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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화 〉1부 23화 어머님 뜻대로..하세요? (23/66)



〈 23화 〉1부 23화 어머님 뜻대로..하세요?

“정안아. 누나가 사실 요리를 잘하지 못해.
근데.
누나가 기억하는 지식으로는 샌드위치를 만들 때는 식빵을 너무 많이 굽지 않는 게 좋아.
아무리 바싹하게 구운 식감이 좋다고 해도 말이야.”


식빵은 기본적으로 바싹하게 구우면 딱딱한 빵가루가 많이 날린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정안에게 많이 굽지 말라 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바싹하게 구우면 빵을 잡고 먹을  세게 누르면서 쉽게 부서지고 조각이 많이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안에 다른 내용물을 먹을 때 먹기 힘들 수가 있다.

그 때문에 샌드위치용으로 만들 때는 아주 살짝만 익혀서 부드러운 빵으로 먹는 게 제일 좋다.

[근데, 엄마는 바사카게 구우시는대?]

“바싹하게 구워주신다고?
뭐, 그럼 그건 어머님 방식대로 하는 거지.”

말대로 기억나는 건 이정도니까.

다른 사람은 완전히 다르게 만들 수도 있겠지.


“하지만 누나의 머릿속 지식으로는 그렇게 기억해.
손에 묻는 바삭하고 딱딱한 빵가루 때문에 먹는 것도 더럽게 먹힌다고.
만약 빵을 바싹하게 구우면 칼로 잘라 먹어야  거라고.
나중에 크면 어머니께 한 번 해드려 봐.”

팬에 구운 식빵을 뒤집어 보니 딱 알맞게 구워졌다.

마지막으로 구운 식빵에 고기가 붙은 튀김 조각과 샐러드를 올리면 된다.


“식빵. 튀김옷. 샐러드. 토마토. 식빵.
다 올렸네.
케첩이랑 마요네즈만 뿌리면 되겠어.
케첩은 냉장고에 있지?”

자칫 튀김과 샐러드만 올리면 텁텁하고 묽기만 해서 따로따로 노는 맛이 날 수도 있는데.


케첩에 마요네즈까지 뿌리니 한결 나아졌다.


“계란프라이라도 하면 좋겠지만.  힘든걸.
이미 계란 들어갔으니까.
어차피 반숙이니 상관없을 수도.”

얼토당토않은 말이지만 지쳐서 그렇게 넘기고 뒷정리를 했다.

“아. 밥도 저어야지.
수분이 뭉치면 안 되니까.”

밥은 이미 끝난 지 오래여서 전기밥솥 뚜껑을 열었다.

밥에서는 뜨겁고 뽀얀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고슬고슬한 향에 밥알마다 윤기가 난다.


뜨거운 연기에 잠깐 주춤했지만 이내 손으로 휘휘 저으며 주걱으로 젓고 뚜껑을 다시 닫았다.


“정안아. 저녁 먹자!”


쟁반에 샌드위치를 두고 칼로 먹기 좋게 썰자 케첩과 마요네즈가 녹아 줄줄 흘러내린다.


잘라낸 단면에서 수증기도 같이 나오는데. 핫도그 냄새가 나온다.

휴지로 샌드위치를 잡은 다음,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었다.


튀김 조각에 샐러드가 들어갔다니.

이거야말로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야채 크로켓에 고기를 넣은 햄버거를 먹으면 이런 맛이 날  같다.

미리 마중 나온 살짝 구운 식빵을 물면 바삭한 튀김과 잘 익은 부드러운 고기가 맞이하고.


과일 샐러드랑 왈츠를 추고 있던 케첩과 마요네즈가 인사를 한다.

나는 인사를 받아주기도 전에 정신없이 입안에 넣고 혀로 굴리고 이빨로 오물오물 씹고 작별 인사도 없이 꿀꺽 삼켜버린다.


삼켜버리고 나면 맛있다는 감탄사만 날릴 뿐!

조금 더 입안에서 맛을 보고 싶어도 내 손에는 아직 인사를 하겠다고 손을 벌리는 샌드위치가 남아있다.

대여섯 개 만든 샌드위치는 금방 두 입속으로 사라졌다.


“잘 먹었어?”

정안은 엄지손가락을  폈다.

“맛있었어?
정안이가 맛있었다니까 누나가  뿌듯하다.
근데 지금 몇 시지. 벌써 밤인가?”


물음에 정안이 공책에 쓰려 하자 막았다.

“아니야. 이렇게 일일이 써서 대답해 줄 필요는 없어.
그냥 누나가 나가서 보고 올게.
아까 하던 거. 점토마저 만들고 있어.”

철컥. 끼익.

열리는 현관문 사이로 고개를 빼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은 붉은색에서 거뭇거뭇하게 변하고 있다.

“진짜 저녁 시간에 먹었구나.
 일곱  반쯤 되었으려나?”

당장 들어가려다가 조금 걸어 보고 싶어서 문을 반쯤 열고 마당으로 나왔다.

문을 열고 나오니  안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후텁지근한 공기가 몸을 확 감싼다.

현관문에서 대문까지 왔다 갔다 걸어 보지만.


똑바로 뜬 눈이 자꾸만 감기는 텁텁한 오후다.


시간 한 번 알아보겠다고 현관문 열고 하늘을 보는 날이 오다니.


여기는 다 있는데 시계는 누가 개발 안 해주나.

시계도 없는데 심지어 무슨 집에 작은 창문조차 없어!


나중에 화재 일어나거나 지각하면 큰일 터지겠다.

아 참. 여기는 그럴 일 없다고 했지.


누가 그런 말 했더라. 시지프였지, 아마?


다른 집 지붕들을 멍하니 보면서 딴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옆집이 눈에 띄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왼쪽에 보이는 집.

시지프가 산다던 옆집은 이 집과 달리 대문을 따라 회색 벽돌로 벽이 높게 쳐져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집은 아주 큰 건지 지붕은 벽을 넘어 삐져나와 파란색이라는  알  있었다.

“색도 참 자기 눈동자 같이 닮았네.”

짙은 파란색의 넓은 지붕은 그것만 봐도 집이 어느 정도 넓을 집이 상상된다.


옆집의 높은 벽이 햇빛에 맞으면서 이쪽에 어두운 그림자가 진다.


첫날 이 마을에 왔을 때는 모든 색의 지붕이 회색으로 보였는데.

너무 어둡고 차갑게만 보여서  벽이 이렇게 높아 그림자를 질 거라는 생각도 안 들었지.


하지만 이제는 정안의 집과 시지프의 집의 색이 보인다.


검은색과 파란색. 그 나머지의 회색.

회색으로 도배된 사람들과 건물.


노란 눈으로만 바라보는 세계.

날이 어두워져 외눈박이들이 모두 문을 닫고 잠에 빠지면.


낮에는  수 없는 크고 작은 밝은 빛들이 아주 잠깐 나와 춤을 추는 밤.


모두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피곤함에 절어 무기력하게 숨만 붙어사는 차가운 곳.


그게  마을에서 내가 보고 있는 모습이다.


정안의 집 지붕과 시지프의  지붕을 번갈아 쳐다봤다.


“내 눈이 이상한 게 아니라면 옆집도 처음 봤을 땐 지붕 색이 따로 없었는데.”

사람이 눈에 들어오니까 지붕도 눈에 들어오는 건가.


처음엔 온통 회색이던 이곳은 이젠 마냥 회색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외눈박이를 만날수록 이렇게 색이 하나씩 드러나겠지.

지붕이고 사람이고 눈에 들어가는 색이 점점 알록달록해질 것이다.


같은 외눈박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라 각각의 존재가 나눠져 있듯이.

노란 눈이라고 다 같은 노란 눈이 아닌 것처럼.


앞으로  마을에서 보이는 색은 점점 많이, 아주 다양하게 보일 것이다.

아침 점심 저녁에 보이는 하늘이 매일매일 조금씩 다르게 드러나고.


이곳에 오래 머물면서 자연스럽게 이들의 방식에 녹아들겠지.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이방인이 마을을 찾았을 때 내가 회색 도시에 존재하는 흔한 외눈박이로 보이고.


이방인도 흔한 외눈박이로 생각하며 지나치고.


다른 존재의 사소한 질문과 행동에 반응해주는 것도 귀찮을 것이고.


관심도 없는 사람이  물건을 건들었다는 생각이 들면 가차 없이 그 목을 부러뜨리려 할 것이고.


어쩌면 옆에 보이는 작은 아이는 벌레로,  웃는 사람은 유별나게 보일지도 모른다.

혹시 눈도 외눈박이로 변하는 거 아니야?

드디어 내가 미쳤구나!

“노을이 지려고 하니까 감성이 올라왔나?
이상한 생각만 하고 있네. 큭큭.”


이런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생각들을 하고 있자니 웃음이 나온다.


거뭇거뭇한 하늘 위에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도 그런 나를 비웃는  같아.

“얼른 들어가서 정리하고 쉬어야지.
내일은 또 어떤  할지 모르니.”


지친 몸으로 주방으로 가서 정리를 끝내고 방으로 가서 눕고 바로 잠든 것인지.


어느새 다시 눈을 떴을 땐 다음 날 아침이었다.

밤새 ‘루나’는 꿈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며 천천히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돈하면서 다른 걸 발견했다.


머리가 짧은. 작은 여자아이를 만든 조각상이었다.


정안의 그림에서 보였던 파란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다리를 가지런하게 모은  꼿꼿이 서 있다.


점토색이 황색이라 알록달록하진 않지만, 꽤 세심하고 생동감 있다.


“정안이가 엊그제부터 만지던 점토가 이거였나?”

선물로 준 건가. 절로 미소가 나온다.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문을 벌컥 열고 쿵쿵 1층으로 내려와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뛰어갔다.

정안은 평소처럼 하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정안아!
이거 누나 준 거야? 고마워.
 간직할게!”

헉.

정안의 맞은편에 정안의 어머니가 앉아 같이 밥을 떠먹고 있었다.


당황해서 황급히 조각을 숨겼다.


“아. 아주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주머니는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나를 쓱 보더니, 식사를 계속했다.


오늘도 무시당하는구나.

예. 아무렴. 하던 식사나 하세요.


식탁에서는 둘 사이에 숟가락으로 밥그릇 긁는 소리만 들린다.


정안은 자신의 엄마랑 있는 것이 불편한 걸까.

의자에 엉덩이를 반만 붙인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눈은 반쯤   밥을 입에 한가득 물기만 하고 삼키질 못하고 있었다.

아줌마는 식사가 끝난 건지 자기 밥그릇과 숟가락을 싱크대에 가서 깨끗하게 씻고 올려뒀다.


그리고 주방을 나서기 전에 의자에 앉아 우물거리는 제 아들 옆에 서서.


어깨에 손을 올리고 얼굴을 가까이 붙이고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렴.
특히 저런 건. 세상 꼴 보기 싫은 짓이니까.”

뭐? 꼴 보기 싫은 짓?

“그리고. 거기 아가씨.
아니지, 학생.
내가  날 지켜봐 주고 넘어갔는데.
애한테 이상한  가르치지 마. 거슬리니까.”


“뭐, 뭐라고요? 이상한 거라뇨?”


“하긴.
손버릇 나쁜 근본 없는 이한테 이런 이야기 하는 것도 참.
비켜요. 사람 지나다니는 길 막고 뭐 하는 건지.”

아줌마는 빠르게 거실을 지나치고 현관으로 향하다 멈춰서고 뇌까렸다.

목소리의 높고 낮음 없이 저렇게 또박또박 말하니 열은 오르는데 할 말은 생각나지 않아 멍청하게 서 있었다.

끼익. 철컥.

그렇게 아줌마는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나갔다.


허.  저런 여자를 다 봤나.


“아, 진짜 저걸 확.”

쿠당탕.


아줌마를 따라 현관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주방에서 큰 소리가 났다.
뭔가가 떨어진 소리 같다.

“정안아. 뭐 떨어뜨렸어?”

현관에서 크게 말했지만 잘 들리지 않는 걸까. 정안은 보이지 않는다.


내 목소리가 들렸다면 의자에서 당장 내려와서 복도로 나와 괜찮다고 웃었을 텐데.

“정안아?”


다시 불러도 오기는커녕 작은 기척도 없다.

불안한 마음에 신다 만 신발을 던져버리고 당장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 들어가자마자 밥그릇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보인다.

초조함에 주방으로 왔더니 작은 몸집의 어린아이가 힘없이 축 늘어져 바닥에 옆으로 누워 있다.


“정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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