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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70)화 (7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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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 두 가이드 사이에 낀 에스퍼

찰싹.

나리는 제 이마를 때렸다. 고장 난 머리가 한 번으로 재부팅될 거 같지 않아서 세 번 더 때렸다.

“나리 중사, 왜 예쁜 이마를 때려요?”

일한이 손을 들어 나리의 이마를 감쌌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가이딩이 눈두덩이 위로 내렸다. 나리는 하품하면서 속으로 꿍얼거렸다.

그놈의 변덕.

오늘 같은 날, 편하게 좀 자게 불쑥 나타나 주면 어디가 덧나나. 대체 강은 어디서 뭘 하는 건지. 일한의 가이딩을 받았다고 하니 저 혼자 꿀잠 자는 중일지도 모른다.

“…….”

나리는 다시 뚱하게 눈을 뜨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일한과 주환의 가이딩 때문에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조용한 밤이 이렇게 불편하고 사람의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건지 몰랐었다.

반면, 그 시각.

강은 가쁘게 오르내리는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시각 어빌리티와 청각 어빌리티, 감지할 수 있는 모든 오감을 끌어 올려서.

강의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여러분들이 안전 구역으로 돌아가길 원한다고 들었습니다.”

부대 내 병동으로 옮긴 30명의 취재진들은 해가 지자 불안해하며 빨리 안전 구역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성화였다.

“나 참. 그렇게 찾을 땐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해가 다 지고 나서 오시면 어떡합니까? 꼼짝없이 땅바닥에서 외박하게 생겼네.”

“대령님,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가정이 있는 일반인들입니다. 집에 있는 애들도 어리고……. 내일 군이 출정하기 전에 저희 먼저 안전 구역으로 데려다주시면 안 될까요.”

“저, 저 공황 장애 있어요. 저부터 좀 집으로 보내 주세요. 이렇게 몬스터 소리 나고, 캄캄하고 총소리 나는 곳에서 못 있어요!”

사람들이 저마다 지금 당장 안전 구역으로 가야겠다고 아우성이었다. 민간인들을 지키고 서 있던 알파팀 팀장 장 상사가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조용히 하십시오. 이능력자 부대 내입니다. 출전 전 에스퍼들은 한창 예민하니까, 숨소리도 조용히 내십쇼!”

우락부락하고 덩치가 큰 장 상사의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불만 많은 얼굴로 군인들을 노려보았다.

군 내에서의 기본 규율이었지만, 안전 구역에서 일반인들끼리 모여 사는 사람들에게 이능력자는 어색하고 두려운 존재였다.

하물며 영상 매체와 뉴스로만 보던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비안전 구역 안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니 칠흑 같은 이 밤을 더욱더 견딜 수가 없었다.

공황 장애가 있다고 호소한 여자가 강의 손을 잡고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순간 이동, 능력자시잖아요? 제발, 아까처럼 저 좀 집으로 데려다주세요. 제발요.”

강은 여자의 손을 뿌리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여자의 목에 걸린 사원증을 집어 들었다.

“백 기자님.”

“네!”

“모셔다드릴 수는 있는데, 그 후에 벌어질 일은 제가 책임질 수 없습니다.”

“예?”

사람들이 놀라 강을 쳐다보았다.

“회사에서 공지가 안 와서 모르는 것은 아닐 테고. 이 와중에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기사를 ‘잘’ 써서 회사에 올리면서까지 목숨을 구걸하지 않으셨습니까.”

사람들은 입을 벙긋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쿵쿵쿵쿵, 빨라지는 심장 소리를 감출 수 없는 누군가는 초조하게 손톱을 깨물었고, 또 어떤 이는 마른침을 삼키거나 작게 욕을 중얼거렸다.

“당신들에게 총을 겨눈 건 제가 아닙니다. 내일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이 중사도 부상을 입었고. 무엇보다 기자님들은 오늘 저의 발언을 보고 들은 증인이지 않습니까? 입막음을 위해 기자님들과 기자님 가족들이 어떤 형태든 불이익과 협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불편한 정적이 흘렀다.

“미친놈 말은 못 믿겠다는 눈들이군.”

강은 픽 조소하고 사람들을 쭉 둘러보았다. 예민한 그의 눈과 귀에 사람들의 불안함과 동요가 고스란히 잡혔다.

“아까 생중계 방송했던 사람 누굽니까?”

저 뒤에 있던 두 사람이 손을 들었다. 뚱뚱한 중년 남자와 젊은 남자였다.

“자유 채널의 김성호, 나지찬입니다. 저흰 여기에 남겠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저희 대표님께서 구속되고 채널이 차단된 것을 보면…….”

군사 기밀 유출로 대표가 구속되었고, 생방송 동영상이 바로 차단당한 중소 언론사였다. 그 당시 상황을 녹화한 원본 동영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은 일찌감치 강에게 신변 보호를 요청했었다.

“알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실 건지 정하십시오.”

맨 처음, 강에게 늦게 왔다며 따진 중년의 남자가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더니 덜덜 떨며 손을 들었다.

“저, 저희가 돌아가겠다고 하면 지금 보내 주실 겁니까? 자유 채널처럼 안 돌아가겠다고 하면요? 저희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강은 팔짱을 끼고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살이 뒤룩뒤룩 찐 종합 성인병 환자처럼 보이는 중년의 남자는 이대로 안전 구역으로 돌아가도 오래 살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도 생존 욕구에 기민하게 반응하여 이들 중 가장 태세를 잘 읽고 나서는 걸 보아하니 제일 오랫동안 살 것 같았다.

“돌아가겠다고 하면 지금 바로 보내 드릴 겁니다. 그리고 남겠다고 하면 남는 숙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강은 생각할 시간을 많이 주지 않았다.

끝까지 안전 구역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은 9명이었다.

❖ ❖ ❖

“으…….”

나리는 거울 앞에 서서 다친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가슴 높이 이상으로 올리려고 할 때마다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힘겹게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무장했다.

“머리 묶어 줄까요?”

잠옷 바지에 가운을 걸친 일한이 스윽 다가와 나리의 옆에 머그잔을 놓으며 물었다.

목덜미와 귓가를 간지럽히는 따스한 가이딩과 달곰한 민트 차의 향기가 나리의 긴장감을 사르르 녹였다.

“네.”

일한은 햇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리의 뺨에 쪽, 입을 맞췄다.

“빗 가지고 올게요.”

일한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전투복으로 완전 무장 한 주환이 다가와 나리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나리의 오른쪽 주머니에 응급 진통제를 넣었다.

“혹시 모르니 챙기십시오.”

“아, 감사합니다.”

“권총은?”

“두 자루 챙겼습니다.”

나리는 왼쪽 허벅지와 허리 뒤쪽에 단 매그넘과 글록을 보여 주었다.

신체 강화 어빌리티를 끌어 쓰더라도 오른쪽 어깨와 손 부상으로 반동이 큰 괴수용 소총을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권총은 몬스터에게 살상력은 떨어지지만 없는 것보다 나았다.

단단하게 고정한 나리의 오른팔을 보던 주환은 작게 한숨을 쉬더니, 나리의 허리를 감싸 안은 팔에 힘을 줬다.

“이 중사, 가이딩해도 됩니까?”

걱정이 가득한 주환의 얼굴을 올려다본 나리가 주환의 목깃을 쥐고 발꿈치를 들었다. 나리의 입술이 주환의 입가를 스치고 굵은 목덜미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나리는 그대로 크게 숨을 들이켰다.

“이걸로도 충분합니다.”

두근두근, 심장 가득히 차오르는 홧홧한 이끌림. 들쭉날쭉하며 예민해져야 할 감각들은 오늘따라 잔잔했고 머릿속을 맑게 만들었다.

이 정도만 해도 오늘 작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거다. 나리는 주환의 목깃을 잡은 손을 놓고 입술을 떨어트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과해도 될 거 같은데.”

주환이 엄지손가락 끝으로 나리의 턱을 잡더니 아랫입술을 쓱 훑고 지그시 눌렀다. 더 노골적인 키스 제안에 나리는 그저 동그랗게 뜬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어, 어. 음…….”

“……쯧.”

저쪽에서 빗을 들고 온 일한이 팔짱을 낀 채로 뚱하니 주환을 노려보며 말했다.

“젠장, 나라면 그냥 찐하게 했겠네. 뭘 그리 시간을 끄는 겁니까? 안 하려면 말을 하지 마시죠.”

“풋.”

나리가 눈꼬리를 휘며 웃는 사이, 주환이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그의 혀끝이 입술 사이를 가르고 깊숙이 침범했다. 부드럽고도 다디단 혀와 함께 입 안으로 퍼지는 가이딩이 잔잔한 호수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으응…….”

삽시간에 속으로 번지는 열기가 척추를 타고 발끝까지 꿰뚫으며 전율했다. 질끈 감았던 눈꺼풀이 파르르 흔들리고, 주환의 단단한 팔을 붙잡은 손에서 힘이 빠졌다.

곧 집합 시간인데.

주환은 나리의 입술을 물고 고개를 비스듬히 틀더니 한 손을 펴서 나리의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뒤통수를 받쳐 잡았다. 그러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와 혀를 옭아맸다.

박주환 소령님……?

나리는 주환의 혀를 피하며 그를 부르려고 했다. 그러자 주환이 먼저 살짝 떨어지며 더운 숨을 내뱉었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낮은 울림이 젖은 입술을 간지럽혔다.

나리는 입술을 다물고 미소 지었다. 무리하고 싶지 않아도 강의 옆을 따라다니려면 무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대답하지 않는 나리를 가만히 지켜보던 일한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빗과 함께 가져온 자그마한 추적기가 손바닥 안에 있었다.

“나리 중사.”

“예.” 하고 나리가 일한을 돌아보았다.

일한은 나리에게 자신의 앞에 앉아 보라고 하더니 나리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땋아 주었다. 여느 때처럼 하나로 높게 묶는 것이 아니라, 일한의 긴 손가락이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빗어 내릴 때마다 어깨가 움찔거렸다.

“예쁘네요.”

몬스터에게 예뻐 보여 봤자인데, 무슨 남자가 여자 머리를 이리도 예쁘게 묶어 준단 말인가. 나리가 신기해하면서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저도 할 줄 모르는데, 유 소령님께서 이런 건 어떻게…….”

일한은 나리를 쳐다보며 뿌듯하게 웃었다.

“아아. 옛날에 강이 머리 길었잖아요. 하도 제 몸에 손대는 걸 싫어해서 가이딩해 준다고 안 하고 머리 묶어 준다고 거짓말했었거든요.”

“와…….”

‘역시, 천재님이다.’ 하고 나리가 멍청하게 감탄한 순간, 일한이 나리에게 입을 맞췄다.

“머리 묶어 준다는 말, 거짓말이라고요.”

“……!”

나리는 얼굴을 확 붉히며 재빠르게 자신의 입술을 가렸다.

그만.

그만 좀 하라고! 해도 안 뜬 새벽부터 정말!

“다, 다녀오겠습니다!”

나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재빨리 숙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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