그대는 자신의 진정한 매력을 모르고 있어.”

“수도 주택의 소유권 말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거기엔 사정이 있어서 임차인을 들이지 않습니다. 수익은커녕 부동산세만 나가는 형편이죠.”

“설마, 나는 더 좋은 집이 있는데.”

“그럼 뭡니까?”

“그걸 어떻게 알려 주나 나만 알아야지. 소문이라도 도는 날에는 그대를 노리는 고용인들이 더욱 늘어나게 될걸?”

다프네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에게 그런 마성의 매력이 있나요?”

“그래, 그런 마성의 사용인을 그냥 나가게 둘 수는 없는 법이야.”

다프네는 공작의 잘생긴 눈깔이 드디어 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그냥 나가게 두지 않겠다는 말에는 몹시 감동했다.

“그래도 저 때문에 공작님께서 더 곤란해지시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곤란해? 내가?”

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고, 다프네는 살살 고개를 저었다.

리디아 슬로언이 했던 이야기가 신경이 쓰인 탓이었다.

“공작님의 계승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저를 빌미로 공작님에게 무례를 저지르지 않을까 해서요.”

“그건 그대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리암은 다프네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그리고 극구 반대하는 인물이라고 해 봤자, 내 형님의 교사를 했던 휴고 마플 정도지. 형님을 지나치게 사랑하거든. 다른 이들은 금방 설득될 거야.”

“어떻…… 게요?”

조심스레 묻자, 그는 한쪽 눈을 가볍게 찡긋거렸다.

“내 마성의 매력으로?”

“…….”

“어쨌든 그대는 여기에 있어.”

그는 다프네의 이마 위로 제 이마를 콩 기대었다. 꼭 사랑하는 연인들이 그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야 잘생긴 사무엘이 내 수행원이 되어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보지.”

“이, 이……!”

“미남과 미남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해할 준비를 하도록 해. 아주 즐거울 거야.”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은 다프네는 그의 얼굴을 밀어내다가, 이내 마음을 바꾸어 그의 얼굴을 붙잡아 제게로 확 당겼다.

“제 동생에게 절대 관심 두지 마십시요!”

분노 어린 경고를 외친 후에는 그의 얄미운 이마에 장렬한 박치기를 선사했다.

감히 소중한 사무엘을 이런 몹쓸 자리로 불러오려고 하다니!

다프네는 이 몹쓸 남자에게 마땅한 벌을 내리게 되어서 무척 흡족했다. 다음에 또 이런 끔찍한 소리를 하면 가랑이를 걷어차 줄 생각이었다. 어디에서도 못쓰게 될 정도로!

새파랗게 눈이 뒤집힌 다프네는 그를 징벌할 생각만으로도 신이 나서 음흉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이게 무슨 짓이야! 미쳤어?!”

열린 문 너머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다프네는 온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돌아보니, 어느샌가 찾아온 앨러스테어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공작과 다프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헉!”

다프네는 얼른 리암의 얼굴에서 손을 뗐다.

“아니, 아니 그러니까요…….”

그녀는 최선을 다해서 지엄하신 공작님의 머리를 들이박았다는 사실에 어울리는 변명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 그냥 앨러스테어 앞에 납작 엎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곧 그녀의 뒤에서 리암이 배를 까뒤집고 깔깔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경망스럽게 웃는지 도무지 한 나라의 공작이 웃는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래서야 오늘도 ‘널 인정하지 않겠다!’라는 앨러스테어의 분노 어린 외침을 들어도 할 말이 없지 않을까.

다프네는 울상을 지으며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

하지만 몰래 들여다본 앨러스테어의 얼굴에는 분노 같은 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 * *

오후가 되어 드디어 다프네의 처분을 정하기 위한 슬로언 가문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실 중앙에 다프네를 앉혀 두고, 그 양쪽에는 슬로언의 원로들이 줄지어 앉았다.

가문의 주인인 리암은 회의실 가장 상석에 자리했다.

앨러스테어는 이 회의의 의장으로서 그의 곁을 차지했다. 물론 그의 뒤에는 ‘법적 보호자’ 리디아 슬로언이 서 있었다.

그녀가 앨러스테어를 대신하여 개회를 선언했고, 이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원로는 없었다.

“오늘 긴급회의는 우리 가문이 오랫동안 지켜온 소중한 맹약에 예기치 않은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리디아는 힘 있는 목소리로 외치며, 원로들을 돌아보았다.

“공작님이 남성이신 이상, 반드시 남성의 서튼이 직무를 맡아야 합니다. 수행원이 하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녀는 다프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불쾌한 듯 미간을 구겼다.

“여기는 슬로언 공작가, 불결한 상상을 불러일으킬 일을 무엇 하나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녀는 반박할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를 해 보라며, 고개를 높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에 다른 의견은 없었다.

심지어는 다프네를 수행원으로 두겠다며 고집했던 공작마저도 함부로 반박하지 못하고 있었다.

리디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서 이 회의의 결론을 내렸다.

“다프네 서튼, 당신은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니 속히 저택에서 떠나 주기를 바랍니다.”

다프네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마음 같아서는 소리를 내어 자신을 변호하고 싶었지만,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시 회의실에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음.”

그리고 이 고요를 깨트린 것은 리암이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잠시 이리저리 고개를 기울이다가, 곁에 앉은 앨러스테어를 돌아보며 물었다.

“의장, 그래서 대체 이 회의는 언제 개회하는 거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