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화 〉1부 7화 혀가 내 손에 (7/66)



〈 7화 〉1부 7화 혀가 내 손에

"지프님?"



건강하고 밝아 보였던 시지프는 얼굴과 목은 땀에 범벅이고, 주변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이 젖었고, 무엇보다 숨을 쉬는 것을 어려워했다.

"지프 님, 오늘 말씀 재미있었어요.
많이 피곤하신 것 같은데, 좀 쉬셔야 할 것 같아요."

시지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두 손으로 탁자를 누르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몸과 얼굴의 시선이 일치하지 않고, 파란 그 눈은 반쯤 풀린 채 넋을 놓고 있었다.
몸은 비틀거리며 스스로 제 몸을 가누지 못해, 그녀가 간이침대에 누울 때까지 내가 부축해 줘야 했다.




"오늘 케이크 맛있었어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지, 금, 헉, 이니까.
문, 헉, 부탁, 헉.“


시지프는 숨을 색색거리면서 입술을 조금씩 움직이며 무언가를 말했다.




"문 팻말 바꿔 달라는 거죠?
알겠어요."




시지프는 내 말에 이미 반쯤 감겨 있던 눈을 천천히 감았는데, 눈이 감기면서 눈꺼풀을 부르르 떨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커튼을 닫고 탕비실을 나오니 밝지 않은 주황빛의 조명이 위에서 많은 꽃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런데 오후가 돼서 그런 걸까?
꽃들이 어쩐지 조금씩 시들해 보였다.
아침에 보였던 싱싱한 붉은 장미는 지금 보니 이파리가 노랗게 시들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게다가 가게 문도 열려 있는데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았네."

게다가 어두운 조명을 오후가 되면서 밝게 바꾸지 않아, 가게가 한층 어둡고 차가워 보였다.
거기에 오전과 달리 약간 시들어져 버린 꽃은 어두운 가게 분위기에 한층 싸한 분위기와 어두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나는 조금 전 꿨던 꿈이 떠올라 괜스레 두려워져 헐레벌떡 문 앞으로 뛰어가 팻말을 'closed'로 바꾸고 서둘러 문을 열고 나왔다.
나오고 보니, 가게 안에서 오후 네다섯 시쯤 되었다고 생각했던 하늘은 거의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결국, 얻은 건 별로 없었네.
저 여자도 이상했고.
뭐,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지만."




...
...
...

정안의 집에 도착하자, 안에서는 정안이 큰 외눈으로 긴 속눈썹을 깜빡거리며 반겨주고 있었다.
나는 그의 큰 얼굴을 쓰다듬어 주며 이제 몸은 괜찮냐고 물었다.
정안은 괜찮은 듯 고개를 끄덕거린 뒤 방방 뛰며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 들어가자 아침에 청소했던 자리에 여러 장난감이나 과자 쓰레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안이 한 짓인  같다.
정안은 자신이 벌려놓은 짓이 부끄러웠는지 몸을 비비 꼬았다.
아이의 얼굴은 빨개졌고, 두 손으로 자신의 큰 눈을 가렸다.



"풋, 벌여놓은 게 창피하긴 했구나?
배고프지?
일단 밥부터 먹자.
이건 누나가 치워줄게."



정안은 그 말에 방방 뛰며 나를 껴안아 주었다.

정안의 어머니는 집에 오지 않았다.
정안은 내가 차려 준 저녁을 먹은  2층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거실에서 주방까지 이어진 쓰레기와 장난감을 정리하며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아침에 정안이 아파서 혼자 갔던 꽃집, 들어가자마자 함정에 당하고 많은 약에 파묻힐 뻔한 이상한 꿈을 꾸고, 일어나보니 인간으로 보이는 시지프라는 여자가 카운터에 있었지.
꽃에 이상한 이름을 붙인 것들을 내가 지구에 있었을 때 지었던 이름들로 바꿔뒀고,  뒤에 차랑 케이크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고.
차의 향은 역해서  먹었지만, 케이크는 정말 맛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시지프라는 사람은 보라색의 그 과일을 좋아하는 건가?“




생크림 케이크 위에 보라색이 섞인 크림이 발려져 있었고, 차 역시 과일에서 우린 차라고  했다.
그걸 같이 먹은 뒤에 시지프가 갑자기 힘들어해서 눕혀주고 집에 왔던 게 기억난다.




"그러고 보니, 오늘 보라색의 무언가를 많이 접한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침에 정안이 실컷 먹었던 식빵에 발려 있던 잼도 보라색이었다.
나는 이것들을 몇  생각해보다가 냉장고 문을 확 열고  병을 꺼내어 병에 적힌 글자를 눈으로 읽어보았다.

'Mors pilulas dormienti'

"이게 그 과일 이름인가?
역시, 처음 보는 과일 이름이야.
아무래도 내일 과일 가게로 가서 아줌마한테 여쭈어보던지 해야겠어."



비록 이   없는 것이 나에게 도움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이 이상한 세계에서 유독  눈에 띈다.
조심스럽게 잼 병에 이름이 붙은 라벨을 벗기고, 잼을 냉장고에 제자리에  다음 라벨만 챙긴 채 어질러진 자리를 마저 정리했다.


...
...
...

"꺅!"



다음날, 아침을 먹고 바로 나가려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정안의 엄마가 내 손을 잡아 끌어당겨, 자신의  혀로 손을 핥았기 때문이다.
정안의 어머니는 꽤 흥분한 듯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 하며, 가는 손으로 내 오른 손목을  쥐고 긴 혀를 늘어뜨린 채 목에 핏대를 세우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기괴한 모습은 마음속에 공포를 심어주기 충분했다.

...
...
...

일단 먼저  상황을 설명하려면 지금 이 상황으로부터  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나는 어제 보다 일찍이 일어나 과일 가게에 가기 위해, 잼 병에서 떼어낸 라벨지를 바지 뒷주머니에 구겨 넣고 1층으로 내려갔다.
정안은 아직 잠을 자는 건지 부엌에는 정안의 엄마만 있었다.




"아주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주머니는 냉장고에서 방금까지 뭔가를 찾고 있었던 것인지, 내 부름에 냉장고 문을 닫고 몸을 돌려 내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평소에는 심술궂은 느낌이 강했던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외눈으로 나를 매섭게 째려보고 있었다.
밤새 일을 하다 이제야 돌아온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아주머니의 눈에는 눈그늘이 진하게 드리워져 있었고  볼은 쏙 들어가 있었다.
 면적의  얼굴에서 피부는 거칠어져, 마치 깃털을 몽땅 뽑아버리면 보이는 살아 있는 닭의 생 피부 같았다.
처음에 봤을 때도 적어 보였던 눈썹의 숱은   하루 새에  빠진 걸까?
눈썹이 있던 자리는 털에 가려져 있던 작은 뾰루지가 남은 털 사이에서 보인다.
매우 가느다란 몸에  얼굴을 가진 존재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자니 우스꽝스러웠지만, 막상 그녀는 정말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나는 긴장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정안의 엄마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곧 내 쪽으로 빠르게 걸어왔다.
그리고 대뜸 자신의 가늘고 긴 손으로 내 오른손을 세게 잡아 빼지 못하게 했다.

"악.
아주머니, 아파요.
손 빼주세요."



그녀는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잡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주머니?"

그리고, 자신의 혀를  뺐다.



“헉.”


순간 눈앞에 보이는 모습에 기절할 뻔 했다.
큰 얼굴에 외눈.
늙어가는 외모 아래로 보이는 터무니없게 가녀린 그녀의 몸.

처음에 봤던 고상한 모습과는 다르게 튀어나올 듯한 그녀의 모습에서 턱 아래로 내려오는 긴 혀는 괴물같이 보였다.
그녀의 혀는 마치 개미핥기의 혀처럼, 그녀의 혀는 매우 길고 축 처져 있어 침이 혀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헉, 헉.
저기요,  그러세요."


미친개한테 물리기라도 한 건가, 광기 돈 그녀의 모습에 잡힌 손을 풀려 애썼다.
눈까지 풀려버린 그녀의 모습은 한 아이의 엄마가 아닌, 어떤 광기에 사로잡힌 괴물이었다.
그녀는  긴 혀로  오른손을 쭉 핥았다.


츄르르습-.


"꺅!"




아줌마의 행동에 경악했고, 혀로 밀린 오른손에 소름이 돋았다.
아주머니라고 부르기에도 무서운 그녀는  화가 난 듯 다른 한 손으로 내 목을 쥐었다.

"컥.
아, 아줌마.
정신, 정신 좀 차리세요. 캑."



가냘픈 팔과 손을 가졌지만, 상대적으로 어린 나는 그녀를 힘으로 이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내 목과 손을 강하게 잡는 동시에, 반쯤 쉰 목소리로 씩씩대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오루스, 내 오루스!
어디 있어.
네가 훈쳤지, 그런 거지, 응!"
"캑. 훈쳐. 훔쳤다니요?"



긴 혀를 내빼면서 말했기에 발음은 어눌했고, 말을 하면서 생긴 침이 그녀의 혀를 타고 주르륵 흘러 바닥에 뚝뚝 떨어지며 질퍽하게 고였다.

오루스? 그게 뭔데!
나는 모른다고 소리치며 그녀가 세게 목을 쥐거나 손목을 누를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그러다 그녀가 계속해서 혀를 뺀 채 '오루스'를 외치다가 순간적으로 혀를 넣다 빼면서 '모르스'라는 말을 확실하게 들었다.


모르스라면, 설마 잼? 잼 이름?

‘모르스 필라루스 도미엔티’

아니겠지, 하면서도 꽤 흥분한 듯 광기 들린 그녀가 새빨간 얼굴로 가는 손으로  손목을 꽉 쥐고 긴 혀를 늘어뜨린  목에 핏대를 세우며 목이 잡힌 나를 노려보고 있자 그것이 맞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끔찍한 모습을  수 없어 찡그린 채 고개를 애써 돌리며 울먹이며 말했다.

"아, 흑.
아줌마, 저 흑,  아니에요.
이거, 놔요. 놓으라고요. 흡."

그 맛없는 잼을 제가 왜 훔칩니까?
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녀는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화냈다.


"웃기지 마!
모르스 어쨌어, 어쨌냐고!"


나는 찡그린 얼굴 그대로 반쯤 눈을  채 혼신을 다해 고개를 저으며 왼손으로 목과 오른손을 잡은 손을 풀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그런  모습이 우스웠던 걸까?
아니면 화를 내도 대답하지 않는 내 뻔뻔한 태도에 헛웃음을 지은 걸까?
그녀는 자신의 혀를 입안에 넣었다가도, 빼서 내 얼굴 앞에다 대고 날름거리며 광기에 여린 미소를 지었다.

"너도 결국 똑같은 거였지.
이래서   개 달린 이방인은 받아주면  돼.
남의 물건이 자기 것인  알고 마음대로 가진다니까?
키 킥, 내가 참 멍청하기도 하지.
그냥 넌 죽어. 죽어버려!"



가녀리지만 강한 손에 목이 잡힌 나는 눈을 제대로   없었고 숨이 막히는 것 때문에 죽을 것 같다.
숨이 막히는 고통이 오는 와중에 목에서 따가운 느낌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녀가 내 목을 쥐면서 손톱이 목에 상처를 낸 것 같았다.
목에서는 서늘한 동시에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젠 괴물로 보이는 그녀는 나를 벽으로 밀어붙여 살짝 지친 건지 내 손목을 잡았던 손을 풀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손으로 힘껏 밀쳤고, 가녀린 몸을 버티지 못한 그녀는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그 틈을  내가 신발을 들고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부엌에서는 뒤로 넘어진 채  일어나는 그녀가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나는 지칠 때까지 달리고 달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도망치다  지점에서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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