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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85)화 (8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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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6. 키스할 시간은 없고

그들은 서둘러 부상자를 밖으로 이송해야 했다. 빨리 강을 만나서 그를 병동으로 옮기는 것밖에 방도가 없었다. 나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들것을 들고 달리는 부대원들의 뒤를 따랐다.

그녀가 벙커 안에서만 들었던 인기척은 3명.

도 병장이 의자에 묶여 있었다면 분명 다른 1명, 혹은 2명이 더 이 벙커 안에 있었다.

나리는 주환을 붙잡고 감지 어빌리티까지 끌어 올렸다.

그녀가 가진 온 파장을 다 쏟아 내니 심장이 터질 듯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타박, 타박…….

좀 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리는 주환을 붙잡고 말했다.

“2명, C12 방향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럼 반으로 나눕시다. 4명은 부상자 이송을, 나머지 다섯은 그 2명을 쫓는 거로.”

주환은 들것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나리를 따라 반대편으로 뛰었다. 그들도 나리가 뒤쫓아 온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주환은 열이 오르는 나리를 보고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가이딩 컨트롤만 더 잘할 수 있었더라면 나리가 파장을 맘껏 써도 무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 중사, 빨리.”

주환은 나리의 손을 잡아당기며 나리 대신 어빌리티를 사용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상한 발소리가 C12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주환은 더 빨리 달렸다.

얼마쯤 뛰었을까.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발소리도 들렸다.

그런데 그림자뿐이었다. 누가 읊조리던 귀신 이야기처럼 그림자 끝에 사람은 없었다. 주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세히 쳐다보았다.

발소리만 나는 그림자가 홱 뒤돌아 나리와 주환을 보더니 팔을 뻗어 먼저 발포했다. 핑, 하고 쉴드를 스친 총알이 빙글빙글 감속하며 떨어졌다.

“솔개 A-09, 나머지 2명 발견, C12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 …….

“연대장님?”

답신이 오지 않았다. 통신이 잘 터지지 않는 벙커 안이라서 그런지 상황 보고가 벙커 밖으로 전달되지 않은 듯했다.

끼이이익. 두꺼운 철문이 열리며 서쪽으로 기울어진 누런 햇살이 벙커 안으로 쏟아졌다. 두두두, 헬기 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면서 두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총을 쏘려면 지금이었다.

그들을 막으려면 지금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에게 총을 겨누고 발포하는 것은 엄연히 군법에 어긋나는 처사였다.

어쩌지, 어쩌지? 어떻게 저 둘을 잡지?

나리는 이를 악물고 모든 파장을 끌어 올렸다. 그녀의 팔뚝과 손등의 핏줄이 발갛게 돋아 올랐다.

“흐아압!”

그리고 허벅지에 맨 권총을 꺼내 힘껏 내던졌다.

깡 하는 소리와 함께 1명이 털썩 쓰러졌다. 그리고 햇빛을 반사하며 눈에 가려졌던 다른 1명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

시력이 나리만큼 좋아진 주환의 눈에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가 본 적 있는 남자였다. 주환은 그 남자의 이목구비가 자신이 기억하는 사람과 정말 일치하는지, 아니면 닮은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김 실장이 왜 여기에……?’

주환을 찾아왔던 이능력자 연구소 특이 발현자 담당자였다. 그가 주환과 나리를 쳐다보고는 벙커 문밖으로 나갔다.

그림자도 사라진 밝은 빛이 주환과 나리의 눈앞을 새하얗게 가렸다.

“솔개 A-01, 투명화 어빌리티를 가진 에스퍼는 기절, 그리고 다른 한 명은 C12 구역으로 도망치고 있습니다.”

- ……잡아.

“솔개 A-09, 저한테 총을 쏘던데요? 발포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이미 밖에 헬기 소리가 들리는 게 아마도…….”

- 잡아. 몬스터는 물론이고 사람까지 부릴 수 있는 정신계 에스퍼야. 지금 못 잡으면 나중에 우리 측 피해가 심해.

오 마이 갓.

벙커 밖에서 올지도 모르는 선제공격에 대응해 벽면에 붙어서 가고 있었는데 총보다 더 무서운 정신계 에스퍼라니!

앞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22초밖에 남지 않았다.

나리는 자신의 손을 꽉 붙잡고 있는 주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가이딩을 지금 마신다면 시간을 좀 더 벌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지금 달려야 할까.

나리를 내려다보는 주환도 나리의 생각을 읽은 건지 입술을 달싹였다. 고민하는 시간이 1초, 2초, 3초…….

3초가 흐르는 사이, 주환과 나리를 뒤따라온 다른 가이드 2명이 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박 소령님.”

“이 중사.”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멈칫하다가 버벅대며 말했다.

“아, 저.”

“그…….”

“저기, 키스는 좀 그렇고.”

“키스할 시간은 없으니까.”

주환이 나리를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나리의 목덜미와 어깨 사이를 깨물어 씁 빨아들였다.

짧게 부딪히고 떨어졌을 뿐인데 주환의 달고도 화한 가이딩이 지끈거리던 오른쪽 어깨에서 폐부로 내리꽂힌다. 화하게 번지면서 통증이 녹아내린 것만 같았다.

“아아.”

덜거덕거리며 헛발질을 하고 있던 심장이 하얗게 마비가 되는 건지 녹아내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잡아.

귓가에 울리는 말에 따라 나리는 주환의 어깨를 잡고 오른손으로 권총을 뽑아 들었다.

가속하는 주환의 심박 수가 나리의 귓가에 길게 늘어지더니 초감각 상태가 되었다.

찰나가 더 세세하게 쪼개지고 쪼개진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눈부신 빛도 먼지처럼 세세한 입자가 되었다.

그 빛무리에 둘러싸인 채로 뒤돌아 총을 쏘는 김 실장의 모습이 나리의 망막에 또렷이 새겨졌다.

그가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나리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으윽!”

총알은 김 실장의 총신에 명중했다. 그 충격에 김 실장이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타이밍 좋게 가이드들이 쏜 총알까지 김 실장의 발치에 꽂히며 돌과 흙이 튀어 올랐다.

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때가 기회였다.

나리는 곧바로 김 실장이 일어나지 못하게 주변의 흙먼지를 공중에 띄웠고, 쉴드로 그를 짓눌렀다.

“하아! 하아, 하…….”

참았던 숨이 터지며 길게 늘어졌던 시간이 빠르게 당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고무줄처럼 튀어 나간 가이드들이 김 실장을 붙잡았고 “타깃 제압.” 하고 상황 보고를 외치는 목소리가 빠르게 귓가를 지나갔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나리는 휘청거리면서 C12 구역 출구 쪽을 향해 내달렸다.

잡았다.

몬스터를 조종하고 다른 에스퍼들을 망가트린 장본인을.

이 악마를 사로잡았으니 김상희 에스퍼와 도 병장, 그리고 에덴에게 이용당했던 억울한 에스퍼까지, 이제는 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임무를 완료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은 몬스터보다 더 간악했다.

“허?”

C12 구역 출구로 나가기도 전에 나리는 굳어 버리고 말았다. 헬기에서 뻗어 나오는 긴 불꽃과 연기가 그들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시, 쉴드!”

손을 뻗어 김 실장과 가이드들에게 두꺼운 방어막을 두르는 것과, 100M 공중에서 쏘아진 대괴수용 로켓 화포, 둘 중 무엇이 더 빠를까.

“아. 아아악!”

콰앙!

충격파와 폭발음이 해일처럼 나리를 덮쳤다.

“이 중사!”

주환은 폭발과 충격파에 튕겨 나간 나리를 감쌌다. 그들에게 겹겹이 둘린 쉴드 때문에 다친 곳은 없었다.

“이 중사. 괜찮습니까?”

웅웅, 모든 소리가 멀리서 울렸다. 나리는 자신의 귀를 감싸 쥐고 대형 괴수용 로켓 화포가 터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땅이 깊게 패고 검게 그을린 자국들뿐.

3명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를 확인한 헬기는 김 실장을 향해 내렸던 긴 줄사다리를 미련 없이 올리며 방향을 틀었다.

으드득…….

이해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같은 사람이었다, 같은 나라 에스퍼였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나리는 이를 갈며 벌겋게 핏대가 오른 태양을 향해 눈을 치켜떴다.

❖ ❖ ❖

에덴은 다친 다리를 붙잡고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는 강을 노려보았다. 빽빽하게 까마귀 떼를 둘러 그의 총격을 막아 내며 나리가 죽기를 기다렸다.

강 역시 남은 시간을 세며 김 실장이 잡히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대치하길 7분이 넘었다.

갑자기 큰 폭발음과 함께 에덴을 방패처럼 감싸고 있던 떼까마귀와 벙커 주위의 쉴드가 동시에 걷혔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당연히 몬스터를 가까이에 둔 에덴이었다.

에덴은 욕이 섞인 비명과 함께 추락했다.

“젠장, 젠장! 아아악!”

까마귀들이 한곳으로 모여 거대한 검은 파도를 만들며 에덴을 공격했다. 공중에서 연달아 폭발음이 터지고 번개가 빗발쳤다.

강은 쉴드가 걷힌 하늘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쉴드와 중첩되어 있던 나리의 어빌리티 한 올도 느껴지지 않았다. 덜컥, 안 좋은 생각들이 그를 덮쳤다.

“이 중사, 보고해. 어떻게 된 거야!”

나리가 아닌 주환의 목소리가 울렸다.

- 솔개 A-01, 대 괴수용 로켓 공격으로 정신계 에스퍼 타깃과 제압 중이던 가이드 2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끝까지 아주 비열하게 꼬리를 끊어 버렸다. 강은 자신이 부리던 몬스터와 필사적으로 싸우는 에덴을 보면서 물었다.

“이나리 중사는?”

- 이 중사는…… 컨트롤 리밋을 돌파해서 현재 전투 불능입니다.

뭐?

놀란 강이 나리의 좌표를 물어보기도 전에 나리의 흐물흐물한 목소리가 들렸다.

- 소올개…… A-09, 현재 좌표오, 127°6′42.95″, 37°34′55.16입니다. 연대장님, 저 작전 끝날 때까지 여기 누워 있을 테니, 잊지 마시고 작전 끝나면 의무실로 꼭 이동시켜 주십…… 으, 우읍……! 콜록콜록!

하아.

강은 나리의 헛소리에 안도하며 이곳으로 향하고 있을 다른 팀원들을 지휘했다.

김 실장의 파장에서 벗어난 몬스터들은 저들끼리 싸우고 잡아먹으며 날뛰다가 에스퍼들의 총공격에 맥없이 쓰러졌다.

- 알파03, B-11. C11 서쪽 구역 임무 완료.

- 알파01, C-60. 임무 완료. 부상자 3명, 사상자는 없습니다.

- 팀 알파02, A-01. A급 대형 몬스터 처리 완료했습니다. 벙커에 있는 박쥐들이 마지막 같습니다.

- 독수리, A-01 박쥐들이 딱 좋아할 만한 찐한 최루탄 어떻습니까?

- 동의합니다. 동의!

- 제가 가겠습니다!

여기저기서 최루탄을 날리겠다는 지원자들이 몰려들었다.

강은 몬스터를 열심히 상대하는 SS급 가이드를 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말한다, 황에덴 생도.”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낸 군대가 에덴을 에워싸고 총을 들었다.

“까마귀 떼랑 같이 총알 맞기 싫으면 가이딩 거두고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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