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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화 〉1부 50화 오류 (50/66)



〈 50화 〉1부 50화 오류

땅으로 꺼진 건지 아니면 하늘로 솟았는지.


벌떡 일어나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숲 안쪽까지 들어가서 찾았지만.


정안이의 작은 몸이 드리워진 연한 그림자조차 찾을  없었다.

조금 전까지 거대했던 아름다운 위성은 천천히, 그렇지만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작아졌고.


작아지고 작아지다 이내 멈추더니 다른 별처럼 반짝반짝 빛을 내다 구름에 의해 가려졌다.

“달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별이 보이던 맑은 밤하늘은 여느 여름밤처럼 비와 먹구름이 드리워졌고.

촉촉해졌던 몸은 다시 두꺼운 바늘같은 비를 뚫고서 진득한 땅을 밟았다.


 발이, 몸의 본능이 향하는 길이 어디인지도 모른  계속해서.





‘나중에 또 정안이랑 놀게 해주세요.’

그래, 그런 유치한 소원을 비는  아니었다.

언제까지나 같이 있게 해달라고 해야만 했다.

 곁에, 항상 영원히 같이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빌어야, 그래야 했는데.





“…나야! 루나야!”


“아….”

잠이 덜 깨서 그런 걸까?

내 이름을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윙윙 울린다.


“루나야. 얼른 일어나렴.”

“누구세요….”

“누구긴, 우리  엄마지.”


“…엄마?”


눈을 번쩍 뜨고 벌떡 일어나 앉아 엄마라고 부르는 여자를 쳐다봤다.

엄마.

그 말에 장에서부터 올라오는 역한 반응과 함께 거북해서 화를 내고 싶었지만.


노려보고 싫다는 표정을 지어도 늙은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루나야, 요즘 공부하느라 피곤했니?
땀을 이렇게 많이 흘려서야. 엄마 너무 걱정된다.”


“…….”

“아침에 많이 먹으면 졸릴 것 같아서 죽을 좀 만들었어.
그거 먹고 몸  괜찮으면 샌드위치도 먹어. 알겠지?”

“…….”

“휴, 알았다고 대답이라도 해주면 덧나니?”


늙은 여자의 다그치는 목소리에도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녀를 엄마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없었다.

“엄만 루나 너밖에 없어. 알지?
이제 일하러  테니까 오늘도 학교 가서 공부 열심히 하고. 응?”

여자는 그렇게 말하곤 한숨을 쉬면서 잘 다녀오라고 말하고 방 밖으로 나갔다.


“…웃겨 정말.
자기 자식이 누군지도 못 알아보면서 내 엄마래.”

비를 맞아 노곤해진 몸은 느릿느릿 움직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눈을 깜빡이며 조금 멍청히 있다 문득 어젯밤의 꿈같은 기억을 느릿느릿 떠올렸다.






눈을 뜨자마자 별똥별이 지는 걸 보고서 옆으로 돌아봤을 때, 정안이 보이지 않았다.

“정안아?”

분명 조금 전까지 소원을 빌어 보자고 같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는데.

비록 늦은 밤에 같이 있다가 사라진 거기에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곧 당황하지 않고 숲 안쪽과 작은 풀숲까지 찾아봤다.

“당장 어딜 간다고 해봐야 그 짧은 두 다리로 달린대도 멀리 갈 리가 없지.”`


하지만 달도 잠이 들고 점점 더 이성을 잃어가지만, 정안을 찾을 수 없었다.

먹구름이 진 깜깜한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내렸다.

축축해진 옷이 차가운 몸을 스치자 무척 따갑고 불쾌했다.

“정안아! 어디 있어! 인제 그만 나와!”


숲 입구로 돌아와 숲 안을 향해 크게 소리쳤지만 그 소리는 폭포 같은 빗소리에 묻혔고.

가로등도 들지 않는 입구는 전날의 꿈을 생각나게 했다.

비가 그치자 정안이가 역까지 찾아왔고, 따라가니 같이 묻혀버리던 그 꿈.

“무서워. 정안아.”

 작은 고사리손이 차갑게 식어 있는 걸 발견한다면 난 어쩌면 좋지.

“정안아!”


퍼붓는 빗속을 홀로 뚫고 지나가며 정안의 이름을 몇 번 불렀는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여태 사랑을 담아 불렀던 숫자보다 애타게 찾으며 부른 수가  많았을 거다.

겉옷이 사라진 젖은 옷을 입고, 거의 맨몸이나 다를 바 없이 홀로 거리를 걸었다.


달이 비쳐예뻤던 회색 도시의 밤거리가 검게 변해 초라한 제 모습을 보며 비웃는 것 같고.

먹구름은 잔뜩 화가 났는지 걷다가도 덜덜 떨려서 이따금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어려웠다.

“정안아.”


어디로 간 거니. 살아있긴 거지?

어둠에 가려진 짙은 제 그림자도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손가락질 하는 것일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아무도 없는 땅을 밟는 이 상황이 너무 우스워.


잡힐 것 같으면 놓치고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아아. 제발. 정안아. 어디에 있는 거니.

“…….”

몸은 온도가 자꾸 내려가서 슬슬 위험하다는  느꼈는지 열을 내려고 점점 더 세게 떨었다.

이 날씨는 당연히 일어날 일이었기에 시지프도 한참 전부터 열심히 찾고 있거나.

또는 집에서 기다리면서 돌아오지 않는 저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기에 빨리 돌아가야 한다.

당장 지금은 그녀의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반드시 찾아야 해.”

대여섯 살  작고 어린아이가 이 빗속에서 멀쩡하게 집으로 돌아갈 리가 없잖아.


“헉, 헉.”


쏴아-.

심하게 떨리는 몸으로 비를 맞으며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앞을 걸으면서 속으로 외쳤다.


이정안, 이정안, 이정안.

초점 없는 시야. 끊어져 가는 정신.

 상태에서 기억하기 위해 계속해서 머릿속에 넣어두었다.


비틀거리며 간신히 걷다 보니 문득 지진 난 땅 위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아.”

그렇게 한계에 다다랐다고 느낄 때쯤 멀리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


그 사람은 깜빡깜빡하는 가로등을 지나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발소리가 빨라지고 점점 커지자 어디로 급하게 가는 것인가 생각해서 옆으로 슬쩍 빠졌다.

그런데 그가 몸을 꽉 껴안으며 울부짖으며 이렇게 소리쳤다.

“루나야! 루나야! 여기서 뭐 해!”


“…아줌마.”

정안의 어머니가 다정한 눈빛으로 이쪽을 찬찬히 쳐다봤다.


이곳저곳을 휙휙 훑어보며 안심한 듯 한숨을 쉬더니 언성을 높였다.


“지금까지 어디 있다 오는 거니?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엄마?”

귀에 들은 것을 의심했다. ‘엄마’라고?

“꼴이 이게 뭐니! 얼른 집에 가자.
여기 이렇게 있으면 감기에 걸려. 엄마도 놀라서 우산 던지고 와 버렸네.”

아줌마는 자기  아래를 비로 젖은 손수건을 몇 번 찍고서 가자고 손을 잡고 끌었다.


“자, 잠깐만요.
아줌마, 갑자기  그러세요?”

“아줌마? 지금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아니 이게 무슨.
아주머니가 왜 제 엄마예요. 당신은 정안이 엄마잖아요.”


본인 생각만 하면서 아들 생각이라고 합리화하고 가식 떨고 위선자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만난 거로 이번엔 내가  아줌마 딸이 되었다는 식으로 가는 거야?

“이상한 연기 좀 그만 하세요. 저 말고 당신 아들 챙기라고요.
 빗속에서 당신 귀한 아들 죽게 생겼다고!”


당신 아들이 사라졌다고. 감기 이상으로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인데 왜 이렇게 태평해?


“위선이고 가식이고, 저한테 욕할 때가 아니에요. 되도 않는 연기는 거기까지만 봐드리겠어요.
하늘 보세요. 비가 장난 아니게 떨어져요. 당신 아들 찾아야 한다고요.”

“이루나.”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당신 자식 아니라고.”

“이루나!”

아줌마를 좋아하진 않는다.

그래도 ‘이러나저러나 자기 아들이 사라졌다는데 이쯤에서 연기는 그만두겠지.’

그렇게 생각했던 방식이 바보 같은 것이었다.

마침내 화가 난 아줌마가 꽥 소리를 질렀을 때.

균형을 잃어 중심을 잡지 못한 몸이 결국 앞으로 쓰러지고 아줌마의 품에 안기면서.


간당간당 버티던 정신이 끊어지면서 스스로 인정하지 못한 말도 안 되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정안이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런 어젯밤이 지나고 다시 아침이 되었다.


거대하고 아름답던 달과 작고 따뜻했던 손을 가진 어린아이.

커다란  주위로 별똥별이 떨어지는 하늘 아래서 기도를 했던 순간.

사랑하고 아끼던 모든 게 단지 과거의 흔한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정안의 어머니는 자꾸 엄마라고 주장하며 정안의 방으로 끌고 들여보내 눕히며.

스스로 ‘엄마’라는 말을 내뱉을 때까지 손을 놔주지 않았다.


정안의 방이라고 했지만, 그가 이 마을 어딘가에 남긴 흔적은 없었다.

“아지트에 가볼까.”

그렇게 다짐하고 나가려고 하면 정안의 엄마가 학생이 놀면  된다고 말하며.

억지로 나가겠다고 버티고 있으면 약간의 무력으로 제압하고 방으로 다시 보냈다.

옆집에 사는 사람이 누구든 아줌마는 절대 가지 못하게 했다.

“그 사람이 우리 금쪽같은 딸한테 어떤 속내를 가지고 있을지 어떻게 알아.”


그리고 밤이 되어 돌아오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내게 볼에 입을 맞추려고 했다.


그 순간은 매번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모습에 여태 알던 아줌마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아줌마가 밖을 나가면 매일 밤 흔적이 사라진 정안의 방‘이었던 곳’에서 자야 했지만.

눈을 감으면 차갑고 딱딱하고 거무죽죽한 그 작은 손과.

비에 젖어 축축하고 차갑게 식어가는 끔찍한 죽은 것이 떠올랐다.


잠들 수 있을 리가 없다.


 밑은 점점 거뭇거뭇하게 변해가고 피부는 거칠어지고.

먹고 나면 어느 순간 몸이 거부해서 다시 위로 뱉어내곤 했다.


가끔은 햇빛이 좋을 시간에 마당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의자에 앉아 보며 기분 전환을 해보려고 했지만.

조금이라도 괜찮아졌다 싶은 순간 전날의 기억이 머릿속을 헤집고 제멋대로 돌아다녔다.


그러고 나면 부드럽고 따뜻하던 햇볕이 화살이 되어 날아왔고.

빛은 따가운 비가 되어 떨어져 온몸이 아픈 것 같아 몸부림치다.

결국 정신이 버티지 못해 도망치듯 다시현관 안으로 들어오곤 했다.

그렇게 무의미하고 복잡한 감정만 쌓여가는 이틀이 지나갔다.


전혀 모르는 외눈들을 친구라며 아는 척 인사를 하며 하는  마는 둥 학교생활을 보냈고.


아줌마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다가오는 입술을 막아내며 애써 잠에 들려 노력했다.

시지프는 화가 나서 일부러 안 오는 걸까? 아니면 벌써 떠난 거라 생각한 걸까?


얼마  직접 벨을 누르고 찾아왔던 그녀는 그동안 한 번도 이곳을 찾아오지 않았다.

꿈같던 이 세계서 정안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숲 안쪽에 심어둔 씨앗과 별똥별 이야기도 혼자만의 이야기로 남게 되었다.

동시에 정안이가 사라지기 이전의 ‘루나’라는 존재도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몰랐다.


마치, 처음부터 이방인 ‘루나’라는 인물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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