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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1부 4화 꽃 속에서 움직이는 구름 (4/66)



〈 4화 〉1부 4화 꽃 속에서 움직이는 구름

도로에는 자동차가 빼곡히 줄지어 서 있어 하늘에는 먼지와 매연으로 가득했고, 인도에는 차마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이질적인 회색 어딘가에 노란 것이 박힌 존재들이 있어 시내는 마치 산업화 시대의 지구의 거리를 생각하게 했다.

그들은 하나 같이 피로에 절어 있는 건지 눈이 반쯤 풀려 있었지만 다급하게 어딘가를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여긴 지구도 아니고 지구보다 더 이상해 보였지만, 외모만 다를 뿐이지 정말 지구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북적이는 무리를 비집고 빠져나왔다.



"아.
여기에 마을 지도가 있네."


인도한 가운데에 마을 소개와 마을의 지도가 적힌 표지판이 붙은 작은 기둥이 서 있었다.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Griseo Civitatem]
Receperint griseo ad urbem.
-Non arboribus.
-# I popularibus urbes’


"키 그리서? 이건 아마 마을 이름인 것 같고.
 아보러버스? 뭐가 없다는 건가?"


이 말 아래에는 지도에 간단하게 가게나 갈림길로 이어지는 곳이 어디인지 단어로 적혀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림에는 장소마다 해석할  없는 말들로 가득했지만, 어디가 어디인지는 대강 유추할 수 있었다.

"내가 방금 나온 길은 시내로 나오는 길인 것 같고, 다른 길들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네.
도로를 기준으로 왼쪽에는 마트랑 학교가 있고, 앞으로 쭉 가면 사거리가 나오는구나.
거기서 왼쪽 길은 노래방이나 영화관이 있고, 오른쪽 길로 가면 약국이 있고, 거기서  가면 꽃집이 있구나.
이 도로에서 사거리를 지나면 고속도로로 이어지고."



지금 시간을 대강 유추해보니 아침 10시 쯤 되었으려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세상 빠르고 다급한 이곳은 시계가 그 어디에도 달리지 않았다.



"아직 아침이기도 하고 배는 아까 채웠으니까, 점심때까지 어디 들어가지 말고 둘러봐야겠다."



...
...
...


시내는 한참 동안 북적여서 한동안은 지도 앞에서 꼼짝도 못 한 채 그들이 조금이라도 빠지길 기다렸다.
많은 외눈박이들이 지나가고 북적이는 탓에 좀처럼 줄어들지 않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눈에 띄게 한산해졌고, 나는 그제야 움직였다.

먼저 사거리의 오른쪽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특히 내가 자세히 보고 싶던 곳은 꽃집이었다.
숲에서 질리도록 봤던 것들을 이곳에서는 나무 한 그루,  한 포기 안 자라 그리워졌달까?
꽃 역시 처음 들꽃이 즐비하게 피어있던 들판에서 일어난 뒤로는  적이 없었다.
꽃집은 사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주택이나 약국 같은 다른 건물들과 달리 건물의 벽이 파스텔 색조의 분홍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어 제법 밝고 따뜻해 보였다.
가게 간판에는 흐리면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글씨체로 'Somnum mortis' 라고 적혀 있었다.



"와.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글씨가 정말 예쁘다."



나는 안에 보이는 꽃들을 바라보곤 꽃집의 문을 열었다.

딸랑-.


문에 달린 작은 종의 경쾌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동시에, 들어왔던 문은 덜컥, 소리를 내며 닫혔다.


“응?”


밖에서 보았던 발랄한 분위기의 꽃집의 안은, 암흑  자체였다.
들어왔던 문은 덜컥,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고 작게 딸랑-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맑게 문을 열고 들어온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뭐야 이거 왜-꺅!"

들어올 때 밟았던 단단한 돌바닥은 어디  걸까?
발에 안정감을 주고 있던 딱딱함 대신에 이제는 붕 뜨고 있는 듯한  발은 제대로 서지 못한  비틀거린다.
아니, 사실은  발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뜨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강한 공포가 느껴졌다.
갑자기 훅 떨어지면 죽는 걸까, 하는 생각이 엄습한다.


무섭다.
갑작스러운 이 상황에 놀라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는데, 다행이라면 몸은 스스로 뜬  당장은 떨어지지도, 올라가지도 않았다.

"허어어, 어어. 흑.
뭐야. 함정인 거야?
무슨 마법을 부린 거냐 고오.
으앙.
나 이제 떨어지는 거야?"



버둥버둥 안간힘을 쓰며 뒤로 돌아 문이 있던 자리를 손으로 더듬더듬 만져봤지만,  자리엔 문은커녕 공허한 어둠만 존재했다.
점점 마음은 초조와 불안으로 가득 차고, 머릿속은 하얘져 간다.

"문. 문은 어디 간 거야.
여기서 나가고 싶어!
제발,  좀 열어줘.
 좀 나가게 해줘.  좀 내버려 둬!"



아무렇게나 두 팔다리를 강하게 휘두르고 머리를 세게 내젓자, 단정하게 묶었던 머리칼이 산발이 되고 붕 떠 있던 몸은 이리저리 탱탱볼처럼 방향을 바꾸며 움직였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무서웠던 것은 말은 제대로   있는 와중에 팔다리와 이곳저곳으로 흩날리는 머리칼의 움직임이 두 눈에 똑똑히 보일 만큼 아주 느리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흩날리는 머리칼의 갈래가 몇 개인지 셀 수 있을 만큼 매우 천천히, 내 뇌와 눈동자를 제외한 내 몸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하아, 하아."



그렇게 한참을 발버둥 치던 나는 지쳐서 대자로 뻗은  둥둥 떠다녔다.

흐읍, 후. 흐읍, 후우.


입으로 크게 들숨 날숨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쿵, 쾅, 쿵, 쾅.


잘 들리지 않는 심장 소리가, 고요한 어둠 속에서 작게 울린다.
움직이지 않는 몸은 그대로 늘어진 채, 우주처럼 고요하고 칠흑 같은  어둠에서 둥둥 떠다니며 이리저리 돌기도 하고 뒤집히기도 한다.

하지만 어지럽지 않아, 아까처럼 무섭지도 않고.
오히려 햇빛이 내리쬐는 바다에서 튜브를 끼고 둥둥   누워 있는 것처럼 편안해.
요동치지 않은 채 제멋대로 움직이는 탓에 몸은 어느새 대자로 누운 채,  뜬 채 어딘가로 움직이는 이 상황에 적응하고 있었다.

아침에 이곳에 왔는데 지금은 몇 시쯤 되었을까?
조금씩 나른해지고, 이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중얼거렸다.

"이곳이 함정이면 뭐 어때.
사거리에 세워진 건물에 그런 게 있다면 얼마나 있다고.
있다고 해서, 설마 죽기나 하겠어?"



낯선 장소에서 깨어나, 정체 모를 꽃향기에 취해 쓰러지고.
지구라는 행성에서 보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이 눈에 띄는 큰 얼굴에 노란 외눈을 가진 회색빛의 사람들만 보이는  이상한 세계에서, 함정이 있다면 어떻고 설마 죽기나 할까.
사실 함정이 있건 없건 상관없지.
많이 지쳐서 그냥 쉬고 싶거든.
함정이 있으면 어때. 설마 죽기나 하겠어.


 말이 없어져, 또 멍청히 있다 보니 눈물이 나온다.
문득, 처음 일어났을  맡았던 몽롱하고 진한 꽃향기와 들꽃이 핀 들판이 떠올랐다.


"그때 봤던  들꽃들은 무슨 색이었을까.
보라색이었나.
아니면 빨간색이었나.
나는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쩌다가  들판에 왔던 걸까?"


절로 한숨을 쉬게 된다.
시야가 흐릿흐릿. 머리는 핑 돈다.


"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어둠 속에서 투명하게 비치고, 그 안에는 비눗방울같이 눈앞에 빛이 반사된 것처럼 무지개가 진다.




"여긴 빛도 없는데, 어떻게 내 눈물이 보이는 거야.
여긴 순 엉터리투성이야.
어쩜 과학적인 부분이 하나도 없어!
근데, 사실 지금 그깟  무슨 대수겠어.
내가 정말 왜 이러는 걸까.
그래, 나는 지금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가 않아.
그냥, 조금 쉬고 싶어.
조금만, 조금만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



점점 팔다리에서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지고, 심장 박동은 점점 작게 들린다.

퉁. 퉁. 퉁. 퉁.

피가 흐르고 있는 느낌이, 왼쪽 팔에서 이따금 꿈틀거리는  느껴진다.
나른해지면서 피로가  몸에 스며든다.
몸의 힘은 천천히 빠지고 눈이 조금씩 감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
...
...



벌써 포기하려고?
포기는 배추  때나 쓰는 거라더니.
너도 우습다 우스워.



...
...
...



“아니야!”

나는 대뜸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소리를 지른 동시에, 두 발에 익숙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 정체모를 함정에서 풀려난 걸까?
공중에 둥둥 떠다니고 있던 나는 대뜸 바닥에 두 발을 대고 서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있는 곳의 주변은 어둡기만 했다.
다른 점이라면, 몽롱하지만 이젠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있었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결론은.
어차피 가만히 있어 봐야 누가 구해주러 오진 않을 테니, 스스로 고꾸라지는  낫지.

그렇게 벌떡 일어서서 무작정 한 방향으로만 걷기 시작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계속해서 걷다 보니 중간중간 불이 켜져 있었는데, 그로 인해 주변이 밝아지면서 차츰 익숙해졌다.
한참을 걷고 걸어, 마침내 멀리서 주황 빛깔의 빛이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비춰주는 것이 보였다.
움직이는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숨이 가쁘게 뛰어가자 웅웅, 울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고 도착한 앞에는-.

벽에 그려진 구름이 움직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누군가 벽에 그려둔  같은 구름이었다.
옛 서양화에 나올 법한 아주 멋진 크고 작은 뚜렷하면서 몽글몽글한 구름이, 내 눈앞에서 끝없이 이동하고 있었다.
수많은 구름은 모습 그대로 왔다갔다 양쪽으로 움직이다가 시계방향으로 큰 원을 그리기도 했고, 빠르게 가다가도 눈에 보일 만큼 매우 느리게 움직이기도 했다.

약간의 수증기가 차오른 옅은 먹구름을 표현한 걸까?
구름 그림은 하나 같이 하얀색을 기반으로 연한 회색이 섞여 있었다.



“여긴 땅인데 구름이 손에 닿을 것 같아.”




가까이 다가가 움직이는 구름들을 손으로 쓸었다.
그러자 손끝이 벽에 닿는 순간 구름의 움직임이 일체 멈췄고, 윙윙 거리던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벽의 질감.
그것은 숲에서 봤던 낡은 건물의 더럽고 거칠지도, 외눈의 어린아이의 집의 낯설고 고급스럽지도 않았다.
익숙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면서도 어쩐지 심장 부근이 따끔거린다.
처음 보는  장면은 나에게 기시감을 안겨준다.

“이 장면을 내가 언제 봤더라, 어디서 봤었지?”


홀로 서 있는 알  없는 곳에서 난 누군가에게 묻는 것처럼 말을 내뱉었다.
당연히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툭. 갑자기 머리 위로 뭔가가 떨어졌다.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은 손가락 한마디 정도 크기의 긴 타원 모양을 가진 하얀 알약이었다.


이런 게 왜 여기서 나오는 거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 곧이어 새하얀 수많은 것들이 소낙비처럼 빠른 속도로 쏟아 내렸다.


두두두두, 투두두, 투두둑.

그것들은 두 발이 잠길 정도로 계속해서 쏟아져 내렸다.
나는  손으로 머리를 감싼  이곳 저곳에서 떨어지는 것이 뭔지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역시나 방금 주웠던 것과 똑같은 알약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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