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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72)화 (7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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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 복병

자기 목숨 챙기느라 국보급 가이드, 에덴의 행방을 놓친 장 소령은 뒤늦게 검문소로 돌아왔지만 에덴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에덴의 발자국이 위험 지대 너머로 이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장 소령은 빼액 소리쳤다.

“가서 찾아! 뭐 해! 새끼야!”

장 소령이 자신을 따라온 병사의 팔을 쥐고 펜스 쪽으로 밀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듯한 앳된 헌병은 펜스 너머의 무성한 숲을 보고 허옇게 질려 기겁했다.

“저, 저 혼자 가, 가, 가라고요?”

“그럼 가이드인 내가 가?”

꿀꺽. 병사의 목울대가 크게 울렁였다.

“황에덴 놓치면 우린 다 끝난 목숨이야! 총도 없는 애 혼자서 무슨 어빌리티를 써서 살아남겠어!”

“일단, 지, 진정하시고 위치 추적과 바이털부터 확인하시면……. 악!”

장 대신은 헌병의 허리춤을 잡아 들어 올리더니 펜스 너머로 던졌다.

놀란 다른 병사들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무리 장 소령이 앞뒤 분간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렇게 대책 없이 신병을 펜스 너머로 던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너희도, 내가, 직접, 던져 줘?”

장 소령이 제 페어의 신체 강화 어빌리티로 우락부락 힘줄이 돋은 팔뚝을 걷어 보이며 위협했다.

“아, 아닙니다!”

그를 따라온 에스퍼들은 허겁지겁 철사 펜스 위를 기어올랐다.

그렇게 5명의 에스퍼가 작전 전날, 부대를 이탈했다.

“…….”

이 일을 강이 모를 리가 없었다. 장 소령을 멀리서 주시하고 있던 에스퍼와 일한은 굳은 얼굴로 강에게 물었다.

“연대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부대 밖으로는 에덴이 개입할 가능성.

부대 안으로는 장 소령이 부대 내의 기자들을 해칠 가능성.

둘 다 엿 같았다.

❖ ❖ ❖

으득.

나리는 깨질 듯한 머리를 쥐고 전방을 주시했다. 몸집이 대형견만 한 몬스터에서부터 집채만 한 놈들까지 앞선 군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나리가 그것들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뜨자 바람이 일어난 듯이 잔머리가 부웅 떠올랐다.

막아.

터엉, 텅!

달려드는 몬스터가 불투명한 쉴드에 걸려 넘어지고 왼쪽으로 치여 낭떠러지 밑으로 굴렀다. 빗발치는 총알에 맞아 쓰러지고, 머리가 떨어져 나가도 몸체는 땅바닥을 기었다.

비릿한 피 냄새, 머리가 얼얼하게 울리는 총성과 폭발음. 연기와 흙먼지로 뿌연 시야 속, 감지 AI가 잡아낸 몬스터들의 윤곽선.

- 솔개! 알파02 우측!

다급한 외침에 나리는 자동 반사로 오른쪽을 돌아보았다. 흉측한 독수리 떼의 퉁퉁한 배가 터지며 수십 마리의 실뱀이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형체는 뱀이었으나, 실상은 기생종 몬스터였다.

“아, 아아아악!”

뱀을 뒤집어쓴 에스퍼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뱀이 에스퍼의 눈을 파고들어 갔다.

“젠장.”

저 기생종 몬스터가 뇌를 점령한 순간부터 숙주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었다.

대응 방법은 하나, 태우는 것.

- 전 하사님!

그의 페어인 가이드가 놀라 뱀을 손으로 잡아 뽑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이내 다른 뱀들이 가이드의 팔다리를 물고 살갗을 파고들었다.

- 흐윽, 아, 안 돼! 꺄아악, 아악!

나리는 이를 악물고 알파 2팀을 쉴드로 감쌌다. 뱀에게 먹히고 있는 5명을 제외하고.

“알파02 B-03, 태우지 않고 뭐 해.”

침잠하게 가라앉은 강의 목소리가 나리를 괴롭혔다. 나리는 강의 어깨를 움켜쥐고 두 눈을 감았다.

알파 2팀의 팀장, 박 상사가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그 자리에 불을 질렀다. 강이 나리의 뒤통수를 잡아 자신의 어깨에 묻고 그 광경을 못 보게 했다.

안 그래도 인간을 먹고 기형이 된 몬스터만 봐도 낯빛이 새하얘지며 헛구역질을 하던 애니까.

- 끄아악! 아아아!

산 사람의 죽어 가는 비명이 인이어를 꿰뚫고 군의 사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강이 소리쳤다.

강을 붙잡고 바들바들 떨고 있던 나리가 흠칫 놀라 떨어졌다.

“저놈들이 체계를 갖췄어! 새든 지상종이든 땅속이든 탐지 범위 넓혀서 기생종에게 먹히지 않게 해!”

사람이 불에 타고 있는 순간에도 각자 자신에게 덤벼드는 죽음을 맞닥뜨리고 있었다.

“최 대령님.”

주환이 다가와 강을 불렀다.

“까마귀 떼가 황에덴 생도의 손짓에 따라 움직이는데, 저건 무슨…… 어빌리티입니까.”

강은 진영을 갖춘 듯이 너울거리는 까마귀 떼를 올려다보았다. 불길한 검은 구름이 커다란 새가 되어 날갯짓하고 있었다.

부대에서 이탈하여 에덴을 쫓은 에스퍼의 능력은 탐지, 은신, 폭파, 비행과 돌풍, 그리고 신체 변형. 저렇게 몬스터 자체를 조작하는 어빌리티는 특수 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정신계 쪽이었다.

“글쎄.”

세계 곳곳에 파병 나갔던 강도 듣도 보도 못한 이능력이었다. 뭔지 몰라도 그에게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전방이 아닌 강의 머리 위를 공격하던 것은 떼까마귀였다. 듬성듬성 빠진 검은 깃털 속에 툭 튀어나온 붉은 눈이 박혀 있는 새 몬스터는 떼로 몰려다니며 사냥했기에 떼까마귀라 불렀지만, 다른 몬스터와 협동하여 사냥하는 종은 아니었다.

게다가 통신 주파수를 간섭해서 나리를 비롯한 에스퍼들의 주의를 흩트리고, 그 빈틈을 타 기생종을 삼킨 독수리 떼를 머리 위에서 터트리는 전략을 보니, 이건 사람 머리에서 나온 것이 분명했다.

- 치, 치이이……. 최강…… 날 그렇게 열렬하게만 보지 말고, 어서 가이딩해 달라고 해.

노이즈가 사라지고 키득거리는 에덴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 너랑 나라면 이 모든 상황을 한 번에 끝낼 수 있잖아.

“…….”

- 그러지 않으면 어쩌다 이능력자가 된 것뿐인, 불쌍하고 죄 없고 젊은 오빠 언니들이 여기서 싸우다 죽을지도 몰라.

에덴이 부추겼다.

강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에덴을 노려보다가 치열한 전장에 집중했다.

“안 상사.”

- 독수리, A-01. 방금 막 고지 점거 완료. 지원 사격 갑니다.

“새부터 처리해.”

- 독수리, A-01. 독수리 전원 타깃 변경.

해란의 저격수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늘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주환이 친 단단한 쉴드를 통과한 총알에 맞은 까마귀들이 툭툭 떨어졌다.

- 최강, 미쳤어? 아군을 쏴?

아군은 무슨.

제일 먼저 공격한 건 떼까마귀들이었다.

강은 나리를 붙잡은 채로 목표점을 향해 내달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한 것은 몬스터보다 산 사람 쪽이다.

두우우웅!

땅이 진동했다. 땅 아래의 흙아귀와 땅거미들을 감지하던 에스퍼가 지진을 일으켜 지하 몬스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나타나면, 이제 이 땅을 딛고 두 발로 뛰는 것은 무리였다.

독수리가 점거한 고지가 바로 코앞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수색대가 세워 놓은 벙커였다. 저기까지 가면 나리가 쉴 수 있었다.

나리가 조절하고 있는 쉴드의 범위와 개개인마다 덧씌운 방패막에, 주환까지 전력으로 끌어다 쓰고 있는 쉴드 어빌리티까지. 덕분에 나리의 파장은 홍수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리가 컨트롤 리밋까지 도달한 시간이 10분 54초. 방패막이 사라지면 이번 작전은 끝.

강이 속전속결로 내달린 이유였다.

“하아, 윽, 최, 최 대령님, 그냥 제가 제 발로 뛰겠다니까요……?”

“10분 되면 벙커 앞으로 순간 이동 할 거야.”

타이머는 이미 9분을 넘었다.

“그러다 쉴드 범위에서 벗어난 군인들이 받을 피해는요?”

“어쩔 수 없지.”

안 돼.

나리는 그 누구도 자신 때문에 죽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 ❖ ❖

“아아.”

인간을 굽어 내려다보는 신이 이런 마음일까.

에덴은 입맛을 다시며 지상을 내려다보면서 현균과 두었던 체스 말을 떠올렸다.

왼쪽에서는 산등성이를 기어오르는 A급 대형 몬스터가 총격에도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들끓는 숨을 내뱉었고, 오른쪽은 기생종 몬스터로 인해 진영이 흐트러져 있었다.

“저렇게 열심히 진군해 봤자 독수리와 알파 2팀, 둘 중 하나가 쓰러지면 끝나는 거잖아?”

아니지.

에덴은 자세를 바꿔 턱을 괴고 정중앙에 있는 나리를 쳐다보았다.

이나리만 없애면 된다. 그러면 이 병정놀이는 바로 게임 오버 되고 최강이 나설 것이다.

피잉!

독수리 팀이 쏘아 대는 총알이 에덴의 앞을 스쳤다.

“칫.”

에덴은 혀를 차며 까마귀 떼를 뒤로 물렸다.

❖ ❖ ❖

나리는 크게 심호흡하고 좌우를 살폈다. 그리고 뒤처지고 있는 오른편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가이드를 잃은 알파 2팀은 확실히 고전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쉴드 범위의 가장자리에서 더 안쪽으로 빨리 이동해야 했다.

“최 대령님. 제가 전후방 쉴드를 맡을 테니, 박 소령님이 알파 2팀 가이딩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안 돼.”

강은 단번에 거절했다. 중앙 가이딩을 맡고 있는 주환이 잠시라도 빠지면 중앙과 전방의 파장이 흐트러진다.

“그렇지만 현재 알파 2팀이.”

강도 나리가 염려하는 바를 모를 리가 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그러면 독수리 팀의 엄호와 지원 사격 아래 벙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럼, 쉴드 범위를 넓히겠습니다.”

“됐어. 그러다가 너…….”

나리가 모든 힘을 소진하면 회복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과연 자신이 나리가 박주환과 더 오래 붙어먹어야 하는 꼴을 또 가만히 견딜 수 있을까? 강은 하는 수 없이 옆에 있던 주환을 불렀다.

“박주환 소령.”

“예.”

땀이 송골송골 맺힌 주환이 강을 돌아보았다. 강이 여태껏 안고 뛰던 나리를 주환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나리 들고 뛰어.”

강은 나리의 등을 밀더니 총대를 들고 뒤로 돌았다. 뒤따라 달려오던 개들이 단번에 가장 약한 구석의 냄새를 맡고 알파 2팀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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