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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61)화 (6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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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 중대한 발표

“박주환 소령님께 통화…….”

띠링.

자그마한 연결음이 잡음과 함께 지직거렸다. “여보세요.” 하는 나지막한 목소리 너머로 왁자지껄 웃는 소리, “나리 중사?” 하는 일한의 목소리까지 빙글빙글 맴돌았다.

나리는 입 안을 깨물었다.

“소령님, 언제 오세요?”

- 죄송합니다. 지금 나갑니다.

“매일매일 제대로 가이딩받으라면서…… 세 분이서 저만 빼고 고기를 먹으러 가신 겁니까? 나는…… 가이드도 없이 머리가 아파서 잠도 못 자고 있는데. 너무하시잖아요!”

나리가 버럭 소리쳤다. 자신을 두고 저들끼리 고기 회식이라니, 화가 날 수밖에.

- 나리 중사, 강이랑 박 소령 둘이서 엄청 많이 먹었습니다. 저는 정말 딱 한 점만 주고요!

불난 집에 부채질을 잘하는 일한이 나리에게 일렀다.

2명이 아니라 강까지 셋이 모여서…….

“최 대령님께서 고기…….”

아니지. 강과 같은 차에 탔던 에덴까지 더하면…….

나리는 부들부들 떨며 주먹을 쥐었다. 라면 냄새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에게 지금 고기 먹는다고 자랑하는 건가?

옹졸하게 고기에 삐지면 안 되는데 맘대로 되지 않았다. 나리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통화를 끊었다.

“아아, 네 분 모두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 ❖ ❖

기상 알람이 울렸다.

나리는 두 팔을 쭉 기지개 켜며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뒤척거리다 언제 까무룩 잠이 들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주환과 일한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가이딩이 부산스러운 아침을 고요하게 했다.

나리는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이를 닦으며 방 밖으로 나왔다.

“킁킁, 술까지 마셨나?”

현관과 주방에 알싸한 술 냄새가 났다. 나리는 코를 킁킁대다가 더 빡빡 양치질했다.

쌜룩거리며 주환의 방 앞까지 다가와 방문에 귀를 대고 인기척을 살폈다. 부스럭거리며 뒤척이는 소리만 났다. 똑똑! 똑똑! 나리는 문을 두드렸다.

“박 소령님. 기상입니다! 집합까지 10분 전입니다.”

“으음…….”

방 안에서 칼칼하게 잠긴 낮은 신음이 들리더니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전에 독한 위스키를 마셨을 때에도 나리보다 먼저 일어난 주환이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못 일어나고 늘어지다니.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셨다는 말인가. 나리는 오늘 일과를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문을 두드렸다.

“일어나십쇼! 일어…….”

문이 벌컥 열렸다. 박하사탕같이 화하고 단 바람이 불어와야 하는데,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지옥의 수문장이 서 있었다.

“…….”

왜, 왜 강이 여기 있지?

휘둥그렇게 뜬 눈으로 강을 올려다본 나리는 칫솔을 입에 문 채로 웅얼웅얼 인사했다.

“아…… 안녕하십, 니까…….”

강은 어제 나갔던 차림 그대로였다. 반듯했던 와이셔츠는 구겨진 채로 명치까지 단추가 풀려 있었고, 목울대 아래 목둘레에 거멓고 벌겋게 그을린 자국이 나 있었다. 강은 뻐근한 목을 좌우로 기울였다.

“별로.”

강은 나리를 지나쳐 비틀비틀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알싸한 소주 냄새가 확 풍겼다. 실험실 알코올 냄새라며 강이 제일 싫어하는 술이었다.

나리는 주환의 방에 주환이 없는 걸 쓱 보고 강을 돌아보았다.

“최 대령님, 여기서 주무셨습니까?!”

“…….”

보다시피 그렇다는 듯 강은 무반응이었다. 그는 부엌 캐비닛을 열어 컵을 꺼내더니 남의 집에서 자연스럽게 물을 따라 마셨다.

“아니, 대령님과 유 소령님은 멀쩡하고 좋은 숙실을 두고 왜 여기서 주무시는 겁니까? 이건 무단 침입입니다!”

나리가 강에게 따지자 언짢아 보였던 강의 얼굴이 더 구겨졌다. 강은 자신의 팔뚝을 툭툭 털어 내면서 말했다.

“튀잖아. 입 좀 헹구고 말해.”

아, 넵. 죄송!

나리는 강의 손에 들린 물컵을 뺏어 들더니 한입 가득 물고 가글가글 헹궈 뱉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강이 눈을 홉뜨고 다시 자신의 손에 들어온 컵을 내려다보았다. 모서리의 하얀 거품과 나리의 입술에 묻은 거품을 번갈아 보다가 나리가 뭐라고 했는지 흘려듣고 말았다.

“왜 대령님께서 박 소령님 방에서 주무신 거냐고요. 박 소령님은 어디 계시고……!”

“그야, 내가 먼저 찜했으니까?”

“……?”

“…….”

강은 더 자세한 정황도 설명하지 않고 물컵을 씻어서 싱크대 옆 건조대에 엎어 놓았다. 나리는 강의 태연자약한 행태를 보며 머리 위에 또 다른 물음표를 띄웠다.

나리가 다시 설명해 달라는 듯이 두 눈을 더 크게 뜨고 있는데도 강은 젖은 손을 닦고 바보같이 허연 치약 거품을 묻힌 나리의 입가도 쓱 닦아 냈다.

흐음, 어제 박주환이 어떻게 되었더라?

나리의 전화를 받은 박주환은 그길로 복귀하겠다며 자리를 떴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참 어이가 없었다. 주환이 시킨 술은 반쯤 남아 있었고 계산도 안 하고 그냥 가 버렸으니까.

그래서 강은 넥타이를 풀어 손에 홱홱 감아 파장 제어 구속 장치를 우지끈 뜯어내었다. 불가항력의 강한 힘에 뜯어진 장치는 폭파하며 강의 목에 상처를 냈다.

되는대로 급하게 소주로 소독하고 일한이 선수 치기 전에 나리의 숙실로 이동했다. 그러고 나서는…….

강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나리의 민낯을 내려다보면서 까칠하게 되물었다.

“……일일이 다 보고해야 해?”

“아니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너도 내가 여기로 이동한 거 알면서도 자는 척했잖아. 뭘 그리 놀란 척해?”

“예? 저 정말 지금 알았습니다! 자는 척했던 게 아니라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곯아떨어졌습니다!”

“…….”

‘그럴 리가.’ 혹은, ‘너 에스퍼 맞냐?’라고 추궁하는 듯이 강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나리는 발뒤꿈치를 들고 발끈했다.

“정말입니다! 어제 대령님이 빡세게 굴리셔서 엄청 피곤했단 말입니다!”

“그래? 잠꼬대 한번 고약하군.”

자, 잠꼬대?

강의 한마디에 나리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턱을 툭 떨어트렸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잠꼬대를 강 앞에서 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여자 에스퍼 숙사에서 같이 지낸 룸메이트 홍 하사한테도 들은 적이 없던 황당무계한 말이었다.

나리는 산발이 된 머리를 쥐고 그 큰 눈동자를 끔벅거렸다.

“제, 제가 잠꼬대를 한다고요?”

“…….”

“진짜요? 호, 혹시, 제가 대령님께 무슨 실수라도…… 했습니까?”

강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나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집합 3분 전이야. 이 중사.”

“으, 으악! 미치겠다아! 박주환 소령님께 통화!”

시간을 확인한 나리가 발을 동동 구르며 자신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려던 때였다.

갑자기 그녀의 코앞이 흐릿하게 쪼개지더니 뿅 하고 나타난 일한 때문에 나리는 그만 콩 하고 부딪혔다. 그와 동시에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주환이 잔뜩 굳은 얼굴로 성큼성큼 숙실로 들어왔다.

“최강, 큰일 났어.”

“최 대령, 뉴스 기사 봤습니까?”

헐레벌떡 숙실로 들어온 주환이 거실에 덩그러니 놓인 텔레비전을 틀었다.

아침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난 10일 있었던 C12 구역의 진원 조사 결과 긴급 기자 회견을 속보로 전해 드립니다. 국방부 기자 회견장에 나와 있는 정하나 기자?]

[예. 정하나입니다.]

[정하나 기자, 긴급 기자 회견이 오늘 아침 7시로 잡힌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인데요. 어제까지만 해도 조사 중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C12 진원 조사 결과가 이렇게 급박하게 나온 이유를 두고 C15의 균열이 다시 활성화된, 비상사태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현장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현재 국방부의 분위기는 삼엄한 가운데 혼란스럽지는 않습니다. 기자 회견을 준비 중인 관계자들의 말에는 긴급 계엄령이 아닌, 중대 발표라고 하는데요…….]

“C12 구역 조사 결과, 중대 발표……요?”

나리가 텔레비전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일한은 손톱을 짓씹으며 강을 쳐다보았다.

강은 국방부 기자 회견장을 비추는 텔레비전을 가만히 응시했다. 방송국 몇 곳만 온 것이 아니었다. 신서울 내의 주요 뉴스 플랫폼은 물론, 중소 채널까지 이 이른 아침에 기자 회견장은 한낮처럼 열기를 띠었다.

저렇게 사람들 모아 놓고 쇼를 벌일 정도면, 뭔지 뻔했다.

황에덴.

그 애를 대대적으로 공표하겠다는 거겠지. 새로운 페어든 약혼이든 에덴과 하게 될 거라는 초석을 깔아 놓는 거나 다름없었다.

집합을 알리는 알람이 울리는 동시에 기자 회견장으로 국방부 대변인이 나타났다. 찰칵거리는 카메라 셔터가 여기저기서 터지며 그의 입에서 나올 말에 모두가 주목했다.

[지난 10일 C12 구역에서 일어난 진도 5.8의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 여러분께 먼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C12 구역의 진원 조사 결과, 군 이능력자 특수 연대에서 진행한 모의 작전 중의 이능력 여파임이 확인되었습니다. C12 구역의 몬스터는 현재 전멸한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모의 작전에 투입된 4명의 대원들 역시 큰 부상 없이 무사합니다.

작전을 리드한 SS급 에스퍼 최강 대령과 최근 발현된 SS급 가이드 황에덴 생도의 시범적인 모의 작전이었습니다.]

단 4명의 이능력자가 한 구역의 몬스터를 전멸시켰다는 소식보다도 SS급 가이드에 대한 발표에 여기저기에서 헉, 하는 신음이 터졌다.

“잠시만요! SS급 가이드에 대한 설명을 좀 더!” 하고, 질의응답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 역사상 가장 독보적으로 성공한 작전입니다. 이로써 2명의 SS급 이능력자를 보유한 한국도 한반도의 반을 가로막고 있는 1호 균열과 2호 균열을 영구 폐쇄하고 안전 구역을 수복할 수 있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작전의 상세 부분에 대해서는 군사 기밀에 저촉되어 발표할 수 없으나…….]

역시나.

일한은 굳은 얼굴로 입술을 짓씹었다. 주환은 밤새 내내 자신의 방을 선점한 무뢰배에게 따졌다.

“어떡하실 겁니까? 작전 시일을 다시 뒤로 미루실 겁니까? 아니면, 이대로 강행합니까?”

“…….”

강은 파장을 일으켜 텔레비전을 껐다. 주변 전자기기들이 뚝 끊겼다가 일한의 가이딩에 다시 우웅 하고 전원이 켜졌다.

“변동 사항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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