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1부 22화 계란튀김
정확히 설명하면 고기를 둘러서 가루를 묻힌 뒤에 튀긴 것이다.
[누난 이거 만드러 봐써?]
“어?
어어. 당연하지!
누나만 믿어!”
오늘따라 거짓말도 많이 한다.
요리해보기는 개뿔. 기억도 못 찾고 집이 어딘지도 몰라서 여기서 얹어 살고 있는데.
지금 나는 머릿속에 남은 지식으로 해보는 것뿐이다.
물론 손재주도 없는데 이런 어려운 이름을 안다는 건 요리에 재주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해본 적도 없고 손재주도 없으면 망칠 게 뻔하다.
그래서 이왕이면 정안이가 하고 싶어 하는 요리로 하면 좋았겠지만.
이왕 해볼 거면 맛있을 것 같은 거로 시도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실패라는 걸 굳이 해봐야 아는 건 아니니까!
정안이와 내가 장을 보러 가서 사 온 것들을 꺼내 정리했고, 나는 가스레인지 쪽으로 다가갔다.
가스레인지 아래에는 서랍 세 개가 달려 있었다.
“여기에 있을 텐데.
아, 여기 있네.”
뒤적이다 제일 아래 서랍을 열어 보니 밀가루와 빵가루 같은 여러 가루 종류가 들어 있었다.
“일단 밀가루와 빵가루는 모두 들어가고.
다행히 후추나 소금도 있네.
달걀이랑 버터는 장바구니랑 냉장고에 들어있었으니까. 재료는 다 있네.”
그렇게 서랍과 냉장고를 뒤져가면서 재료를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정안에게 일일이 물어보며 점검했다.
“재료는 준비가 되었고.
누나는 고기에 소금이랑 후추로 간을 할 테니까 달걀을 냄비에 넣고 물을 담아줄래?”
대여섯 살은 조금 어려운 일일 수도 있지만, 애 보고 소금이랑 후추를 털어달라고 할 수는 없다.
정안이 작은 키와 힘으로 후들후들하면서 잘 해내는 동안 나는 이미 갈려 있는 고기를 꺼내 후추와 소금을 골고루 뿌렸다.
고기에 간을 다 하자, 정안이 주는 냄비를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불을 켠 다음 고기를 뭉쳐 몇 개씩 나누었다.
달걀이 들어간 냄비는 금방 끓어 뚜껑이 덜덜 흔들리며 움직였다.
냄비에 있던 반숙된 달걀을 정안이와 함께 껍질을 벗긴 뒤, 달걀을 밀가루에 묻히고 랩 안에서 미리 펴둔 고기를 말았다.
그리고 밀가루를 묻히고, 달걀 물에 빵가루까지 묻힌 것까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제 이걸 여러 개 만들어서 기름에 튀기기만 하면 된다.
정안은 고기로 말은 삶은 달걀에 가루와 계란 물을 묻히는 게 신기한 건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열심히 묻혔다.
그렇게 다 만들고 움푹 파인 프라이팬, 중화요리용 팬을 올리고 식용유를 부었다.
가스레인지 손잡이를 끝까지 돌리자 팡, 불꽃이 튀면서 강한 불이 빨갛고 파랗게 붙었다.
딱. 탁. 탁탁.
잠잠했던 표면은 시간이 조금 지나자 기름방울이 작게 튀기 시작하더니.
이내 공기 방울이 올라오고 팬 안에 든 기름이 끓어 넘실넘실 흔들렸다.
“이제 여기에 간 고기를 두른 달걀들을 붓자.”
달걀들을 올린 쟁반을 들고 온 정안은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칙-. 쫙-. 촤아악-.
달걀들을 퐁당 집어넣으니 시원하게 튀겨지는 소리가 연신 들린다.
“이렇게 튀기니까 빗소리 같다.”
튀김이 들어간 팬에서는 기름방울이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빵가루에 밀가루도 묻혔으니까 금방 바삭바삭 해지겠다. 그치!”
살짝 덜 익은 노른자에 매끈한 흰자, 거기에 바삭바삭하게 씹히는 튀김까지.
아, 벌써 군침이 돈다.
이리저리 굴리면서 익히다 보니 어느 정도 노릇노릇하게 익혀지는 게 보인다.
팬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튀김의 겉면을 확인했다.
“어라, 벌써 다 익었네. 생각보다 빨리 익는구나.
다른 것들도 얼른 넣어야지!”
팬에 들어 있던 튀김들을 꺼냈고 다른 달걀들을 새로 집어넣었다.
“꺅!”
비명과 함께 가스레인지에서 뒤로 물러나자, 정안은 내 짧은 비명에 헐레벌떡 뛰어왔다.
“씁. 아파라. 아으.”
정안은 내 짧은 비명에 다급하게 뛰어와 어쩔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굴렀다.
“아냐. 별로 안 다쳤어.
그냥 깜짝 놀라서 그래.”
웃으면서 정안을 안심시켰지만.
달걀을 하나씩 넣으면서 손이나 팔에 팬에 들어있던 기름이 팍 튀었다.
불에 오래 달궈진 뜨거운 기름이 튀어서 따갑고 아픈데, 쓰고 있던 오른손에는 다른 곳보다 더 많이 튀어서 손등 전체가 얼얼하고 군데군데 따끔거린다.
당황한 정안을 안정시키고 급히 싱크대에 가서 흐르는 찬물에 식히긴 했지만 화끈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뭐. 나중에 물집 좀 지고 말겠지.
계속 요리하자.
손등을 찬물로 어느 정도 씻기고 다시 가스레인지로 돌아와서 젓가락을 잡고 튀김을 뒤집었다.
“아으. 따끔해.”
뜨거운 불과 달궈진 팬의 열기가 다친 오른손등을 자극한다.
처음에는 꾹 참고하려 했지만 열기에 닿은 손등은 많이 따끔거리고 화끈했다.
안 그래도 화상이 입기 전에도 더워서 땀이 많이 나왔는데 화상까지 입고 나니 죽을 맛이다.
땀과 열기와 고통에 헤롱헤롱 거리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하아. 하. 윽.
숨도 잘 안 쉬어지고, 닦고 닦아도 흘러나오는 땀과 열기 때문에 눈을 뜨기도 힘들다.
이놈의 요리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간단한 인스턴트식품으로 해 먹을걸.
정안이가 하자는 대로 요리하다가 무리하게 다른 요리를 시도한 탓에 숨 막혀 죽을 뻔했지만.
그래도 이미 시작한 거 끝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다 보니 어느새 고기에 말린 계란은 튀겨지고 거의 다 만들어져 간다.
중간중간에 땀 때문에 안 보여서 고개 돌리거나 덜 젓기도 했지만, 얼추 튀김 색깔이나 모양새는 조금씩 나온다.
치직. 치지직. 칙.
마침 밥솥도 안에서 밥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거 다 끝나고 샐러드까지 하면 저녁 시간 딱 되겠다.”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고, 기름이 튀는 것을 막기를 여러 번 하다 보니 튀김이 완성되었다.
“후. 완성이다!”
안될 것 같았지만 어찌어찌해서 겉면으로 보기에는 완성이 된 것 같다.
완성된 계란 튀김, 스카치 에그를 들고 샐러드와 함께 식탁에 올려두니 그럴싸하다.
정안은 이미 자리에 앉아 포크를 들고 먹을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한 번 먹어볼까?
튀김을 과도로 조심스럽게 잘라 입에 넣었다.
“음, 맛이.
음? 이게 뭐야. 퉤.”
작 익은 계란과 함께 물컹하게 씹히는 비린 맛이 느껴졌다.
뱉어보니 고기가 덜 익은 덩어리가 계란이랑 섞었다.
“고기가 안 익었어?
정안아. 잠깐만 먹지 말아봐.”
튀김은 익었는데 고기가 안 익었다.
다른 것들도 열어보니 마찬가지였다.
“헐. 뭐야.
고기가 전부 하나도 안 익었어?”
화상도 입고 땀도 줄줄 흘리면서 겨우 만든 것들인데.
그렇게 힘들게 고생해서 만든 건데. 절망이다.
물론 튀김은 잘 익었지만, 속에 달걀은 뜨거운 기름에서 튀겼음에도 미지근하고 고기는 반도 안 익었다.
왜 하나도 안 익었지?
기름이 더 뜨거웠을 때 넣어야 했나?
중간 불이나 약한 불로 해야 했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튀길 때 강한 불로만 쭉 했다.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고기가 무슨 고기건 튀김옷 안에 있으니까 제대로 익으려면 약한 불이나 중간 불로 둬야 하는 건데.
튀김을 하기 위해 강한 불로 하는 이유는 기름을 예열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제야 생각났다.
불 조절이 잘못된 게 원인이라면 생각보다 튀김이 빨리 익었다 느낀 것도 이해가 된다.
어이없는 실수에 한숨이 새어 나온다.
“뒷정리도 이미 다 끝난 마당에 이걸 다시 익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외눈박이 사는 곳 와서 요리도 해보고 제대로 망치고, 잘하는 짓이다.
아니. 이런 낯선 곳에 떨어져서 잘하는 것도 없으면 마법이라도 주던가.
손재주도 없고, 이런 요리 하나 못하는 게 말이나 돼?
도대체 나란 인간은 어떤 사람이었던 거야?
정안은 얼굴을 찡그린 내 얼굴을 본 건지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왼팔을 톡톡 건드렸다.
“배 된장국을 하는 게 나았을지도.
이걸 어떻게 먹어.”
그래. 차라리 정안이가 원하는 대로 배 된장국에, 레몬 껍질 수프를.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배 된장국이랑 레몬 껍질 수프는, 그거는 정말 아니야.
아. 진짜 어떻게 하지?
애초에 손재주도 없는데 이런 시도를 한 내가 멍청이지.
짜증 나서 스스로 내 머리채를 쥐어 잡고 세게 흔들었다.
저녁으로 밥에 채소 샐러드에 김치만 올리는 건 지옥에서의 만찬이나 다를 바 없는데.
샐러드.
“샐러드?”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번쩍 떠올랐다.
“정안아.
숟가락 가져와.”
맞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굳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 중에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이것만 있는 건 아니지.
이렇게 망치면 아주 간단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잖아.
“정안아. 우리 집에 식빵 남아 있는 거 있니?”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정안은 의자에서 폴짝 뛰어 내려와 식빵을 찾아왔다.
식빵, 채소 샐러드, 삶은 달걀과 튀김 껍데기.
“샌드위치를 만들자.”
그러면 망친 것도 버릴 필요 없고, 덜 위험하니까 금방 만들 거야!
“정안아, 이거 달걀이랑 튀김이랑 분리해야 해!
그거 내려놓고 얼른 와서 도와줄래?”
나는 숟가락을 들고 와 정안과 함께 달걀에 붙은 튀김을 갈라 숟가락으로 달걀을 꺼냈다.
그렇게 빼낸 달걀을 다른 그릇에 옮겨 숟가락으로 으깨기 시작했다.
반숙된 달걀들은 노른자가 조금 녹아있었는데.
숟가락으로 으깰 때마다 노른자의 묽은 물이 부드러운 노른자와 섞인다.
“정안아. 이건 네가 해줄래?”
정안에게는 원래 따로 먹으려 했던 채소 샐러드에 마요네즈와 으깬 계란을 부어 비벼달라고 부탁했다.
불에 닿는 것도 아니고 비비기만 하는 거니까 다치지는 않을 테고.
설령 지쳐서 비비다 말면 내가 하면 된다.
그렇게 정안이 비닐장갑을 끼고 으깬 달걀과 샐러드에 마요네즈를 뿌린 그릇에 비비는 동안.
계란을 감쌌던 튀김을 펴서 프라이팬에 고기가 아래로 가도록 올리고 익지 않은 고기를 익혔다.
기름에 젖은 튀김 조각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움찔움찔한다.
튀김 조각을 고기 속까지 완전히 익히고 도마를 꺼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마트에서 사 온 토마토를 꺼내어 도마 위에 올리고 칼로 얇지 않다 싶을 만큼의 두께로 썰었다.
빨간 빛깔을 뽐내는 큰 토마토를 동그란 모양으로 썰고.
썬 것들을 반씩 자를 때마다 토마토 특유의 향이 코끝을 아찔하게 찌른다.
이전에 먹다 남겨 둔 식빵 몇 개와 새 식빵 봉지를 꺼내서 프라이팬에 살짝 구워준다.
정안은 그 새 다 한 건지 발판을 들고 와 가스레인지에서 조금 떨어진 싱크대 쪽에 서서 구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