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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79)화 (79/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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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 목줄을 잡아서 뭘 하시려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상황 보고를 올리려던 참이었습니다.”

- 아. 내가 타이밍을 못 맞췄군. 나는 또 유일한이 군부대 내외로 최강의 전투 영상을 켜는 바람에 비서실까지 업무 중단이 된 걸 장대신 소령이 모를까 봐.

헉.

- 어렸을 때부터 당돌하더니, 아주 골치 아픈 놈이야. 쿠데타라도 벌이겠다고 육해공 전 부대에 해킹을 저질렀는데 우리 장 소령은 뭐 하고 있는 건가? 내가 더 기다려야 하는 타이밍인가?

장대신 소령은 연신 식은땀을 닦아 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그것이 황에덴 가이드……의 행방을 쫓는 게 더 먼저라고 생각하여…….”

-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했으면 제대로 했어야지. 지금 누구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겐가?

“지금 바로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군 병력을 총 동원하여 유일한부터 잡겠습니다!”

- 글쎄…….

현균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 때문에 잔잔하게 주름진 인자한 인상이 검게 지워져 있었다.

- 과연 특수 연대 에스퍼들이 장 소령의 가이딩을 좋아할까, 아니면 유일한의 가이딩에 동조할까?

물어보나 마나 한 질문이었다.

예쁘고 영악한 한다희 소령이면 몰라도 기름기 흐르는 중년 남자, 내세울 것이라고는 황현균 대통령과의 연줄밖에 없는 무능력한 B급 가이드에게 움직일 에스퍼는 거의 없었다.

- 에덴은 어떻게든 전장의 판도를 쥐어 보겠다고 위험 구역 경계선을 넘었는데, 자네는 몬스터가 무서워서 조카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외삼촌이지 않은가? 이래서 실전 경력 없는 가이드는……. 쯧.

장대신 소령은 얼굴이 벌게져서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현균은 마누라 등쌀에 못 이겨 무능력한 처남을 보낸 것을 후회했다.

- 일반 특수 부대와 국정원 정신계 에스퍼 팀이 진입할 걸세. 자네는 옷 벗을 준비 하고 문이나 열게.

“아, 알겠습니다…….”

통화는 이미 끊긴 뒤였다.

장대신은 처참하게 고개를 숙이고 소파에 허물어지듯이 쓰러졌다.

한편 그 시각.

이 모든 상황을 듣고 있던 일한은 깍지 낀 손등 위에 턱을 댔다. 일한과 함께 잠자코 듣고 있던 기자들과 에스퍼들은 일한의 반응에 주목했다.

“그렇다고 하네. 최강, 다음 전투를 지금 앞당기는 것은 무리겠지?”

- 가능하다. 벙커 밖의 황에덴이 어떤 상태인지만 알면.

구시대의 벙커 통신실에 있는 강의 홀로그램이 일한의 옆에 섰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안도하는 기자들의 속내를 꿰뚫고 있는 것 같아 모두 숨소리도 함부로 내지 못했다.

이능력자의 쿠데타라니. 게다가 소리 소문 없이 움직인다는 정신계 에스퍼들이 움직인다는 말까지 현 대통령의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황에덴 생도님의 상태라…….”

일한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덴의 행방을 쫓는 것은 현균의 행방을 추적하는 것처럼 어려웠다. 그래서 일한은 장대신 소령이 에덴을 추적하기 위해 보낸 다섯 에스퍼들의 묘연한 행적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황에덴이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C11 구역에 멀쩡하게 나타난 것을 보면, 그들과 조우했을 가능성이 컸다.

“벙커 밖 카메라는?”

- C11 전 지역, 작동 안 해.

“수색 로봇들은 풀었어?”

- 15분 전에 32기 풀었고, 황에덴은 아직 못 찾았다.

일한은 강이 보내 주는 정보를 받아 집무실 안에 늘어놓았다.

빽빽하게 늘어선 창들이 사라지고 C11 지역을 구현한 3D 지도가 빈 공간에 채워졌다. 이것이 커다란 집무실에 책상 하나만 있는 이유였다.

벙커를 중심으로 로봇들이 지나간 길마다 몬스터의 정보가 지도 위에 표시되었다. 그리고 장대신 소령이 보낸 다섯 에스퍼들의 생체 신호를 쫓던 결괏값까지.

“…….”

일한은 팔짱을 끼고 강을 쳐다보았다. 강의 얼굴도 일한 못지않게 굳어 있었다.

에스퍼들의 생체 반응은 전혀 나오지 않고 몬스터의 움직임은 이상했다.

마치 누가 줄자와 각도기를 가지고 잰 듯이 한쪽에는 들개가, 다른 쪽에는 죽어도 죽지 않은 것들이 벙커를 빙그르르 포위했고. 그 위는 까마귀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마치, 체스판 같았다.

어린애의 장난 같은 수법에 강은 코웃음을 쳤다.

- 연구소에서 황에덴을 담당했던 고문관이 누군지 알 법하군.

강의 반응과 달리 일한은 심각했다.

“강아, 조심해.”

데이터상으로 에덴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에스퍼의 파장은 다섯 가지 종류. 오로지 데이터상으로만 본 수치였지, 그 아이의 전부는 아니었다.

차원이 비틀어지고 이능력자가 발현한 지 70년이 넘었어도 아직도 인간은 균열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몬스터의 정의는 무엇인지, 그 종류는 얼마나 많은지, 이능력자의 종류와 그 한계선이 얼마나 되는지 등등 모르는 것이 많았다.

“몬스터를 조종하는 가이드가 있을 리 없어. 신경을 조종하는 정신계 에스퍼 파장을 이용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절대로 방심하면 안…….”

투웅!

갑자기 홀로그램과 지도가 꺼지며 주위가 컴컴해졌다.

“어? 전기가…….”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정전이라니.”

전기뿐만이 아니었다. 실이 끊긴 인형처럼 픽 쓰러지는 사람도 있었고, 머리를 감싸쥐고 휘청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주위가 동요하는 와중에 일한이 총을 들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단단한 철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창문을 돌아보니 부대 건물 전체가 캄캄하게 불이 꺼져 있었고, 저 하늘 높이 까만 제트기 3대가 회항하고 있었다.

“정전이 아냐. 워치가 작동 안 해.”

전자기파를 이용하여 통신망을 무력화하는 EMP 공격이었다.

“젠장.”

이렇게 되면 정신계 에스퍼뿐만 아니라 경계선을 넘어올 몬스터들도 문제였다.

일한은 이를 악물고 기자들을 인솔한 부대원들에게 말했다.

“일단 여기서 나갑시다. 긴급 대응 1급 알리고, 김 상병과 이 이병은 훈련장과 숙사로 가서 전투 가능한 중대원들을 전부 격납고로 집합시킵니다.”

“예!”

일한은 침착하게 지시를 내린 뒤, 쓰러진 사람들부터 살폈다. 그들은 모두 뇌와 컴퓨터를 연동하는 뉴럴링크를 심은 사람들이었다.

“깨어날 때까지 시간이 걸릴 테니 김승주 기자님은 강서연 기자님께서 부축해 주시고, 조의진 기자님은 정준혁 기자님께서 맡아 주십시오. 지금부터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겁니다.”

“예, 예…….”

사람들은 일한의 말에 안도하면서도 빨리 이곳을 벗어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능력자 특수 연대. 그것도 제일 강한 강의 페어로 잘 알려진 숙련된 가이드, 유일한 소령이니까 순간 이동으로 보내 주겠지 하고.

그런데 웬걸.

일한은 캐비닛 속에서 긴 철 막대기를 꺼내, 꿈쩍도 안 할 것 같던 철문 틈새에 꽂았다. 그가 온몸에 힘을 실어 지렛대를 누르자,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 장치가 떨어져 나갔다.

“어후. 허리야. 최강이 파장을 끊어서 맨손으로 문을 열려니 참 힘드네요.”

“…….”

신체 강화 어빌리티나 괴력 어빌리티도 없이 맨손으로 저렇게 쉽게 문을 열었다고? 에스퍼들이 더 기가 찬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냥 에스퍼를 부려 먹어도 되는 일을 일한은 부러 힘자랑을 하더니 기자들을 인솔할 사람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그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사람들을 데리고 복도를 뛰었다.

일한은 등에 멘 총을 쥐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전등과 벽 틈새로 난 작은 나사 구멍을 주시하면서 중얼거렸다.

“뭐, 그쪽도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을 테니 다행인 건지도 모르지…….”

항상 만약의 사태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던 일한이었다. 정전 혹은 EMP 공격으로 부대 내의 모든 기기가 고장 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것도 일한의 머릿속에 있는 수백 개의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있었다.

그의 시나리오에는 항상 강과 나리, 둘 중 하나는 있었다는 것이다. 강과 나리가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가이딩으로만 정신계 에스퍼와 몬스터들을 상대하면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흐음.”

일한은 턱을 쓸며 짧게 생각해 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쩔 수 없었다.

“누가 볼 것도 아니고, 오래간만에 실력 발휘를 해 봐야지.”

가만히 근신하기에는 너무나도 잘난 게 문제였다.

❖ ❖ ❖

나리의 머리가 떨어질 듯 말 듯 까닥까닥 흔들렸다. 주환의 등에 기댄 채 앉아서 쉰다는 것이 10분도 지나지 않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 중사?”

주환이 나리를 불렀다. 느린 박자에 맞춰서 작게 흔들리던 머리가 툭 떨어지며 주환의 어깨 위에 걸쳐졌다. 반평생 불면증에 시달린 사람이 맞나 싶었다.

“…….”

주환은 조심스럽게 어깨를 내리고 나리의 머리가 미끄러지지 않게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화한 가이딩이 이마에 맞닿자 멍하니 벌어진 나리의 입술 사이로 냠냠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풋.

주환은 나리를 흘긋 쳐다보다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두근두근 편안하게 흐르는 나리의 파장은 어젯밤 자신의 품에서 느꼈던 것과 달랐다.

밤새 자는 척을 하느라 피곤했겠지. 잠을 설친 주환도 뻐근한 눈가를 비볐다.

자꾸 엉겨 붙으려고 하는 일한 때문에 나리도 불편했고, 주환은 더욱이 욕과 주먹을 참느라 피곤했던 밤이었다.

주환은 나리의 상태창을 확인하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 수준에 다다랐던 파장 수치와 그래프는 빠르게 안정되었다.

그것이 괜찮다는 말은 아니었다. 다음 작전 시간이 되면 다시 위험 수준에 도달할 게 분명했다.

주환은 나리의 입술을 보다가 제 입술을 달싹거리며 전날 김 중령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박주환 소령, 이번 작전에서는 꼭 최강이 어빌리티를 사용하게 만들게. 혹시 최 대령이 황에덴을 공격할 시에는 자네가 말려야 하네. 그리고 이번 작전이 끝나면 이나리 에스퍼는…….〉

〈예. 알겠습니다.〉

〈명심하게나. 부함장, 자네가 에스퍼 하나 데려오는 일을 똑 부러지게 못 하는 바람에 윤소민 대위가 책임지고 옷 벗은 거야. 그 바람에 공태형 함장도 그렇고 여기 분위기가 얼마나 안 좋은 줄 아나?〉

〈죄송합니다. 그런데 김성권 중령님, 하나만 묻겠습니다.〉

〈뭔가?〉

〈최강 대령의 목줄을 잡아서 뭘 하시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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