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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66)화 (66/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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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 최강 발밑에 이나리

“빨리요. 제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주환은 나리를 놓을 수 없었다. 여유롭게 검문소까지 걸어온 에덴이 자신을 가로막는 헌병의 팔을 잡고 가슴 부근을 쥐어 비틀었다. 그의 푸른색 번갯불이 에덴의 주먹에 감겨 나왔다. 탁, 에덴이 반대편 손가락을 튕기자 노란빛의 불꽃이 일었다.

에덴은 주변에 있는 에스퍼의 각기 다른 파장을 제 손에 들린 장난감처럼 다뤘다.

“…….”

나리는 주환을 밀어내고 저격수의 총이 닿지 않을 만한 곳을 향해 달렸다.

“이 중사! 하, 진짜…….”

주환은 나리가 달린 반대 방향에 있는 검문소로 뛰어 들어갔다. 역시나 총기 보관대는 굳건히 잠겨 있었다. 주환은 캐비닛을 흔들다 말고 입술을 물었다.

나리의 신체 강화 어빌리티를 끌어와서 맨손으로 꺼내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고막을 찌르는 듯한 천둥 번개 소리가 울렸다. 주환은 검문소 밖을 돌아보았다. 자욱한 흙먼지와 재가 날렸다.

[박 소령님, 빨리요!]

나리의 메시지가 뿌연 연기 사이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주환은 과감하게 어빌리티를 주먹에 끌어모아 총기 보관대를 으스러트렸다. 눈앞에 보이는 아무 총이나 잡아 들고 탄창을 총에 꽂고 검문소 밖으로 나왔다.

번쩍! 콰과아앙! 눈이 멀 것같이 새파란 번개가 다시 쏘아지며 땅을 울렸다.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의 비명이 가느다랗게 들렸다.

아직, 쉴드가 굳건했다.

주환은 총을 들고 나리가 있는 반대쪽으로 달렸다. 뿌옇게 먼지가 일어난 쉴드 밖을 벗어나야 했다.

“3시 방향 730m…….”

부대 밖을 나가면 바로 보이는 산등성이는 나무들로 빽빽했다. 대체 저기 어디쯤이란 말인가. 에스퍼가 아니니 조준경 없이 장거리 사격은 힘들었다.

총성에 폭발음까지 울리자 부대 안에 비상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저들이 누구의 명령으로 저들이 누구에게 총을 겨누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주환은 깊게 심호흡하며 뻑뻑한 눈을 비볐다.

지금 쏴야 한다.

군이 여기까지 오기 전에, 에덴이 나리를 잡아 쉴드를 해제시키기 전에.

주환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어깨에 개머리판을 견착했다. 그리고 눈을 부릅뜨고 산등성이 저 너머를 주시했다.

점으로 보였던 나무가, 선으로 보였던 위험 구역 경계 표시대가 손바닥을 보는 것처럼 가까워졌다.

어디쯤인가. 천천히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한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피로 물든 주먹을 어깨 높이까지 끌어 올리고 쓰러진 사람을 향해 내리꽂았다. 그 일방적인 폭력이 주환의 눈에 생생하게 보였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반쯤 움직이다가 멈췄다.

남자가 주먹질을 멈추고 주환을 돌아보았다.

“뭐 하는 거야. 박 소령.”

그리고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강이 주환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한 손에는 피 칠갑 된 주먹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이가 바스러져서 피가 섞인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저격수의 머리채를 잡고서.

“나리는 어쩌고?”

“이, 이 중사는…….”

저 산등성이에 있던 남자가 갑자기 자신의 옆에 서 있었다. 놀랐다는 말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숨이 턱 막혀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강은 희뿌연 연기와 폭발음이 울리는 쉴드를 보며 으르르 짖었다.

“황에덴도 저 안이야?”

“예. 아마도.”

“박 소령은 얘 데리고 병동으로 가. 절대 죽이지 마. 얘가 죽으면 너도 내 손에 죽어.”

강은 피떡이 되어 기절한 저격수를 주환에게 집어 던졌다. 그리고 손을 털며 일한을 불렀다.

“유일한, 상황 보고해.”

- 경계 태세 2등급, 다들 일 멈추고 대기하고 있어. 병동에 옮긴 일반인들한테도 2명씩 감시 겸 경호를 붙였고, 3명은 현장에서 즉사, 지금 응급 수술 중인 사람이 3명이야. 그 밖에도 부상자는…… 더 나오고 있는 상황, 맞지?

“부상자 5명 추가해. 저격수들 4마리는 병동 쓰레기통에 넣어 놨고, 마지막 1명은 박주환이 데려갈 거다.”

- 너 진짜 적당히 한 거 맞아? 나 이번엔 정말 수습할 자신이 없다.

흥, 강은 콧방귀를 뀌며 쉴드에 손을 댔다. 연기와 흙먼지로 자욱한 쉴드가 잘게 진동하면서 바스러졌다. 그 틈으로 흙먼지를 뒤집어쓴 두 사람이 콜록거리며 부대 안으로 몸을 피했다. 두 사람 중 하나는 장 소령이었다.

“황에덴은 어디 있어.”

고저 없는 단조로운 의문문이 장 소령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모, 모, 르겠습니다. 안에, 시야가…… 콜록콜록!”

강은 싸늘하게 장 소령과 그를 부축한 헌병을 쏘아보더니 쉴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먼지만큼이나 그득한 에덴의 가이딩이 불쾌하게 강의 온몸에 달라붙었다.

“이 중사, 좌표 말해.”

강은 감지 어빌리티를 끌어 올렸다. 에덴의 가이딩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나리의 파장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건지 추적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중사? 이나리!”

그의 외침이 목적지를 잃고 연기와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 ❖ ❖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나리는 이를 지르물고 낮은 자세로 움직였다. 부유 어빌리티로 일으킨 흙먼지와 에덴이 무작정 내리꽂은 발화 어빌리티, 뇌격 어빌리티 덕분에 연기가 자욱하게 일어나 몸을 숨기기 알맞았다.

나리는 감지 어빌리티로 에덴의 가이딩을 피해 숨어 있는 사람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2명은 쉴드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쉴드 막을 두드리고 있었고, 다른 3명은 차량 안에 숨어서 상황을 중계하고 있었다.

이 난장판까지 생중계하다니, 직업 정신이 아주 투철하신 분이었다.

……젠장.

주환이 저격수를 처리한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으니 강에게 대답한답시고 자신의 위치를 에덴과 저격수에게 노출시킬 수 없었다.

나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던 강의 실루엣이 우뚝 멈췄다.

“이나리 중사님이 어디로 숨었을까? 빨리 치료받으러 가셔야 할 것 같은데, 쉴드를 친 걸 보니까 여기 어딘가에 살아 있긴 한데 말이야.”

에덴이 강을 향해 말했다.

나리가 있는 곳에서 다섯 발짝 정도 떨어진 가까운 곳이었다. 나리는 숨을 흡, 참고 펄떡거리는 심장을 쥐었다. 멀리 있는 줄 알았는데, 언제 이렇게 가까워진 걸까. 헌병에게서 은신술까지 끌어와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나리는 에덴이 자신의 파장을 추적하지 못하게 큰 쉴드를 걷어 내었다.

“황에덴. 가이딩 거둬.”

“싫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

“아저씨가 지금 내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하는데, 내가 왜 그래야 하냐고!”

강은 같잖은 에덴의 말투에 한쪽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무슨 개소리야. 누가 누구 인생을 망치고 있는데.”

“아저씨잖아! 내가 어떻게 버티며 여기까지 왔는데! 아저씨는 살려 줘도 살기 싫다며! 가이딩 같은 거 필요 없으니 꺼지라면서! 날 무슨 벌레 보듯이 한 건 당신이잖아! 아무것도 아닌 애 취급만 했잖아!”

“너 애 맞잖아.”

강은 에덴의 말을 그대로 되돌려 줬다. 에덴은 분에 못 이겨 전격 파장을 강에게 쏘았다. 파지직!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강의 발치가 검게 그을렸다.

나리는 자신의 엉덩이 옆을 지나간 번개를 보고 망부석처럼 굳어 버렸다. 쿵, 멎었던 심장이 통통통 뛰면서 홉떠진 눈꺼풀을 깜박였다. 얼마나 놀랐으면 엉덩이에 불꽃이 튄 줄도 몰랐다.

나리는 손으로 군복에 붙은 번갯불을 껐다.

“애새끼가 애새끼처럼 구는데, 내가 왜 너한테 맞춰야 하지?”

“이, 이……!”

“아까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강은 허리를 굽혀 에덴과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피가 검게 말라붙은 손으로 에덴의 뺨을 톡톡 쳤다. 그의 서늘한 검은 눈동자에서도 핏빛이 보였다.

“내 가이드가 되려면 사관 학교부터 졸업해. 그리고 특수 연대에 지원하라고. 그게 어려워? 나랑 유일한은 3년도 안 걸렸는데?”

“…….”

“학교 졸업할 자신도 없으면서 나랑 결혼할 생각은 왜 해? 누가 그러든? 에스퍼는 가이드만 보면 눈이 돌아간다고. 네가 생각해 봐도 어린애들이나 보는 공주 이야기 같지 않나? 음?”

강은 에덴을 흘긋 보면서 에덴의 허리에 찬 권총을 꺼냈다. 아이가 들어도 부담이 없을 정도로 가볍고 작은 기종이었다.

그는 탄창을 분리해 자신의 뒷주머니에 찔러 넣고, 탄실에 있는 예비탄까지 뽑아내 빈 껍데기만 다시 에덴의 허리춤에 달린 권총집에 찔러 넣었다.

“집에 가서 네 아버지한테 잘못했다고 비는 연습부터 해라.”

강은 에덴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저만치에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나리를 향해 다가갔다. 피를 꽤 흘렸는지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이나리, 넌 왜 좌표 말 안 해?”

“좌표…… 대령님 발밑입니다.”

나리가 뒤늦게 보고했다.

나리의 뒤늦은 보고에 차갑게 얼어 있던 강의 얼굴에 픽, 금이 갔다.

“……?”

나리는 멍하니 강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까칠하게 비웃고 혀만 끌끌 차던 사람이 언제 저렇게 헤프게 웃었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나리는 강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강이 나리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나리가 강의 품속으로 넘어지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주위가 흐릿하게 뭉개지더니 병동의 한적한 복도 위로 떨어졌다.

강은 나리의 팔을 잡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

“…….”

폭풍의 눈 속에 서 있는 것처럼, 몇 초의 정적이 몇 시간같이 길었다.

물어보고 싶은 말이 산더미였다. 대령님 손은 괜찮냐, 많이 다쳤냐, 우린 내일 당장 어떻게 해야 하나,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냐.

누가 먼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머리털 한 올 한 올까지 뻣뻣하게 만든 긴장감이 풀리며 무거운 피로감과 가벼운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하아.

한숨과 함께 나리는 강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허물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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