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9화 〉1부 59화 새로운 도시 (59/66)



〈 59화 〉1부 59화 새로운 도시

역을 지나면서 사람들의 수는 빠져 나갔다. 그만큼 이쪽을 바라보던 눈알의 수도 줄어 들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이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어떻게 그 시선을 아는지 설명할  없다. 그냥 촉이다.  제 갈 길 가느라 바쁜 지하철 속에서 관심이 몰리다니.


어쩌면 혼자 착각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따금 이쪽을 쳐다보는 노란 눈알. 호기심이 가득한 작은 시선. 이쪽을 못 보게 가려버리는 또 다른 시선. 그런 것들이 서서 취하는 휴식을 방해한다.


“왜 이렇게 남한테 관심이 많은 거야?”


불쾌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해했다. 평생 눈알 하나 달린 것들만 보고 살아왔고, 그게 당연했을 사람들이었다. 제 눈에 비해 아주 작은 두 눈. 그에 비해 큰 코와 입. 신장에 비해 팔다리 길이가 일정하고 길지도 짧지도 않은 낯선 이의 모습은 어딜 가나 시선이 집중될 것이 분명했다.



앞으로  가방을 끌어안았다. 뒤로 멘 상태로는 벽에 기대기 힘들어서 앞으로  건데. 지금 당장 믿을  있는 것이 메고 있는 갈색 가방이라니. 큰 지하철 속 많은 이들 사이에서 챙겨온 짐이 가장 의지가 될 줄이야. 가방 색이 노란색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될 거야. 도시로 가면 뭔가  수 있는 게 있겠지!”


말도  되는 소리를 웅얼대며 밖을 쳐다봤다. 아침이다. 노란 태양이 하얗게 변한다. 하지만 땅과 건물과, 사람과 자동차는 그대로 칙칙한 회색이다. 회색 도시를 지난 지는 한참 되었는데 밖은 아직도 회색이다. 조금 전까지는 노란 것만 보였는데 이제는 회색만 보인다. 저 위에 뜬 태양의 빛은 그 누구에게도 흡수되지 않고 반사 된다.


“…여기는 정말 이상한 곳이야.”


창문에서 시선을 떼고 다시 벽에 기대었다. 딱딱한 벽이 아닌 폭신한 고무라 등이 편안하다. 천장을 보았다. 검다. 검은 천장이 보인다.
이번엔 아래를 보았다. 아까 숲을 다녀오면서 흙으로 더러워진 하얀 신발과 검은 바닥이 보인다.



기분이 묘했다.
이 세계에 발을 들여 넣고 적응하면서 이질감이 느껴지고 당장 돌아가고 싶었는데. 분명 조금 전까지도 노란 눈알과 시선과 회색 풍경에 정신이 멍했는데 더러워진 하얀 신발을 보고 나니 이상해졌다.



물들어 가는 걸까? 나도 저들처럼 회색 양복을 입게 되는 걸까? 피부를 회색으로 도배하고 눈에는 노란 렌즈라도 착용하게 되는 걸까? 눈도 하나 사라지고? 마치, 마치. 하얀 새 신발이 흙과 물에 젖어 색이 변하고 먼지와 모래로 더러워지는 것처럼?





 때. 다시 옆을 보니 지하철의 문과 문을 잇는 사잇문에서 몸을 기대다 햇볕이 들어오는 것을 알았다. 창을 통해 빛이 지하철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라. 고개를 배꼼 내밀었다.
햇볕이 지하철 안으로 들어왔다. 빛의 노란색이 딱 창문 크기만큼 기울어져 들어왔다. 칙칙한 회색 바닥에  그만큼만 노란색으로 물들어졌다.


그러다가 주황색. 하얀색으로 변했다. 순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어둡게 보였다. 볕이 들어온  자리만 빼놓고. 연극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처럼  빈자리만 빛났다. 그리고 눈을 비빌 것도 없이 빛은 사라졌다. 불과 몇 초의 시간이  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뭐지? 멍하게 생각에 잠기려 했지만 바로 근처에서 누군가 내리려고 일어나서 바로  자리에 차지해 앉았다. 누군가  자리라고 다가오면…그 때 비켜주지 뭐.








창밖을 하염없이 보다 보니 유독 사람이 많은 역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 걸 보면 여기가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대도시 중에 하나일 것이 분명했다. 황급히 지하철에서 나왔다. 서둘러 내리느라 혹시 빠진 건 없는지 걱정했지만 짐이라곤 집에서부터 들고 온 가방이 전부였다. 챙겨온 가방은 앞에 잘 메어 있다.


계단을 밟고 하나하나 밟으며 올라가자 하늘이 보였다. 보이는  연한 하늘과 재빠르게 올라가는 회색인간들의 그림자뿐이다. 하얀 하늘과 검은 어둠이 눈을 반씩 가린다. 밖은 어떨까? 서류가방을 들고 황급히 지나가는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마지막 계단을 밟고 드디어 지하철 역 밖으로 나왔다. 처음 와보는 장소. 처음 보는 풍경. 낯선 공기. 똑같은 사람들. 전부 다른 사람이지만 똑같이 큰 노란 눈. 여전히 나와는 다른 존재. 새로운 도시.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다. 게임으로 치면 챕터 1을 지나간 느낌.




“…게임으로 치면, 세이브 없고 한 번 밖에 못하는 게임. 한 마디로 망겜이지.”





아무도 안 듣는데 무어라 중얼거리고 한 걸음 내딛었다. 새 블록이다. 회색 도시에서 봤던 오래된 낡은 블록이 아닌 시멘트 냄새와 석회 냄새가 나는 새로 만든 돌로 깔려 있다. 기분이 이상해서 괜히 발로 몇  더 밟아봤다.






도착한 곳은 무인 모텔이다. 호텔도 있고 사람이 운영하는 모텔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없는 곳이 더 편하겠지? 다른 사람들이랑 마주치는 것도 불편하고 어차피 하루 자고 갈 곳을 찾는 것이니까.




체크인을 하고 침대에 가방을 올려놓고 안에서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공책을 꺼냈다. 안에는 해야 할 일과 알아야할 것을 적어 놨다. 일단 가는 곳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신문을 사는 것이다. 연예인이든 스포츠든. 정치 신문이든 뭐든 보이는  중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고 이슈로 삼는 것들을 모은다. 적어도  세계가 어떤 곳이고 어떻게 굴러 가는지는 알 테니까.





다음으로 이곳의 지명을 알아낸다. 지하철에는 노선도가 따로 없었고 어느 역인지는 차표를 통해서만 알  있었다. 그렇다는 건 사람들이 지명이나 지하철  이름을 알 필요가 없기 때문에 굳이 이름을 적지 않은 거겠지. 적지 않아도 여기가 어딘지 정확하게 할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 그전에 지도부터 사야겠다.”




가방 공간이  남으니까 속옷 몇 벌 사서 넣는다고 꽉 차진 않을 것 같다. 겉옷도 두어  챙겨왔다. 돈도 그간 심심치 않게 받아 적당히 많이 있으니 한동안은 아껴 쓰면 걱정 없을 것이다.










밥을 먹고 신문  부와 종이지도 두 장을 구입해서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방 안은 나올 때 그대로 가방은 열려 있고 침대 같이 이미 있던 가구 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휑하다. 보통 이런 도시에 올라오면 정신 안 차리면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도둑질을 당한다는데 그런 흔적은 전혀 없다.



하긴, 훔칠  없겠지. 중요한 라벨이나 지갑은 전부 내가 갖고 있었으니까.
침대 위에 앉아 지도를 훔쳐보다 휙 침대 아래를 쳐다봤다. 별 이유는 없다. 무섭다 거나 누군가 있을 거라든가. 그런 생각은 절대  했다.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심장이 지진   같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근데 왜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거야?



“악몽 몇 번 꿨다고 정신이 이상해 졌어…정신 차리자아!”



손바닥으로 양쪽 뺨을 가볍게 때리고 지도를 찬찬히 보았다. 지도 크기는 팔절지보다  사절지다. 그래서 그런 걸까? 두 손으로 들고 팔을 뻗어 봐도 한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역시 아직도 지명이 뭔지 모르겠다. 몇몇만 발음만 겨우 되는 수준이다.





세계지도로 보이는 건 나라나 수도 같은 주요지명 외에는 표시된 게 없다. 다만 지도 크기가 큰 덕에 전체적인 모양은  알겠다. 지도상으로는 대륙이  개로 나누어져 있는데 둘 다 단순히 어떤 모양이라 칭하기는 어렵다. 두 대륙 모두 위아래가 긴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그나마 아는 거라곤 서대륙의 크기가 동대륙 보다 크고, 보라색으로 칠해진 동대륙보다 노란색으로 칠해진 서대륙의 이름이  길다는 것 정도?





“같이 사온 지도도 봐야겠다.”





다음으로 꺼낸 지도는 처음 꺼낸 지도에 비해 크기가 작았다. 지명과  지도를 비교하며 여기가 어디일지 골똘히 생각했다. 대륙 자체는 서대륙이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 하면, 지도 이름이 서대륙 이름과 똑같고 결정적으로는 지도 한 켠에 대륙 전체의 모양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지명을 알아볼 수 없으니 여기가 어딘지 아직도 모르겠다. 안 되겠다. 신문을 보면서 같이 봐야겠다.


“제목이나 굵직굵직한 기사 내용을 보면 지도와 익숙한 이름은 있겠지!”


말은 쉽게 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지도 안에선 수도를 포함해 주요 도시부터 작은 지역까지 표시되어 있고 지하철 노선도까지 표시 되어 있다. 이곳의 언어를 전혀 모르는 나에겐 복잡한 그림 속에서 똑같은 그림을 찾는 일이기에 이것은 노동 그 자체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찾았다.



“서대륙. 내가 타고 온 지하철은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중간에 길게 그려진 노선도 역을 따라 가보면 근처 도시 이름이 보이지.
보니까 똑같은 이름을 가진 곳이 있네? 지하철 방향은 샛길로 새는  아니면 위아래로 움직이니까 이 근처 역에서부터 왔다 치면…회색 도시는 남부 지방에 있는 작은 도시이려나? 아니지. 어쩌면 북부 쪽일 수도 있어.”





흔히 남쪽이 덥고 북쪽이 추울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지구의 대한민국은 북반구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가 되면 옷을 껴입으며 추운 겨울을 맞지만 남반구에 있는 어느 대륙 지역은 반팔을 입고 더운 여름날에 맞으니까.





하지만 알아냈다. 과거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의 회색 도시는 작은 중소도시 정도이며 지금 온 지역은 그보다  도시다. 지명은 몰라도 이곳의 소식을 알 수 있을 거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라.



“이래서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한다니까?”





대견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곳에서 완벽히 적응하면서도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것이다. 되도록 살아서 돌아가야지. 다시는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을 것이다!



“어디 보자. 여기가 딱 중간 지점이니까…….”



지도에 적힌 지명을 최대한 똑같이 적고  위에 날짜를 적는다. 매일매일 이렇게 적으면 지도에 낙서를 해서 지저분하게 만들 필요도 없을 테니까. 오늘이랑 내일 오전까지는 여기 정보를 알아보며 이곳에 대해 기본적인 정보를 정리할 것이다.



“여기 언어를 배우면 신문이나 지도는 알아볼  있을 텐데. 일단 버리지 말고 잘 갖고 있다가 공부하면서 읽어봐야지! 이것도  도움이  거야.”




신문과 지도를 가방에 넣고 다시 방문을 열려고 문손잡이를 잡았다.
거리를 나갈 생각을 하며 문고리를 돌리고 열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루나야!”
“…시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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