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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3)화 (3/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3화

“죄송합니다. 빈자리가 없어서 그러는데, 혹시…….”

그는 맞은편에 있는 자리를 눈짓했고,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비어 있어요.”

“다행이군요. 감사합니다.”

그는 작은 손가방을 짐칸에 올려놓은 후에, 다프네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간격이 좁은 탓인지, 아니면 남자의 다리가 긴 탓인지 서로의 무릎이 살짝 부딪쳤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사과를 건네곤 두 다리를 복도 쪽으로 잔뜩 기울였다.

“두 분은 연인이신가요?”

조금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그가 친근하게 질문을 건넸다. 다프네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하나뿐인 친동생이랍니다! 아주 잘생겼죠?”

“누나!”

쓸데없이 덧붙인 말에 사무엘은 울상을 지었고, 맞은편의 남자는 쿡쿡 웃었다.

“네, 부럽네요. 잘생긴 동생과 여행이라니.”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자를 벗었다.

다프네는 이제야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이 남자.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어딘가에서 본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프네는 사무엘을 다시 돌아보며, 재차 강조했었다.

“어쨌든 슬로언 가문 사람들에게 네 존재를 절대 들키면 안 돼, 알았지?”

사무엘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다프네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이제 동생은 그 끔찍한 맹약의 희생자가 되지 않을 테니까.

“……?”

하지만 소중한 동생 외에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은 탓일까.

다프네는 맞은편에 앉은 신사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두 사람을 연신 번갈아 가며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아버지의 장례식은 늦은 밤 클롯모어의 대성당에서 치러졌다. 다프네는 사무엘을 멀리에 앉혀 놓고, 홀로 가족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그녀가 아버지를 닮은 은발을 지녔다는 것은 이럴 때 무척 도움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따로 자신을 소개하지 않아도 ‘서튼의 후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장례식은 예전에 그녀가 기억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슬로언 가문 사람 몇 명과 평소 아버지와 가까이 지낸 공작가의 사용인 몇 명이 참석한 조촐함까지도.

유일하게 다른 것이 있다면, 다프네가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다는 점일까.

두 번째 겪는 장례식이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은 몇 년이 지나도 희석되지 않았다.

다만 넋 놓고 슬퍼하기엔 지금 그녀의 상황이 복잡했다.

‘혹시 제가 조금 더 이른 시간으로 돌아갔다면, 아버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요?’

다프네는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만약 그랬다면 아버지께서 남은 5년의 맹약을 지키고 화염에 휩싸여 사라졌을 것이다.

마차 사고와 화염 중에 무엇이 더 괴로운지 우열을 가릴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다프네는 아버지를 그런 화염으로 밀어 넣고 싶지는 않았다.

* * *

장례식이 끝났다.

다프네는 성당 한편에서 조용히 장례에 참석한 사무엘을 향해 작게 눈짓했다.

당장 기차역으로 가라는 것이다. 그가 탑승해야 할 열차표는 이미 구매하여 그의 짐가방 속에 넣어 두었다.

사무엘은 다프네를 두고 갈 수 없다는 듯 몇 번 울상을 짓기는 했지만, 결국 무서운 누이의 명령을 어기지는 못했다.

“아버님 일은 유감입니다, 서튼 양.”

장례가 끝나자, 한 젊은 남성이 다가와 조의를 표했다. 은테 안경을 쓴 탓인지, 유난히 이지적으로 보였다.

어렴풋한 기억에, 지난 생에 이 남자를 만난 기억이 떠올랐다.

오늘과 같은 장례식에서.

「남동생분은 슬로언 가문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지내게 될 겁니다. 맹약의 마지막 사람이니.」

그는 차마 사무엘을 보내지 못하던 다프네에게 위와 같은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딱딱하고 사무적인 투였으나, 다프네는 저 말에서 약간의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사무엘은 정말로 ‘안전’할 것이라 철석같이 믿게 되었으니.

어쩌면 그녀가 사무엘의 안전을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딱히 달라지는 것이 없어, 모른 척 믿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전한 일자리는 아니었어. 결코.’

5년 후의 죽음이 예정되어 있으니까.

다프네는 눈앞의 남자 역시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왠지 그가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이 남자가 사무엘을 그 끔찍한 자리로 데려간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므로.

“위로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다프네 서튼입니다.”

다프네는 복잡한 마음을 억누르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아셔 마플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서튼의 후계자를 모시기 위해 수도의 자택으로 찾아갔었는데…….”

지난 생에 아셔 마플의 등장으로 남매가 당황했던 것과 반대로, 이번에는 아셔 마플이 텅 빈 집 앞에서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어쨌든 무사히 와 주셔서 다행입니다. 공작님도 수도에서 절차를 마치고 곧 여기로 돌아오실 겁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서튼 군은…….”

안경을 고쳐 쓴 남자의 시선이 다프네의 어깨 너머로 흘긋 향했다. 아마 그녀와 남동생이 오지 않았는지 신경을 쓰는 듯했다.

“마플 씨, 공작님께 말씀을 전해 주시겠어요?”

다프네는 그가 다른 말을 할 틈을 주지 않고서 빠르게 제 용건을 건넸다.

“저 다프네 서튼이, 맹약에 따라서 공작님을 모시기 위해 왔다고요.”

“……?!”

그가 적잖게 당황했다는 것은 연신 안경다리를 만지작거리는 것만 보아도 확실히 알 것 같았다.

* * *

아셔 마플은 다프네를 슬로언 저택으로 데려갔다.

사람들은 이곳을 ‘저택’이라 부르긴 하지만 사실상 여기는 ‘성채’라는 단어에 더욱 부합했다.

중앙 정원을 두고 그 주변을 완벽히 둘러싼 4층짜리 석조 건물은 그 규모가 거대한 것은 물론, 각 기둥이나 창문마다 서로 다른 모양의 조각 장식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어 지나치게 아름답기도 했다.

‘이런 저택이 제대로 유지가 되려면, 숨 쉬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겠네…….’

무엇보다 이렇게 방이 많아서야, 그걸 하나하나 관리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뭐, 내가 관리할 것은 아니니까 상관없지만.’

수행원이 할 일은 그저 공작의 수발을 완벽하게 드는 것뿐이니까.

아서 마플은 다프네를 노란 벽의 응접실로 안내했다.

“서튼 양, 제 말을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맞은편에 앉은 그는 이곳으로 오는 내내 참아 왔던 질문을 건네려는 듯했다. ‘서튼 양, 남동생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직 차가 오지도 않았어요, 마플 씨.”

다프네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로 답할 때, 마침 문이 열리고 제법 근사하게 생긴 풋맨이 차와 다과를 내주었다.

그가 소리 없이 찻잔을 내려놓는 사이, 다프네는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던 평정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모양이다. 두 눈에 묘하게 힘이 들어간 것이 느껴졌다.

“지금이 몇 시죠?”

다프네는 물러서려는 풋맨을 굳이 불러 세워 시간을 확인했다.

아셔를 더욱 애타게 만들려는 의도이기도 했고, 슬슬 사무엘이 열차를 탈 시간이 지나지 않았나 싶어서.

사무엘은 다섯 시 삼십 분 기차에 타게 될 예정이었다. 더 이른 것이 있다면 좋았을 테지만, 당장은 이게 최선이었다.

“마침 오후 다섯 시 정각입니다, 아가씨.”

“아…… 음, 고마워요.”

그녀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풋맨은 ‘얼마든지요.’라며 친절한 이야기를 남기고 응접실을 떠났다.

다프네는 곧바로 찻잔을 들었다.

이전에 그녀가 ‘차가 오지도 않았어요.’라는 말을 했기 때문인지, 아셔는 머리끝까지 달아오른 성급함을 여전히 참아 주고 있었다.

다프네는 저 남자가 진심으로 자신을 싫어하게 되었다는 데 제가 가진 모든 구두를 걸 수도 있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어떤 남자라도 다프네를 좋아하는 일은 없었다. 지난 생에서도…….

달칵.

다프네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의 남동생.”

아니나 다를까, 아셔가 기다렸다는 듯 노골적인 질문을 건넸다. 다프네는 그를 향해 빙긋 미소 지었다.

“욕심내지 마시길, 충성의 맹약에 따르는 건 한 명의 서튼뿐이니까.”

“말을 돌리는 건 그만두시죠, 서튼 양. 당신은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아시잖습니까.”

“아뇨, 모르겠습니다.”

다프네는 느릿하게 홍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전 서튼가의 장녀이고, 가문 사이의 맹약을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러니 저를 공작님께 인사시키세요.”

“하지만!”

아셔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당신은 여, 여성이지 않습니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다프네의 성별을 지적하는 그의 얼굴이 조금 붉었다. 금방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말이다.

“네, 하지만 그 이전에 서튼입니다. 맹약을 이행하는 데 아무런 문제는 없으리라 보는데요?”

“당신은 수행원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물론.”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아버지께서 하신 일이니까요.”

담담한 얼굴로 그리 이야기한 후에는, 깜빡 잊을 뻔했다는 듯 이야기를 덧붙였다.

“아, 제 조부님도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집안 대대로 그 임무를 맡았어요. 덕분에 어떤 일을 하는지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 왔답니다.”

공작의 수행원은 그의 곁에 머물며 그의 일상을 도왔다.

옷을 갈아입는 것이나 목욕을 돕는 것은 물론 여행과 출장에 동행하는 것도 수행원의 업무였다.

아셔가 다프네의 등장을 어이없어하는 것도 사실 이해는 되었다. 업무 내용상 같은 성별이 아니면 곤란한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됐으니, 이제 남동생이 있는 곳을 말씀하세요. 당신 같은 사람에게 공작님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왜죠?”

“그야……!”

아셔는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들었다. 차를 마시는 것으로 평정심을 되찾고 싶은 모양이다.

“당신이 여자니까요!”

“정확히 말씀하셔야지요. 주인과 수행원 사이에 연정이나 육체관계가 발생할 것이 두렵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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