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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62)화 (6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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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 마지막 시뮬레이션

강은 홱 토라져 빠른 걸음으로 숙실을 나갔다.

평화로워야 하는 아침에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인 건지. 나리는 중요한 국방부 기자 회견을 보고도 C11 작전을 밀어붙이겠다는 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박 소령, 제 말이 맞지요?”

일한은 나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주환에게서 나리를 한 발짝 떨어트렸다. 주환은 일한을 못마땅하게 쏘아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피곤이 짙은 얼굴을 쓸어내린 주환은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거렸다.

“더…… 두고 봐야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분위기가 자못 무거웠다. 주환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의 한숨 소리가 문밖까지 들렸다.

째깍째깍, 시간이 죄어 오는 소리까지 나리를 답답하게 했다.

“유 소령님, 무슨 일입니까? 대체 뭐길래 이대로 강행해도 괜찮다는 겁니까?”

“저희가 예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의 전초지요.”

“최악의 시나리오, 요?”

“내일 있을 작전에서 황에덴 생도의 멋진 활약상을 포착해야 하니 본래 작전대로 강이 나서라는 상부의 압박입니다. 특종을 잡은 방송국에서 촬영 드론까지 보낼 수도 있어요. 불법이지만, 암묵적으로 봐주시겠죠. 강 때도 그랬었으니까.”

헉.

나리는 안색이 허옇게 질렸다.

“그, 그, 그 말인즉슨…….”

일한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두 손에 힘줘 나리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리 중사…… 파이팅입니다.”

“유 소령님, 저 갑자기 배가 아픈 거 같아요. 제가 은근히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라서, 이렇게 엄중한 책임감을 갑자기 느끼면요, 어어. 어흐흐윽……!”

나리는 일한을 붙잡고 우는 소리를 냈다.

“시뮬레이션대로 하면 됩니다. 강이 있는데 혹여 무슨 일이 생기겠습니까?”

그 인간이 제일 문제잖아요!

꾀병도 통하지 않자 나리는 그의 멱살을 잡고 울고 싶었다.

❖ ❖ ❖

어제와 똑같은 대열이었다. 전투복으로 완전 무장한 군인들이 정면에 선 강을 쳐다보다가 그의 옆에 선 작은 소녀를 흘끔거렸다.

SS급 가이드, 철없고 치기 넘치는 부잣집 생도의 허세인 줄 알았는데 사실이었다니. 강의 명령에 에덴을 무시했던 에스퍼들은 잔뜩 식은땀을 흘렸다.

에덴은 그 미묘한 긴장감을 즐기며 나리를 쳐다보았다.

커다란 주환의 앞에 선 에스퍼는 어제와 다름없이 굳은 표정을 하고 정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곧은 시선이 강에게서 에덴 쪽으로 내려왔다. 에덴은 싱긋 웃었다.

나리는 작전 브리핑에 다시 집중하면서 강에게 눈을 돌렸다.

어제와는 다른 이질적인 기운이 슬금슬금 발밑을 타고 올라왔다. 나리는 저도 모르게 온몸에 힘을 주고 주환의 손을 톡 건드렸다.

“……?”

주환은 시선을 내렸다. 저만 빼고 고기 먹었다면서 삐져 있었던 나리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온갖 걱정이 입 안에 가득 차 있었다.

“이 중사, 괜찮습니까?”

주환이 작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입버릇처럼 나와야 할 말이 없이 조용했다. 나리는 그저 이를 꽉 물고 주환의 손끝을 붙잡았다.

손톱만 한 작은 접촉. 나리는 그 작은 구명줄을 잡고 천천히 숨을 쉬었다. 온몸으로 엄습하는 묵직한 긴장감과 기묘한 기운이 커다란 파도가 되어서 이 주변을 휩쓸고 있는 것 같았다.

“윽.”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나리 한 명이 아니었다.

그녀 옆에 선 에스퍼도 식은땀을 흘리며 휘청거렸다. 예민한 에스퍼들은 직감적으로 이 기운이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에덴은 활짝 미소 지으며 턱을 살짝 내렸다. 모든 에스퍼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려는 듯이.

“황 생도, 브리핑에 집중하도록.”

“네. 죄송합니다.”

강이 지적하고 나서야 에덴은 단상 아래로 깔아 놓은 가이딩을 거뒀다.

“하아…….”

멀쩡한 척 정자세를 유지하고 있던 에스퍼들의 입에서 숨이 터졌다.

페어가 없는 에스퍼들의 반응이 더 빨랐다. 마치 전에 만나 보지 못한 운명의 가이드를 찾은 것처럼 눈이 반짝거렸다. 강이 중압적인 파장과 함께 전달했던 명령은 잊은 것 같았다.

나리도 주환의 손을 잡지 않았더라면, 갑자기 확 빨아들이는 가이딩에 휩쓸릴 뻔했다.

주환은 잘게 떨리는 나리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괜찮을 거라고.

“그럼 마지막 시뮬레이션, 여덟 번째 시작하겠다.”

강이 제어실의 테크니션에게 신호를 보내자 눈앞 훈련장의 모습 위로 C11 지역의 홀로그램이 덧씌워졌다.

강은 양손을 들어 지원 사격팀인 해란의 부대를 위치로 이동시켰다. 각 팀의 팀장이 대원들을 데리고 진형을 갖췄다.

증강 현실로 덧입힌 홀로그램. 그곳의 냄새도, 기이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나리는 등골로 식은땀이 흘렀다.

여태껏 훈련했던 대로만 하면 돼. 나는 내 가이드만 지키는 거야. 내 가이드만. 나머지는 박 소령님이……. 나리는 속으로 몇십 번이고 되뇌었다.

첫 번째 고비 구간을 지나자 계곡 지형에서 팔뚝만 한 몬스터 도마뱀들이 튀어나왔다.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며 길을 가로막았다.

“전진! 고고! 백업할 테니까, 박 소령은 계속 전진해!”

앞서가던 정 팀장이 쓰러진 나무 기둥에 걸쳐 서서 달려드는 몬스터 떼에게 염력을 썼다.

그의 뒤에 있던 오 상사가 계곡 아래쪽과 전방의 몬스터를 쏘며 나무 기둥을 뛰어넘었고, 넓은 광범위 보호막을 펼치는 주환이 세 번째, 그리고 주환의 뒤를 맡은 나리가 그들의 뒤를 쫓아오는 몬스터를 쏘아 댔다.

- Team 솔개, 계곡 아래쪽 바위를 밟고 이동해라.

몬스터가 떼로 이동하면 흙 표면의 진동과 피 냄새로 흙아귀들이 먹이 사냥하기 딱 좋다. 특히 예민한 파장을 부드럽게 만드는 가이드들의 가이딩은 꿀보다 더 단 특식이었다.

- 솔개-0A. 계곡 쪽으로 이동합니다.

주환은 인이어에서 들리는 주의를 상기하며 계곡 아래로 발을 옮겼다. 뒤에서 나리와 정 팀장이 빠르게 따라붙어서 다시 진형을 유지했다. 완벽했다. 한껏 우려했던 것과 달리 피해 보고도 없었다.

에덴은 어제처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예뻐라…….”

펑펑 터지고 흩날리는 염력 어빌리티와 발화 어빌리티가 어제보다 더 크게, 더 많이 보였다.

A급이나 B급 가이드의 가이딩에 기대고 있었던 에스퍼들이 무의식적으로 SS급 가이드의 눈에 들려고 파장을 과하게 쓰고 있었다. 그 필사적인 어필을 보던 에덴은 그들의 파장을 살짝살짝 건드렸다.

“…….”

강은 잠시 에덴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작전에 집중했다.

윗분들은 페어 없는 에스퍼들을 더 효율적으로 가이딩해 주는 장면을 바라는 걸 수도 있을 테니까. 에덴이 작전에 직접적으로 나서서 개입만 하지 않는다면 한 번쯤은 눈감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에덴은 점점 더 과감하게 파장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계곡 위쪽으로 염력 파동을 날리던 정 팀장의 파장이 증폭되었다. 미묘한 가이딩의 간섭으로 바위가 흔들리며 돌무더기와 함께 흙이 쏟아져 내렸다.

“헉, 이 중사, 쉴드!”

“예!”

놀란 정 팀장이 나리에게 외쳤다. 그러지 않아도 나리는 밀려드는 산사태를 막으려고 곧바로 쉴드 어빌리티를 펼쳤다. 단단한 쉴드가 팀의 후방에 넓게 퍼지고 계곡 쪽에 다다른 오 상사와 주환의 뒤를 막았다.

정 팀장도 빠르게 파장을 가다듬고 나리를 도와주려고 했다.

나리는 그 순간, 스산한 것이 군복 속으로 스르륵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뱀? 아니면 벌레? 아니, 그보다 더 끔찍한 무언가가 살갗을 간지럽혔다.

“흐익!”

나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펄쩍 뛰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탄탄한 방패막이 울렁거리더니 흙과 바위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허물어져 버렸다. 그 위로 흙 속에 사는 몬스터가 큰 집게발을 까닥거리며 튀어 올랐다.

헉. 나리는 두 팔을 들어 머리를 감쌌다.

타앙탕탕!

“피해!”

쿵, 무언가에 부딪힌 나리는 계곡 아래로 데굴데굴 굴렀다.

“하아. 하, 흐…….”

질끈 감았던 눈을 뜨니 자신을 덮칠 것 같았던 흙무더기와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나리는 재빨리 총을 들고 일어나 자신이 떨어진 계곡 위쪽을 살폈다.

주환이 친 쉴드가 쓰러진 정 팀장을 둘러 감싸고 그 위로 흙무더기와 함께 쏟아진 몬스터가 피를 흘리며 고통스럽게 꿈틀거렸다.

나리가 쏘기도 전에 오 상사의 총알이 몬스터의 정중앙을 꿰뚫은 것이다. 주환이 한달음에 뛰어와 나리를 부축했다.

“이 중사, 다친 곳은?”

“긁힌 것밖에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러나 나리는 잘게 떨고 있었다.

인이어로 다른 팀의 위치와 상황 보고를 들으며 나리는 조급해졌다. 빨리 이동하지 않으면 양 측면과 전방에 있는 알파팀도 이동할 수가 없다.

나리는 몸이 먼저 나아갔다. 한 발, 두 발……. 다리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주환이 나리의 허리에 팔을 감아 자신의 품으로 당겼다.

“다리 다쳤습니까?”

“그게 아니라, 아까 뭔가가 다리 위를 기어오르는 것 같아서…….”

나리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종아리를 몇 번 주무르고 발목을 돌렸다.

“괜찮습니다. 빨리 이동하죠.”

주환은 나리를 붙잡고 인이어로 상황 보고를 했다.

“솔개-0A, 127°19′9.″ 38°1′40.79″ 방향 엄호 부탁드립니다. 팀과 페어의 상태부터 확인하고 이동하겠습니다.”

- Team 독수리 확인. 엄호 저격 중입니다.

- Team 알파02 확인했습니다.

“여기 앉으십시오.”

주환이 마른 계곡 위의 커다란 바위를 두드렸다. 나리는 두 손을 내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아닙니다. 저 정말 괜찮습니다. 괜찮은데…….”

주환은 나리의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번쩍 들어서 바위에 앉혔다. 그러고는 나리가 주물렀던 오른쪽 발목과 종아리를 쥐어 살살 둥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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