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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73)화 (7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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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 벙커

타앙! 타다당!

나리는 주환의 부축을 받고 뛰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강이 알파 2팀을 직접 엄호하면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항상 그의 뒤를 쫓던 나리는 잠시 강의 등을 보다가 권총을 뽑아 들고 다시 뒤를 돌아 산을 올랐다.

“하아. 하…….”

이상하다. 자신의 등을 떠밀고 돌아선 저 뒷모습이, 이 상황에서 왜……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걸까? 기시감이 소름처럼 오스스 올라왔다.

나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파장을 갑자기 소진하는 바람에 어지러워서 그런 건가…….

“정신 차려. 이나리. 죽고 싶지 않으면, 정신 똑바로.”

나리는 혼잣말을 했다.

콧속에서 시큼한 느낌이 올라왔다. 나리는 손등으로 코를 훔치고 주환의 큰 보폭을 따라 바쁘게 발을 옮겼다. 나리의 혼잣말을 들은 주환은 어깨에 견착한 총을 세우고 나리를 돌아보았다.

컨트롤 리밋까지 23초.

“이 중사?”

벌써 두 눈이 새빨개진 나리가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저 괜찮습니다. 박 소령님, 전방!”

나리가 권총을 들어 몬스터를 쏘았다.

타앙!

끼에엑!

주환에게 달려들던 몬스터가 총에 맞아 땅에 쓰러지더니, 입을 쩍 벌린 채 악을 쓰며 한쪽 다리를 질질 끌고 달려들었다.

탕! 탕!

괴수용 소총으로 한 발이면 끝낼 소형 몬스터인데 일반 권총으로는 세 발도 부족했다.

탕! 타앙, 탕!

속이 뜨겁다. 과열된 파장이 시끄럽게 혈관 속을 날뛰며 나리의 체온을 확 높였다. 머리가 멍해지면서 자꾸만 조준점이 흐릿해졌다. 나리는 주환을 붙잡고 그의 가이딩을 훅 끌어당겼다.

“윽.”

주환은 이를 악물고 휘청거리는 나리를 안아 들었다. 나리의 컨트롤 리밋에 생각보다 빨리 도달해 버렸다. 솔개 팀과 전방의 가이딩, 그리고 나리의 파장까지 컨트롤하며 어빌리티를 쓰고 있던 터라 제 페어의 상태를 한 발 늦게 확인한 탓이었다.

“미안.”

주환이 나리를 세게 안으며 벙커를 열고 엄호 사격을 시작한 알파 1팀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100M쯤 될까. 아주 금방이었다.

“조금만 버텨 봐.”

달고 시원한 가이딩이 나리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나리는 주환을 끌어안고 두 눈을 깜박였다.

열에 흐릿했던 시야가 맑아지며 주환의 어깨 너머로 알파 2팀이 보였다. 쉴드의 가장자리에서 고전하던 알파 2팀은 속도를 내서 안전 범위까지 들어와 있었다.

다행이었다.

나리는 안도하며 왼팔을 뻗었다.

제일 뒤에서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익숙한 인영을 향해서.

“솔개, A-09. 후방 쉴드로 개들을 낭떠러지로 밀어 버리겠습니다.”

강이 나리를 노려보며 답했다.

- 그런 건 이르지 말고 그냥 해.

그래서 나리는 대답도 없이 쉴드로 바닥을 쓸어 냈다. 나뭇가지와 잡초, 돌, 잔해와 같이 몬스터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작전 소요 시간 11분 18초.

사망자 5명.

벙커까지 안전하게 당도한 부상자 및 생존자는 69명이었다.

❖ ❖ ❖

“찾으시는 건 찾으셨습니까?”

일한이 싱긋 웃으면서 장대신 소령에게 인사했다. 강의 빈 집무실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장 소령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집무실의 문을 열어 준 까까머리 행정병을 째려보았다.

큼!

행정병은 모르쇠로 시선을 피했다.

“흐음! 근신 중인 유 소령이 여긴 무슨 일이오?”

장 소령이 느긋한 척 턱을 추켜들고 일한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긴요. 연대장님께서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고 해서 그 자리가 인사과장님 자리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 주려고 왔죠.”

일한은 상큼하게 웃으며 장 소령에게 다가오더니 강의 의자에 떡하니 앉아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렸다.

“…….”

재수 없었다. 잘생겨서 더 재수 없었다.

생글생글 웃는 상에 대고 멱살 잡고 싸울 수도 없고.

“음. 그래서 우리 장 소령님께서 찾으시는 게 뭡니까?”

“…….”

“말을 해 주셔야, 제가 장 소령님께 협조하지요.”

“협조?”

장 소령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 기가 막히다는 듯이 혀를 찼다. 다짜고짜 주인 허락 없이 들어와 서랍과 컴퓨터 하드를 뒤적거리던 사람이 적반하장으로 목소리를 높혔다.

“황현균 대통령 각하의 명령에 불복하고, 아직까지 최강 대령 가이드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은 채 뻔뻔하게 버티고 있는 사람이, 협조? 협조하려면 최강 대령과 페어 계약 파기하고 물러났어야 하지 않습니까? 유일한 소령, 당신이 S급 가이드만 아니었으면 진즉에……!”

일한이 고개를 모로 기울이더니 장 소령을 비뚜름히 올려다보았다.

“장대신 소령.”

싸늘한 공기가 붉게 튀어나온 핏대를 스쳤다.

“황에덴 생도는 찾았습니까?”

“……!”

“지금 C11 지역에 있다고 들었는데, 장대신 소령은 왜 남의 집무실을 뒤지고 있을까요? 귀한 SS급 가이드 데리러 가겠다는 대통령실 경호 인력은 없습니까? 아니면 이번 작전에 어떻게 간섭할지 간 보는 중입니까?”

장 소령의 두툼한 어깨가 들썩거렸다.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힌 이마며, 욕을 삼키는 목울대를 보아하니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일한은 픽 조소했다.

“이래저래 바쁠 텐데 그만 나가시죠?”

쾅, 장 소령은 일한을 노려보며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유일한 소령.”

“예. 장대신 소령.”

일한도 똑같이 맞받아치며 젖혔던 상체를 장 소령에게 가까이 당겼다. 햇볕에 그을린 것 하나 없이 희고 곱상한 일한의 얼굴 위로 그늘이 내려앉았다.

“왜. 근신 먹고 찌부러져 있어야 할 놈이 오라 가라 해서 심기가 불편합니까?”

뭐라 말 한마디를 내뱉기도 전에 일한의 말에 정곡을 찔린 장 소령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일한은 차가운 시선과 함께 씩 입꼬리를 올렸다.

장 소령의 심기가 배배 꼬이는 것이 보였다.

“제게 뭐라 따질 시간에 저보다 열심히 ‘노력’하셔서 유능해지십시오.”

바득바득 이 갈리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장 소령은 허, 하고 헛웃음을 내뱉더니 홱 몸을 돌렸다.

“유 소령, 여기 군입니다……. 상명하복 안 하고 딴생각하고 있는 놈이 제일 먼저 쳐 내지기 마련이란 걸 아직 깨우치지 못한 걸 보니, 근신이 너무 짧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쿵쿵, 멀어지는 코끼리 발소리에 일한은 고개를 작게 내저었다.

자존심 센 장 소령의 신경을 박박 긁어 놓았으니, 그는 자신이 저지르려고 계획했던 일을 빨리 터트리고 싶어 안달할 것이다.

일한은 집무실 문 앞에 서 있는 행정병에게 생긋 눈웃음을 지었다.

“김 중사, 병동에서 숙사로 옮긴 기자님들은 어떻습니까? 식사들은 하셨나요?”

“예. 다들 아침 식사 하고 숙실에 계십니다.”

“좁은 숙실에만 있기 답답하실 텐데. 축구 잘하시려나?”

“축구……요?”

행정병의 얼굴이 얼떨떨해졌다.

다른 군부대도 아니고 이곳은 이능력자 군부대였다. 그것도 말로만 듣던 전설 같은 존재들로만 꽉꽉 채워진.

게다가 능력자들은 제 능력이 발현하자마자 일반인과 구분되어서 사는 지역과 대우도 달랐고. 주거뿐만 아니라 교육과 의료, 연금 등 모든 혜택을 받는 대신 직업 선택의 폭은 군인으로 한정되어, 발현 이후로는 다른 세계에 살다시피 했다.

그만큼 일반인들 입장에서 능력자들은 낯설고 무시무시한 전설 속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과의 축구를 권하라니.

“아아, 이능력자들과 같이 축구하기 싫다 하겠죠?”

“예, 아무래도 싫어할 것 같습니다.”

“그럼, 싸움 구경이라도 시켜 드려야겠습니다.”

싸움 구경?

행정병은 일한이 훈병들의 훈련 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건가 싶었다.

“C11, C12 작전을 기자분들이 볼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십시오.”

일한은 워치를 켜고 집무실 가득 화면 창을 늘어놓았다. 행정병은 깜짝 놀라 자신의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자신의 워치를 내려다보았다. 군용 워치가 이렇게 기능이 좋을 줄은 몰랐다는 듯이.

한쪽에는 해란이 찍은 C11의 전투 현장이 담긴 영상이 흘러갔다.

다른 쪽에는 숙사와 부대의 주변 실시간 CCTV 영상과 지금 언론에서 방영하고 있는 뉴스와 다른 군부대의 움직임까지.

“허억.”

행정병은 저도 모르게 떡 벌어진 입을 가렸다.

일한이 그 화면 창들 사이사이를 천천히 거닐다가 행정병을 돌아보았다.

“음, 딱 봐도 꽤 좋은 구경이 될 거 같지요?”

짓궂게 웃는 일한의 얼굴이 마치 혼자 보기 아깝다고, 어서 관중들을 더 데려오라 재촉하는 것처럼 보였다.

훈련 중이던 훈병들도, 병동과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들도 갑자기 모두 멈춰 서서 눈앞에 크게 뜬 화면을 올려다보았다.

C11 전투가 생생하게 방송되고 있었다. 그것도 각 팀의 병사들 시야를 이리저리 옮겨 가면서.

[알파 02, A-05, 빨리 움직여! 가이드! 파장 컨트롤 안 하고 뭐 해! 불길 잡아!]

타다다당, 탕탕!

거칠게 갈라지는 목소리와 함께 어수선하게 흔들리는 화면은 잘 만들어진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었다.

[저, 독수리가 이상……. 윽!]

[피해! 기, 기생종이다!]

[아아아아악!]

하늘에서 후드득 떨어진 뱀들이 꿈틀거리며 병사들을 휘감고 살갗을 파고들었다.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하고, 발걸음과 거친 호흡을 따라 흔들리던 화면이 크게 뒤틀렸다.

“우, 우윽…….”

눈살을 찌푸리며 지켜보던 훈련병 에스퍼 1명이 입을 막고 헛구역질을 해 댔다. 한 번도 출전한 적 없던 사람들은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저, 저게 뭐지? 까마귀 위에 웬 사람이…….]

[독수리, A-01. 방금 막 고지 점거 완료. 지원 사격 갑니다.]

[새부터 처리해.]

[독수리, A-01. 독수리 전원 타깃 변경! 까마귀 떼부터 밖으로 내몬다!]

얼마 멀지 않은 C11의 하늘도 여기와 다를 것 없이 화창한 하늘일 텐데, 까마귀 떼가 가득해서 한밤중인 것 같았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이 낮게 가라앉은 먹구름 같은 새 떼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화면을 보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도 그 한 점으로 줌 인(Zoom in) 되었다.

“황에덴 생도 아니야?”

사람들이 크게 웅성거렸다. 하얗고 긴 은발을 늘어트린 조그마한 소녀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쉿!

누군가 주위를 조용히 시키고 그의 입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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