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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59)화 (59/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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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 저는 당신을 전혀 못 믿겠습니다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일이 많을 거다. 네가 더 클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네가 더 건강하고 강하게 커서 이 지옥 같은 현실을 마주하길 바랐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

“이 아비가 있지 않으냐.”

혼날 것만 무서워하던 에덴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현균을 올려다보았다. 처음으로 보는 아버지의 다정한 미소에 에덴의 경직된 얼굴이 사르르 녹았다.

“내일 아침에 C12 진원 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최강 대령과 너의 비공개 작전이었다고 널 대대적으로 선전할 거다. 그러니 어떻게든 그 부대에서 나올 생각 하지 말고 버텨라.”

“아버지가 말씀 안 하셔도 그러려고 했어요. 근데, 그 보도 자료를 최강도 아나요?”

“글쎄다.”

현균은 낮게 조소했다. 그가 알든 말든 뭔 상관이란 말인가.

최강은 위험한 싹이었다.

20년 전, 중남미에서 각성한 S급 에스퍼 하나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바꾼 일이 있었기에 균열에서 살아남은 국가들은 더욱 철저하게 이능력자를 관리했다.

하물며 SS급으로 발현한 최강은 어떨까. 그는 발현할 때부터 S급보다 현저하게 우월했다. 에스퍼와 가이드를 전부 포함한 국방력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강 때문에 세계정세에서 한국이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는 핵무기보다 위험한 양날의 검이 되었다.

SS급 에스퍼가 위험한 만큼 SS급 가이드인 에덴도 위험했다. 현균은 보다 신중하고 신중하게 그녀를 자신의 정치 인생에 기반으로 삼고 싶었지만, 2년 뒤에 있을 선거보다 강이 더 문제였다.

“이번 C11 작전, 어떻게 해서든 네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최 대령을 구워삶든 장 소령을 이용하든, 최 대령 부대의 에스퍼를 다 네 손에 넣어서라도 네가 성공적으로 끝내야 해.”

“네. 맡겨만 주세요.”

에덴은 두 주먹을 쥐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현균의 다른 자식들, 그러니까 전전처와 전처, 그리고 현 부인의 자식들보다 자신이 훨씬 더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만들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그 오만한 자식들이 아닌, 자신이 현균의 모든 것을 가질 것이다. 자신은 SS급 가이드니까.

현균은 흡족하게 웃으며 에덴의 어깨를 쥐었다.

“이 아비가 그 에스퍼를 어떻게든 처리할 테니, 그다음은 어렵지 않을 거다.”

“그 에스퍼요? 누구죠?”

“누구긴, 최강의 방패 말이다. 녀석이 10년 동안 옆구리에 끼고 죽네 사네 매달리는.”

에덴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방패, 강의 쉴드. 누군지는 뻔했다.

“아버지께서 나설 필요 없어요. 그 에스퍼 역시 제가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에덴이 이를 갈면서 말하자 현균은 허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애는 애였다. 에덴이 욕심이 많은 것도, 호기롭게 장담하는 것도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연구실 온실 속에서 키운 16살다웠다. 현균은 이 아이가 얼마나 똑똑할지 가만히 지켜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에덴아. 지난 설에 장기를 뒀던 거 기억하니?”

“네.”

에덴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날은 현균의 자식들끼리 피곤한 신경전만 벌였을 뿐, 좋은 기억은 없었다.

현균은 상체를 숙여 에덴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철저하게 다음 수까지 읽어야 한다. 넌 내 다음, 여왕이 될 아이니 말이다.”

❖ ❖ ❖

주환은 자신이 왜 이 두 사람 사이에 끼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은 타 부대에서 잠시 연수받는 신세이고, 황에덴이 강의 부대를 점거하여 에스퍼를 다 조종하든 말든 자신은 나리만 데리고 나오면 된다.

주환은 가만히 팔짱을 끼고 일한의 얘기를 듣다가 고개를 들었다.

“황에덴 생도가 온 부대 내의 에스퍼를 맡아 가이딩할 수 있으면 C11 작전에도 좋은 것 아닙니까?”

“황에덴 가이딩은 위험해.”

“박 소령은 16살, 갓 발현해서 생도가 된 애에게 지휘권을 넘기는 게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십니까?”

강과 일한은 크게 반발했다. 일한은 근신 내내 어렵게 입수한 이능력자 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냅킨 위에 빨대로 뾰족뾰족한 가시 산을 그렸다.

“이게 에스퍼의 파장입니다. 가이드가 에스퍼의 파장을 완만한 곡선이나 규칙적인 파동으로 만들고 유지해서 신체에 무리가 가지 않게 만듭니다. 그런데 황에덴의 가이딩은 에스퍼의 이 불규칙적인 파동을 아예 없애고 자신이 만든 틀 안에서 흐르게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모든 에스퍼의 파장을 컨트롤하는 것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건…….”

일한은 물에 젖은 냅킨을 반으로 접었다.

“이 방식으로 에스퍼의 어빌리티까지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겁니다. 벌써 A급 에스터 5명의 어빌리티를 동시에 사용했다는 실험 보고서를 봤습니다.”

물론 실험 보고서에는 억지로 파장을 끼워 맞춘 후유증에 대한 분석도 적혀 있었다.

염력 에스퍼가 갑자기 발화 어빌리티를 쓰게 된다든가, 비행 에스퍼가 공중에서 떨어지고, 회복 에스퍼가 환자를 감전시키는 총체적 난국이 일어난 경우도 있었다.

강이 느낀 대로 실전에 투입하기에는 위험한 가이드였다. 차라리 등급이 낮은 가이드가 훨씬 나았다.

“황에덴 생도는 나리 중사 어빌리티를 써 봐서 알지도 모릅니다. 강의 파장이 나리 중사 쉴드를 한 번에 뚫지 못한다는 걸요. 다른 에스퍼를 이용하는 것도 그렇지만, 특히 나리 중사를 이용하면 더 골치 아파집니다.”

일한은 진지하게 설명하는 것을 멈추고 맞은편에 앉은 두 놈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말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강과 주환은 불판에 올린 고기를 순식간에 흡입하고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저녁을 먹지 않아 배고프다던 최 대령님이 주도해서 가까운 고깃집에 왔는데, 멀미해서 입맛 없다던 주환은 왜 저리 잘 먹는단 말인가.

“저기요. 아저씨들?”

“…….”

“……드십시오. 유 소령.”

주환은 마지막 남은 한 점을 일한의 앞 접시에 올려 주었다. 일한은 그 쓸쓸한 고기 한 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황에덴 생도가 매칭률을 따지지 않고 에스퍼의 파장을 다룰 수 있다면, 나머지 가이드들은 가이딩을 못 쓰는 겁니까? 아무리 매칭률이 좋아도?”

일한은 젓가락으로 고기를 깨작거리며 주환의 질문을 곱씹었다. 에덴을 연구한 1등급 보안 데이터들, 동시에 진행했던 실험의 연관성, 그리고 특이 발현자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박 소령은 뭐 아시는 것 없습니까?”

주환은 두 눈을 들어 일한을 쳐다보았다. 갓 가이드가 된 병아리가 알아봤자 뭘 알겠냐는 투의 얼빠진 표정이었다.

일한은 농이 아니라는 듯이 주환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가만히 앉아서 품위 있게 먹기만 하던 강도 주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해군 내에서 따로 연구하는 게 많던데요?”

“해군에서 말입니까?”

“에이, 아무것도 모른 척하지 마십시오.”

일한이 생긋 웃으며 젓가락으로 주환을 가리켰다.

“그 연구의 산물이 박주환 소령님 아니십니까?”

“……저 말입니까?”

주환은 전혀 몰랐다는 투로 되물었다. 생글생글 웃으며 초승달처럼 휘어졌던 일한의 눈매가 팽팽하게 펴졌다. 짙은 갈색의 눈동자가 예리하게 주환을 노려보았다.

“네. 특이 발현자 A급 가이드, 박주환. 당신 말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한 주환의 반응에 강은 픽 신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강은 손목을 걷어 일한의 최고급 워치 옆구리를 딸각 건드렸다. 조그마한 단자와 가느다란 전선이 길게 딸려 나왔다. 그는 그 전선을 고깃집 주문 시스템 화면 뒤편에 연결하더니 컴퓨터를 실행시켰다.

추적할 수 없는 임시 공유 회로가 열렸다. 고깃집 주문 시스템 메뉴가 꺼지더니 넓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커다란 항공 모함이 나왔다.

강은 사진을 확대시켰다. 미국식 항공 모함으로 보이는 배 위에는 어느 나라의 배인지 구분하는 식별표가 적혀 있지 않았다.

다음 사진은 멕시코만과 북유럽의 해양 유전 플랫폼이었고, 그다음 사진에는 산호섬을 깎아 만든 군사 기지, 그리고 남극의 연구 기지 사진이 차례로 지나갔다.

“박주환, 이거 다 모르겠어?”

“…….”

주환은 가만히 사진들을 넘겼다. 다 알지는 못하지만 몇몇은 눈에 익었다. 그리고 이 사진들의 공통점을 알고 있었다.

세계 연합 군사 기관. 균열로 인해 육로와 해로가 엉망이 된 현재, 육로보다 그나마 안정적인 해로의 물류 유통과 해양 자원 채굴을 위해서 만든 군사 요충지였다.

2년에 한 번씩 합동 군사 작전으로 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뿐이었다.

“당신 말고도 지난 6개월간 특이 발현한 이능력자가 꽤 된다고 들었습니다. 이능력자 연구소에 보고된 것만 23건, 모두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해군 소속. 그리고 그 시기에 전투 외 사망 기록도 살펴보았는데, 돌연사와 자살, 사고사가 37명, 지난해에 비해서 2.5배 더 높더군요.”

“말씀의 요지가 뭡니까?”

주환은 물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일한은 턱을 괴고 자료들을 하나하나 넘겼다.

“우연으로 치기엔 너무 꺼림칙하지 않습니까? 해외 이동이 제일 자유로운 해군, 해상과 해저에 곳곳에 위치한 연합 군사 기지. 그리고 난데없이 나타난 특이 발현자들과 SS급 가이드, 그리고…….”

“무슨 음모론에 빠지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흐음, 그렇습니까? 저는 그 음모론을 직접 겪어 봐서 말입니다.”

일한은 휙휙 넘기던 사진 하나를 톡톡 건드렸다. 하늘과 땅, 검은 균열이 거미줄처럼 쳐진 어느 산골 마을이었다. 군용차와 탱크, 의료 헬기, 그리고 연합국의 로고가 새겨진 막사들이 균열 주변에 널려 있었다.

“저는 박주환, 당신을 전혀 못 믿겠습니다.”

“…….”

“황에덴이 이번 작전에 투입되는 것도, 당신이 나리와 매칭된 것도 우연처럼 보이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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