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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71)화 (7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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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 WARNING! MONSTER ACTIVITY

강이 총을 들었다.

SS급 순간 이동 에스퍼께서 근접전 무기가 아닌 총을 들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모두의 눈이 강에게 향했다.

우리 연대장님, 총 쏘는 법은 알고 계시려나?

아니면, 그냥 저 튼튼해 보이는 총대로 몬스터를 두들겨 패려고 들고 나온 걸 수도 있었다.

“……뭘 봐?”

강이 가만히 서서 자신을 쳐다보는 나리에게 시비를 걸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리는 입을 꾹 다물고 강을 못 본 척 눈을 돌렸다. 그러나 이내 강을 흘끔거리기 시작했다.

주로 사용하는 장검과 단검도 그대로 들고 나왔고, 탄탄한 몸에서 흘러나오는 파장도 평소보다 차분히 갈무리되어 있었다.

인이어에서 C11과 C12 지역의 날씨와 작전 경로, 시간 등이 흘러나왔다. 강은 출전 준비를 마친 각 팀을 쓱 훑어보고 말했다.

“이번 작전은 다르다.”

“…….”

“알다시피 나는 후방에서 지휘만 한다. 이번엔 군들이 앞장서서 너희의 목숨을 위해, 너희의 울타리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싸울 것이다.”

총을 쥐고 정자세를 한 군인들의 눈에서 결연한 빛이 일었다.

“각 팀장 앞으로.”

5명의 팀장이 강의 앞에 섰다. A급 은신, 축지 어빌리티 에스퍼인 안해란 중위와, B급 가이드인 박 상사, C급 염동력 에스퍼 박 중사 등등.

기존에 분대를 이끌던 팀장들도 있었고, 이번에 처음으로 팀장에 오른 사람도 있었다.

“등급에 따른 지휘 체계가 아니라 군의 작전 수행 능력, 그리고 체력 평가와 리더십에 따라 팀장을 나눴다. 그동안의 훈련과 시뮬레이션으로도 실력이 증명된 팀장들이니 믿고 따라라. 네 옆 사람이 D급 돌격수든 A급 에스퍼든 상관없어. 너의 목숨을 맡긴 전우야. 알았나?”

“예!”

“빌어먹을 SS급 에스퍼는 네놈들의 구세주도 아니고 백도 아니고 치트키도 아니니 어떻게든 네놈들의 힘으로 살아남아.”

무리한 명령 같았으나 강의 눈빛에는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강렬한 믿음이 비쳤다.

전군을 하나하나 훑어보던 강은 마지막으로 나리를 쳐다보았다. 나리는 그 시선에 입술을 꾹 말아 물고 굳게 맞섰다.

“그럼 이동한다.”

강이 맨 앞에 서서 작전 대형대로 순간 이동 시킬 줄 알았는데, 강은 대열을 성큼성큼 가로질러 정중앙에 있는 제2팀의 쉴드 어빌리티 에스퍼의 옆에 섰다.

그때 일한이 말했다.

- 아아, 알파 1팀, 알파 2팀, 알파 3팀, 솔개 팀, 독수리 팀, 잘 들리시죠? 10초 후, 작전 지역으로 이동시켜 드릴 겁니다. 다들 총 들고 자세 낮춰 주세요. 10…….

철컥.

모두 총을 들고 자세를 낮췄다. 나리도 앞에 선 주환의 어깨를 잡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그녀의 옆에 선 강이 나리의 허리를 잡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

나리가 흠칫 놀라며 강을 쳐다보았다.

강은 전방, 작전 통제실에서 두 팔을 흔들며 웃고 있는 일한을 노려볼 뿐이었다.

- 6, 5, 4…….

강 대신에 부대에 남기로 한 일한이 두 팔을 벌려 파장을 움직여 전 소대를 감쌌다.

“최 대령님?”

나리가 어깨를 씰룩거리며 강을 불렀다.

강이 나리를 내려다보았다.

아무 말도 없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자신을 훅 끌어당긴 남자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들고 코웃음만 쳤다.

왜 불러?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 아무것도 아니다. 뭐, 제일 중요한 부상자 곱게 운송하려고 잡은 거겠지. 의식하지 말자, 별거 아닐 거다. 나리는 간질거리는 옆구리를 무시하며 강의 어깨 위에 왼팔을 걸어 잡고 강에게 기댔다.

강은 나리의 심장 박동을 들으며 하얗게 변하는 전방을 쳐다보았다.

“긴장 풀어.”

강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리 명령한다고 해서 어깨까지 바짝 올라간 긴장을 화장실 휴지처럼 술술 풀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네!”

강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야무지게 실린 묘한 감각에 심장이 날뛰는데도 나리는 대답을 잘했다.

눈앞이 번쩍거리며 주변이 일그러졌다. 발을 딛고 있던 땅이 물컹해지며 사라지더니 아래로 꺼졌다.

위험 구역 C11.

C12와 C9 사이를 가르는 야트막한 산등성이. 에스퍼의 파장과 폭파에 휩쓸려 쓰러진 침엽수림으로 장애물이 많은 지대였다.

발이 지면에 닿는 사람이 절반, 나머지는 나무 기둥에 걸려 넘어지고 미끄러졌다.

푸르스름한 새벽녘을 꿰뚫는 기괴한 비명이 울렸다. C11에 둥지를 튼 떼까마귀 몬스터였다. 그들이 볼품없이 듬성듬성 깃털이 빠진 날개를 퍼드덕거리며 침입자들을 알리기 시작하자 하늘이 새카맣게 물들 정도로 수천 마리의 새 떼가 시끄럽게 날아올랐다.

“쉴드!”

강이 외쳤다.

주환이 나리의 파장을 넓게 펴서 하늘을 감쌌다. 그리고 나리가 내부에 방어막을 씌웠다.

퉁, 투둑, 투웅, 까마귀 떼는 불투명한 반구에 부딪히고 미끄러져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부리로 쪼고 그러다가 쉴드가 약한 모서리 쪽을 부리로 쪼아 비집고 들어왔다.

몬스터는 하늘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땅속에서 독침을 쏘며 기어 나오는 것들, 차원의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파장에 뒤틀린 것들, 죽어도 죽지 못한 것들……. 죄다 고통에 울부짖으며 원망과 좌절, 끝없는 허기를 성토했다.

군대를 향해 달려오던 몬스터들은 총과 발화 어빌리티에 맞아 쓰러졌다.

“어, 어우…….”

마른 나뭇가지처럼 말라비틀어지며 까맣게 타오르고, 어떤 것은 곪아 썩은 머리가 터져 버렸다.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장면이었다.

화약과 역하게 타는 냄새에 나리는 미간을 구기며 입을 꾹 다물었다. 가이드가 없었으면 비위 약하고 예민한 에스퍼들은 토악질하다가 죽을 지옥이었다.

진영은 시뮬레이션대로 움직이며 산등성이를 따라 서쪽 C12로 향했다. 나리가 있는 중앙 솔개 팀, 솔개 팀의 전방에 있는 알파 2팀,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알파 1팀과 3팀. 그리고 뒤로는 해란의 축지와 은신, 비행 어빌리티로 지원 사격을 날리는 독수리 팀이었다.

착지 후 첫 대응은 시뮬레이션대로 성공적이었다.

“으꺄아악!”

최강 대령의 목에 매달려 산을 내달릴 줄 몰랐던 이나리 중사만 빼고.

“최 대령니임……! 사격은 두 손으로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죽이면 장땡이지.”

“아니, 아니! 저 좀 놓아주시고 총 제대로 잡으시라고요! 저 두 다리는 정상입니다! 달릴 수 있…….”

“되게 시끄럽네.”

나리가 발꿈치를 세워 땅을 딛으려고 할 때마다 강은 나리를 훌쩍 고쳐 안았다.

신체 강화 어빌리티로 단단히 붙잡힌 옆구리와 뱃가죽이 아팠다. 강이 뛸 때마다 머리와 어깨가 덜거덕덜거덕 흔들려서 더 힘들었다. 강의 목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 윽, 아, 아픈데, 요……. 제가 달릴 테니, 놓아, 주시면.”

“2팀, 전방 탐지 상황 보고해.”

“……으윽.”

강은 나리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지휘했다. 그래서인지 행군 속도는 전보다 빨랐다.

- 알파02, B-08, B급 대머리독수리 스무 마리 발견, 좌표 37°58′40.02″, 127°2′55.05″에 있습니다.

- 알파02, B-03, 좌표 37°58′66.01″, 127°2′57.99″에서 A급 대형 몬스터 발견, 3팀 쪽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 독수리, A-01. A급 대형 커버합니다.

- 알파03, A-11, A급 대형 몬스터 발견, 수류탄 투하.

“솔개 A-09, 전방 쉴드 지원합니다. 가이드는 뒤로 빠지십쇼.”

나리는 에스퍼와 함께 앞으로 나가 싸우던 가이드가 빠지는 것을 지켜보며 쉴드 어빌리티를 끌어모았다.

- 독수리, C-32. 하늘 위에 뭔가가 있습니다!

누군가 소리치며 독수리와 까마귀 떼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새까만 새 떼 위에 앉은 작은 인형이 붉은 눈을 번뜩이며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치익, 칙, 치이이…… 죽…… 치익. 이나……리, 치, 치이이…….

날카로운 노이즈가 통신 레이더를 뚫고 들어왔다.

“헉!”

나리를 비롯한 에스퍼들은 고막을 뚫고 뇌를 찌르는 듯한 자극에 몸을 웅크렸다. 섬뜩한 손톱같이 날이 선 무언가가 주환의 가이딩을 따라 흐르는 쉴드 파장을 긁었다.

“황에덴.”

강이 눈살을 찌푸리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제일 우려했던 성가신 변수, 황에덴이었다.

❖ ❖ ❖

지난 오후, 검문소 밖 부근.

쉴드 안에서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고 총알이 빗발치는 혼란이 가시고 난 뒤, 흙먼지를 뒤집어쓴 에덴은 홀로 서 있었다.

외숙부인 장대신 소령도 없었고, 마중 나왔던 운전기사와 경호원들은 총에 맞아 정신을 잃었거나 이미 도망간 뒤였다.

“으, 으윽….”

에덴은 피를 흘리며 바닥을 기어 다니는 헌병을 무심하게 쳐다보았다. B급 발화 어빌리티에 C급 돌풍 어빌리티도 있는 꽤 유망한 에스퍼였지만 에덴의 기준에서는 벌레만도 못한 능력이었다.

“신 이병!”

“강 중사님! 괜찮으십니까?”

숨어 있던 잔챙이들이 뛰어나와 부상자를 부축했다. 그러나 에덴은 보이지도 않는 척 지나쳤다.

“…….”

나는, 뭘까.

이 나라를 날려 버릴 폭탄을 가이딩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SS급 가이드인데. 왜 쓰레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거지?

에덴은 탄창도 예비탄도 없는 빈껍데기 총을 들었다.

이렇게 무용지물이 되어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 없었다.

“어떻게든.”

에덴은 권총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내가 성공시켜야 해. 내가.”

그러면 최강도 날 무시할 수 없을 거다.

에덴은 뒤돌아 걸었다.

WARNING: MONSTER ACTIVITY BEYOND THIS POINT

DO NOT ENTER

위험 구역 경고판이 붙은 철사 펜스를 훌쩍 뛰어넘어서 C11 구역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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