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6화
그는 더듬거리며 겨우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결국에는 창문을 닫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만둡시다. 당신 말이 옳아요. 감기라도 걸려서 나가 줬으면 하는 겁니다.”
“나, 냄새나요?”
다프네는 제 양쪽 어깨를 번갈아 코로 킁킁거렸다. 조금 전에 씻고 나온 터라 온몸에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래 봬도 다프네는 목욕용품에는 고집이 있어서, 수도에서부터 애용하던 제품을 사용했다.
씻고 난 뒤 피부의 느낌도, 달콤한 향기도 마음에 들었다. 비록 한참 씻고 난 후에는 향기에 익숙해져 향기를 거의 맡지 못했지만…….
“아니라니까요! 댁이 감기에 걸려서 당장 꺼져 줬으면 하는 겁니다! 이젠 제발 그쪽 남동생이 어디에 있는지나 알려 달라고요!”
아셔가 새빨개진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렇게까지 창피해하는 것을 보니 냄새에 관해 이야기했던 건 정말로 실언이었던 모양이다.
“음.”
다프네는 몸을 두른 이불을 걷어 내며 씩 웃었다.
“거절합니다.”
“미치겠네.”
이제 그는 침대로 들어가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 버렸다.
다프네는 방 한가운데 있는 램프를 끌어와 제 앞에 놓아두었다.
온몸이 욱신거려서 한시라도 빨리 자고 싶었지만, 지금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러게 안 될 거라니까. 손 부르튼 거 봐. 나중에 약 좀 가져다줄게요.」
친절하고 예쁜 동료 하녀, ‘브리’가 다프네에게 정말로 약을 가져다준 것이다.
하얀 가루약인데, 손이 갈라진 곳에 뿌리고 나서 가만히 두면 훨씬 나아질 거라고 했다.
다프네는 일단 왼손바닥과 손등에 골고루 약을 뿌렸다. 하지만 가루 형태다 보니, 아무리 조심해도 바닥에 흘리는 양이 더 많았다.
“……아.”
그리고 이제 오른손에 약을 뿌려 줄 때가 되고서야 다프네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떠올렸다.
왼손에 가루약을 처덕처덕 발라서, 함부로 움직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다프네는 왼쪽 손끝으로 어떻게든 병을 붙잡고 살살 가루를 뿌리기 위해 끙끙거렸다.
그 소리가 방해되었는지, 자겠다며 누운 아셔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안경을 찾아 썼다.
깜짝 놀란 다프네는 하마터면 약병을 놓칠 뻔했다.
“미치겠네! 아침까지 약이나 바를 거예요? 이리 내요!”
그는 그녀 앞으로 다가와 다프네가 들고 있던 약병을 빼앗았다.
“손!”
그리고 꼭 개를 훈련할 때처럼 제 손을 내밀며 그리 외쳤다.
다프네는 결코 개는 아니지만, 그가 마음을 고쳐먹기 전에 얼른 그에게 손을 주기로 했다.
손바닥이 서로 닿을 때, 다프네는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마플 씨, 손이 크군요.”
“……제가 아니라 그쪽이, 아니, 움직이지 마세요.”
그는 약병을 뒤집어 툭툭 흔들며 하얀 가루를 뿌렸다.
“혹시 몇 살이에요?”
다프네는 나이를 묻는 것이 무례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무척 궁금했기 때문에 질문을 건넸다.
그의 외모로 보면 스물 내외……?
“왜 묻는지 모르겠지만, 열아홉입니다.”
“…….”
순간 다프네는 그가 지금까지 툴툴거리며 심술을 부리던 모든 시간이 이해되었다.
열아홉은 원래 저런 나이다. 온 세상이 미워지는 법이지.
본인은 자신이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냥 몸만 큰 애송이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 어리네요.”
“……어른도 되지 못한 그쪽에게 그런 말 들을 이유 없습니다.”
“저도 다음 달이면 열여덟이에요. 법률이 인정한 어른이 되죠.”
“그것참 축하드립니다. 세금 많이 내시길. 손 뒤집어요.”
그는 다프네의 손 앞뒤로 골고루 약을 뿌려 주었다.
그런데 마플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 어째 다프네는 점점 배가 고파졌다. 어쩌면 피곤해서 눕고 싶다며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않은 탓일지도.
꾸르륵.
그가 약을 뿌리는 내내 다프네의 배에서는 식량을 달라는 난동이 일어났다.
그 방정맞은 소리가 방 안에 울릴 때마다 아셔는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물건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생리현상을 부정하는 건 좋지 않군요, 마플 씨.”
“당신은 조금은 부정해 보는 게 어떻습니까?”
그는 탁 소리를 내며 약병을 내려놓고, 바닥에 떨어진 가루까지 깔끔하게 닦았다.
정리를 마친 그는 방 한편에 놓인 물그릇으로 제 손을 박박 씻었다. 꼭 더러운 것이라도 만졌던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고도 만족하지 못했는지, 그는 ‘제기랄’이라고 중얼거리며 방을 나섰다.
그렇게까지 약이 많이 묻은 걸까? 하고 생각하는데 돌아온 그의 손에는 빵이 하나 들려 있었다.
그는 어떤 말도 없이 다프네의 입속에 빵을 쑤셔 넣었다.
맛있었다.
비록 손을 쓸 수 없어서 입술과 혀를 이리저리 사용해 가며 먹는 것은 조금 불편했지만, 그런 것을 따질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고마워요.”
빵을 다 삼킨 다프네가 감사를 표하자, 그가 의외라는 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순순히 그런 말을 하는 게 신기한 모양이다.
다프네는 그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쓸데없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버터와 블루베리 잼이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거예요.”
그의 얼굴이 흉측할 정도로 구겨졌다.
“제기랄, 이럴 줄 알았다고.”
그는 쓰고 있던 안경을 탁자 위로 탁 소리가 날 정도로 내려놓고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프네는 빙글 돌아눕는 그를 바라보며 헤실 웃고는 ‘농담이에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진짜로 농담이었다.
“고마워요, 진심으로.”
“……잘 거니까 조용히 해요.”
그 이후로 그는 돌아누운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프네는 약이 피부에 흡착된 후에야 램프를 끄고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오늘도 눈 밑이 시커멓게 되어 일어난 아셔는 ‘그쪽이 코를 골아서 못 잤다!’라며 몹시 화를 냈다.
다프네는 자신 때문에 못 잤다니 좀 미안하긴 했는데…….
‘……나 코 안 고는데.’
그런 생각에 조금은 억울하기도 했다.
아셔가 잠이 들지 못하는 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프네는 그게 뭔지 도저히 모르겠지만 말이다.
* * *
시간은 약속된 마지막 날을 향해 빠른 속도로 흘렀고, 그동안 다프네가 하는 일은 앞서 설명한 것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나고 몇 명의 손님이 돌아가는가 싶더니, 그 빈방으로 또 다른 손님들이 찾아와 공작에게 조의를 표하곤 했다.
새카만 정장을 입은 리암 슬로언은 굳은 얼굴로 그들의 위로를 받아들였다.
딱히 슬퍼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공작 위를 승계받는 일을 기뻐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의 감정이 들여다보이기라도 하면, 다프네가 뭔가 도움을 주어 그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한날한시에 부모를 잃었고, 그녀는 이미 지난 생에 이를 이겨 내는 과정을 한번 겪어 보았으니까.
늦은 밤이 되었다.
오늘은 식사를 잘 챙겨 먹고, 목욕을 마친 다프네는 지친 걸음으로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다른 사용인들은 거의 잠이 들었는지, 복도는 조용했다.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어떤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사용인들이 사용하는 방 앞에는 각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지금 그녀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방문에도 정갈한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서튼]
“아…….”
다프네는 이상한 기분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이 앞을 수도 없이 지나갔는데, 어째서 보지 못한 걸까?
다프네는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고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놀랍게도 문은 열려 있고, 그녀는 천천히 방문을 밀어 열었다.
좁은 문틈 사이로 향기가 흘렀다. 아마 오랫동안 이 안에 갇혀 있던 것이리라, 이토록 성급하게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것을 보면.
다프네는 호흡했다.
아빠 냄새가 났다.
아주 오래된 기억 속에 자리한 것인데도.
어쩌면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인데도.
그것을 맡는 순간에 바로 알았다.
“……아버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릴 때,
그녀의 바로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다프네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바로 뒤에 리암이 있었다. 언젠가 기차에서 그가 그녀의 짐을 함께 들어줄 때와 마찬가지로 무척 가까웠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가 놀랐으리라 생각한 그가 입술 끝을 가볍게 끌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사과하지.”
“……아닙니다.”
다프네는 아쉽지만, 문고리를 다시 당겼다.
“저야말로 사죄드립니다.”
이 저택은 모두 그의 소유였고, 다프네는 허락된 공간만 누릴 수 있는 사용인이었다.
그러니 ‘서튼의 방’을 엿보는 것은 명백히 그녀의 잘못이었다.
“내가 그렇게 냉혈한으로 보였던가?”
“예?”
“아버지의 자취를 쫓는 사람을 탓할 생각은 없는데.”
그의 팔이 다프네의 어깨 위를 가로지르듯 지나, 거의 닫힌 문을 밀어냈다.
“내가 워낙.”
그의 코끝이 그녀의 머릿결을 스쳤다.
“……향기에 약하기도 하고.”
다프네는 방으로 들어가며 그를 흘긋 돌아보았다.
그녀를 향해 가볍게 허리를 숙이고 있던 그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물론 과장임이 분명해 보였다) 자세를 바로 했다.
“저도 좋아하는 향입니다. 원하시면 비누 제조사를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나중에.”
그는 방 안으로 들어오며 문을 닫았다. 그 후에는 방 한편에 있는 램프를 밝혔다. 오래 비워 둔 방이나, 다행히 기름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방이 한결 더 밝아지자, 다프네의 시선에 아버지의 물건이 하나씩 눈에 띄었다.
대대로 남겨 놓은 간단한 일지, 서튼으로서 숙지해야 할 교양과 상식이 정리된 도서, 클롯모어 기차의 시간표 그리고…… 아버지가 즐겨 입으셨던 코트.
벽에 걸어 두고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입은 것인지 팔에는 주름이 잡혀 있었다.
다프네는 그것을 꺼내어 제 앞에 펼쳐 보았다.
두툼한 코트는 무게감 있게 툭 떨어졌다. 그녀의 무릎 아래까지 올 정도로 길었다.
“……크네요.”
별 의미 없이 중얼거린 후에는 그것을 푹 끌어안아 보았다.
깃 부분에 가만히 뺨을 대고 두 눈을 감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