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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1부 5화 멍청한 엉더, 뭐요? (5/66)



〈 5화 〉1부 5화 멍청한 엉더, 뭐요?

알약은 계속해서 쏟아진다.
쏟아지고 쏟아져 순식간에 몸에 반까지 올라왔다.
수많은 약에 의해 허리 아래는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여기 그냥 있으면 위험해.
뭐라도, 뭐라도 해야 해!


코까지 닿은 역한  냄새에 잠시 아찔했지만 나는 약들을 밀고 밀며 벽에 그려진 구름 그림 중 하나를 주먹으로 때리며 부수기 시작했다.

손에서는 붉은 피가 흐르며 성한 곳 없이 상처투성이가  간다.
그러나 벽이 약했던 것일까?
구름이 그려진 부분에 작은 구멍이 생겼고, 구멍 사이로 밝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분명히  너머에는 곧 이 많은 약에서 파묻힐 나를 살릴 큰 공간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희망에 차 손에서 느껴지는 고통도 잊은 채 계속해서 벽을 때렸다.
그깟 작은 공간을 향해   때린다고 벽이 부서질까.
하지만 구멍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때리면서 점점 벽에는 금이 가면서, 마침내 벽은 부서졌다.

파사삭.


검은 배경에 옅은 먹구름이 그려진 벽 너머에는 눈을 뜨고  수 없는 하얗고 강한 빛이 벽을 부수고 떨어지는 나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셀 수 없이 많은 알약과 함께 어딘가로 떨어졌다.
윙윙 울리는 소리와 알약 한두 개가 투두둑, 주변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
...
...

"허, 허억!
허, 허어. 하.
하?"



정신이  나는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하아, 하아.“

다행히도, 꿈인 건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스스로 상태를 진정시켜보려 시도했다.
하지만 꿈이 시작된 시점에 대해 심하게 혼란이 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봤다.



"그래.
나는 마을 시내를 구경하려고 밖에 나왔고, 꽃집을 구경하려고 문을 열고 들어갔고.
들어가 보니 문은 사라지고 붕 뜬 듯한 느낌을 받았지.
그렇다면 꽃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전부 꿈인 건가?
그럼 나는 꽃집에 들어가자마자 기절을 했다고?"


게다가, 중간에 들렸던 음성.


'벌써 포기하려고?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거라더니.
너도 우습다 우스워.'


그림이었지만 또렷이 기억 나는 그 많은 구름들과, 몸을 뒤덮는 엄청난 양의 하얀 알약.



"정말 해괴한 꿈이었는데, 갑자기  내가 이런 꿈을 꾸는 거지.
게다가 갑자기 기절이라니, 사실은 무슨  병이 있던 건 아니었을까.
엄청난 숫자의 알약도 나왔으니까 그럴듯해.
하지만, 구름이 그려진 벽은 설명이 불가능한데."



꿈에 대해 생각하던 내가 문득, 다시 하나하나 되짚어 보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꽃집에 들어서자마자 기절한 거라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어디지?"

나는 딱딱한 간이침대에서 일어났는데, 주변에는 얇은 살구색 천 커튼이 쳐져 있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나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것 같다.
병원인가? 후다닥 침대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고 커튼을 걷었다.
커튼을  걷자, 눈앞에는 여러 꽃이 화려한 모습으로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었다.
꽃? 웬 꽃이 있는 거지?



"이제 일어났어요?"

갑자기 들려 온 여성의 목소리 때문에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겨우 진정하고 차분하게 인사를 했다.
카운터에서 일하고 있던 그 차분한 목소리를 가진 여성은 그런 나에게 그저 미소를 짓고 있엇다.
사과와 감사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심코 움직이려다가 흠칫 놀랐지만.
다시 찬찬히 그 여성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태 봐왔던 대두에 외눈이라던가 얼굴과 비교해 매우 작고 가는 몸을 가진 것이 아닌, 나와 같은 인간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그 여성은 다른 똑같은 외눈에  얼굴을 가진 사람과 달리 그들과 전혀 다른, 평범한 인간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두 개에 코가 있다는 사실부터 놀라웠지만.
크지 않은 얼굴에 16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적당한 키.
진한 일자 눈썹에 반듯한 눈매와 진한 쌍꺼풀과 보조개와 붉은 기가 도는 입술은 지구에서 남자들에게 얼굴만으로도 인기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만큼 상당한 미인이었다.

또한 그녀는 볼 때마다 늘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명랑하면서도 20대답지 않은 무게와 성숙함이 느껴졌다.
다만, 검은색에 가까운 눈썹과 단발머리를 한 그녀였지만 눈동자는 짙은 파란색 눈동자를 띄었다는  이질적이었다.

여러모로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나는 곧 사과를 우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자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헉.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 잠이 들었나 봐요.
병원에 데려다주셔도 되는데, 제가 신세를 졌습니다.
가게에 오시자마자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셔서 당황하셨을 텐데.
제가 초면에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주절주절 말하는 나에게 여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말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병원에 모셔다드리고 싶었는데, 여기서 큰 병원으로 가려면 좀  멀리 가야 해서요.
앞에 세워진 병원은 그렇게 일찍 열지 않더라고요.
보시다시피 여긴 소방서나 경찰서도 없는 외딴곳이라, 시내여도 응급차가 오는 시간은  걸려서요.
다치신  아닌 듯해서 제가 쉬는 곳에서 재워드렸어요."

그 말 뒤에 여자는 파출소는 있다면서 치안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는 여기에 꽃집이 있다고 들어서 구경 왔어요.
꽃을 많이 좋아하는  아닌데, 이번에 관심을 가졌거든요."

내 말에 그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 그거참 좋은 일이네요!
천천히 구경하다 가요.
아가씨는 정말 운이 좋으세요.
오늘 정말 괜찮은 꽃들이 많이 들어왔거든요."
"그럼, 조금 구경하다 갈게요."

그녀는 내 말에 싱긋 웃고 다른 꽃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밖을 보니 아직 오후는 아닌 것 같지만, 이른 아침은 이미 지난 지 오래된 듯하다.


"저어, 저 몇 시간 동안 여기서 잠들어 있었나요?"




가게 주인은 자기 일에 금세 집중한 것인지  말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일하느라 바쁜가 보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아는 꽃이 뭐가 있나 둘러봤다.
처음에는 꽃은 지구에서 본 거랑 비슷비슷한가 보네, 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면 뭔가 조금씩 달랐다.
이를테면 붉은 장미를 'rose'가 아닌 'stultus asinum'라고 부른다거나, 핑크빛이 드러나는 모란을 'peony'가 아닌 'pinguis regem'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름 참 길다.
스츌터스 아시눔? 핑귀스 리검?
이게 다 무슨 말인지."



그때, 여자가 뒤에서 미소를 띤  말했다.



"각각 '멍청한 엉덩이', '뚱뚱한 왕'이라는 뜻이에요."
"네?
멍청한 엉, 뭐라고요?"
"아, 여기 사람들은 비꼬아서 말하는   좋아하거든요."
"저, 저렇게 말하는 걸 좋아한다고요?"




나는 당황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렇게 예쁘기만 한 꽃들인데 여기서는 저런 이름을 붙인다니.
얼빠진 표정으로 꽃집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다 아차, 하는 마음에 침착하게 애써 웃으며 다시 물었다.


"비꼬아서 말한다.
그거 참 특이하네요.
그럼  꽃들, 원래 이름은 따로 있나요?"



내가 묻는 말에 여자는 어깨를 으쓱 올리며 대답했다.



"네. 하지만 그 이름으로 꽃을 팔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사려고 하지 않거든요."
"그렇지만, 얘네들도 원래 이름이 있었을 텐데요.
이런 이상한 이름 말고,  더 예쁜 의미를 가진 이름이요."



여자는 내 말에 아무 말 하지 않고 지긋이 나를 쳐다봤다.
아, 실수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렇게 내가 스스로 자책하며 후회하는 사이, 그녀는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아까는 제가 실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여자는 아까의 나처럼 고개를 숙이며 주절주절 말하지도, 그렇다고 비아냥거리지도 않았다.
담백하고 깔끔한 사과였다.
그 사과를 받은 나는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저 여자도 내가 살았던 곳에서 온 사람일까?
내가 알고 있는 평범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기도 했지만.
이 곳에 난 데 없이 떨어진 이후로 이런 태도를 갖춘 사람은 처음 봤다.


자기 가게에 들어 온 손님이라 자각하고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에서 다른 외눈박이들과 결정적으로 무언가가 달랐다.
어쩌면, 혹시 어쩌면 그녀는 지구의 인간일지도 몰라!



"저기 혹시."
"아가씨.
혹시  꽃들이 원래 이름이 뭔지 아시나요?"

여자는 내 말을 자르고 물었다.
아니, 고의는 아니었다면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라!

"아니요. 잘 몰라요."
"그래요.
아가씨 말대로 이름을 바꿔야겠어요.
이번에 새로 들어 온 상품이 몇 개 있는데, 아가씨가 여기 앞에 있는 꽃이랑 같이 이름 좀 새로 정해주실 수 있나요?"
"예? 그래도 되나요?”

여자의 말은 계속해서 나를 놀라게 한다.
원래 이름이 따로 있는데 처음 본 사람한테 자기 가게에 있는 꽃의 이름을 바꿔달라니.
무슨 사장이 이래?



“얘네 이름이 원래 다른 이름일 텐데, 제가 말하는 대로 바꾸기에는 좀 그럴 것 같은데요."
"아뇨.
여기 사람들은 이름이 원래 뭐였던 신경 쓰지 않아요.
그저 한 번 와서 보고 마음에 들면 사 가는 거죠.
그렇다 보니 이 꽃들도 원래 이름으로는  안 불린답니다."

그런가요,  대답에 여자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부족하지만 제가 도와드릴게요."



내 말에 여자는 고맙다고 말하며 꽃의 이름을 쓸 종이와 펜을 들고 왔다.



"일단 멍청한 엉, 은요.
장미, 라는 이름이 어울릴 것 같아요.
일  중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게 핀다는 뜻으로요."
"장미라, 괜찮은 이름이네요.
그럼, 여기 있는 뚱뚱한 왕은 어떤 이름이 괜찮을까요?"



꽃집 여자의 물음에 '모란'이라는 이름이 좋겠다고 대답했고, 그 이유를 나름 말이  만한 근거를 대었다.
그 이후에 여자와 함께 가게를 돌아다니며 지구에서 봤던 꽃들을 손으로 짚어주며 이름을 바꿔주었다.
여자는 모두 괜찮은 이름 같다며 종이에 적고, 가게에 있는 여러 꽃의 이름을 소개했다.


...
...
...



여자가 '몇 개'라고 말했던 수십 송이의 꽃들의 이름을 오전 내내 지어주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정오를 향하고 있었다.
가게 주인이 간간이 쉬거나 손님을 대접하는 용도로 쓰는 듯한 작은 탕비실에는 동그란 흰 탁자가 있었는데.
한참 동안 가게를 돌아다니며 쭈그려 앉았다 일어서며 지쳤던 나는 동그란 탁자 앞에 놓인 하얀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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