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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74)화 (7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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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 우리가 진짜로 어떻게 싸우는지

“이, 이거 뭐야…….”

장대신 소령이 사색이 되어 사방팔방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실체가 없는 화면 창은 그의 손짓에 사라지지 않았다.

“다들 당장 안 꺼? 군 기밀이야! 기밀 유출한 새끼 누구야!”

쩌렁쩌렁한 소리가 여기저기 울렸다. 처음에는 화면을 끄고 훈련에 임하라던 교관들도 이내 멈추고 전투 상황을 지켜보았다.

행정병과 민간인 경호를 담당한 군인들을 따라 숙사 밖으로 나오던 기자들도 이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SS급 가이드가 정말 가이드인지, 몬스터인지 모를 일이네요.”

기자 한 명이 중얼거렸다. 다들 놀라고 착잡해하는 얼굴들이었다. 그 가운데에 있던 뚱뚱한 중년의 기자가 입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기사로만 안 쓰면 돼.”

그들에게 이렇게 생생한 현장을 보여 주는 의도가 분명했다. 기자들은 모두 그의 말에 동의하면서 눈을 발끝에만 두었다.

“…….”

폭탄이 터지는 소리, 총알이 빗발치는 소리, 비명과 소음 속에서 이어지는 강의 지시가 귀에 스쳤다.

에덴이 빈정거리는 목소리도 들렸지만 본관으로 이동하는 내내 그 소리에 반응하는 기자는 없었다.

입 안이 바짝바짝 탔다.

발끝만 쳐다보고 걷는데 따가운 시선들이 그들의 등을 마구 찔렀다. 착잡하고 불편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본관에 도착하고 길 안내를 맡은 군인들이 양문을 활짝 열고 나서야 여기가 그들의 목적지라는 것을 알았다.

그제야 그들이 시선을 들고 주변을 살폈다.

“허…….”

모두 말을 삼키고 감탄사만 흘렸다. 커다란 집무실 가득히 떠 있는 AR 홀로그램 화면 창들이 움직였다. 그 가운데에 서서 부대 안팎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일한이 나와 그들을 맞았다.

“유일한 소령님께서 무슨 일로 저희를 여기에 부르셨습니까?”

“기자님들께서 현 전투 상황을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불렀습니다.”

궁금했다.

국내 최초 SS급 에스퍼와 SS급 가이드 페어의 첫 승전보를 화려하게 적어 보도하는 것이 그들의 본래 임무였다. 비 안전 구역 통행증, 취재 보도 허가증을 3일씩이나 끊은 이유도 일 때문이었다.

그저 전투 후에 배포용 자료로 기자 회견을 열겠거니 했는데 직접 관전을 하게 해 줄 줄은 몰랐었다.

그들에게 있어 둘도 없을 기회였다. 일반인의 위험 구역 통제 제도 이후 영화나 외국 매체, 혹은 국방부가 친절하게 만들어 준 보도 자료로만 접하던 몬스터와의 전투를 볼 수 있었으니.

그러나 화면 속의 광경은 그들이 생각했던 전투와는 전혀 달랐다.

차원의 균열 이후 야생 동물은 몬스터화되었다. 에스퍼와 가이드를 진화한 신인류라며 기쁘게 찬양했던 진화론자들은 몬스터도 역시 새 시대의 진화 산물이라고 했다.

몬스터도 이 지구에서 공존해야 할 새 생태계 시스템의 한 부분이라고 주장한 환경론자들의 열변에 대학가에서는 몬스터 학살 반대 운동이 유행 중이었다.

과연 저 끔찍한 싸움이 인간이 순응해야 할 결과물인가.

새로운 영웅을 칭송하기 위해 온 기자들은 후방에서 나리를 안고 뛰는 강을 보고 실망했다. 영상 효과보다 화려한 이능력은커녕 전방에 나서서 총을 쏘지도 않았다. 그저 산으로 오르고 뛰고, 소리칠 뿐이었다.

“SS급 에스퍼가, 왜 이렇게 싸우는 겁니까? SS급 가이드는! 황에덴 가이드는 어쩌고요? 저희는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 건지 설명을…….”

누군가 물었다.

“김 기자. 쉿.”

누군가 그녀를 말렸다.

일한은 잠자코 기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기 저 몬스터들이 위험해 보입니까.”

“…….”

“한반도에 있는 몬스터들보다 가이드 없이 어빌리티를 쓰는 최강이 100배는 더 위험할 겁니다. 그리고 최강보다 황에덴이 100만 배는 더 위험할 거고.”

일한의 말에 사람들은 불편하고 답답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왜 여기에서 원하지도 않는 전투 장면을 봐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투로 말이다.

“아군의 피해가 막대할 테니 강은 저 없이 절대 어빌리티를 안 쓸 겁니다. 그리고 저는 저 전투에 갈 수가 없죠. 위에서 내린 근신 처분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들 때문에 전 여기 있어야 합니다. 강과 제가 자리를 비우면, 당신들의 입을 막기 위해 누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말은 저래도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가두고 감시하려는 걸까. 목숨을 담보로 겁을 주는 걸까. 아니면 언론 플레이를 하려고 자신들을 일부러 부른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달갑지 않았기에 기자들은 일한과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저도 당신들을 믿지 않아요. 그래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진짜로 어떻게 싸우는지.”

화면 속에는 벙커 안을 사수하며 총을 쏘는 주환과 그의 품에 안겨서 쉴드로 몬스터를 막는 나리의 모습이 비쳤다.

절뚝거리는 부상병을 부축하며 벙커 안으로 들어온 알파 2팀, 그리고 그들을 엄호하며 들어온 강을 마지막으로 벙커의 문이 닫혔다.

[이 중사, 나이스! 수고했어.]

[예, 예……. 안 중위님도, 많이 수고하셨습니다.]

저격총을 들고 나타난 해란이 자리에 주저앉아 헐떡거리는 나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고는 카메라를 돌려 자신을 비췄다.

[독수리, A-01 작전 본부에 보고합니다. 알파01. 알파02, 알파03. 솔개와 저희 팀 모두, C11 벙커에 도착했습니다. 작전 소요 시간은…….]

상황을 보고하는 해란의 등 뒤로 군모를 벗은 강이 앞머리를 흩트리며 나리의 앞에 섰다.

강이 나리의 어깨를 짚고 뭐라고 말을 하자 축 늘어져 있던 나리가 허리를 펴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기자들은 최강 대령과 그가 전투 내내 들고 뛰던 여군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최 대령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눈 하나 깜짝 안 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C12를 단번에 날려 버릴 정도의 힘이 있으면서도 그 힘을 빌리지 않고 소총 하나로 괴물들이 쏟아지던 진탕 속을 헤쳐 나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전열을 가다듬는 것도, 상황을 보고받는 것도 아닌, 나리의 옆으로 돌아와 옅게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 ❖ ❖

나리는 수통에 입을 대고 마른 목을 축였다.

핵전쟁을 대비하여 지었다는 콘크리트 벙커는 지은 지 꽤 오래된 유물이었다.

땅속을 기어 다니는 몬스터에게도 안전했지만, 입구에서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전파 수신호가 닿지 않았다. 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구식 발전기를 가동하여 벙커 내의 전력을 공급해야 했다.

드드드드……. 발전기 돌아가는 소음이 축축한 벙커 안을 울렸다.

“어째 으스스합니다.”

나리가 자꾸 깜박거리는 전등을 보면서 말했다.

실제로 몸이 움츠러들 만큼 실내 온도가 낮기도 했고, 반대편 입구와 벙커 안을 점검하기 위해 두 팀이 빠지자 아까보다 사람들의 말수가 적적해진 것도 있었다.

부상자가 적은 두 팀이 흩어져 넓은 벙커 안을 수색 중이었고, 부상자와 기력이 다한 에스퍼들이 먼저 휴식과 가이딩을 받고 있었다.

나리와 등을 맞대고 있던 주환이 몸을 틀어 나리를 감싸 안았다.

“이러면 좀 낫지 않습니까.”

“예…….”

자신보다 체온이 높은 주환의 온기를 덧입으니 따뜻하긴 했다. 하지만 쿵쿵, 쿵쿵 심장이 빨라지는 건 주환 때문인지,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시선 때문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누가 껴안으래? 등 맞대고 돌아.”

나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뚱하게 입술을 빼죽거렸다.

손잡는 것도 안 된다고, 페어는 등을 맞대고 돌아앉아 가이딩을 받으며 총 들고 경계하라는 강의 명령이었다.

말이 등을 맞대고 가이딩을 받는 거지, 두꺼운 방탄조끼를 입은 채로는 가이딩의 ‘가’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 알파01, B-01 총기 보관실과 통신실 클리어. 본부에 연결 중입니다.

- 알파03. C-39 식량 보관실, 수도가 작동되지 않습니다. 몬스터 흔적이 보입니다.

큰 고비를 넘겼지만 다음 작전 때까지 이 벙커가 안전하리라는 법은 없었다. 이전에 C11을 다녀온 수색 팀도 이 벙커 안에서 몬스터를 맞닥뜨렸다고 했다. 그 말대로 벙커의 벽과 바닥에는 최근에 새겨진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리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오감을 바싹 세웠다.

막 전투를 끝내서 예민하기 그지없는 에스퍼들은 강의 기세에 눌려 말을 못 했을 뿐.

깜박깜박 눈 아프게 점멸하는 불빛, 서늘한 습기와 발전기의 소음, 옆의 부상자가 흘리는 피 냄새까지 다 불쾌했다. 손도 못 잡고 등만 맞댄 채로 가이딩해야 하는 가이드들도 이 상황이 불편했다.

에헴……. 큼큼, 흠!

여기저기에서 헛기침 소리가 메아리쳤다. 강이 강렬하고도 매서운 눈으로 주위를 쓱 흘겨보며 말했다.

“뭘 봐.”

강이 안 보는 틈을 타서 옆구리가 간지러운 척 한쪽 팔을 내려 몰래 자신의 페어를 콕콕 찌르는 에스퍼도 있었고, 은근슬쩍 서로 손에 깍지를 끼고 모른 척 딴 곳을 보는 페어도 있었다.

“…….”

그 모습을 보던 주환은 나리의 손끝을 흘끗거렸다.

툭.

“……?”

나리는 자신의 손가락에 걸린 새끼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오므렸다.

단비 같은 가이딩이 혈관을 타고 감돌자 긴장감으로 바짝 뭉쳐 있던 어깨가 스르륵 내려가고 저도 모르게 고인 침이 꿀꺽 목을 타고 넘어갔다.

하아.

혈관을 타고 한 바퀴를 돌던 주환의 가이딩이 나리의 심장을 간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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