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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7)화 (7/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7화

‘아.’

다프네는 자신이 이 옷을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코트 깃이 뺨에 닿아 살짝 눌리는 느낌이 익숙했다. 아마 아버지께서 수도에 오실 때 입으셨던 것이 아닐까.

수도로 남매를 보러 오셨던 아버지는 매번 그들을 따듯하게 안아 주셨으니까.

‘항상…… 멀리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전 생의 그녀에게는 아버지의 흔적이라고는 무엇 하나 남지 않았다.

아버지의 목걸이도 사고 현장에서 사라져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다프네와 사무엘이 돈을 모아서 선물한 것이었는데…….

어쨌든 다프네에게 아버지는 ‘기억’으로만 존재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선명한 감촉과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왠지…… 기뻤다.

“알려 주겠어?”

리암이 묻는 이야기에 고개를 들어 보니, 그는 책상 위에 놓인 담배 케이스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비누 제조사 말입니까?”

“설마.”

그는 문 앞에서 보았을 때와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조의를 표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침 그렇게 ‘사교적인 표정’을 하곤 했다.

“사실 그대를 처음 봤을 때부터 궁금했어.”

다프네는 아버지의 코트를 끌어안은 채로 그에게 다가섰다.

“그대는 어떻게 상실을 인정했지?”

그는 담배 케이스를 열어 안에 든 말린 담배를 손끝으로 살살 만지작거렸다.

그건 아마 선대 공작을 위해서 다프네의 아버지가 하나씩 말아 둔 것이리라. 그녀의 아버지는 생전에 담배는 가까이하지 않으셨으니.

“클롯모어로 향하는 완행열차에서 나는 그대를 지켜보고 있었어. 줄곧. 참 씩씩한 아가씨구나, 싶어서.”

“……그때는 씩씩해야 했습니다.”

“그래, 남동생을 내게 주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다프네는 살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신기해.”

그는 케이스를 책상에 내려놓고, 다프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엠버혼에서 소식이 들려온 이후…… 솔직히 말하면 나는 줄곧 이를 믿지 못했어. 지금도 그렇지. ‘조의를 표합니다.’라는 사람들의 말에 웃으며 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실감하지 못하셨군요.”

“아직 그분과 나 사이에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있으니, 돌아가셨을 리 없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대는 달랐지.”

그는 여전히 같은 미소를 지은 채였다.

“부친의 상실을 전제로 한 행동들을 거침없이 해 나가고 있어.”

다프네는 어렴풋이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페이지 부인과 단둘이 남은 수도 하우스에서 현관문이 열릴 때마다, 아버지가 수도로 오신 줄 알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곤 했다.

클롯모어에서 돌아오는 열차를 보기라도 하는 날에는 괜히 승강장까지 달려가기도 했다. 아빠가 내릴지도 모르니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 행위를 끝낸 것은 아마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던 것 같다.

수없이 반복된 실망이 비로소 그녀의 마음에 실감을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는 오지 않으신다. 돌아가셨다. 만날 수 없다. 영원히.

그러니까 리암은 그때의 그녀와 같은 상황에 놓인 것이리라.

“슬로언 공작님.”

다프네는 일부러 그를 그리 불러보았다. 리암은 고개를 숙였다.

“……잔인해, 그대.”

그는 ‘슬로언 공작’이라는 호칭을 여전히 아버지의 것으로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리 부를 때마다 이상한 기분을 느꼈을 테고, 이를 표현할 수가 없으니 그저 웃었으리라.

“……난 그냥 그대처럼 되고 싶을 뿐이야.”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시간을 지닌 것도 아니지 않나. 하물며 그대는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린데.”

“다음 달이면 저도 열여덟입니다.”

“그래, 축하해. 내 영지에 세금을 내는 인물이 늘어나는 건 기쁜 일이지.”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아셔 마플이 했던 것과 똑같은 소리에 다프네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

그는 곁에 놓여 있던 케이스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어 입에 물었다. 불은 붙이지 않았다.

“끝내 그대의 비법은 알려 주지 않는 건가?”

“비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시간을 역행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런 것을 말할 수는 없으니 다프네는 성냥을 찾아 든 채로 빙긋 웃었다.

“저를 수행원으로 고용하면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악하군. 불은 됐어.”

그가 손바닥을 들어 거절 의사를 표하자, 다프네는 성냥을 내려놓았다.

“이 방의 출입을 허락해 줬는데도, 더 많은 것을 요구하다니.”

“그 점은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거 알고 있나?”

그는 담배를 다시 케이스로 돌려놓고, 책상에서 내려와 그녀와 마주 섰다.

다프네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긴 은발이 흘러내려 그녀의 얼굴선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짧은 인사 하나로는 ‘만족’스럽지가 않은데.”

그는 굳이 만족이라는 단어에 상당히 강세를 주었다. 그녀가 수행원이 되기 위해 달성해야 할 조건을 상기시키듯이.

“공작님도 사악하십니다.”

“칭찬으로 듣겠어.”

“그럼 한 가지만 알려 드리죠. 밤 산책은 그만두시고 이제 본인의 침실을 받아들이세요.”

“…….”

다프네는 이 저택에서 석탄과 나무를 운반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알게 된 일이 있는데, 따듯하게 덥혀 놓은 ‘공작의 침실’에는 리암이 생활하는 흔적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 아버지의 침대를 차지하고 눕는 것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음.”

다프네의 지적이 옳았는지, 그가 이상한 모양으로 입술을 우물거리며 시선을 돌려 버렸다.

“어려우시다면 입구까지 모셔드리겠습니다. 예비 수행원으로서.”

다프네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럴까.”

그는 눈초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제 손을 맡겼다. 고작 두 살 더 많은 그의 손에는 꽤 많은 굳은살이 있어서 조금 놀라웠다.

“가요.”

다프네는 아버지의 코트를 제자리에 걸어 두고서 ‘서튼’의 방을 나섰다. 리암은 별다른 말 없이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왔다.

다프네는 그가 아버지를 잃은 후 제대로 잠이나 잤을지 걱정이었다.

아버지의 침대를 차지하지 못하여, 이렇게 밤마다 돌아다니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녀는 처음으로 사용인은 사용할 수 없는 주인들을 위한 계단을 오르고, 어느새 익숙해진 길을 따라 공작의 침실에 도착했다.

다프네는 조금 과감하게 바로 문을 열었다. 돌아보니 리암은 여전히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램프는 밝히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어둠이 시야를 좁혀 주는 것이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갈 건가?”

“달리 시키실 일이 없으시다면.”

다프네는 그가 쓸데없는 요청을 하나쯤은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방에 홀로 남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예전에 다프네도 페이지 부인에게 비슷한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서랍장을 확인하거나 할 때.

“시킬 일은…….”

그는 불안이 담긴 시선으로 방을 둘러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그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다프네는 왠지 새삼 그가 안쓰러워졌다.

어른스러워 보였던 그가 사실은 스무 살밖에 되지 않았으며, 공작 위라는 무거운 자리를 승계받아 홀로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실례가 아니라면.”

다프네는 그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권했다.

“잠이 드실 때까지 곁에 있어 드릴 수 있습니다. 서튼으로서.”

“서튼…… 으로서라. 좋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해.”

다프네는 침실로 들어와 조용히 문을 닫았고, 리암은 느린 발걸음으로 잠자리에 누웠다.

다프네는 침대 근처에 놓을 작은 의자가 없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커튼까지 쳐 놓은 방은 무척 어두워서 찾을 수 없었다.

별수 없이 그녀는 양해를 구하고 침대 한쪽에 걸터앉았다.

워낙에 커다란 침대라 그렇게 앉는다고 해도 리암의 잠에 방해는 되지 않으리라.

“이상한데.”

그가 중얼거렸다.

“당연합니다.”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가 느끼는 감정을 애써 설명하고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

상실을 실감하는 것은 그런 감정의 연속된 끝에 오는 것이니.

“서튼을 곁에 두는 이유를 알겠군.”

“제 쓸모를 느끼셨다면 기쁩니다.”

“아니.”

조금 몸을 움직인 그가 허리 근처로 늘어진 다프네의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렸다.

“빛을 머금은 듯해, 함께 있으면 어디에서도 길을 잃지 않겠지.”

중얼거리듯 돌아온 답에 다프네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죄송하지만, 틀렸습니다.”

“그렇게 매정하게 답할 일인가, 그게.”

“그게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야 은발이 아닌 서튼에 관해서 설명할 수 없습니다.”

“…….”

“게다가 서튼은 길잡이가 아닙니다. 본인의 길은 스스로 찾으셔야죠.”

너무 냉정하게 쏘아붙였나 싶었지만, 사실이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빛나는 서튼의 역사를 바꾸거나, 오명을 뒤집어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이제 막 이 방에 적응하려는 사람에게는 다소 지나쳤을까.

다프네가 걱정스레 뒤를 돌아보니, 그는 베개에 얼굴을 처박고 끅끅거리며 웃고 있었다.

대체 뭐가 그리 웃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맙소사, 다프네 서튼, 그대는 정말 나를 완벽하게 만족하게 했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해내겠다고.”

다프네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거기엔 묘한 기쁨이 스며들고 말았다.

리암은 명예와 신의를 아는 귀족이다.

그는 스스로 ‘만족했다’라고 선언한 일을 절대로 뒤집지 않으리라.

그러니까, 이제 다프네는 정말로 그의 수행원이 될 수 있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지난 며칠간의 고생을 떠올렸다. 무엇 하나 헛된 것이 없었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마…… 목표하는 바를 완벽하게 이루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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