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 우리나라엔 괴물만 있잖아
‘최강, 황에덴을 죽여서, 겨우겨우 자리 잡은 나라를 박살 내서 왕이라도 될 셈인가? 이능력자 20%가 무슨 지지율을 끌어낼 수도 없을 테고…… 강압과 폭력으로 네 불만을 말해 봤자…….’
김 실장이 웃었다.
‘괴물 녀석밖에 못 된다고 했지?’
강도 피식 헛웃음을 날렸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김 실장의 말은 어떻게 토씨 하나 달라진 것이 없을까, 하면서.
하지만 총에 맞은 에덴은 김 실장의 말에 동요하기 시작했다. 나리와 주환은 죽이더라도 강을 해칠 생각은 없던 에덴이었다.
그러나 에덴의 가이딩이 흐트러진 틈을 타, 떼까마귀 무리가 일제히 벙커 쪽으로 날아가다가 방향을 잃고 산개했다.
쉴드와 부유 어빌리티 영향으로 그 속도가 일반인 눈에도 보일 만큼 느렸다.
꺄아아악.
에덴의 비명이 웅웅 메아리쳤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까마귀들까지 통제에서 벗어나 에덴을 공격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펑펑 불길이 치솟고, 번개가 내리쳤다. 모두 장대신 소령이 보낸 에스퍼들의 어빌리티였다.
타다다당!
강도 제게 달려드는 까마귀 떼와 몬스터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아무리 느려져도 총알에 맞아 떨어지는 녀석들보다 덤벼드는 수가 더 많았다.
03:58:25
강은 줄어드는 시간을 보면서 빠르게 움직였다.
벙커 안으로 들어간 나리의 보고를 기다리는 그 몇 초, 몇 분이 억겁 같았다.
에덴을 빼고 다른 2명.
그 둘 중 1명이 김 실장이어야 한다.
에덴을 잡으러 뛰어가는 그의 앞으로 불똥과 벼락 맞은 까마귀들의 잔해가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에덴이 떠 있는 곳 아래, 풀숲에 몸을 숨기고 욕을 중얼거리는 한 사람이 보였다.
강은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접근했다. 어떤 어빌리티를 쓰는 에스퍼인지부터 알아야겠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앞에 있던 나무가 터졌다. 먹먹하게 막힌 귀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기까지 초가 흘렀다. 덜덜 떨어서 무슨 말인지도 모를 자그마한 목소리가 연기 너머에서 들렸다.
“여, 여, 연대장님, 황에덴 생도는, 우리나라의 희, 희망이지 말입니다! 그러니까 제발…….”
에스퍼는 풀린 다리를 질질 끌면서 뒷걸음질 쳤다. 무장을 보니 어젯밤 장대신 소령이 보낸 헌병 중 한 명, 폭파 어빌리티를 쓰는 조 상병이었다.
몬스터 떼가 쉴 새 없이 닥치던 밤보다 파장이 차단된 쉴드 안에서 홀로 강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더 암담하리라.
강은 총을 내리고 겁에 질린 녀석에게로 저벅저벅 다가갔다.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오면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아, 안 돼…….”
연기가 걷히고 팔을 허우적거리는 조 상병의 모습이 드러났다. 지난밤에 떠났다던 그의 몰골은 산속을 일주일은 헤맨 사람 같아 보였다. 피 냄새가 강의 코를 찔렀다.
“…….”
팔 한쪽이 너덜너덜했다. 몬스터에게 먹힌 어깨에 모르핀과 해독 주사를 세 개나 꽂고서 핏기가 하나 없는 얼굴이 좀비 같았다.
“우리나라에 희망이 어디 있나.”
강이 자신을 향해 손을 뻗은 조 상병을 붙잡고 차갑게 웃었다.
“우리나라엔 괴물만 있잖아? 안 그래?”
“으, 으아아아!”
강은 폭파 어빌리티가 튀어나오기도 전에 조 상병을 잡아 무릎을 쳐올렸다. 명치에 니킥을 맞은 에스퍼는 꺽꺽거리며 쓰러졌다.
‘우리나라에 괴물만 있다니, 쯧쯧. 어째 그런 말을……. 자네는 정신 감정 좀 제대로 받아야 할 거 같아.’
“너나 받아. 김 실장.”
강은 눈가를 팔뚝으로 닦아 내고 위를 쳐다보았다.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까마귀 떼와 함께 어지럽게 맴돌았다. 강은 총을 들어 에덴에게 겨누었다. 이미 총을 한 발 맞은 에덴은 컨트롤을 놓친 떼까마귀들의 공격으로 이리저리 흔들거리고 있었다.
타앙.
긴 총성이 울리고, 총알이 에덴과 까마귀를 스쳐 지나갔다. 에덴이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황에덴. 가이딩 거두고 내려와.”
에덴이 콧방귀를 뀌었다. 에덴의 귀에는 얼토당토않은 말이었다. 에덴은 이를 악물고 허벅지에 진통제를 꽂고 자신의 발아래에 있는 강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내가 왜?”
이나리가 벙커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곧 끝이다. 그런데 내가 왜 항복하고 내려와야 하는 건가.
에덴은 강을 노려보면서 안전핀을 뽑고 수류탄을 던졌다.
콰앙!
벙커의 입구가 무너져 내렸다. 에덴이 파장을 이용하지 못하게 나리의 차단 어빌리티만 믿고 작전을 수행시켰는데, 강은 에덴이 수류탄이나 폭탄류를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미리 파장 푸는 게 좋을 거야. 최강.”
“…….”
“저 안에 김 실장님 없거든.”
“…….”
일그러지는 강의 얼굴을 본 에덴이 까르륵 웃어 댔다. 공중에서 배를 잡고 뒹굴던 에덴이 끅끅 웃음을 참으면서 말을 이었다.
“차단 어빌리티가 오래가는 것도 아니고. 쉴드 밖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걸 내가 왜 내려가겠어?”
시간이 계속 흐른다.
그런데 쉴드 위에 떠 있는 에덴을 끌어 내릴 방법이 없다.
“그러게. 아까 그 비행 어빌리티 에스퍼랑 저 폭파 어빌리티 에스퍼를 죽였어야지. 안 그러면 내가 이렇게 잘 쓰잖아?”
에덴이 거꾸로 매달린 채로 씩 웃었다. 그녀를 향해 공격하던 까마귀 떼가 멈추고 에덴의 날개가 되어 그녀를 감쌌다.
부유하는 검은 깃털들이 천천히 강의 얼굴 위로 낙하했다.
미간을 찌푸리며 에덴을 쏘아보던 강이 내렸던 총을 들어 올려 에덴을 겨눴다.
끝까지 추악한 녀석이라 참 다행이었다.
동시에 씁쓸하기도 했다.
이나리가, 사람은 죽이지 말라고 했었는데…….
타앙!
총구에서 불꽃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에덴의 손에 들린 번갯불이 땅에 내리쳤다.
❖ ❖ ❖
“이쪽입니다.”
갈림길을 만난 나리가 뒤따라오는 가이드들에게 방향을 가리켰다.
인기척은 꽤 깊숙한 곳에서 들리고 있었다. 1명, 아니면 2명. 저벅저벅 울리는 발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방 앞에 멈춰 서서 나리가 잠시 멈추라고 주먹을 쥐었다.
“…….”
문에 귀를 대고 인기척을 살피던 나리가 주환을 돌아보았다.
“박 소령님, 이상합니다. 에스퍼라면 저희 발소리를 들었을 텐데 계속 이리저리 움직이는 발소리밖에 안 납니다.”
주환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나리를 뒤로 보냈다. 쉴드가 철문에 닿으며 우웅, 하고 울렸다.
모두 긴장한 채로 총을 들고 주위를 살폈다. 주환이 3초를 세고 문을 열었다.
그 순간, 핑 하는 소리와 함께 폭탄이 터졌다.
눈앞이 번뜩이고 귀가 먹먹했다. 부유와 차단, 그리고 고밀도의 쉴드가 있었는데도 놀란 심장이 지끈거리고 숨이 막혔다.
“콜록! 바, 박 소령님, 괜찮으십니까?”
나리가 기침하며 매운 눈가를 문질렀다. 앞에 서 있던 주환이 팔을 들어 올린 채로 굳어 있었다.
“박, 박 소령님?”
“함정입니다. 오지 마십시오.”
주환이 나리를 뒤로 밀어내며 말했다. 뒤에 있던 나리와 가이드들은 영문도 모른 채 두세 걸음 물러났다.
테이프로 칭칭 의자에 묶인 사람이 터진 수류탄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파편에 맞아 다친 것인지, 아니면 그 전에 다쳤던 것인지 얼굴이 누구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다.
죽었을까.
아니면, 아직 살아 있을까.
주환은 조심스럽게 발을 안으로 디뎠다. 그리고 뒤로 묶인 군인의 팔을 슬쩍 보았다. 워치가 빨간 신호를 내며 경고하고 있었다.
“솔개 A-01, 중상자 발견했습니다. 헌병대 소속 도하준 병장입니다. 그 외의 사람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부상자를 빨리 옮길 수 있는 의료 지원 요청합니다.”
주환은 나이프를 꺼내 테이프를 끊었다. 이 벙커 안팎으로 쉴드를 두르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나리와 다른 가이드가 후방을 경계하며 다른 함정이 있는지 살피는 동안, 주환과 다른 1명이 중상을 입은 에스퍼를 눕히고 지혈과 가이딩을 했다.
“……어 ……여, 저…….”
에스퍼가 테이프로 막힌 입술을 움직였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화상이 심해 군 병원으로 가서 떼어 내는 게 나을 겁니다.”
“……어어.”
그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환의 팔목을 잡더니 손가락으로 글자를 하나하나 그렸다.
ㅈ ㅜ ㄱ ㅕ ㅈ ㅝ
“……정신 차리면 살 수 있습니다. 조금만 버티십시오.”
주환이 그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지혈 붕대를 감자 그가 손을 더듬어 주환의 허리에 찬 권총을 채 가려고 했다.
“어으……. 으……!”
놀란 주환과 다른 가이드가 그를 붙잡고 실랑이를 벌였다.
“도 병장, 왜 그래! 새끼야, 정신 차려! 연대장님 오시면 금방 병동까지 갈 수 있어!”
“으, 으우, 어!”
갑작스러운 소란에 나리가 주환에게로 달려왔다. 그리고 상급 가이딩도 마다하며 죽으려고 발작하는 에스퍼에게 황급히 다가가 어깨를 잡고 말했다.
“도 병장. 여기 차단 어빌리티 발동 중이라 황에덴 생도의 가이딩은 차단되어 있다. 그러니 괜찮아. 진정해.”
권총을 잡고 난리를 피우던 에스퍼는 그 말에 총을 떨어트리고 흐느꼈다. 끅끅거리며 숨이 넘어가는 에스퍼를 진정시키며 들것 위에 올렸다. 그가 자신의 워치를 풀어 흔들어 댔다.
“킵하고 있어. 금방 나갈 거니까.”
군번줄이나 다름없는 워치를 함부로 받을 수 없었다.
“으. 흐으.”
그러나 에스퍼는 자신의 어깨를 잡은 나리의 손을 펴서 그의 워치를 꽉 쥐여 주었다.
제발 받으라며, 그곳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는 듯이.
나리는 그의 워치를 작동시켰다.
그의 사진과 이름과 소속, 생년월일이 떴다. 그리고 상황 기록 기능이 아직도 켜져 있는 것을 보고는 종료를 눌렀다.
“앱 껐어. 도 병장이 영상 기록 중이던 거.”
다섯 번째 영상 기록 3시간 13분 11초, 네 번째 영상 기록은 오늘 오전 7시쯤, 길이 30분 정도. 세 번째 영상 기록은 새벽 5시 반쯤, 1시간 정도. 두 번째와 첫 번째는 지난밤에 기록되어 있었다.
“내가 잘 보관했다가 도 병장 보고서 쓰는 거 도와줄게. 됐지?”
나리가 주머니를 열고 도 병장의 워치를 넣었다. 그러나 입이 막히고 얼굴이 녹아내린 에스퍼는 대답이 없었다.
“도하준 병장?”
들것 아래로 축 늘어진 손이 힘없이 흔들리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